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그 남자의 사정 (1)
주완이 처음 쓰러진 건 정확히 결혼 6개월 만이었다. 진료실 의자에 앉아, 단순 과로라고 말할 줄 알았던 윤선 입에선 믿기 힘든 말이 흘러나왔다. 윤선은 모니터에 주완의 CT를 띄운 채 힘겹게 말을 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교모세포종에 가깝긴 한데, 좀 달라. 대체 나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 치료를 해 봐야 알겠지만, 위치가 너무 안 좋아. 종양 크기도 큰데,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잘못하면 신경이나 척수를 건드릴 수도 있고.”
“잠깐, 잠깐만.”
윤선의 말에 주완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윤선은 주완을 다그치지 않고 그가 침착해질 때까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잠시 후 머리를 압박하고 있던 손을 뗀 주완이 다시 자신의 CT를 들여다봤다.
“죽어?”
“뭐?”
“죽을병이야?”
“…….”
단출한 주완의 질문에 윤선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교모세포종은 애초에 수술이 어렵기도 했지만, 주완의 경우 위치나 종양의 모양이 독특해 희귀 병에 가까웠다. 이때까지 두통을 그냥 넘긴 게 신기할 정도였다. 윤선이 대답하지 못하자 주완이 그녀를 다그쳤다.
“대답해!”
“수술해야 알아. 특이한 경우라, 내 생각엔 우리나라보단 미국 쪽에 계신 전문 박사님께 수술받는 게 더 나을 것 같고.”
“수술……안 하면? 얼마나 살아?”
“수술을 왜 안 해!”
“수술 확률은?”
“……굳이 확률을 따지자면, 5%야.”
눈앞이 까매졌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주완은 도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연애할 때, 두 사람은 이런 비슷한 부류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주완 씬 내가 죽을병에 걸리면 어떡할 거예요? 나 떠날 거예요?’
‘하루라도 더 같이 있어야지 널 왜 떠나.’
‘막 머리도 빠지고, 마르고, 흉할 텐데. 그래도 안 떠나요?’
‘외모 보고 좋아한 적 없어.’
‘어? 그 말 못생겼단 말로 들리는데?’
‘사람들한테 매일같이 예쁘단 말 듣고도 그런 말이 나와?’
‘치이. 그럼 반대로 주완 씨가 걸리면?’
‘내가 묻고 싶다. 나 죽으면 잘살 수 있어?’
‘당신이 죽으면…… 난 평생 아무도 못 만나고 불행하게 늙어 죽겠지?’
‘불행한 건 싫은데.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음…… 만나다 헤어지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이 곁에서 죽는다면 난 아마 그 슬픔 못 견딜 것 같아요.’
주완은 그때의 도희 얼굴을 잊지 못했다. 막연한 상상이었지만, 그때 주완은 도희를 두곤 결코 죽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주완은 우스갯소리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아니, 애초에 이 현실이 현실인지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수술 날짜부터 잡자.”
“아니. 당장은 안 돼.”
“뭐? 왜!”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줘.”
“너 당장 수술해도 살 수 있는 확률 5%야. 내 말 무슨 말인지 몰라?”
“알아. 어쨌든 당장은 안 돼.”
“너, 그게 무슨……!”
윤선은 기가 찬다는 듯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하지만 주완의 표정은 굳건했다. 윤선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뱉으며 앞으로 주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말해 줬다. 맵고 짠 것, 알코올 등 먹는 걸 조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앞으로 어지럼증, 두통, 구토, 그리고 언어 장애까지 올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주완은 덜컥 겁이 났지만 애써 의연한 척하며 윤선의 말을 하나하나 새겼다. 그러면서도 주완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빨리 마음 정해. 수술 안 하면 너, 살 수 있는 확률 5%가 아니라 제로야.”
“……일단 이건, 너만 알고 있어.”
* * *
주완은 우선 회사로 가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내년도 예산부터 시작해서 내년에 올릴 사업계획서도 미리 받겠다고 나섰다. 마른하늘 아래 날벼락을 맞은 부서들은 주완의 뜬금없는 열정에 모두가 욕했지만, 주완에겐 그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사업 계획서와 프로젝트 추진하던 걸 마무리하면 얼추 6개월이 걸린다. 6개월이면, 도희를 떼어 낼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지 않아도 그 안에 해야 했다.
주완은 도희를 ‘떼어 낸다’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대가 뻐근해지고,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수 있을 것 같은 절망의 심연에 빠진 듯했다. 당장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랑하는 여자를 서서히 밀어내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몹시 괴로웠다. 잘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주완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교모세포종이라면 주완이 5년 이상 살 수 있는 확률은 3%~5%. 수술해도 확률이 마찬가지였다. 교모세포종이 아니라면 그 치료가 어떻게 될지는 더욱 미지수였다. 살 확률이 5%건, 3%건, 살 수 없다는 말을 윤선이 애써 돌려 말했다는 걸 주완이 모를 리 없었다. 유학 시절 유일하게 주완과 마음이 맞았던 윤선은 겉으로 보기엔 털털하지만, 속으론 배려심 많은 친구였다. 그런 윤선이기에 주완은 자신에게 그만한 선고를 하기까지 윤선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또 부모님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주완은 당분간 부모님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한창 영화를 찍느라 바쁜 형에게도 굳이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주완은 우선 자신의 주변이 정리될 때까진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원인조차 밝혀낼 수 없는 이 병은 주완의 평소 습관 중 어떤 걸 덜어 내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주완은 여태까지 살아온 것처럼 열심히, 아니 어쩌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 남은 시간조차 장담할 수 없으니 자신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모든 게 정상 궤도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선 하루하루 치열해야 했다.
