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책사 시점-168화 (168/191)

〈 168화 〉 너 스스로

* * *

"...카인?"

시아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문 안에서 들려왔다. 잔뜩 잠긴 목소리에 괜히 미안해졌다.

"문 열어 줘."

일부러 조금 더 밝게 대답했다. 약속대로 정해진 시간에 방문을 두드렸지만, 그것과 별개로 두 여인은 지금까지 잔뜩 걱정을 했을 것이다.

"...열어줘도 돼?"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돼?

그 순진한 반응에 웃음이 터졌다. 물기 젖은 목소리만 들으면 방금까지 운 거 같은데.

"배고파."

그제야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살짝 열린 틈새로 눈가가 붉은 시아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뒤로 엘라의 모습도 보인다.

"열어줘도... 돼?"

"이미 늦었어."

쾅!

"꺄악!"

문이 활짝 열리며 시아라가 뒤로 주저앉았다. 엘라는 깜짝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역시, 놀리기 좋은 조합이다.

활짝 열린 문 앞에 서서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사랑이다. 진짜 애인이고.

평소보다 더 두 사람이 반가웠다. 바닥에 주저앉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은 시아라를 들어 올렸다.

"...카인?"

"놀랐어?"

"...이익!"

퍽!

"억!"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옆구리를 붙잡고 뒤로 물러났다. 오랜만에 맞아서 그런가? 손이 더 매워졌다.

"어떻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어?"

"...심했어."

두 여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는 언제고 도끼눈이 됐다.

"이제 믿겠지?"

두 팔을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 한 대 맞은 건 조금 억울했지만, 의심은 완전히 풀었으니 됐다.

"..."

"..."

역시나, 이제서야 내 의도를 깨달은 둘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시아라는 때린 게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면 더 놀리고 싶은데.

서서히 다가오는 두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오른팔을 뻗어 엘라를 끌어당겼다.

"시아라 자리는 없어."

"...뭐?"

"지금도 아파."

"..."

그리고 보란 듯이 엘라를 꽉 끌어안았다.

적어도 옆구리 통증이 가시기 전까진 계속해서 놀릴 생각이었는데, 입을 삐죽 내민 시아라를 보고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일로 와."

"..."

왼손을 뻗어 시아라를 잡아당겼다. 풍선을 잡아당긴 듯 그녀가 스르륵 끌려왔다. 그렇게 두 여인을 꽉 끌어안고 체온을 느꼈다.

시아라 향기가 난다. 꽃을 닮은 포근하고 부드러운 향기.

엘라 향기도 났다. 얼음공주다운 시원하고 맑은 향기.

익숙한 향기였다. 누구와 달리 추억이 담긴 향기였다.

"배고프다며... 밥 먹자."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시아라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

어쩌면 영영 안지 못할 품이었고 향기였다. 다시 한번 헤일리에게 분노를 느끼는 그 순간,

"그런데 카인."

"조금만 더..."

"...아니 그게 아니고."

방금 전까지의 애뜻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평소 같은... 아니, 평소보다 더 싸늘한 엘라의 목소리에 본능적인 경고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카인 품에서 낯선... 향기가 나는데."

심장이 쿵 떨어졌다. 둘을 품에 안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혹여나 방금 당황한 내 얼굴을 봤다면 변명도 못 할 뻔했다.

그러니 뭐라도 좋으니 기회를 살려야 했다. 내가 밤새 그녀와 몸을 섞었다고는 상상도 못할 테니 어떻게든...

"언니도...? 내 착각이 아니었어?"

"..."

...여인이 둘이라 불쌍한 남자여. 교차검증이 끝난 두 여인이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나 의심하는 거야?"

최대한 슬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말에 시아라가 몸을 움찔 떨었다. 역시나 마음이 약한 그녀에게 효과가 있었다. 이 틈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여자하고 다툼이 조금 있었어."

그 말과 함께 두 여자를 품에서 놓고 웃옷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던 그녀들이 얼룩덜룩 멍으로 물든 상체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게 뭐야?"

"왜 그래? 그 여자가 그런 거야?"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조금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두 여인을 다시 품에 안았다.

"약 바르자. 카인. 어떡해... 안 아파?"

"괜찮아. 멍이 든 게 전부야."

발을 동동 구르는 시아라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차마 양심에 걸려 눈은 쳐다보지 못했다.

언젠간...

모르겠다. 나와 헤일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어느 날 두 여인에게 헤일리를 소개시켜 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엘라와 시아라로 충분하다. 이렇게 품에 안을 수 있는 두 명이면 족했다.

"저택 구석에 있는 그 방 알지?"

"카인이 자주 쉬던데?"

"응. 당분간 거기서 지낼 생각이야."

"언제까지?"

"제국의 사절단이 떠날 때까지."

내 말에 시아라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 방에서 지낸다는 건 곧 당분간 못 본다는 사실과 똑같다는 걸 아는 거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만 참아줘. 밥은 여기서 먹을게. 못 먹을 땐 미리 다른 하녀를 불러서 알려줄게. 늦으면 먼저 먹고."

