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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의 귀환-59화 (59/71)

59화 질투 나

주완이 샤워를 하러 들어갔을 때, 도희는 제 핸드폰에 온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곤 그제야 순자의 생방송 인터뷰를 떠올렸다. 도희는 가장 먼저 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나영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신호음은 뚝 끊기고 나영의 호통이 떨어졌다. 도희는 나영의 호통에도 전혀 주눅 드는 기색 없이 되레 나긋한 투로 나영의 이름을 불렀다.

“나영아.”

-……뭐야? 불안하게.

“주완 씨 깨어났어.”

-뭐??

소스라치게 놀란 나영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을 기세로 새어 나왔다.

-진짜? 얘기는 했어? 병은? 다 나은 거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도희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천천히 얘기할게. 아직 같이 있어.”

-아, 어……. 그나저나 어머니 일은 아무래도 우리도 대응을…….

“난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조심스레 묻는 나영의 말에 도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겠다는 듯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나영이 착잡한 한숨을 쉬며 단호한 투로 말했다.

-그래, 조금 지저분한 싸움이 될 수도 있어.

“각오하고 있어.”

도희는 나영에게 그간 순자와 있던 모든 일을 설명했다. 효주와의 거래로 인해 더는 순자와의 인연을 이어 갈 생각이 없다는 강경한 의견까지 말하자 나영은 힘든 선택을 잘했다며 그녀를 위로했다.

나영과의 전화를 끊고, 다음으로 지섭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나영 다음으로 전화가 많이 건 게 다름 아닌 지섭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몇 분 전에도 찍힌 부재중을 보곤 그에게 전화를 걸려던 차였다.

“뭐 해?”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주완이 젖은 머리를 털며 가운을 입은 채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호텔에 있을 법한 가운이 병실에 있어 놀라워하며 도희는 오랜만에 보는 그의 물기 젖은 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한 달 사이에 많이 자라난 머리는 눈을 다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왔다.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주완의 이목구비는 여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주완은 길어진 머리를 귀찮다는 듯 뒤로 헝클며 다시 물었다.

“바빠?”

“아, 전화 좀…… 하려구요.”

도희가 망설이듯 대답하자 주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금 전까진 나영과 통화한 도희였지만, 이미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지섭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단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누구한테?”

그를 눈치챈 주완은 도희를 수상하게 여기며 집요하게 물어 왔다. 도희는 하는 수 없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섭…… 이요.”

“이 시간에?”

불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도희가 자못 당황했다. 이제 막 일어난 사람한테 새로운 스트레스를 안겨 주고 싶진 않은데, 지섭에게 전화를 걸려는 타당한 이유를 대려면 순자의 인터뷰 사건을 말해야 했다. 도희는 하는 수 없이 주완을 위해 둘러대는 쪽을 택했다.

“조금 친해져서요. 평소에 늦게 자기도 하고.”

도희는 자신이 생각해 낸 변명이 주완의 심기를 더 거스른단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주완은 수건으로 머리를 툭툭 털다가 돌연 굳어져선 도희를 돌아봤다. 도희는 주완의 마음은 짐작조차 못 한 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요?”

“늦게 자다니, 누가?”

“둘…… 다요.”

추궁을 하는 듯한 주완의 말에 도희가 영문도 모르는 채로 중얼거렸다. 그 뒤로 도희는 자신이 무언가 실수했느냐고 물어봤는데, 주완은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도희가 묻기를 포기하려는 무렵, 주완이 깊은 한숨을 내쉬곤 도희 등 뒤로 다가왔다.

곧 주완의 두 팔이 도희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의 젖은 머리칼 끝에선 불규칙한 간격으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도희는 제 어깨 위로 먹물처럼 퍼지는 물기를 보면서 저를 끌어안은 그의 단단한 팔뚝을 손으로 잡았다. 주완은 마치 도희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옭아매더니 별안간 고개를 푹 숙이고, 도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질투 나.”

“네?”

“앞으론 덜 친했으면 좋겠어.”

스트레스받을까 봐 둘러댄 말이었는데. 주완의 딱딱해진 목소리가 은근하게 심장을 간질였다. 등 뒤로는 그의 뜨거운 체온이, 불규칙적으로 둥둥 울리는 심장 소리가 하나하나 세밀하게 느껴졌다. 주완과 닿아 있는 부분에 도희의 온 신경이 밀집됐다. 그의 정열적인 질투 하나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뜨거워진 기분이었다.

어떤 반응을 해야 될지 몰라 도희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주완은 분위기를 전환하듯 침대로 저 혼자 올라갔다.

“자자.”

침대 곁을 툭툭 건드리는 주완은 마치 유혹하는 모양새처럼 보였다. 다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한쪽 팔을 세운 주완의 매혹적인 자세에 당황한 도희가 분주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순간 도희의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스쳤다.

‘다시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벌써 첫날밤…… 아니, 첫날밤은 아니지. 그래도 아직 정식 부부는 아니니까 자는 건 좀…… 아니, 그보다 여기 병실인데 괜찮나? 혹시 주완 씨한테 무리라도 가면…… 아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려나?’

우왕좌왕하는 도희의 모습을 주완이 한참을 지켜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희의 음란한 생각을 알 리 없는 주완은 태연한 얼굴로 다시금 그녀를 불렀다.

“빨리.”

주완의 재촉에 도희는 머릿속에 엉겨 있던 말을 아무렇게나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그게, 여기는 병실이고, 우리가 다시 부부가 될 거지만, 아직 부부는 아니고…… 물론 주완 씨 스트레스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건 다른 문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희가 말을 더듬으며 분주한 손짓을 해대자 주완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곤 불현듯 서로의 생각을 동시에 깨닫고, 두 사람의 희비가 갈렸다.

