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남편의 귀환-11화 (11/71)

11화 난 아는 척하고 싶은데

‘은지섭이 꼭 너랑 찍고 싶단다.’

은지섭이 왜 그랬을까. 진짜 날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며칠 동안 도희는 은지섭의 속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열애설이 사실이 아니니, 추측은 ‘은지섭 짝사랑’ 방향으로 향했다. 네티즌이 하던 말 중 가장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자신이 다녀간 레스토랑 사진을 곧장 이어 올린다는 것.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정말 열애설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굳이 SNS에 그런 사진을 올렸을 리 없다. SNS라면 자고로 자랑하는 공간이 아닌가. 예를 들어 일부러 열애설이 나게끔 엮고 싶었다던가, 그래서 드라마도 이 기회에 함께 하자고 들이대는 거라던가.

“드라마는 정말 괜찮은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나영이 잘랐다. 도희는 순식간에 지섭 못지않게 수상한 나영에게 신경을 빼앗겼다.

광고 촬영을 하러 가는 내내 나영은 운전하면서 도희를 백미러로 계속해서 관찰했다. 나영의 이상 행동은 주완과 마주친 뒤로 계속됐다. 처음엔 나영이 주완 때문에 자신이 휘둘리진 않을지 걱정하는 거로 보였는데, 정도가 심한 거로 보아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닌 듯했다.

“네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나영이 다른 걸 숨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도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도희는 두 사람의 설득에 못 이겨 결국 드라마를 하겠다고 나섰다. 재성은 도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방송국 측에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렸고, 알리자마자 주연 확정 기사가 나갔다. 사람들은 ‘은지섭, 백도희’ 조합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를 가장 반긴 건 드라마에 PPL을 넣기로 한 광고주들이었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PPL이 대폭 늘어, 방송국에선 처음 캐스팅을 반대하던 이들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우연히 시기가 영화 ‘하루살이’ 개봉일과 맞아떨어졌다. 기사가 나간 날 밤, 도희는 또다시 검색어 1위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도희는 두려움에 제 이름을 직접 검색해보진 않았다. 악플이라도 봤다간 선택을 번복하고 싶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잘 풀리고 있으니까 다 잘 될 거야.”

나영은 아직 완전히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도희에게 말했다.

“열심히 해야지. 욕 안 먹게.”

“우리 도희 연기 실력 아는데 뭐가 문젤까! 걱정 붙들어 매!”

나영의 씩씩한 위로에도 도희 눈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보였다. 나영은 그 얘길 하면서도 마치 다른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시종 도희의 힐끔힐끔 살폈다. 뒷좌석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도희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뭔데. 요 며칠 왜 그래? 불안한 사람처럼.”

도희는 더 나쁜 상황이 생길 리 없다고 굳게 믿으며 물었다. 나영이 그러는 이유가 당최 무슨 이유인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그게…….”

도희의 추궁에 나영이 말꼬리를 흐렸다. 때마침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운 나영은 완전히 몸을 틀어, 밴 뒷자리에 앉은 도희를 응시했다. 나영은 대단한 사실을 털어놓을 것처럼 비장했다.

“무서워. 그런 표정 하지 마.”

도희는 나영의 찡그린 미간만 봐도 겁이 난다는 듯 질색하며 그녀를 외면했다. 그러자 한참 뜸을 들이던 나영이 말했다.

“삼촌한테 물어보진 않았는데 너한테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뭔데, 심각한 거야?”

“나 정 비서 봤어.”

‘정 비서’에서 곧장 ‘주완’ 생각으로 연결된 도희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곧 덤덤한 척 창

밖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나도 주완 씨 봤잖아.”

“아니, 대표실에서 나오는 거.”

“뭐?”

도희의 고개가 도로 나영을 향했다. 도희의 반응을 보자마자 나영이 미안한 기색을 비치며 말을 이었다.

“물어봐도 말 안 해 줄 것 같긴 한데, 그쪽이 우리 회사랑 뭐라도 하나 싶어 마음에 걸리네.”

도희는 순간 재성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가 정신을 차리곤 배신감을 지워 냈다. 열여덟에 처음 만나, SP엔터테인먼트가 강남에 사옥이 생기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도희와 재성은 실제로 서로를 각별하게 여겼다. 그 때문인지 도희는 종종 재성에게 관여하지 않아야 할 일까지 선을 넘을 뻔한 적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주완 씨 CH그룹이잖아. 대기업 계열사랑 협력이라도 하나 보지.”

아무것도 모르는 도희지만, 적어도 주완이 저와 관련된 일을 일부러 벌일 리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완이 도희를 개의치 않고 사업을 벌였듯, 도희 역시 개의치 않고 제 자리를 지키면 된다. 도희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그렇게 정돈했다. 도희는 저번처럼 다시 주완과 마주치지만 않길 간곡히 바랄 뿐이었다.

‘상관없는 건 맞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안 보는 게 좋겠지.’

한 편 잔뜩 긴장했던 나영은 맥이 탁 풀렸다. 의외로 의연한 도희의 반응에 나영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며 백미러로 그녀의 표정을 다시금 살폈다.