"응..."

"일단 밥부터 먹자. 배고파."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밤새 가만히 있던 것도 아니라 더 시장기가 돌았다.

그러고 보니 헤일리도 어제저녁부터 내내 굶었다.

바쁜 움직임으로 점심을 준비하는 두 여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간단한 점심 좀 준비해줄래? 샌드위치 같은 거."

"왜? 샌드위치 먹고 싶어?"

"아니. 이따 간식으로 먹으려고."

"그럼 그때 가져다줄게."

"귀찮게 뭘 그래. 그냥 한번에 준비해줘. 들고 갈게."

이번에도 말을 하다 시선을 돌렸다.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아라를 떳떳이 보기 미안했다.

'누가 좋아서 그러나.'

나도 하기 싫었다. 최면을 걸고 인생을 망가뜨리려던 헤일리에게 점심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최면의 잔재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허기가 신경 쓰였고, 샌드위치를 부탁했다.

미쳐버리겠다.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어 싸우는 기분이었다.

정신 분열이 오면 이런 느낌일까. 분 단위로 치고 올라오는 사랑과 분노가 섞이는 기분은 생각보다 스트레스였다.

"또 먹고 싶은 거 있어?"

뭐가 그렇게 기쁜 걸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 시아라가 내 표정을 보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여자 때문에 화가 난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필사적으로 분노를 참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참 어이없게도, 분신이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고개를 숙였던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도 헤일리 때문이다.

가슴 속에 분노가 쌓일 때마다 헤일리를 범했다. 성욕으로 분노를 해소했다. 어제 낮부터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그새 습관이 들었을까.

분노가 치솟을 때마다 성욕을 해소한 게 이놈에겐 그렇게 강렬한 쾌감이었을까.

서서히 존재감을 내뿜기 시작하던 분신이 완전히 커졌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분노가 쌓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먹고 싶은 거 있냐니..."

"..."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시아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어느 한 곳을 또렷이 쳐다보고 있었다.

들켰다.

등을 기대고 있던 몸을 세우고 천천히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이래도 될까. 헤일리에게 받은 분노를 시아라와 엘라에게 풀어도 될까.

...잘 모르겠다.

최면을 풀다가 뇌가 갈라지는 고통을 느낀 게 바로 어제다. 복잡한 생각은 당분간 하고 싶지 않았다.

"뭐가 먹고 싶냐고?"

"..."

"너."

­­­­­­­­­­­

"먹어."

"..."

결국 헤일리가 있는 방으로 돌아온 건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천천히 방문을 열었던 나는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곧바로 눈을 감고 그녀가 있을 만한 곳으로 걸어가 뺨을 때렸다.

두 팔이 묶인 그녀가 있을 곳은 한 곳밖에 없었으니까.

얼굴을 잡힌 채 뺨을 맞은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곧바로 능력을 풀었다. 눈꺼풀을 비추던 붉은 기운이 사라진 뒤에야 나는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아직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걸 자비라고 여겨."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게 더 화가 났다. 사랑하는 여인을 때린 충격으로 몸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제 눈을 뽑을 수는 있나요?"

"..."

"...어차피 저를 죽이지 못하잖아요."

원망이 그득한 눈빛이 나를 노려본다. 가슴이 저릿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헤일리는 점점 더 집요하게 내 약점을 파고들었다.

"...밥 먹어."

"먹여주세요."

"...뭐?"

"어차피 손이 묶여서 먹지도 못하는 걸요."

언제 노려봤냐는 듯 여유롭게 웃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묶었던 줄을 풀었다.

"내가 있을 땐 언제든지 풀어줄 거야."

혹시 그녀가 탈출할까 묶어놨던 것뿐이다. 내가 있으면 자유롭게 풀어놓을...

"제 최면이 그렇게 강했나요? 자비도, 고문도 아닌 이 애매한 상태에 둘 정도로?"

그 말에 다시 한번 손이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발갛게 부은 뺨이 가슴을 저몄다.

"...밥 먹어."

고개를 돌리며 샌드위치를 간이 식탁에 폈다. 엘라와 시아라에게 미안했다. 괜히 그녀들을 괴롭힌 것 같았다.

잠시 손목을 쓰다듬던 그녀가 천천히 일어나 식탁으로 다가왔다.

공주와 공녀는 비슷한가. 엘라의 드레스가 퍽 어울렸다.

"낯선 향기가 나네요. 당신의 연인 향기인가요? ......두 명이에요?"

처음으로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처음 보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왠지 모르게 분노가 풀리는 기분에 웃음이 나왔다.

"너까지 하면 셋이지."

"풀어줄 거라는 거 알아요."

"..."

찬란하게 빛나는 숫자가 보인다. 99. 도저히 머리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능력치다.

그녀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샌드위치를 들었다. 잔뜩 겁에 질려있던 오늘 아침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괜히 방에 들렸나 싶었다. 하녀를 시켜 내가 안전하다는 걸 알리고 계속해서 헤일리를 정신적으로 압박했어야 했을까.