이전에도 충분히 바빴던 주완은 앞으로 더 바빠질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병을 인지해서인지 CT에서 봤던 부위가 저릿저릿하며 새롭게 통증이 밀려드는 것 같기도 했다. 주완은 최대한 수술 받기 전까진 자신의 상태를 잊어야 했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한 주완은 심호흡을 현관 앞에서 크게 했다. 촬영을 일찍 끝낸 도희가 안에 있는지 집 안에 불이 환하게 켜 있었다. 주완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태연한 얼굴을 유지한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요?”
심호흡이 무색하리만큼 주완은 도희를 보는 순간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보고 걱정 없이 웃는 그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주완은 도희를 그대로 끌어안고 싶었다. 도희의 가녀린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일었다.
하지만 주완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6개월이란 시간조차 자신에게 주어질지도 알 수 없는 이 순간에, 도희를 하루빨리 밀어내야만 했다. 주완은 입술을 꽉 깨물며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응. 씻을게.”
주완은 도희의 얼굴을 차마 더 쳐다보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간 주완은 황급히 옷을 벗고 샤워기 물을 틀었다. 여러 갈래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화장실 안을 가득 울렸다. 주완은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얼굴이 종잇장처럼 일그러지고, 순식간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완은 일부러 샤워기 바로 아래에 머리를 가져다 대고 눈물과 수돗물을 제 뺨 위로 흘려보냈다. 주완의 몸이 차갑게 젖어 갔다.
“무슨 일 있어요?”
바깥에서 걱정스러운 도희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눈물을 쏟아 내던 주완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아니.”
“그래요? 안색이 안 좋은데.”
“피곤해서 그래.”
주완은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충혈된 눈시울이 옅어지기 전까지 물줄기를 맞고 또 맞았다.
* * *
주완은 도희에게 당분간 회사 일이 많이 바쁠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진 데다가 종양의 정체를 위해 받아야 할 검사도 많았고, 전이를 늦추는 치료까지 병행해야 했다. 도희는 내심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주완은 일부러 그를 모른 체했다. 서운함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완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무력함을 통절히 실감했다.
주완은 도희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동시에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앞으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데, 도희는 자꾸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럴 때마다 도희를 밀어내야 하는 주완은 최대한 도희를 피해 다녔다. 일부러 집에 안 들어가는 날도 여러 날이었다. 주완은 숨이 막히도록 바빴고, 그래서 몹시 피곤했다. 점차 심해지는 두통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피로가 쌓이기만 하니 몸이 날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하루는 열흘 만에 집에 들어갔을 때였다. 각종 검사를 마치고 녹초가 된 주완은 소파에 늘어지듯 누워 있었다. 불을 켤 기운도 없어 그대로 있는데, 별안간 도희가 들어왔다. 주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중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괴롭게 하는 악성 세포를 모두 죽이고 싶다는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 도희가 차갑게 물었다.
“언제 왔어요?”
“좀 전에.”
열흘 만에 본 아내였다. 좀 더 다정하게 대하고 싶지만, 몸이 피로해서인지 딱딱한 대답이 튀어 나갔다. 다른 말을 덧붙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단어며 순서며 모든 게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얽혔다.
주완은 일부러 눈 위에 얹어 놓은 팔을 치우지 않은 채로 도희를 쳐다보지 않았다.
“많이 바빴어요?”
“응.”
간신히 한마디 대답을 뱉고 나자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숨이 겨우 진정되는 것 같았다. 주완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제 혀를 힘껏 깨물었다.
“피곤한가 봐요.”
불만스러운 도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은 돌아온 것 같은데 그녀의 냉랭한 눈빛을 차마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주완은 돌연 설움이 북받쳤다. 도희에게 이해를 받고 싶었다. 사실 난 희귀 병에 걸렸다고. 열흘 내내 너무 바빴고, 일이 끝나자마자 치료를 받느라 힘들었고, 점점 더 말하는 게 힘들어진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완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보고 싶었어요. 얼굴 좀 봐요.”
그런데 도희의 뜬금없는 고백에 돌연 주완의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기도 했다.
‘만나다 헤어지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이 곁에서 죽는다면 난 아마 그 슬픔 못 견딜 것 같아요.’
지금 사실을 말하는 건 이기적인 거다. 도희를 평생 불행 속에서 살게 할 순 없었다. 진짜 그녀를 위한다면, 서서히 그녀가 주완에게 느끼는 감정이 식도록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병을 도희에게 알린다면 도희는 주완의 병 수발을 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게 뻔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일도 내팽개치고, 공백기가 길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완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그 곁을 고통스럽게 지킬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 도희지만, 홀로 남겨질 도희를 생각하면 주완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죽어선 그 보상을 해 줄 수 없었다. 주완이 할 수 있는 건 도희를 외면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주완이 병을 홀로 견뎌야 할 이유는 마치 백 가지라도 되는 양 하루하루 늘어났다. 주완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나도 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