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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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그 근원적인 물음에 서술하자면 수십여 페이지가 넘는 내용으로도 다 담기 힘들 만큼 복잡하지 않을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돈이 일 순위일 것이다.
단순 종이 쪼가리에 우리가 그렇게 집착을 하는 건 그 종이에 담긴 가치를 원하기 때문이다.
즉,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건 돈으로 원하는 걸 모두 사고 싶다는 걸 말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원하는 걸 모두 살 수 있다면 행복할까.
당연히 행복하겠지.
남들 열심히 돈 벌 때 혼자 치트 쓴 기분으로 인생을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상상만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요소는 흔치 않다.
하지만 돈이 인생의 행복이 아닌 사람은?
또는 돈을 벌 만큼 벌어 돈에 대한 효용 가치가 떨어지면?
그 사람은 더이상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돈은 행복이 아니라 생각했다.
물론, 돈이 생긴다면 행복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누군가 돈을 준다면 발바닥이라도 핥을 자신이 있지만.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행복이 찾아오는 가장 큰 조건을 '미래'라고 생각했다.
택배가 오기 전의 설렘, 또는 주말을 기다렸던 직장인.
금요일의 회사는 여느 날보다 조금 들떠있다. 약속을 잡고 치마를 입고 온 여직원들, 평소보다 핸드폰을 많이 들여다보는 사람들.
주말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소중한 주말이 오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미래니까.
반대의 상황도 있다.
일요일 저녁 개그 프로그램이 끝나고 찾아오는 초조함.
아직 일요일인데도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찾아오는 스트레스. 평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월요병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무기력하다.
그래서 이 말을 꺼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현재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카인. 저 어때요?"
느긋한 자세로 헤일리가 미소짓는다. 내게 속마음을 들킨 헤일리는 이젠 걸릴 게 없다는 듯 그대로 영지에 눌러앉았다.
그리곤, 노골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냈다. 시아라와 엘라가 당황할 만큼.
지금도 반쯤 소파에 기댄 헤일리가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짧은 드레스는 어디서 났는지, 가늘고 기다란 흰 다리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다 자취를 감췄다.
남자란 그런 존재다.
시각이 몸을 지배하는 존재.
부끄러움이 많은 시아라와 여전히 공주 시절의 습관이 남아있는 엘라에게선 절대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에, 나로선 노골적으로 유혹해오는 헤일리의 육탄공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진 세 여인과의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올해는 별일 없이 지나갈 예정이었다.
이것만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헤일리. 아직 낮이에요."
"어제 낮에 앙앙거리던 사람이 누구였죠~?"
"..."
헤일리를 제지하려던 엘라가 순식간에 침몰했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찻잔을 들곤 얼굴을 가렸다. 작은 얼굴이 그 찻잔에 반쯤 가려진다.
"언니..."
결국 시아라가 입을 열었다. 타국의 공주에 이어 제국의 공작이라니, 가장 먼저 연인이 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었기에 유독 기가 죽어있었다.
그 모습을 눈치챘던 나는 일부러 그녀들 앞에서 시아라의 기를 세워줬다. 다행히도 헤일리는 엘라와는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것과 다르게 시아라의 말은 적당히 듣는 시늉은 했다.
"시아라. 이거 비슷한 옷 있는데 너도 입을래? 아, 가슴이 안 맞으려나? 미안해."
그렇다고 헤일리의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원샷원킬이다.
단 두 방에 두 사람을 침묵시킨 헤일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헤일리. 어젯밤 뭐라고 약속했지?"
"윽..."
여유롭게 미소짓던 헤일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내 밑에 깔려 울음을 터트리며 했던 약속이 생각난 것이라.
여유롭던 기세는 어디 가고 그녀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이따 봐."
"흣..."
내 말을 듣던 시아라가 조금 밝은 표정을 지었다. 엘라에 이어 헤일리까지 죄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니 유독 기를 못 펴긴 했다. 소심한 그녀 성격 탓도 조금은 있었고.
공주로서 품위를 지키던 엘라와 달리 헤일리는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헤일리를 침몰시킬 때마다 시아라는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짓곤 했다.
"시아라 너도 할 말 있으면 그때그때 해. 네가 첫 번째잖아."
사실 따지고 보면 큰 의미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시아라를 가장 좋아하느냐 물어보면 그건 아니었으니까. 내겐 세 명 모두 소중한 연인이었다.
양심도 없냐고 욕할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여긴 현대도 아닌걸.
"...그래도."
자기편을 들어주자 조금 더 기가 살았는지 표정이 완전히 풀린 시아라가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천성이다.
이 세계로 처음 왔을 때가 18살의 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흘러 22살의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실제 나이론 36살인가. 이제는 흐릿한 지구 생각을 잠시 하다가 다시 생각을 돌렸다.
엘라가 나보다 두 살 연상이니 24살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이 관계에 끼어든 헤일리는 23살이었다.
누나 취향이 있느냐?
아니, 없었다. 나는 보살핌 받는 것보단 보살피는 걸 좋아했으니까. 그건 잠자리에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매일같이 엉덩이가 부어오르는 건 가장 나이가 많은 엘라니까.
그리고 사실 원래 나이로 하면 엘라와도 띠동갑 차이다. 나이로는 누나지만 누나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여인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아름다운 여성들의 시선이 쏠린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망설임 없이 헤일리 앞으로 다가갔다. 다리를 꼬고 차를 마시던 헤일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무언가를 예상했을까. 사실, 예상할 껀덕지도 없었다. 이미 헤일리를 포함해 엘라와 시아라까지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으니까.