"그렇게 계속 도발해봐."

"..."

그제야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자존심을 건들면 사람은 얼마든지 미련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면을 푸는 방법은 있어?"

오물거리며 샌드위치를 먹던 헤일리가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을 할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없어요. 있어도 제가 풀어줄 것 같나요?"

"..."

최면이 풀리자마자 죽을 거라는 걸 잘 아는 거다. 내가 사랑에 약해졌다는 것도 함께.

"최면은 양피지에 적는 글이에요. 다른 글을 쓸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어요."

그것참 불편한 능력이다.

현대에서 봤던 수많은 최면물은 자유자재로 최면을 깨게 만들던데.

"...그리고 당신은 최면이 깨졌잖아요? 그것도 스스로. 제가 도와드릴 방법은 없어요."

"부작용이 남았잖아."

사랑하라는 말을 중첩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오리발인가.

양피지 가득 헤일리를 사랑하라는 글이 적혔다. 아무리 갈기갈기 찢어도 그 작은 조각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다.

"고의가 아니라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요."

하는 말마다 반박이 불가능하다. 이래서 똑똑한 사람과 대화를 하기 싫다. 맞는 말만 골라서 하니까.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네."

말로 안 되면 몸으로 하면 된다. 느긋하게 샌드위치를 씹던 그녀의 입이 처음으로 멈췄다.

"...오, 오늘 아침에도 그렇게 했..."

"방금도 하고 왔어."

"뭐, 뭐라고요...?"

몸으로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슴에 쌓인 분노 하나는 끝내주게 해소됐다.

그거면 됐다.

"얼른 먹어."

"...방법을 찾아볼..."

"늦었어."

이미 늦었다. 그녀의 여유로운 태도에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분신 역시 준비를 끝내고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뭐,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샌드위치를 잡은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애원하는 상황이라니. 아까처럼 가슴이 아플 상황이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지나치게 성욕이 강해진 것도 최면의 부작용일까.

모르겠다. 일단 가슴에 쌓인 화부터 풀고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이따가도 지금처럼 여유로울지 보자고."

협박에 가까운 말에 그녀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부작용을 없앨 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글쎄 나는 까먹어도 분신은 안 까먹을 거 같은데.

"하나 부탁을 들어준다면 생각해볼 수 있긴 하지."

"...부탁이요?"

"너 스스로도 최면이 걸리나?"

"...안 해봤어요."

핏기가 싹 가신 그녀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듯 강한 부정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조각을 들고 있던 헤일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 아, 아직 안 먹었어요."

"그거 먹으면서 잘 생각해봐."

스스로 최면에 걸릴지, 아니면 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쾌락에 몸부림치든지.

걸음을 옮겨 침대에 누웠다. 그때까지도 나를 바라보던 헤일리가 무언가 마음을 먹은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혹시..."

"헛소리할 거면 샌드위치 먹어."

"아, 아니 그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슨 최면을 걸... 생각인가요?"

그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 정도로 싫은가?

곧장 입을 열었다. 미리 생각해뒀던 최면이 있었으니까.

"대리자를 포기하라거나 제국을 넘기라는 최면은 안 걸어. 그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

떨리는 눈으로 내 말을 듣던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응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내 말을 끝까지 들은 그녀의 표정이 궁금했다.

"나만 너를 사랑하니까 억울해서 말이야. 내 부작용을 고칠 방법은 없다 그러고..."

"...설마."

"너도 날 사랑하면 어떻게 될까?"

전쟁의 승리? 다나크 제국? 내 손으로 이루면 된다. 이미 제국의 서부는 내 손으로 직접 점령했고 나머지도 금방 점령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부작용만큼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가슴 깊이 박힌 이 최면의 편린을 풀 수 없다면, 그녀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생각이 충돌하고 감정이 부딪치는 이 고통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 안 돼요..."

"그럼 그거나 먹고 일로 와."

거부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조금의 표정 변화 없이 그녀를 재촉했다.

누워있는 나와 앉아있는 그녀 사이에 불쑥 튀어나온 분신이 옷 안에서 여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헤일리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지더니 천천히 마지막 샌드위치 조각을 입에 넣었다.

"제국으로 돌아가면... 당신부터 죽일 거예요."

"그거 알아?"

"..."

"다나크 제국이 나한테 점령당하면, 넌 평생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거."

협박에는 더 큰 협박으로.

창백을 넘어 절망을 느끼기 시작하는 헤일리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땐, 너 스스로 최면을 걸게 될 거야."

"...그럴 일 없어요."

"내가 다나크 제국을 정복 못 할 것 같아?"

역시 저런 표정이 어울린다. 도도하고 여유로운 태도는 네 인형에게나 보여줘.

"지금은 널 사랑하지만... 그때는 아니겠지."

"..."

"찢어지고 헤집어진 감정의 복수를 받게 될 거야. 철저하게."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옷을 벗었다. 아름다운 나신이 달빛에 비치기 시작했다.무너져가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활짝 웃었다.

거의 다 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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