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남편의 귀환-13화 (13/71)

13화 공백기 있는 배우

어느덧 대본 리딩 날이 다가왔다. 광고 촬영 후로 첫 공식 스케줄이었다. 도희는 집에서 쉬는 동안 때때로 핸드폰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딱히 연락을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내 일에 신경 꺼요.’

그날 굳이 잘 가고 있는 주완까지 붙들고 쓸데없는 소릴 한 건 아닌가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촬영 내내 뻔뻔하게 성희롱을 일삼던 허 감독은 주완과 만난 이후로 거짓말처럼 도희를 대하는 게 달라졌다. 대신 스태프들의 수군거림은 커졌지만, 도희는 남은 촬영을 편하게 이어 갈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주완에게 도움받았단 사실이 찜찜했다.

“다 왔다.”

나영의 말에 도희는 심호흡했다. 정말 오랜만에 오는 방송국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드라마에 관한 기사가 나가면서 지섭과 도희의 열애설은 도로 잠잠해졌다. 모든 게 다 계획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여론 몰이에 지섭이 소속사를 옮긴 것까지 그저 우연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무엇보다 지섭과 도희가 함께 있는 사진 한 장 없어서 소문은 금세 거품처럼 사라졌다. 방송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예 팬 페이지까지 만들어 개봉도 하기 전에 드라마 메이킹 영상을 여러 곳에 유포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모두가 이 드라마에 주목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도희는 어깨에 책임감이 더해졌다.

방송국 회의실에 들어왔을 때, 조연 배우들은 기다란 타원형 테이블에 이미 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빈자리는 가장 중앙에 감독과 서 작가 자리, 그리고 그 바로 양옆에 앉을 도희와 지섭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 회의실엔 많은 배우들과 그 뒤에 앉아 있는 매니저들까지 수십 명의 사람으로 공기가 빡빡했다.

3년간의 공백기가 있던 도희에겐 대부분 초면인 사람들뿐이었다. 도희는 어색하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묵례하며 자리에 앉으려다 그 사이에서 류라일을 발견했다.

“또 뵙네요, 선배님.”

류라일은 다른 배우들의 시선을 의식해 사근사근 말했다. 도희는 그런 라일의 인사를 대충 받아 주곤 옆에 서 있던 나영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쟤도 여기 캐스팅됐어?”

“들은 거 없는데. 누구 하나 빠졌나?”

도희는 라일을 경계하며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나영은 도희가 자리에 앉는 걸 확인하곤 벽 쪽에 붙어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지섭이 들어왔다. 지섭은 활기찬 미소로 사람들에게 씩씩하게 인사했다. 지섭은 예의 바르게 연장자부터 차례로 인사를 건넸는데, 도희에겐 인사할 땐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듯 가장 우렁차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라일은 얄밉게 지섭을 거들었다.

“어머, 둘이 진짜 친분 없던 거 맞아요?”

라일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기사에 나온 것 외에 직접적으로 진실을 듣고 싶은 눈치였다. 마주 보고 자리를 잡은 지섭과 도희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출연진의 눈이 두 사람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고,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도희 옆에 앉아 있던 극 중 할머니 역할, 진종선이 나섰다.

“인사도 전에 해명부터 들으랴? 까불지 말고 앉아.”

진종선은 나이 72세에 데뷔가 무려 54년 차인 원로 배우였다. 66년 KBC 방송국 공채 탤런트인 그녀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였기에 모두가 존경하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선배였다. 라일은 종선의 말 한마디에 기가 죽어 꼬리를 내리고 공손하게 손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종선의 카리스마에 압도되던 순간, 김 감독과 서 작가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왜들 그러고 있어? 앉아, 앉아.”

