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전남편과의 재회
소속사 로비에 들어갔을 땐 이미 순자가 보안 직원 두 명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순자는 건장한 두 남자의 악력을 이기지 못한 채 나영을 향해 큰소리치고 있었다.
“이거 놓으라니까! 내가 누군 줄 알고!”
순자가 누군지 아는 나영은 순자를 막으면서도 죄송하단 말만 연신 뱉으며 발을 동동 구르던 중이었다. 도희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곤 엘리베이터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도희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다름 아닌 나영이었다.
“도희야…….”
도희의 사정을 아는 나영은 그녀를 회사로 부른 게 미안했는지 죄스러운 얼굴로 도희를 작게 불렀다.
그때, 순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도희가 거의 순자 곁에 다가섰을 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순자가 이내 힘있게 보안 직원 둘을 한 번에 밀쳐 냈다. 그러곤,
짜악-! 도희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뭐 하시는 거예요!”
나영은 그를 보자마자 양팔을 벌려 순자를 옭아매듯 꽉 안았다. 순자는 그런 나영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도희를 향해 핏대를 세웠다.
“싸가지 없는 년!”
도희는 맞은 뺨을 부여잡은 채 멀거니 서 있었다. 맞은 부위가 화끈거리고 얼얼했다. 도희는 천천히 고개를 바로 세워 눈을 부라리며 자신을 삼킬 듯 노려보는 순자를 바라봤다.
“도희야, 일단 가! 응?”
“가긴 어딜 가?!”
나영은 필사적으로 도희를 향해 달려드는 순자를 막았다. 나영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앙칼진 목소리가 도희의 귓가에 더욱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회사 안엔 다행히 직원이 많진 않았으나, 큰 소란에 지나가던 직원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나영은 보안 직원에게 어서 도희를 데려가라며 눈짓했다.
저 사람이 엄마라니. 저런 사람이 내 엄마라니.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번쯤 예상했던 일이 직접 눈앞에서 터지는 걸 보니 허탈했다. 과거 순자는 도희가 집을 알려 주면 집 안을 뒤지고, 이따금씩 값비싼 물건을 내다 팔기도 했으며 심지어 도희의 집에 남자까지 끌어들였다. 결국 도희는 소속사와 상의 끝에 집 주소를 비밀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제집을 모르는 순자가 언젠가 소속사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딸이 연예인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소속사에서만큼은 행동거지를 조심할 거라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도희였다.
“엄만 대체 언제까지 나한테……!”
참다못한 도희가 순자에게 소리치려던 순간이었다.
“어머, 차 서방……!”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순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일순간 화색이 도는 순자의 낯빛에 놀라, 도희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주완 씨……?”
제 뒤엔 거짓말처럼 전남편인 차주완이 서 있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차가운 얼굴로.
“당신이 왜 여기…….”
3년 만이었다. 저 멀리 서 있는 남자가 주완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도희는 심장이 그대로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주완의 달라진 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주완의 달라진 머리 스타일이었다. 이전보다 길어진 머리칼로 이마를 가리면서도 가르마 결대로 정리한 그의 머리 스타일은 여전히 단정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진한 눈썹은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인상을 주었고, 거기다 짙은 속쌍꺼풀, 깊은 검은 눈동자, 크고 날렵한 콧날과 살짝 도톰한 입술은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3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여전히 그림처럼 조화로웠다.
살은…… 좀 더 빠진 건가. 예전보다 이목구비가 또렷해진 그는 전체적으로 더 차가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완은 여전히 멋졌고, 그만큼 잘산 것 같았다.
망부석처럼 그대로 굳어 있는 도희와 달리 주완은 여전히 딱딱하고 거만한 얼굴로 도희를 응시했다. 그 옆에 서 있는 정 비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주완의 눈치만 살피는 중이었고, 그건 도희를 주시하는 나영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나더러…… 이런 당신을 받아들이고 살라는 거예요?’
‘그래 주면 좋고.’
멀찍이 서 있는 주완을 보고 있자니 도희는 잊고 있던 주완의 얼음장 같은 눈동자가 단숨에 떠올랐다. 도희는 재빨리 주완에게서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차 서방! 차 서방 맞지?”
동시에 가식적인 순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도희는 그제야 그를 등진 방향에 서 있는 순자에게 성큼 다가섰다.
도희는 조금 전 뺨을 맞은 사실조차 잊었다. 그저 주완을 피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도희가 순자의 손목을 잡고 끌어내려는 순간, 순자가 도희의 손을 우악스럽게 뿌리쳤다. 조금 전까지 도희에게 악을 쓰고 달려들던 순자는 이미 도희는 안중에 없는 듯 보였다. 도희는 화가 나서 다시금 순자의 손목을 더욱 꽉 잡았다.
“따라와요.”
“어우, 얘가 왜 이래? 차 서방 웬일이야? 우리 도희 보러 왔어?”
도희가 어금니를 악물며 말했지만, 순자는 마치 금은보화라도 본 사람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주완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뻔뻔한 모습도 모자라 저토록 상냥한 말투라니. 순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가자니까!”