"...이따 밤에 보자면서요."
"네가 유혹했잖아."
헤일리의 다리에 이어 엘라의 엉덩이까지. 나를 자극하는 요소가 두 개나 있었다. 이러면 나는 참아도 내 물건은 못 참는다.
두 손으로 헤일리의 머리카람을 쓰다듬었다. 자리에 앉아있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분신 바로 앞에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에 옷 안으로 보이는 윤곽선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헤일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살짝 벌어진 입으로 달뜬 호흡이 흘러나왔다.
"입으로만 벗겨봐."
그 말에 헤일리가 기가 막힌 듯 눈꼬리를 치켜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탓에 더 날카롭게 보였다.
"저를 어디까지 추락시킬... 읍!"
얇은 바지 위로 그녀의 얼굴이 느껴진다. 그 바람에 물건이 완전히 커졌다. 얼굴로도 느껴지는 크기 탓일까. 목 끝까지 얼굴이 붉어진 헤일리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일종의 소소한 오락이다. 그녀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손에서 시작했던 오락이 이제는 입으로만 사용하는 것까지 왔다.
헤일리를 사랑하지 않느냐? 여전히 사랑한다.
그저, 이렇게 엘라와 시아라 앞에서 그녀에게 굴복감을 줄 때마다 앙칼진 헤일리의 성격이 뭉개지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서로에 대한 서먹함은 진작 날아갔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니 이건 모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다.
앙칼진 고양이를 들인 건 내 탓이니 내가 나서는 게 맞다.
입으로만 바지를 벗기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별 말 없이 미션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보인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기저기 그녀의 침이 묻은 바지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찬 공기를 만난 분신이 오싹했다. 그리곤 이내 부드럽고 따듯한 쾌감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원래 마사지를 받을 땐 눈을 감는 게 국룰이니까.
시야가 암전하자 자연스럽게 요즘 머릿속을 괴롭히는 화두가 던져졌다. 벌써 두 달째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이렇게 한가롭게 살아도 되는가?
잘 모르겠다.
다나크라는 큰 적이 사라졌다. 그것도 조금은 허무하게.
그래서 전쟁은 대비 안 하는가?
하고 있었다. 헤일리가 지원해준 식량은 그대로 창고로 들어갔다. 이 중 일부는 구휼미로 사용하고, 나머진 군량으로 쓸 생각이었다.
최근엔 변방에 사는 유목 민족을 끌어들이는 중이었다.
거칠고 말도 잘 안 듣지만, 그들이 가진 말과 승마기술 만큼은 단점을 무시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디를 공격할 것인가?
다나크를 제외하면 대륙 반대편 남쪽에 있는 파딘 제국과 나머지 세 왕국 뿐이다.
바로 옆에 있는 알만, 저 멀리 헤르트, 그리고 바다 건너 에르딘.
알만을 공격하면 다나크와 파딘의 협공을 받아야 한다. 태어나길 두 제국의 괴뢰국으로 태어났으니.
헤르트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때 원군까지 갔던 혈맹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접한 국경이 없었다.
바다 건너 에르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왕국끼리 힘을 합쳐 4국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4국 동맹을 제안했던 에어로크가 뒤통수를 친다? 그 순간 알만에서 들어오는 식량 원조가 끊길 것이다.
그럼 남은 건 파딘 제국뿐인데.
분신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헤일리의 머리를 꾹 눌렀다.
켁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아직은 괜찮다는 뜻이다. 정말 힘들면 허벅지를 다급하게 때리곤 했다.
명분이 없었다.
온 대륙이 전쟁에 휘말렸을 때도 가만히 사태를 관망했다.
유일하게 파딘 제국이 군사를 움직인 건, 삼 년 전 다나크 제국이 알만 왕국 국경으로 군사를 보냈을 때였다.
지난 몇 달간 하릴없이 그녀들만 탐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답이 없었다. 오늘도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생각을 접은 나는 그녀의 머리를 더 강하게 눌렀다.
얼굴이 잔뜩 붉어진 그녀가 허벅지를 막 때리려던 그 순간, 파정의 쾌감과 함께 울컥거리는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허벅지를 꽉 붙잡는 게 느껴진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던 그녀가 남자 앞에 무릎 꿇고 정을 받아내고 있다.
"쿨룩... 크흑... 헤에... 헤에..."
한껏 치켜떴던 아까와는 달리 잔뜩 풀린 눈이 나를 올려다봤다. 붉은 얼굴이 유달리 매혹적이다. 천천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소파로 밀었다.
"일부러 짧은 드레스 입고 왔지?"
"헤에... 아니에요..."
엘라도 그렇고 높으신 분들은 매도당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어쩌면 평소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 더욱 반응이 좋을 수도 있겠다.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일탈을 꿈꾸는 학생회장 같은.
소파에 기댄 그녀 사이로 들어가 다리를 벌렸다.
...오우.
"일부러 맞네."
"헤에..."
아무런 방어벽도 없는 분홍빛 균열을 바라보다 그녀 위로 올라탔다. 등 뒤로 엘라와 시아라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니 결국은 이렇게 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건드는 나 때문에 피할 만도 하건만 시아라, 엘라에 이어 헤일리 역시 거부하지 않았다.
휴식 기간, 또는 폭풍전야.
대륙을 휩쓴 침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녀들을 탐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는 직장인처럼 행복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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