김 감독은 서 작가를 비롯해 주연 둘인 지섭과 도희를 살갑게 소개했다. 두 사람의 이슈 덕분에 제작비가 넉넉한 건 물론이고 시청률은 맡겨만 달라는 포부를 내비쳤다. 도희는 내심 뇌물을 좋아한다는 김 감독의 소문을 걱정했지만, 제작비가 넉넉하니 굳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심됐다. 인성이 더럽긴 해도 잘 찍고, 감성적인 편집을 잘하기로 소문난 그는 방송국의 골칫거리임에도 ‘시청률 보증 수표’라는 별명이 따르기도 했다. 도희는 주변을 둘러보곤 왜 재성과 나영이 그토록 이 드라마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조연 캐스팅은 물론이고 감독까지 완벽한 작품이었다.

“‘스위트 셰어 하우스’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김 감독은 서론을 길게 뺏지 않고 곧장 리딩을 시작했다. 회의실 주변에는 메이킹 필름을 제작할 카메라 여러 대가 켜져 있었다. 모두가 편안하게 대본을 읽는 가운데, 한창 활동 중인 배우들을 의식한 도희는 긴장감 속에서 리딩을 시작했다.

‘스위트 셰어 하우스’는 급전이 필요한 집주인 여자와 집에서 쫓겨난 남자가 셰어 하우스에서 함께 사는 이야기였다. 극 중 도희는 ‘설수향’이라는 발랄하고 억척스러운 짠순이를, 지섭은 ‘이지환’이라는 귀엽고, 불같은 연하남을 맡았다. 대본은 대체로 가볍고 통통 튀었다. 도희는 대본 리딩이 진행될수록 설수향이라는 인물에게 폭 빠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6시간의 리딩을 마치고, 배우들은 양옆에 있는 서로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보는 배우들도 있었지만, 6시간 내내 합을 맞춘 배우들끼리 새로운 소속감이 생긴 탓이었다. 도희 역시 일어나자마자 옆에 있던 종선에게 먼저 인사를 하려는데 종선이 도희를 쌩 지나쳤다.

‘잘못 봤나……?’

종선은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마주친 적 없는 배우였다. 그렇기에 특별히 밉보일 일도 없었다.

도희는 용기 내서 다시 다른 배우들에게 인사를 받고 있는 종선의 앞에 섰다. 이 모습을 라일과 나영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러자 종선은 도희를 흘겨보듯 보다가 비아냥에 가까운 말투로 흘리듯 말했다.

“넌 운도 좋다, 얘.”

“네?”

그 말을 끝으로 종선이 회의실을 홱 나가 버렸다. 도희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느라 그곳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러자 라일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그녀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밉보인 것 같은데요?”

라일의 입장에선 상황이 재밌을 만도 했지만, 도희는 라일에게 온전한 기쁨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도희는 여느 때처럼 그녀의 속을 긁는 말을 골라 꺼냈다.

“이번엔 비교 안 당하게 잘해.”

도희의 귓속말에 라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주변 배우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걸 확인한 라일이 곧장 도희에게 따지려고 들었을 때였다.

“선배님.”

지섭이 도희를 불렀다. 라일은 깜짝 놀라 몸을 감추듯 한발 물러섰다.

“대본 리딩하다가 궁금한 게 생겨서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도희는 지섭의 말에 또다시 열애설을 걱정했다. 물론 열애설이 잠잠해지긴 했으나 그건 사진 한 장 없던 헛소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일 단둘이 대본 리딩하는 장면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열애설이 기정사실화될 게 뻔했다.

도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씩씩거리는 라일을 보며 말했다.

“너, 대본 연습 더 안 할래?”

* * *

같은 시각, 주완은 본가에 들렀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는 부현의 명령 때문이었다. 정원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집사가 오랜만에 보는 주완을 반갑게 맞이했다. 가볍게 묵례한 뒤 신발을 벗던 주완이 신발장에 놓인 여자 신발을 발견했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완은 망설임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엔 역시나 부현과 효주가 가족처럼 마주 보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왔니. 앉아라.”

반갑게 주완을 맞이하는 부현과 달리 주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효주를 보자마자 주완은 숨이 턱하고 막혔다.

“오빠, 오랜만이야!”

