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남편의 귀환-5화 (5/71)

5화 불행의 연속

‘이럴 거면 이혼해요.’

‘말하기 어려웠는데. 고마워.’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 없이 헤어졌다. 주완은 끝까지 도희를 제대로 보지 않고, 먼저 등을 돌렸다. 일 년간의 허무한 결혼 생활은 그거로 끝이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 잡아 볼까 생각도 했다. 미련인지 오기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도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며칠 뒤, 도희는 참다못해 주완을 찾아갔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어야 했는지, 변했다면 변한 이유를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구질구질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말이라도 듣지 않으면 도희는 속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았다. 다칠 줄 알면서도 도희는 자신을 말리는 나영과 함께 기어코 회사 앞을 찾아갔다.

“저기 있네! 근데…… 옆엔 누구야?”

“어? 저 여자……!”

“저 여자 누군데. 너 알아?”

회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건 주완과 정 비서, 그리고 본부장실 앞에서 봤던 그 여자였다. 여자는 주완에게 친근한 듯 팔짱을 끼고, 그의 팔뚝을 종종 주먹으로 툭툭 건드리기도 하며 다정한 모습으로 나란히 걷는 중이었다.

“안 갈 거야?”

가서 무슨 사이였냐고 물어볼까.

하지만, 이제 무슨 자격으로?

엄밀히 말하면 이혼하자고 합의한 지금, 도희가 회사 앞에 찾아온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나영의 재촉에도 도희는 제 자리에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잘 어울리네.”

“뭐?”

그제야 도희는 제가 얼마나 착각 속에 살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도희뿐이었다. 그녀에게 미련이 남았든, 오기가 생겼든 그건 주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얼굴 몇 번 본 게 다야.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어머니한테 괜히 도희 네가 꼬투리 잡힐까 봐 그랬어. 오해하지 마.’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여길 왜 왔을까. 도희는 그 자리에 망연히 서서 연신 실소만 터트렸다.

외면하던 주완의 식은 감정이 그제야 오롯이 받아들여졌다. 이혼을 결정한 이후로 주완은 도희에게 남처럼 굴었다. 다신 보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는 사람처럼, 이별을 기다린 사람처럼 말이다.

..“힘들면 얘기해.”

나영의 따뜻한 한마디에 도희는 좀 전까지의 우울한 생각들을 가슴 속에 묻어 두고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나 괜찮아. 진짜로.”

도희는 그를 잊기 위해서라도, 잘 사는 걸 보이기 위해서라도 일에만 전념하리라 다짐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는데.

도희에게 ‘이혼’은 불행의 전조 증상에 불과했다.

* * *

“까였다고?”

“그게, 그러니까…….”

“그래서, 일이 없다는 거지? 광고도, 드라마도, 영화도 싹 다 잘려서.”

확인 사살을 하는 듯한 도희의 물음에 할 말을 잃은 나영은 잠시간 침묵을 유지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미안하다! 줬다 뺏는 것도 아니고, 일하라고 했다가 까였다고 못 한다니. 네 입장에선 심란하겠지만…….”

“잘됐네.”

“그래, 네 맘 충분히 이해…… 뭐?”

“잘됐다고.”

도희의 발언에 눈이 휘둥그레진 나영이 그녀의 얼굴을 몇 초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무척이나 사랑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혼 얘기로 떠들썩한 지금, 방구석에 있는 것보단 일하는 게 낫다고 했던 도희가 아닌가.

“그, 그냥 욕을 해. 나 네 친구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나영은 아양 떨듯 말을 덧붙였지만, 도희의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나영은 더욱 불안에 떨었다.

“너 설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나영은 얼마 전 도희가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다녀온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도희는 의미심장한 눈동자를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정말 쉬고 싶어서 그래. 나 딱 삼 년만 쉬자.”

“삼 년? 언제 그런 구체적인 기간까지……. 진심이야?”

“응.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이만 갈게.”

도희는 최대한 나영과 대화를 짧게 끝내고 사무실을 나왔다. 도희는 처음으로 나영을 속였다는 생각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불가피한 제 상황을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도희는 홀로 계단을 내려오며 새롭고 희망찬 다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제게 이혼이라는 크나큰 시련이 닥쳤지만, 세상이 도희에게 일부러 미련을 남긴 것처럼 선물을 주고 갔다. 도희는 잔잔하고 맑은 미소를 머금으며 제 아랫배를 조심스레 쓸었다.

깊은 상념에 빠진 도희는 혼자서 로비를 당당히 걸어 나왔다. 바깥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음에도 도희는 미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다. 시간이 늦기도 했고, 이혼 후 한 달이나 지나 기자들이 아직까지 자신을 기다릴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어? 백도희다!”

정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도희가 나오자마자 벌떼처럼 그녀를 동그랗게 감쌌다. 도희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어설프게 고개를 숙인 도희 위로 카메라 플래시가 사정없이 터졌다. 다시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는데도 기자들이 막고 있어 여간 틈새를 찾기 어려웠다.

“도희 씨! ‘장밋빛 세상’에서 하차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거장 김신학 감독 영화에 주연을 맡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그것도 하차하는 겁니까?”

“아직 계약 기간이 남은 광고도 계약 해지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심경이 어떠십니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희는 이도 저도 못 하고 대답조차 못 한 채 애매한 미소만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마스크나 모자라도 쓰고 나올걸.

손바닥으로 이마와 눈 주변만 겨우 가린 도희는 끊임없이 제자리를 빙빙 돌며 나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 그때, 커다란 잠바가 제 위에 씌워졌다.