그때, 주완이 긴 다리를 이용해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도희는 제 뒤에서 들려오는 구두 굽 소리가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들렸다.
뚜벅, 뚜벅, 뚜벅. 마침내 마지막 발걸음 소리가 멈췄을 때, 도희의 뒤에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오래도록 좋아했던 그의 체취도 강렬하게 풍겼다. 프랑스에서 착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매혹적인 향이었다. 도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지 않고도 주완이 바로 등 뒤에 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랜만이야, 차 서방!”
순자는 이혼 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아양을 떨었다. 주완 앞에서만 나오는 특유의 아양이었다.
“그간 왜 이렇게 연락이 뜸했어!”
“오랜만이야.”
그런데, 주완의 말 상대가 달랐다. 그는 순자의 살가운 인사를 아예 듣지 못한 사람처럼 도희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밝았던 순자의 낯빛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아마 주완이 무시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한 눈치였다. 주완은 순자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도희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인사도 안 할 건가?”
주완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하마터면 뒤를 돌아볼 뻔했지만, 도희는 끝까지 뒤돌아 그를 봐 주지 않았다.
이혼한 사이에, 3년 만에 우연히 만나서,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잔 거야?
도희는 그의 태연함에 기가 찼다. 슬픔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그때의 그 무심함이 눈앞에서 재연되는 것 같았다. 이혼 후에도 그는 변한 게 없었다. 주완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자신만만했고, 자신을 인심 쓰듯 대했다. 도희는 주완의 얼굴을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인사할 상대를 잘못 고르셨네요.”
도희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차갑게 말했다. 그리곤 순자의 손목을 던지듯 놓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도희는 잠시나마 그를 넋 놓고 바라봤던 제 아둔함을 탓하며 주완에게서 멀어졌다.
도희가 사라진 곳으로 나영도 덩달아 사라져, 엘리베이터 앞엔 순자와 주완, 그리고 정 비서만 남아 있었다. 순자는 이미 처음 회사에 온 목적을 잊고 주완만 뚫어져라 살폈다.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주완의 모습에 잠깐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돈 앞에서 순자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순자는 주완의 팔에 친근하게 붙으며 말했다.
“우리 도희가 너무 놀라서 그랬나 보다. 차 서방, 기분 나빠도 풀어. 그간 안 본 세월이 있잖아.”
“뭐 하시는 겁니까?”
“……어?”
도희가 사라지자 그제야 주완의 냉랭한 눈동자가 순자를 향했다. 순자는 그의 공격적인 어조에 설핏 굳었다. 주완은 바짝 붙어 있는 순자의 팔을 노려봤다. 순자는 그 카리스마에 화들짝 놀라 그에게서 황급히 떨어졌다.
“배우가 소속사에서, 그것도 어머니한테 따귀 맞은 사실이 알려지면 어머니께도 좋은 일은 아닐 텐데요.”
이혼 전, 도희 몰래 용돈이랍시고 드리던 돈은 도희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일종의 거래였다. 한두 번은 그냥 줬지만, 빈도수가 잦아지자 주완은 순자에게 도박하지 않고, 도희에게 손대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돈이 필요했던 순자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각서에 지장을 찍었다. 그래 놓고도 순자는 계속해서 도박에 손을 댔다. 당시 주완은 이를 우선 묵인했다. 도희를 위한 인내이기도 했고, 언젠가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약점으로 사용하려는 계략이기도 했다.
“각서 기억하시죠.”
주완이 두서없이 대뜸 각서 얘길 꺼냈다. ‘각서’란 단어를 듣자마자 순자는 금세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가, 갑자기 그건 왜?”
“각서 내용 어기신 거 알고 있었습니다. 도박장 만드셔서 불법 운영하신 증거도 있고요.”
“어, 어머! 차 서방 왜 옛날 일을 꺼내고 그래.”
주완의 뜬금없는 협박에 굳어졌던 순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당장 변명거리를 찾는 듯 보였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황황히 굴러갈 뿐이었다.
“도희, 놔두세요.”
주완의 협박에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던 순자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사람처럼 번뜩였다. 그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양쪽 입꼬리를 악랄하게 올리며 말했다.
“아직 우리 도희 좋아하는구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는 주완을 잠시 관찰하던 순자는 곧 만족스러운 얼굴빛을 띠며 말했다.
“알았어, 대답 안 해도 알겠네. 도희한텐 비밀로 할게.”
그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택시를 잡고 홀연히 사라졌다.
주완은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며 이로써 도희가 조금은 편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 * *
순자에게 맞은 도희는 옆에 있겠다는 나영을 겨우 대표실로 올려 보냈다. 도희는 화장실로 가 화장을 고치고 감정을 다스렸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되레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무표정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도희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 조금 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순자에게 뺨을 맞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하필 그 타이밍에 나타난 주완 때문에 도희는 마음이 괜스레 복잡했다.
“……언제 들어온 거야.”