“너…… 괜찮아?”

“괜찮아. 내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도희는 자꾸 떠오르는 주완에 대한 원망과 마음속 깊은 곳에 짓눌린 슬픔을 꾸역꾸역 숨겼다. 그런 도희의 마음을 아는 듯 나영이 씩씩하게 응원했다.

“장하다, 우리 도희!”

도희는 나영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해낼 거야.”

그 말은 누가 뭐래도 잘살고 있다는 걸 보여 주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도희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 * *

촬영이 시작되고 2시간, 촬영장 안에는 숨 막히는 기류가 흘렀다. 뜨거운 조명 아래 도희는 굳어진 얼굴로 억지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허 감독은 계속해서 도희를 다그쳤고, 그 옆에 있던 나영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스태프들은 그저 눈동자를 황황히 굴리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보듯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백도희 씨! 광고 촬영 처음 해 봐?”

“…… 다시 하겠습니다.”

“해도 똑같잖아! 이래서 오늘 안에 촬영 끝나겠어?”

수수한 이미지의 도희는 화장품 광고 촬영을 꽤 많이 하는 배우였다. 오늘 도희가 맡은 화장품은 립스틱 광고였는데, 그 이미지에 맞게 매혹적인 콘셉트를 하나씩 소화하던 중이었다. 그녀에게 화장품 광고를 찍는 건 연기를 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도희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허 감독은 화장품 광고인데도 촬영 내내 도희에게 자세를 코칭한다는 명목하에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 허벅지 부근을 더듬어댔다. 조심스럽긴커녕 대놓고 도희를 만지작거리는 허 감독의 손길에 도희는 몸을 움찔거리고 뒤로 물러나기도 했지만, 그는 눈치 없는 척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좀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저래 봬도 결과물은 좋다니까. 믿어 봐야죠.”

허 감독을 지켜보고 있는 광고주와 광고 대행사 직원이 속삭이는 소리가 도희의 귀에 꽂혔다. 그나마 기대했던 쪽에서마저 입을 다무는 통에 도희는 마지막 남은 희망을 저버리고 이를 악물었다.

허 감독의 불건전한 소문은 나영을 통해 들은 바 있었다. 광고 감독은 보통 촬영장에서 ‘을’로 통하기 마련인데, CF계의 허 감독은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에 대형 광고주들도 쉽게 건드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배우의 기분 따윈 고려하지 않고 ‘결과물만 잘 나오면 된다.’라는 마인드로 그저 현장을 감상했다. 촬영장에 도희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일을 하겠다고 한 이유는 여태까진 허 감독이 도희에겐 그런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문이 진짠가 보네.’

허 감독과 광고 촬영은 꼬박 3년 만이었다. 허 감독은 힘 있는 배우, 즉 ‘급 있는 배우’는 건들지 않고,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은 B급 배우만 골라 성희롱을 한다고 했다. 도희는 이전 촬영까진 급 있는 배우로 통했고, 이혼 후 3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다.

“죄송합니다.”

도희는 입술을 짓이기며 사과를 뱉었다. 그러자 허 감독이 다시 큐 사인을 던졌다.

허 감독의 막무가내의 행동에 도희의 표정은 점차 굳어졌고, 꺼림칙한 기분은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마음 같아선 전부 다 때려치우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희의 어깨 위로 짊어진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장천희 감독, 황재성 대표, 그리고 매니저 나영까지 더는 폐를 끼쳐선 안 될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하루살이’, SBC 드라마 캐스팅만 확정된 상황에 문제가 생기면 불리한 건 도희였다. ‘배우 백도희, 감독과 불화로 촬영장 이탈’이라는 기사 한 줄만이라도 나간다면 드라마 하차는 물론 열심히 찍은 영화까지 그녀의 출연만으로 욕하며 혹평을 받는 건 한순간이었다.

“다시 하겠습니다!”

도희는 허 감독의 꼬투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척 씩씩하게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는 스태프들은 도희의 패기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 * *

“백도희 대단하다. 저걸 참네.”

“한물갔단 소리지. 옛날 같으면 참았겠냐. 허 감독도 저 짓 안 했을 거고.”

지옥 같은 촬영을 하나 남겨 두고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도희가 우뚝 멈췄다. 여자 화장실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도희는 귀를 기울였다. 남자 화장실 안쪽에선 스태프 몇 명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다소 또렷하게 들려왔다.

“아까 봤냐. 괜히 꼬투리 잡으면서 더듬거리는 거.”

“저러고 싶을까. 다 보는 앞에서 쪽팔리게.”

스태프들의 대화는 끊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희는 민망하게 마주치는 상황보단 그들을 피하는 게 낫겠다 싶어 뒤를 돌았다. 아래층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뒤를 돌자마자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또 보네.”

“……!”

차주완, 또 그였다. 도희의 바로 뒤에서 주완은 그녀가 뒤를 돌길 기다렸다는 듯 비스듬히 서 있었다.

“백도희.”

