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남편의 귀환-54화 (54/71)

54화 곁에 있을게요

병원에 도착한 도희는 당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구급차에 실려 오는 동안 효주는 그저 울기만 할 뿐이었고, 구급 대원들이 묻는 말에 도희는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주완이 왜 돌연 쓰러졌는지 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심장이 쉴 새 없이 벌렁거리고, 머리는 어딘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주완이 눈앞에서 쓰러졌는데, 도희는 눈물이 나기는커녕 넋을 빼고 있었다.

더 의아한 건 대학 병원에서 만난 그 여자였다. ‘이윤선’ 명찰을 달고 있는 여자는 흰 가운을 입고 나타나선 도희를 원망하듯 노려보더니 주완을 눕힌 침대와 함께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는 도희에게 한 간호사가 다가와 당장 MRI를 찍어야 한다고 설명해도 도희는 그저 영혼 없는 인형처럼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VIP 병실로 막 옮겼을 때, 부현이 다급하게 병실로 들어왔다. 부현의 노기등등한 얼굴을 보자마자 도희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누워 있는 주완을 확인하고 성큼성큼 도희에게 다가왔다.

짜악!

“어머니!”

옆에 있던 윤선이 소리치고, 효주가 놀란 듯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부현은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윤선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며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기어이…… 기어이 네가 내 아들을 이 꼴로 만드는구나!”

도희는 뺨이 얼얼하게 부어오르는 걸 느끼며 그대로 서 있었다. 도희는 당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구급차로 실려 온 주완을 맞이한 윤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고, 부현 역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정작 힘들 땐 옆에 있지도 않은 게, 이제 와서 어딜 감히……!”

도희는 다시 고개를 바로 세워 부현을 또렷하게 마주 봤다. 분노로 가득 찬 부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도희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제 앞에 놓여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심장이 옥죄이고 두려움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도희는 꼭 물어야만 하는 질문을 부현에게 던졌다.

“주완 씨 어디…… 아픈가요?”

그 질문을 듣자마자 부현이 또다시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이번엔 윤선이 한 발 더 앞서 부현의 손을 잡아챘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윤선에게 손을 붙들리자 부현이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침대 곁에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선이 부현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 혹시 주완이가 요즘 신경 쓰는 일이 많았나요?”

“흑흑…… 모르겠다. 나는……. 으흑, 모르겠어.”

윤선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는 부현은 알 수 없는 말만 쉴 새 없이 웅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효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효주가…… 소리칠 때 오빠가 쓰러졌어요…… 효주 잘못일지도 몰라요.”

죄책감 어린 효주의 목소리에 윤선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되려면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건데…….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

윤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희를 잠시 노려보다가, 부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재발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시 뇌압이 상승한 것뿐이니까 주완이……, 곧 깨어날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윤선의 말에 자신감이 없었다. 도희는 제 뺨이 벌겋게 부어오르는 것도 모른 채 병실을 나가는 윤선을 따라나섰다. 그 모습을 본 효주도 도희의 뒤를 따랐다.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윤선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도희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간절한 얼굴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고, 그 뒤에는 효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뭐예요?”

“주완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윤선은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 농도 짙은 한숨을 내뱉곤 말했다.

“따라오세요.”

윤선이 안내한 곳은 바로 자신의 진료실이었다. 그곳에 앉아 윤선은 MRI 영상을 모니터에 띄웠다. 도희와 효주는 윤선 앞에 나란히 앉아 영문 모를 뇌 사진을 주의 깊게 들여다봤다.

“이게…… 뭐예요?”

효주가 궁금증을 못 참고 먼저 물었다. 그러자 윤선이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양이에요.”

“네?”

눈이 휘둥그레진 효주가 모니터를 뚫고 들어갈 기세로 MRI 영상을 노려봤다. 도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놓치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지금 주완 씨 여기 있으면 안 된다니까요?’

3년 전, 갑작스레 회사로 찾아왔던 윤선의 말부터

‘뭘 본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널 제대로 봤지. 애초에 그 정도 그릇인 너한테 내가 무슨 소릴 한다니.’

