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모순덩어리
* * *
나는 검에 재능이 없다.
몇 번이고 깨달았던 사실이다.
시아라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처음 검을 들었을 때도, 상행을 다녀와 후작에게 검을 배웠을 때도, 헤르트 원정을 다녀와 다시 검을 잡았을 때도.
탄탄한 신체와 폭발하는 근육에서 나오는 힘을 온전히 쓰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을 깎아 먹는다.
고급 스포츠카를 모는 초보 운전이 이러지 않을까. 몸이 가진 재능을 한계까지 뽑아내지 못한다는 현실은 몸도, 그리고 나도 불만족스러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바보는 아닌지라 남들이 뛰어가면 걸어가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검을 들었다. 반쯤은 운동 삼아 휘둘렀던 검들도 궤적이 쌓이고 쌓이니 길이 보였다.
물론, 남들보다 훨씬 험하고 좁은 길이었지만.
"허억... 허억..."
어쩌면 자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5년이나 궤적을 쌓았으니 마법사는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자만. 정말 다행히도 자만은 아니었지만, 내가 간과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건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는 고통이었다.
얇은 피부를 뚫고 들어가 근육을 갈라 동맥을 자르는 고통. 짧은 단검이 목뼈에 걸리는 고통. 부릅뜬 눈으로 사신을 바라보는 고통.
모든 행동이 고통이 되어 돌아왔다.
"허억... 헉..."
이렇게 피가 많이 튈 줄은 몰랐다. 아마 나는 암살에도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몇 번이나 튀었는지도 모를 얼굴을 닦아내며 구슬을 손에 쥐었다.
목에 단검이 박힌 시체가 나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미친놈처럼 눈을 감는다. 고통에 목이 말랐다. 저택을 들어올 때부터 발작하기 시작한 심장 박동은 도통 가라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복도를 나와 오른쪽. 세 번째 방.
기계처럼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 어디서 주워들었던 말의 뜻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감정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방금 전까지 숨을 쉬던 생명을 눈앞에서 직접 끊어낸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고통이 수반됐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영롱한 빛을 뿜던 녹색 구슬이 피로 물들었다. 피가 묻은 손으로 잡았던 구슬이 붉게 변했다.
구슬에게도 죄가 있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도록 길을 안내한 죄.
안전한 길을 안내한 죄.
저택 밖에 서 있던 경비들을 죽일 수 있게 도운 죄.
주인이 붉게 변했다. 손도, 옷도, 얼굴도 붉게 변했다. 그러니 구슬도 붉게 변하는 게 맞다.
조심스럽게 열린 방문 사이로 사신이 걸어 들어갔다. 열 사람의 피가 묻은 단검이 다시 들렸다.
젊은 여인이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에 가려 목이 보이지 않았다. 동맥을 찔러야 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잡지식을 상기하며 천천히 머리카락을 치웠다.
"...누, 누구...!"
푹!
목뼈를 뚫고 성대까지 칼이 들어가면, 피가래가 끓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공중으로 분사되는 피를 피했다.
"허억... 허억..."
눈이 완전히 뒤집힌 걸 보고서야 입을 가렸던 손을 치웠다. 입가에 묻은 붉은 피가 새로 만난 피와 섞였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철저하게 후회 중이었다. 쏟아지는 고통에 다시 바닥에 주저앉으며 구슬을 손에 쥐었다.
시체는 숱하게 봐왔다.
수만 명이 넘는 시체를 본 적도 있었다. 마지막 쌍둥이 성 전투에선, 직접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한 손 거든 적도 있었다.
그때도 분명 피륙을 가르는 오싹한 감각을 몇 번이고 느꼈었다.
허나,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죽이진 않았다.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등 뒤로 사라진 시체는 내게 고통을 안겨주지 못했다.
그래 그런 거다.
내가 죽인 시체를 보고 고통스러워하기엔, 말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쩌면 그 미쳐버린 전장에서 나도 미쳐버렸던 걸 수도 있겠다.
누가 죽인 지 모를 그 시체들을 바라보며 자기 면피를 했었을까. 깨끗한 길거리에선 쉽게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쓰레기더미 사이로 쓰레기를 하나 더 던지는 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모두가 죄인이었던 그 상황에서 서로를 위안 삼아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피 분수를 맞는 건, 전쟁과 달랐다. 그러니 결국,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게 맞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차라리 로그멜 경에게 길을 알려줄 걸 그랬을까.
다시 복도를 나서서 오른쪽으로 두 번째 방.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고 목을 찌르고 방문을 닫고, 다시 방문을 열고 목을 찌르고 방문을 닫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머리와 다르게 몸은 단순한 반복에 벌써 익숙해져 있었다.
자신감인지, 아니면 자만일지. 저택 밖을 지키는 경비 외엔 아무도 눈을 뜬 사람이 없었다. 성안으로 침투해 마법사가 있는 저택까지 정확히 진입해 암살을 시도하는 미친 짓을 할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
그러니 자만이다.
그 자만이 이 저택의 목숨을 앗아가는 중이다.
이번에는 중년의 사내였다.
짧은 머리카락 덕에 굳이 손댈 필요도 없었다. 피에 젖은 단검이 미끄러지지 않게 힘을 꽉 준 다음,
푸욱!