“주차장으로 가! 차 대기하고 있어!”

그녀에게 잠바를 씌운 뒤 회사 건물로 밀어 넣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영이었다. 도희는 눈만 빼꼼히 내밀고, 그녀에게 눈짓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나영은 회사 보안 직원의 힘을 빌려 온몸으로 기자들을 막았다.

겨우 생긴 틈새로 도희가 마른 몸을 끼워 넣었다. 그녀는 빠르게 계단을 향해 달렸다. 경비를 지나 비상구 쪽으로 가는데,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 듯한 기자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도희는 기자를 보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비상구 철문을 열어젖힌 도희는 한 손으론 얼굴을 감싼 점퍼를 부여잡고, 한 손으론 계단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더 빨리 내려가기 위해 뒤꿈치를 들고, 앞발에 몸의 중심을 싣는 순간이었다. 도희의 시야가 순식간에 한 바퀴를 돌았다.

“어어……?”

쿵!

그게 도희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계단에서 넘어진 도희가 깨어난 곳은 다름 아닌 병실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겼는지 설명하며 나영이 울 때도 도희 귀엔 아무런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도희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제 몸을 샅샅이 살피다가 의사를 향해 다급히 물었다.

“아이는, 아이는요?”

깨어난 도희의 첫 마디였다. 도희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나영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의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도희는 마치 숨이 멎은 사람처럼 의사를 빤히 바라봤다. 곧 의사는 도희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태아는…… 안타깝게도 유산입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맥이 턱 하고 풀렸다. 온몸에 오한이 들었는지 치아가 위아래로 딱딱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영이 도희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백도희! 이게 무슨 소리야? 아이라니!”

나영은 넋을 놓고 있는 도희의 눈동자를 보곤 그제야 낮에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니야. 정말 쉬고 싶어서 그래. 나 딱 삼 년만 쉬자.’

그제야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어쩐지 일 중독 백도희가 쉰다더니. 이게 다 임신 사실을 알고서 세운 계획이었다. 도희는 나영에게조차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영은 이혼 후 연예인의 신분으로 혼자 그런 결정까지 내렸을 도희를 생각하며 울먹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왜 바보같이 혼자 끌어안았어, 왜……!”

나영은 끝내 그녀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의사는 그런 두 사람을 보곤 덤덤히 환자가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의를 주곤 나갔다.

“우리 도희, 어떡해…….”

나영의 한탄에도 도희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손발은 물론이고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나영은 그런 도희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손바닥으로 그녀의 손과 몸을 마구 문질러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도희야. 괜찮아.”

나영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중얼거렸다. 도희 역시 나영의 위로가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갑자기 닥친 현실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래? 나한테 어떻게 이래?”

이혼 기사가 나가고, 며칠 전 도희는 어지럼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임신 10주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남편을 잃은 마당에 아이를 얻다니. 임신이 절망적으로 느껴졌을 법도 한데 도희는 이상하게 묘하게 기뻤다. 세상이 자신을 시험해 보려는 것 같아 오기도 생겼다. 그래서 도희는 잘살아 보려고 했다.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는 도희였지만, ‘이혼녀 백도희’로 카메라 앞에 서기보단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행복일 것 같았다. 절망적인 도희에게 임신은 되레 생각지 못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유산이라니.

도희는 자신에게 연달아 닥치는 불행이 꼭 잘 짜인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불행하길 기다렸던 것처럼, 이혼하자마자 임신에 드라마 하차, 광고 계약 해지, 그리고 유산까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도희의 여린 어깨를 짓눌렀다. 도희를 노리던 세상의 모든 불행이 그녀를 과녁 삼아 뾰족하게 꽂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도희가 할 수 있는 건 자책뿐이었다. 비록 주완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놓지 말았어야 했나. 사랑이 식었어도 이미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끈기 있게 참고 살았어야 했나. 스스로 주완과 갈라설 결심을 해서, 하늘이 내게 벌을 주나. 도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이혼을 선택한 제 결심에서부터 오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하늘이 제게 이토록 무심할 순 없었다.

“……죽고 싶어.”

“뭐?”

“죽고 싶어, 나영아.”

세상에서 버려진 게 틀림없었다. 그동안 제 엄마인 순자를 감당하는 것보다 더한 고난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혼모의 몸으로 도희를 낳아 방치하고, 연예인으로 데뷔를 하자마자 돈만 밝혀 오는 제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도 이토록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었는데. 앞으로 어떤 멸시와 모욕도 도희를 이보다 더 힘들게 할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태아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도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저를 낳아 준 순자보다도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게 원망스러웠고, 특히 주완이 증오스러웠다. 도희에게 더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안 돼……, 안 돼, 백도희! 우리 일하자! 너 좋아하는 일만 열심히 하자! 응?”

“못 할 것 같아. 카메라 앞에…… 못 설 것 같아.”

도희는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흐느낌 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는 도희의 눈동자엔 어떤 생명의 빛도 없어 보였다. 나영은 엉엉 울며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끌어안았다.

“아니야, 할 수 있어!! 흐윽, 너 백도희야……! 할 수 있어, 도희야! 내가 도와줄게.”

도희는 자신의 생명과도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배우 일에 신물이 났다. 배우가 아니었더라면, 기자들에게 쫓기지 않았더라면 태아가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녀를 더욱 괴롭혔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 같았고, 그래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나쁜 생각 하지 말고, 쉴 만큼 쉬고, 괜찮아지면 그때 천천히 하자. 같이 이겨 내자. 응?”

나영은 도희의 절망적인 마음을 우물에서 꺼내기 위해 밤새 그녀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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