바람이라고 주장하던 도희의 말에 확신을 가지고 부정했던 부현의 말, 그리고

‘……사정이 있었어.’

사정이 있었다던 그의 변명까지.

모든 순간들이 도희의 불길한 추측에 근거를 더해 주었다. 도희는 손을 벌벌 떨었다. 너무 떨리는 손을 어찌할 줄 몰라 양손을 꼭 부여잡기도 했다. 그런 도희를 힐끗 본 윤선이 말을 이었다.

“주완이가 많이 아팠어요.”

쿵. 도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음을 깨닫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도희는 최대한 이를 티 내지 않고 윤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종양이 위험한 위치에 있었고, 우리나라에선 그 자리에 있는 종양을 떼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수술을 한다고 해도 살 확률은 5%…… 아니, 그 자식이 수술을 미뤄서 3% 정도였구요.”

그 말을 듣자마자 도희는 말없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해할 수 없던 주완의 행동들이 서서히 퍼즐이 맞춰졌다. 갑작스레 잦아진 야근, 점차 수척해지던 그의 얼굴, 늘 피곤함에 쓰러져 잠들던 모습까지. 변했다고 생각했던 주완의 모습들이 그가 말했던 ‘사정’이라면.

도희의 애달픈 눈동자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왜…… 대체 왜…….”

대체 왜 말하지 않은 거야.

“어차피 죽는 거라면 당신을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았대요. 죽는 것보단 헤어지는 게 낫다고……. 여러 번 말려 봤지만, 차주완 고집 알잖아요.”

윤선은 질렸다는 듯 착잡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윤선을 바라봤다. 도희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자신에게 늘어놓았던, 주완의 이해할 수 없던 말들이 모조리 떠올라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많이 아팠어.’

‘나는 안 아팠을 것 같아요?’

말했는데. 그 사람은 말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미워서, 오직 떠났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워서.

‘당신이 무슨 사정이 있었든지 간에 불행했던 우리 결혼 생활, 그리고 이혼한 후 그 시간들. 절대로 보상 못 해요. 그 사정이 뭐든 난 이해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구요.’

‘…….’

‘당신이 죽었다면 모를까.’

나는 그런 말까지 해 버렸는데……!

“어떻, 어떻게…… 그럴 수가……. 으흐읍…….”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용솟음치고, 심장이 강렬하게 뛰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부부였는데. 늘 회사 일로 바빴던 주완을 원망만 했었다. 그가 피곤해하는 것도, 피곤해서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것도 그저 ‘변해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니,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어딨단 말인가.

“그 자식이 자초한 일이죠. 지금도…… 그렇게 스트레스 조심하라고 일러뒀었는데……. 후, 주완이한테 정말 무슨 일 없었어요?”

윤선의 질문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원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유산을 알게 된 주완의 눈물, 파혼, 프러포즈. 그 과정에서 주완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얼마나 큰 책임감과 죄책감에 시달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흐으윽…… 으흑…… 저, 저 때문…….”

도희가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띄엄띄엄 말을 하자 윤선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듯 도희의 말을 잘랐다.

“……그래요, 원인이 뭐든 주완인 이제라도 안정을 취해야 해요. 종양은 제거했지만, 사후 관리가 중요하거든요. 문제는 지금 주완이가 의식 불명이라는 건데.”

윤선은 머리가 아픈 듯 눈썹을 팽팽히 모으며 MRI 영상을 들여다보다가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선 언제 깨어날지 장담할 수 없어요.”

“어, 어흑…… 으흐욱…….”

사형 선고와도 같은 윤선의 말에 도희는 별안간 몇 시간 전에 들었던 주완의 고백을 떠올렸다.

‘사랑해, 도희야.’

그런 일이 있음에도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던 주완, 유산마저도 떠났던 자신의 탓이라며 도희를 위로했던 주완이었다.