주완은 폭소를 터트렸고, 도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도희는 이대로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트레스에 도움이 돼? 확실한 거지?”

주완이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놀리듯 말하자 도희는 하는 수 없이 모르는 척 종종걸음으로 침대 곁에 앉았다. 주완은 도희가 제 곁으로 다가오자 그녀에게 더 바짝 붙어 해맑게 조롱하듯 말했다.

“응? 확실하면 당장 실천해야지.”

그렇게 말한 주완은 도희의 한쪽 팔을 빼내어 그녀를 단숨에 눕혀 버렸다. 도희는 꼼짝없이 주완의 두 팔에 갇혀 자신의 위로 반쯤 올라온 주완을 시무룩한 표정으로 올려봤다.

“놀리지 마요. 창피하단 말이에요.”

“뭐가 창피해. 예비 아내가 스트레스 풀어 준다는데.”

“그마안!”

애원하듯 그렇게 말한 도희가 주완을 밀어내자 그가 낮게 큭큭거렸다. 그러더니 곧 그녀의 머리를 제 가슴팍으로 세게 끌어안았다. 도희는 얄미운 주완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의 단단한 가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몇 초간 침묵을 잇다가 감탄에 가까운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꿈은 아니겠지.”

돌연 달라진 진지함에 도희 역시 주완을 힘껏 끌어안았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의 몸에선 바디 워시와 그의 체취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청량한 향이 풍겼다.

“절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희 역시 아직 처한 현실이 생생하게 와닿진 않았다. 두 사람은 갑자기 닥친 이 행복을 행여 다시 놓치기라도 할까 밤새 서로를 끌어안고 또 끌어안았다.

* * *

다음 날, 도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사람들은 그래도 엄마인데 너무 한다며 도희를 비난하기도 했고, 오죽했으면 천륜을 끊었겠냐며 도희를 위로하기도 했다.

SP엔터테인먼트는 가족사 문제라 자세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순자는 오래전부터 돈을 요구해 왔고 그로 인해 도희가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에 현재는 연락하지 않는 상태이며, 고소 일은 유감이지만 판결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소속사는 도희의 입장은 얼핏 얘기하되 도박이나 사기 혐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피했다. 아무리 도희가 괜찮다고 했어도 도희의 유일한 가족을 건드리는 일에 조심스러운 탓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속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순자의 밑바닥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낱낱이 까발려졌다.

오후가 되자, 뒤늦게 순자의 인터뷰를 본 피해자들이 분노하는 글을 올렸다. 내용은 순자가 부인하고 있는 사기 혐의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나열한 글이었다. 그 글은 꾸며 냈다기엔 몇 명의 증언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도희를 욕하던 사람들의 여론도 차차 기울었다.

거기다 도희의 동창이라고 주장하는 세동 고등학교 연극부 단원이 올린 글은 동정론을 붉어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백도희 동창입니다. 한마디 올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엔 도희의 동창임을 인증한 사진과 글이 함께 올라왔다.

[솔직히 백도희와 친한 건 아닌데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에 한마디 올립니다. 백도희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많지 않았어요. 이유는 항상 아르바이트 때문에 바빴기 때문이죠.

처음엔 다들 백도희가 고아인 줄 알았어요. 당시에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을 못 가고, 급식비를 못 냈던 건 도희밖에 없었거든요. 나중에 얘기 들어 보니 엄마가 도희가 모아 놓은 돈을 홀랑 가져갔다더군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제가 아는 도희는 항상 돈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연기 수업도 무척 받고 싶어 했는데 수업료 때문에 몇 달에 몇 주씩만 수업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당시엔 연극부 담당하던 음악 선생님이 많이 안타까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형편이 많이 나아졌으니 잘살고 있나 보다 했는데,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네요. 도희가 말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 말려지지 않았을까요? 가뜩이나 힘든 생활을 견디고 그 자리까지 간 동창생이 부모를 잘못 둔 이유로 안 좋은 구설에 휘말리는 게 너무 안타깝네요. 배우는 이미지가 생명인데, 도희가 열심히 일궈 놓은 자리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오지랖 부려 봅니다.]

글 내용은 마치 생생하게 그때의 상황을 재연하듯 상당히 자세했다. 글쓴이는 주작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백도희는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극부 연습엔 빠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날 때마다 강당이나 체육관에서 발성 연습을 했으며 이 사실은 연극부 단원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글쓴이의 글은 순식간에 여러 사이트로 퍼지며 기사화가 되었다. 도희는 그 글을 뒤늦게 발견하자마자 지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라온 글, 너지.”

도희는 처음엔 지섭을 의심했다. 당시 도희는 ‘백로아’라는 이름을 썼는데, 글을 올린 사람은 도희가 ‘백로아’라는 이름을 싫어하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이름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가. 나도 이래 봬도 연예인이거든요? 또 무슨 소릴 들으려고.

지섭은 의혹을 극구 부인하며 장난스레 웃어넘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는데.”

-친한 사람이 그렇게 없어요?

두 사람은 언제 감정이 얽혔었냐는 듯 몰라보게 편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순자 일이 터지고, 김 감독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이 도희를 피해 다닐 때조차 지섭이 유난스럽게 도희를 챙기면서 그 친밀함에 더해졌다. 도희는 이성적인 감정을 떠나, 어려운 상황에 자신을 챙겨 준 지섭에게 커다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 이상 너한테 빚지면 갚을 방법도 없다.”

도희가 그렇게 말하자 지섭은 섭섭한 듯 말했다.

-빚 아니고, 친절. 그냥 주면 좀 받아라.

지섭의 털털한 말에 도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알았다, 알았어.”

“누구야?”

그때, 등 뒤에서 주완이 불쑥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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