부현이 J그룹과의 관계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몰래 보고받은 주완은 일부러 효주를 피하던 중이었다. 자신이 올 시간에 맞춰 효주가 식탁에 앉아 있다는 건, 분명 부현이 의도한 자리가 틀림없었다.

“어머니, 이런 자리는……!”

그가 부현에게 큰소리를 치려던 순간이었다. 주완이 돌연 입을 꾹 다물곤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래?”

부현은 벌떡 일어나 주완에게 달려왔고, 주완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어지러운 듯 발을 주춤거렸다.

“주완아, 괜찮아?”

주완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완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현관 쪽을 바라봤다.

“……또 누구 불렀어요?”

잠깐의 침묵을 두고 주완이 말을 시작하자 부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구겠니, 네 형이지.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너 아직도…….”

“괜찮아요.”

주완은 부현의 말을 황급히 자르고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에서는 주승이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있었다. 주승은 오랜 밤샘 촬영을 하고 돌아왔는지 꾀죄죄한 차림으로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특히 떡 진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은 3년 만에 보는 주승의 멀끔한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할 정도였다.

“형 왔어?”

주승은 오랜만에 보는 동생의 얼굴을 성의 없이 올려보곤 “어.”라고 짧은 인사를 마쳤다. 미국에 있는 3년의 공백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간결한 인사였다. 주완은 그런 주승에게 내심 서운해, 방으로 곧장 올라가려는 형을 불러세웠다.

“형.”

그때, 주승의 시선이 부엌을 향했다. 주승은 식탁에 도로 앉은 부현에게 간단하게 묵례했다.

“오빠도 안녕.”

부현 곁에 앉아 있던 효주가 주승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주완이 없는 동안에 이미 여러 번 집에 온 효주를 보며 주승 역시 익숙한 듯 효주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너는 꼴이 그게 뭐니?”

그때, 부현이 주승을 위아래로 훑으며 그를 나무랐다.

“다음부턴 씻고 인사드릴게요.”

주승은 부현의 잔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말한 뒤 주완을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에겐 온정은커녕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두 사람의 냉랭한 기운은 주완이 떠나기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주완은 두 사람을 지켜보다 말고 주승을 쫓아 계단을 올랐다.

주승이 방으로 들어가자 주완은 그의 방문턱을 넘지 않은 채 서운한 듯 그의 등 뒤에서 말했다.

“형, 나 한국 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주완의 말에 주승은 묵묵부답이었다. 주승은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자마자 속옷과 편한 옷 몇 가지를 챙겼다. 주승은 주완에게 냉랭하게 대할 때마다 얕게 죄책감이 들었다. 주완을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공부나 경영 쪽에서 유난히 돋보였던 주완이었지만, 주승은 그런 데엔 예전부터 관심 없었기에 동생을 경쟁 상대로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다만 장남에게 후계자 자리를 뺏길까 노심초사하는 부현의 교활함이 언제부턴가 아니꼬웠고, 그런 부현의 등쌀에 이기지 못하는 주완을 주승은 일부러 멀리했다.

그래도 3년 만인데. 너무 했나.

주승은 샤워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려다 말고 멈춰 서서 그제야 주완을 제대로 응시했다.

“이번엔 오래가겠냐?”

“어?”

“장효주. 까딱하면 동생 하나 잃는 건데.”

주승은 아래층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주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쟤 효주잖아.”

오랫동안 알고 지낸 효주와는 그럴 리 없다는 듯 말하는 주완이었지만, 주승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쟨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은데.”

주승의 혼잣말에 주완이 입을 다물었다.

“두 번은 안 된다?”

이혼을 겨냥한 비난과 경고가 모두 담긴 말이었다. 주완의 표정이 설핏 굳어지자, 주승이 장난이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책임감 있게 살아, 새끼야.”

주승은 손에 쥐고 있던 옷가지들로 주완의 배를 툭 치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형 나 말이야.”