한국에 들어왔단 걸 미리 알았더라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을 텐데.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완이 해외에 나가 있단 얘길 들었을 땐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때 봤던 여자와 함께 갔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그의 스캔들을 듣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도희는 주완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궁금하지 않기도 했다. 아마 주완이 해외에 가지 않았더라면 쏟아지는 그의 기사로 괴로워 도희가 외국 땅을 밟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대로 나가서, 영원히 그곳에서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얼마나 불쌍해 보였을까. 3년 만에 만난 전남편에게 따귀 맞는 광경을 들킨 게 무엇보다 창피하고 서러웠다. 동정만큼은 받고 싶지 않았는데. 순자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걸 본 주완이 굳이 제게 와서 인사까지 건넸다는 건 보나 마나 동정이었다.
‘인사도 안 할 건가?’
멋대로 떠날 땐 언제고, 이제 와 멋대로……!
도희는 이를 악물었다. 3년 만에 그를 봤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도희는 도희의 인생이 있고, 주완에겐 주완만의 인생이 있다. 각자의 인생을 살자며 갈라진 길이었다. 도희는 거울을 보며 붉어진 뺨 위에 천천히 컨실러를 발랐다.
‘……대표님한텐 뭐라고 하지.’
도희는 감정에 취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돌연 나타난 그의 등장만으로 싱숭생숭해진 제 마음을 용서할 수 없었다. 도희는 최대한 주완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안 그래도 황재성 대표에게 신세를 진 게 많은 도희였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건 순자 때문이었다. 순자는 도희가 데뷔한 해엔 사기꾼 아니냐며 소속사로 찾아와 난동을 부리기도 했고, 작품을 시작도 하지 않았을 때 계약금은 없냐며 출연료를 당겨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도희의 집 주소를 비밀로 하면서 재성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재성은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다시 고민해 보자고 따뜻하게 말해 주었지만, 그렇다 해도 면목이 없는 건 똑같았다.
‘죄송하다고 해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과 말곤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희는 맞은 부위가 티가 나진 않는지 다시금 세심하게 살폈다. 비록 제가 저지른 실수는 아니지만 일을 벌여 놓고 동정으로 어영부영 일을 넘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컨실러로 붉어진 뺨은 잘 가려졌다. 부기가 조금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눈을 크게 뜨고 뺨만 살피지 않는 이상 눈치챌 것 같진 않았다. 도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서 있는 거울 속 자신을 보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설움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마자 병적으로 괜스레 헛기침을 크게 토했다. 눈물을 참기 위함이었다.
“힘내, 백도희. 아무것도 아니야.”
도희는 꿋꿋하게 중얼거리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이혼 후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다 겪어온 도희였다. 고작 이런 일로 무너질 거라면 진작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도희는 버릇처럼 또다시 제 배를 쓸었다. 3년 전 아이를 잃고, 언제부턴가 생긴 버릇이었다.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응원을 할 때면 그때의 생명을 잊지 않으려는 듯 아랫배 위로 손이 갔다. 도희는 제게 건 응원을 조용히 가슴에 담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 * *
순자는 한껏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도박장을 찾았다. 도박장에는 이미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얼마 전 돈을 잃은 사람들 곁에 당당히 다가간 순자는 눈을 게슴츠레 뜬 그들 옆에 털썩 앉았다.
“또 꼬라박으려고 왔수?”
“꼬라박아도 믿는 구석이 생겼다. 이거야.”
순자는 허세가 가득한 몸동작으로 우악스럽게 엉덩이를 비비고 자리를 잡았다.
“또 그 얘기야? 어디서 합성을 그렇게 잘했는지 몰라도 눈, 코, 입 하나 안 닮은 딸내미가 연예인이란 말을 어떻게 믿어?”
순자는 불쾌한 투로 의심하는 남자를 흘겨봤다. 순자는 그간 도박장에서 도희 이름을 팔며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녔다. 처음엔 도희와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거들먹거리자 신기한 듯 돈을 빌려주던 사람들도 순자의 행실을 보며 이를 하나둘 믿지 않기 시작했다. 가끔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사진과 함께 순자의 방탕한 삶을 제보하기도 했지만 온라인상에서도 안 믿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 솔직히 이 엄마한테 그런 인물이 나오는 건…….”
“얼씨구? 내가 다방 다닐 시절에 한 인물 했어! 지금은 살이 쪄서 그렇지!”
순자는 비대한 몸뚱이를 남자들에게 거침없이 들이밀며 상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들은 그녀의 행실을 허허실실 비웃었다.
“그래, 그렇다 치고. 이번엔 또 어디서 구실이 생겨서?”
“고게 생긴 건 나 닮아서 이쁘게 생겼잖아. 재벌이랑 다시 결혼할지도 몰라!”
“아직 한 건 아니네? 백 씨 망상 아니고?”
“가만히 있어 봐! 내가 조만간 고것들 붙여 놓을 테니까! 나도 패 하나.”
순자는 큰소리를 떵떵 치며 당당히 패를 넘겨받았다. 순자는 돌리는 패를 받으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재벌 사위에게 받은 짭짤한 용돈을 자랑할 땐 사람들이 붙어 있었는데, 돈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더욱더 순자를 신뢰하지 않았다. 무시당한 지 3년이었다. 순자는 조만간 자신의 발밑에서 아부를 떨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거침없이 화투 패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