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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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의 어깨를 감싼 손이 쓰라렸다. 그 통증에 카인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키스에 집중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진다. 말랑거리는 그녀의 혀를 끊임없이 건들며 가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 아..."
"사랑해."
"흣..."
그녀의 가슴을 움켜쥔 손을 떼어내기 위해 그녀의 손이 달라붙었다. 그 압박에 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가슴을 움켜쥔 손을 떼어내기엔 그녀의 힘이 너무 약했다. 손목을 잡은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 안 돼요...!"
"사랑해."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그녀의 벅찬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입을 맞췄다. 꽤 당황했는지 그녀는 손으로 밀어내고 고개를 피할 뿐 혀를 깨물려는 시도는 없었다.
사랑하느냐.
아니,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느냐.
...아니. 사랑한다.
한참을 그렇게 입을 맞추며 갈 곳 잃은 그녀의 혀를 희롱하다 입을 뗐다. 얼굴이 붉게 물든 그녀가 카인을 바라봤다.
부끄러운 걸까.
아니면 화가 난 걸까.
카인은 그 시선을 무시했다. 화가 났어도 나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겠지.
손으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뭐, 뭐 하는... 꺅!"
170이 조금 안 될까. 키에 비해 예쁜 다리가 드레스 사이로 보인다. 가볍게 들어 올려 껴안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안겨 왔다.
갑자기 하늘로 떠올랐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멈춰요! 멈추라고요!"
"..."
"내 말 안 들려요? 멈추라... 흡!"
겨우 다섯 발자국 가는 사이에도 열심히 떠든다. 들을 리 없는 그녀의 명령을 귓가로 흘리며 입을 맞추자 그제야 조용해졌다.
"멈... 추세요...!"
그녀의 눈에 절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벌써 들키긴 조금 아쉽지 않을까.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제야 그녀의 눈 깊은 속에서 안도의 기쁨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사랑해."
"그, 그렇죠...! 오늘은 안 된다고 했잖아요."
"...미안해."
살살 달래는 듯한 그녀의 말을 들으며 두 팔에 힘을 풀고 그녀를 내려놓았다. 희미하게 일렁이던 희망이 점점 더 커졌다.
허나, 그 희망은 불과 삼 초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설마..."
"미안해."
걸음은 멈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침대에 도착했기 때문에. 물론, 내 품에 안긴 그녀는 자신의 명령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거다.
미안하다는 뜻이 키스를 해서 미안하다고 알아들었나? 의도하긴 했지만, 반응이 좋아 웃음이 터졌다.
침대 위에 주저앉은 그녀가 절망에 빠진 얼굴로 카인을 올려다봤다.
"머, 멈춰요... 제발..."
"미안해."
안 미안하다.
하나도.
네가 건 최면에 네가 당하는 기분이 어때.
내 감정을 가지고 놀려고 했던 대가를 치르는 기분이 어때.
"흐읍!"
그녀 위로 쓰러지며 다시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눈이 날카로워지더니, 눈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도.
"사랑해."
"...흣."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키스야 원래 눈 감고 하는 거니까.
주인을 잃은 가슴을 움켜잡았다. 누워있는데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D?
어쩌면 엘라 만큼 클지도 모르겠다. 그거야 뭐, 벗겨보면 알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시아라보단 크네.'
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어떻게 하나같이... 아니다. 디아나가 있으니 꼴등은 아닌가?
생각해보니 샬롯도 말라서...
"자, 잠깐만...! 잠깐 눈을... 떠봐요."
몸을 밀착하고 있어서 그럴까.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붉은 기분이 일렁이는 기분이었다. 마치 눈을 감아도 형광등의 빛이 느껴지는 것처럼.
"사랑해."
진심이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녀에 대한 감정이 가짜라는 걸 알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박힌 편린이 사라지질 않았다.
드레스가 벗겨진다. 등 뒤로 묶였던 끈이 풀리며 점점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흣? 자, 잠깐만...! 제발! 저 좀 봐요...! 히익...!"
엘라와 비슷한 크기구나. 한 손에 꽉 찬 가슴이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그녀의 가슴을 계속해서 애무했다.
"흡...! 제발..."
결국, 그녀의 입에서 항복이 나왔다. 간신히 고개를 돌린 그녀가 물기 젖은 목소리로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눈꺼풀을 자극하던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랑해."
"흐윽... 왜... 이제 눈을 떠요..."
그게 더 속상했을까. 웃음이 나올 뻔한 걸 참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시선을 내려 가슴을 보고 싶었지만, 조금 참았다.
이따가 실컷 볼 수 있으니까.
"부탁이에요... 오늘은 정말로..."
"미안해."
헤일리의 간절한 부탁에도, 카인의 입에서 나오는 두 개 뿐이었다.
사랑해, 혹은 미안해.
카인이 다시 입을 맞추며 드레스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그녀가 버둥거리며 손을 붙잡았지만,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손을 따라 부드러운 배가 만져진다. 그 촉감이 너무나 부드러워 잠시 손을 멈췄다.
"사랑해."
그녀가 혼란과 절망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최면에서 깨어난 걸까. 아닐까.