주완은 화장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뗐다. 그동안 차마 꺼내지 못한 비밀을 말할 것 같은 의미심장한 투였다.

“어?”

문을 사이에 두고 주승이 되묻자, 무언가를 한참 고민하던 주완은 겨우 짧은 한숨을 뱉어 냈다.

“……아니야.”

주완은 하려던 말을 삼킨 채 씁쓸한 얼굴로 그의 방을 나갔다.

“어서 와서 밥 먹어라.”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부현의 명령이 떨어졌다. 주완은 하는 수 없이 효주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편한 자리라고 피하기엔 한국에서 처음 하는 식사라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빠, 반가워!”

“그래.”

효주가 수줍게 다시 인사하자 주완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주승이 오빤 밥 안 먹는대?”

“글쎄. 참, 형 이번에 찍은 영화 언제 나온대요?”

수저를 들던 주완은 효주의 대답을 가볍게 넘기곤 불쑥 부현에게 물었다. 일전엔 미국에 있어, 주승의 작품을 개봉 일자에 맞춰 볼 수 없던 주완이었다. 이번만큼은 형의 시사회라도 가야겠단 생각이었다. 주승이 바라는 건 아니겠지만, CH그룹의 이름을 앞에 달고 있는 주완이 시사회에 간다면 그 또한 형에게 도움이 되리라.

“내가 아니.”

그러나 부현은 관심 없다는 듯 국을 떠먹으며 말했다.

주승과 주완은 이복형제였다. 주승의 어머니가 주승을 낳으며 하늘로 떠나고, 2년 만에 부현이 이 집에 들어오면서 주승과 주완은 다른 형제들처럼 함께 자랐다. 말만 이복형제였지 친형제나 다름없었다. 어렸을 땐 사이가 돈독했던 그들이었지만, 서로 다른 쪽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두 사람은 성장할수록 그 길이 갈렸다.

주완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와 경영 머리가 비상했고, 주승은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찍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자연스레 CH그룹 후계자는 주완의 차지였다. 아직까진 장남인 주승의 주식이 몇 퍼센트 더 많지만, 주승은 경영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스무 살에 가출까지 감행하며 한국대 영상 연출 전공까지 할 정도였으니 영상에 대한 열정이 알아줄 만했다. 그는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보단 작품성이 있는 영화들만 꾸준히 찍었고, 그 결과 차주승이라는 이름을 할리우드까지 널리 알리는 중이었다. 주완은 그런 주승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형이 오라고 안 해요?”

“그런 데 쫓아다닐 시간이 어딨니.”

“그래도 어머니가 가시면 좋을 텐데요.”

“CHK백화점 계약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니.”

부현은 형에 관해 묻는 주완의 질문을 간단하게 무시하곤 계약 진행 상황을 물었다. 효주는 자신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는 얼굴로 그저 주완의 이목구비만 감상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너 미국에 있는 동안 임원들 의견이 많이 기울었다. 네가 이제부터 잘해야 주식도 되찾을 수 있고…….”

“어머니.”

주완은 어금니를 물고 부현의 말허리를 잘랐다.

‘되찾는다.’라. 주완은 애초부터 주승의 주식이 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 좀 하세요.”

“어? 오빠 가게?”

“어.”

주완이 일어서자 효주는 따라나설 것처럼 덩달아 의자를 뺐다.

“넌 다 먹고 가.”

“싫어, 효주랑 같이 가. 오랜만에 봤는데.”

“장효주.”

입을 부루퉁 내밀며 말하는 효주를 주완은 경고하듯 노려봤다. 그러자 효주는 주눅 든 강아지처럼 시무룩한 얼굴로 다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다음엔 그냥 안 보낼 거야.”

숨이 막혔다. 당연하다는 듯 놓인 재혼, 원치 않는 형제와의 싸움. 미국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겨우 견디고 돌아왔는데, 주완 앞에 놓인 건 또 다른 지옥일 뿐이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주완은 숨 막히는 공기를 뒤로하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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