주완이 도희의 이름을 나직이 뱉자마자 남자 화장실 안쪽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멈췄다. 주완 역시 스태프들이 하는 뒷얘길 들었던 걸까. 그렇다면 최악이었다.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긴커녕 엄마에게 뺨 맞는 장면을 보여 준 거로도 모자라 감독의 성희롱에 한마디 말도 못 하는 반푼이 배우가 됐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도희가 그의 눈동자를 가까이서 응시했다. 허공에서 부딪친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에게 얽힌 듯 떨어질 줄 몰랐다. 눈 맞춤이 계속되자 주완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을 피하지 않는 도희를 반기기라도 하는 기색이었다.

그제야 도희는 자신이 주완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를 지나치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타악! 주완이 스쳐 지나가려는 도희의 손목을 잡아챘다. 도희는 주완의 뜨거운 손이 닿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를 뿌리쳤다.

“어딜 손대요?”

매섭게 내쳐진 손에 머쓱해진 주완이 커다란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

“어, 미안.”

왜 또 마주쳤을까. 처음엔 황재성 대표와 일이 있다고 치고. 또다시 우연히 본 그가 못마땅했다. 도희는 주완을 힘껏 쏘아보며 말했다.

“여긴 또 무슨 일이에요?”

“해 줄 말이 있어서.”

“나한테요?”

“허 감독. 강자한텐 약하고, 약자한텐 강한 사람이야.”

“……!!”

여태까지 허 감독에게 내내 성희롱을 당한 도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희는 아랫입술을 말아 물며 목에 더 힘을 줬다.

“그래서요?”

“조심하라고. 그 말 하고 싶어서.”

어이가 없었다. 이혼하고 이제 고작 두 번째 마주치는 전남편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주완의 터무니없는 충고에 도희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는 여전히 변한 게 없었다. 언제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나타나, 적선하듯 도움을 줬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땐 그게 사랑인 줄 알았지.

“필요 없어요.”

도희는 주완을 일부러 더 맹렬히 노려보며 말했다.

“앞으론 서로 모른 척 지나가죠.”

“왜?”

“네?”

도희는 되돌아온 황당한 질문에 어처구니없는 얼굴을 하곤 그를 응시했다. 그러자 무뚝뚝한 얼굴로 주완이 말했다.

“난 아는 척하고 싶은데.”

아는 척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뻔뻔한 말에 도희는 할 말을 잃었다. 도희는 실소를 터트리곤 그를 향해 힘껏 비아냥거렸다.

“하긴, 당신이 누구 부탁을 들어줄 사람은 아니죠.”

“뭐?”

“마음대로 해요, 그럼.”

“……백도희.”

“난 모르는 척할 테니까.”

화가 났다. 3년 동안 그를 잊기 위해 절망 속에서 어떻게 버텨왔는데. 지난 3년간 주완만 생각하면 슬픔, 배신, 원망, 자책, 자괴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도희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주완이 떠나고 2년 동안은 가시덤불로 이루어진 미로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완의 행동은 입구에서 떠나 버린 줄 알았던 그가 출구에 서 여유롭게 도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홀로 가시덤불에 던져져 가시에 수없이 찔리면서 힘겹게 살아 낸 도희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 주완은 단 한 번도 도희 앞에 나타난 적 없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도희는 미워하는 마음조차 주완에게 쓰고 싶지 않았다. 도희가 매정하게 주완을 지나쳤다.

주완은 더는 도희를 쫓아오지 않았다. 도희도 그게 주완과 끝일 줄 알았다.

* * *

“도희 씨! 그게 아니라니까? 거참, 답답하네!”

조명 아래 서 있는 도희는 새빨간 배경지를 뒤로하고, 어깨와 가슴골이 동시에 드러나는 오프숄더형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상체는 도희의 마르고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듯 딱 붙었고, 실크 원단으로 된 드레스는 치파오처럼 옆이 트여 있어 도희의 잘빠진 각선미를 매력적으로 드러냈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는 웨이브로 손질했는데 엎드리듯 소파에 살짝 기댄 도희의 모습은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그런 도희에게 허 감독이 다가갔다. 그는 좀 더 허리를 내리고 손끝을 뻗으라고 조언하며 그녀의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기울이라는 조언을 하며 도희의 맨 등 위로 엎어져, 도희의 상체를 제 몸으로 지그시 눌렀다.

때마침 주완이 문을 열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조감독은 조용히 주완을 쫓아내려다가 도희의 전남편인 그를 알아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완은 자신을 막아서는 조감독 머리 뒤로 도희와 허 감독을 발견했다. 허 감독은 도희의 등 뒤에 제 가슴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그를 본 주완이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불쾌감을 참아 내는 도희를 발견한 주완은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

조명 아래로 주완이 걸어 들어오자마자 촬영장이 술렁였다. 누구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CH그룹 차주완’을 아는 몇몇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감독도 그를 알고 있었던지 주완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도희에게서 떨어졌다. 허 감독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완과 도희를 번갈아 가며 응시했다. 아무래도 주완이 전남편이었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도희 역시 상체를 일으켜 어정쩡한 자세로 주완을 올려다봤다.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는지…….”

허 감독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진땀을 빼며 말을 더듬었다. 주완은 험악한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를 잠시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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