[난 한 번도 너에 대한 마음이 떠난 적 없었어. 그 이유는…… 네 상처를 보듬은 뒤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얘기하고 싶다. 욕심인 줄 알면서도 네가 믿어 줬으면 해.]

그는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했고, 제게 매정하게 구는 도희를 다시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했던 대로 주완은 단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던 것이다.

“깨어…… 가망이…… 확률이…….”

도희는 깨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가슴을 들먹거리던 도희는 끝내 진료실 책상을 짚고 있던 손을 스르륵 놓치며 미끄러졌다. 놀란 윤선이 맞은편에서 팔을 쭉 뻗어 도희를 잡아 준 덕에 겨우 중심을 되찾았지만, 그런다고 울음이 잦아들진 않았다. 도희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무너지듯 몸을 기울여 울고 있을 때,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효주가 마침내 마른 입술을 뗐다.

“그, 그럼…… 아직도 아픈 거 아니에요?”

“말했잖아요. 완치는 됐는데 관리를 잘못하면 쓰러질 수 있어요. 지금처럼.”

“그, 그럼 효주 과부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효주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겁에 질려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윤선은 기가 찬 듯 효주를 노려봤다. 윤선의 서늘한 시선을 느낀 효주가 움찔하더니 우느라 정신 못 차리는 도희를 흘긋 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파혼은…… 아빠한테 잘 얘기할게요! 주완 오빠 꼭 낫게 해 주세요.”

효주는 어느새 주완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윤선에게 당부한 뒤 도망치듯 진료실을 나갔다.

윤선은 매정하게 닫힌 진료실 문을 보다가 울고 있는 도희를 가엾게 바라봤다. 주완도 주완이었지만, 도희도 도희였다. 미련스러운 두 사람의 짙은 사랑을 지켜본 윤선은 너절하게 늘어진 도희를 문득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도희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채였다. 의자 위에서 몸을 웅크린 도희는 제 심장 위의 옷깃만 잡아 뜯을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어 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웠다. 탈진할 것처럼 입안이 건조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도희의 머릿속엔 훌륭한 기억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간 아무것도 모른 채 주완에게 퍼부었던 몰인정하고 야만적인 언행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희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건 다름 아닌 이혼 선언이었다.

‘이럴 거면 이혼해요.’

‘말하기 어려웠는데. 고마워.’

‘하! 그렇게 이혼하고 싶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끝까지 착한 척이 하고 싶었나?’

왜 그를 의심했을까. 그를 좀 더 믿어 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으흐윽……!”

그때, 윤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의 상체를 쓰러트리고 있는 도희를 일으켰다. 도희는 흠뻑 젖은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윤선은 도희의 손에 찬물을 쥐여 주었다.

“좀 진정해요.”

“제가…… 흑, 이혼하자고 했어요. 제가 먼저…….”

“알아요. 알았으니까 우선 물 좀 마셔요.”

도희는 윤선의 말에 간신히 숨을 고르게 쉬며 힘겹게 물을 몇 모금 넘겼다. 도희가 말라붙은 입술을 겨우 축이자 윤선은 음울하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솔직히 주완이가 그쪽 때문에 더 힘든 길 가는 거…… 원치 않았어요. 근데 그 자식은 아무래도 도희 씨가 필요할 것 같아요.”

“네……?”

“차주완은 도희 씨 없으면 안 돼요. 매번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도희 씨 위해서라면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혹사시키니까……. 도희 씨가 곁에 있어 줘요.”

도희는 여전히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완이가 가장 원하는 게, 아마 도희 씨가 곁에 있어 주는 거일 거예요.”

“그럴게요…… 그럴게요. 곁에 있을게요.”

“그러니까 힘들겠지만, 중심 잘 잡아요.”

윤선의 씁쓸하고 따뜻한 부탁에 도희는 몸을 와들와들 떨면서도 끝까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놓쳐 버린 사랑과 씻을 수 없는 미안함이 엉망으로 뒤엉킨 도희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다짐만이 가득 차올랐다.

‘두 번 다시…… 떠나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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