"크르륵......"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너무 쉽게 생각한 게 맞았다.
또다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은 절대 아니지 않을까.
아무렇지 않게 척척 사람을 죽이고 마음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강철 같은 사람은 절대 못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렇게 죽이고 또 죽이면, 언젠가는 두부에 칼을 넣듯 목에 칼을 박아 넣을 수 있을지.
어쩌면 주인공들도 처음엔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코앞에서 느껴지는 숨결을 맞으며 목에 검을 찔러넣고 손을 벌벌 떨지는 않았을까.
끊임없이 자기 위안을 하며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붉은 단검에 다시 한 번 붉은색이 덧칠됐다.
지금까지의 나와 너무 다른 행동에 스스로에 대한 불신마저 생겨 버렸다. 세상 어떤 참모가 직접 검을 들고 성에 잠입을 한단 말인가.
불덩어리를 맞은 게 너무 충격이었을까. 어떻게든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평소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작전이었다. 겁에 질린 참모가 미쳐버렸다.
광채를 뿜던 구슬이 탁한 색을 흩뿌린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한 명 남았다. 끝까지 미루고 미뤘던 순서가 결국 돌아왔다.
구슬을 통해 보이는 시야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를 어린 소녀가 눈을 감고 있었다.
16, 17은 됐을까.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동이 틀 무렵 반쯤 미쳐버린 참모가 성으로 돌아오고 난 후, 그 날 점심이 되기 전 파딘 제국이 물러났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어로크 왕국군이 곧바로 전진했다. 7만의 인원 중 이유를 아는 건 귀족 스무 명이 전부였다.
콰앙!
가장 먼저 성문을 열었던 젊은 자작의 몸뚱아리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함정 마법이었다. 파괴력도 높지 않고, 단발성에 그친 마법이었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이 성안으로 진입을 거부했다. 결국, 다나크 제국의 마법사를 불러 함정이 없다는 걸 확인한 왕국군이 성으로 입성했다.
"자네가 말한 그 한 명의 마법사가 한 짓인가 보군."
"..."
대담하다면 대담한 소녀였다. 자신을 제외한 저택 내 모든 마법사가 죽었는데도 끝까지 복수를 하고 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죽인 마법사 중 소녀의 스승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법사의 위대함을 직접 보여주고자 데려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소녀가 겪은 건, 전쟁의 참혹함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이해하네. 마셀 자작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말이야."
늘 싹싹하고 밝게 웃던 젊은 귀족이었다. 예전 미하일 백작의 기습이 실패했을 때 내게 상황을 알려줬던 그 자작이었다.
차마 어린 소녀를 죽일 수 없다는 동정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쓸데없는 자비였을까. 그냥 그 소녀를 죽이는 게 옳았을까.
자비를 버리고 그 소녀를 죽였다면 그 젊은 귀족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가지 말 걸 그랬습니다."
"...자네는 젊네."
무슨 위로를 해주고 싶은 걸까. 나도 모르게 나온 속마음에 아차 싶었다. 하지만, 후작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경험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네.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허나 대부분 실패가 더욱더 많은 걸 가르쳐주지."
"..."
"그러니 너무 자책말게. 자네는 다음부터 자비를 베풀 상황이 올 때마다 마셀 자작이 떠오르겠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그거면 된 거야. 게다가 자네는 큰 공을 세웠네. 아무런 피해 없이 파딘 제국을 뒤로 물린 건 엄청난 전공이야."
전쟁은 병사가 어떤 트라우마를 겪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결과였다. 전쟁에서 승리했느냐, 패배했느냐. 혹은 전투에서 승전고를 울렸느냐. 패전했느냐.
또 하나 배웠다.
내가 겪은 고통은 결국, 전쟁을 하며 누구나 겪을 고통이었다.
이제서야 나는 전쟁을 똑바로 겪은 것이다. 막사 뒤에 숨어 지도만 바라보던 참모를 벗어나 진정한 지휘관이.
알케스 후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다는 인사법이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사람 대 사람의 감사 인사였다.
어쩌면 처음 전쟁을 겪었던 헤르트 상륙 작전 때보다 더욱 큰 트라우마가 생길 뻔했다.
내가 겪은 건 전쟁이 아닌 살인이었으니까.
허나, 알케스 후작의 위로로 어젯밤 일은 다시 전쟁의 한 부분이 됐다.
그래. 결국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죽인 것이다. 까다롭기 짝이 없는 마법사를 제거한 것이다.
그 결과로 이 성을 무사히 점령했다.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곳곳에 여전히 모순덩어리가 남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전쟁 자체가 모순덩어리다.
아군을 살리고자 적군을 죽인다. 생명을 살리고자 생명을 죽인다. 도덕적 관념을 지키고자 했으면, 애초에 전쟁에 참여하면 안 됐다.
"많이 피곤할 텐데 이제 좀 쉬게."
"감사합니다."
그것과 별개로 휴식은 반가웠다.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고 지휘 막사를 벗어났다.
머리가 복잡할 땐 자는 게 최고다.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피로에 지친 몸은 충분히 상념을 이기고 수마에 빠질 수 있을 듯했다.
푹 자자.
그리고,
이번 전쟁이 지루하다는 말은 취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