왜 명령을 듣지 않을까. 최면이 깨졌다면 왜 사랑한다는 말을 할까. 그리고 그때, 카인의 눈이 다시 감겼다.
참 공교롭게도 카인이 손을 멈춘 틈을 타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던 타이밍이었다.
"...날 봐요."
"..."
헤일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재촉했다. 배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오싹한 소름이 끼쳤다.
제발.
제발 날 봐요.
목소리에 절망이 묻어나왔다. 최면이 깨졌어도, 안 깨졌어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상황에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아..."
겨우 하반신을 가리고 있던 드레스가 서서히 다리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몸을 비틀며 다시 한 번 그의 손을 붙잡았지만, 그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날... 날 보라고요!"
결국 찢어지는 비명을 흘러나왔다. 분했다. 무력한 스스로가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났다.
보기만 하면 된다.
눈을 뜨고 눈만 마주치면... 그러면 다시 최면을 걸 수 있다.
그러니 제발 눈을 떠요. 제발...
그러나, 그녀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남자는 눈을 뜨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신의 혀를 유린하는 그를 느끼며 조금씩 드레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해."
"흑..."
결국 드레스가 벗겨진 헤일리가 수치심에 물든 얼굴로 두 팔로 몸을 가렸다. 겨우 얇은 속옷 하나만 입고 남자 앞에 누워있다.
왜 명령을 듣지 않을까.
최면이 너무 강했을까.
나를 사랑하라는 최면이 너무 강해서 말을 들으라는 최면보다 우선시 된 걸까.
모르겠다.
여전히 눈을 감은 그를 보며 필사적으로 집중을 유지했다. 눈물이 흘러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가 잠깐이라도 눈을 뜨면 기회를 잡아야 했다.
"제발... 제발... 정말 거긴 안... 돼요..."
가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려 속옷을 잡았다. 그리고 그제야, 헤일리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신... 최면이 풀렸...?"
"..."
키스를 할 때 눈을 감는 건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몸을 떼고 속옷을 벗기면서도 눈을 감는 건, 말이 안 됐다.
"어, 언제부터..."
벌어진 입이 덜덜 떨렸다. 간신히 집중을 유지하던 정신력이 흐트러지며, 그녀의 눈과 머리카락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천천히 눈을 뜬 카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녀가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다.
"미안해."
그 말과 함께, 그녀를 지키던 최후의 보루가 몸을 떠나버렸다.
조금 충격이 심했을까.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헤일리를 보며 카인이 천천히 옷을 벗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최면이 풀렸냐고?
그게 중요할까. 그녀에게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궁금한 건 그녀고, 자신과는 관심사가 다르니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 관심사는 당연히...
"자, 자, 잠깐만...! 정말 안 돼요! 정말로...! 최면도... 아, 안 걸렸다면... 흐윽?!"
하반신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아팠다. 그리고 너무 컸다.
"...아."
고통인지, 절망인지, 슬픔인지, 충격인지.
자신의 몸을 꽉 채운 듯한 그 압박감에 헤일리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결국... 결국 막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왜... 왜..."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유를 찾았다.
어떻게 최면을 풀었을까. 최면에 풀렸는데 왜 사랑한다고 했을까. 사랑하지도 않는 자신을 왜 억지로 범할까.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곧 하반신을 압박하는 새로운 충격에 끊기고 말았다.
"자, 잠.. 흑...! 아파...요... 흐윽..."
아플 만했다. 아무런 감정도, 애무도 없는 섹스는 원래 아프니까.
그게 그녀의 질이든, 가슴이든.
그러나 카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들킨 마당에 더이상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도, 미안하다고 배려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붉은 피가 흘렀다. 그녀의 눈을 닮은 붉은 피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헤일리를 무심한 눈으로 보며 카인은 계속해서 허리를 흔들었다. 아무런 기교도, 애무도 없는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흐윽... 왜..."
그를 죽이고 싶었다. 차라리 최면에 걸렸을 때 죽여야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계속해서 끝을 찌르는 감각에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카인의 입이 열렸다.
조롱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헤일리가 잠시 울음이 멈출 만큼.
"...너는 왜."
"...흐윽...!"
"너는 왜 나에게 최면을 걸었지?"
카인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그에 따라 헤일리의 몸 역시 강하게 흔들렸다.
"너는 되고, 난 안 된다는 건가? 너는 네 마음대로 내 감정을 뒤바꿔놓고! 난 안 된다는 거냐고!"
순수한 분노였다. 자신의 슬픔을 뛰어넘는 분노. 연신 자신에게 허리를 찔러넣는 그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남에게 감정을 조종당한 기분이 어떤지 아나?"
모른다. 남들에게 최면을 건 적은 있어도 걸은 적은 없으니까. 시도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끊임없이 움직이던 허리가 뚝 움직임을 멈췄다. 그제야 헤일리는 겨우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고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쿡쿡 찔러댈 때마다 숨을 쉬기 어려웠었다.
"하아... 하아..."
그의 말이 맞았다. 접근을 시도한 것도 자신이었고, 최면을 건 것도 자신이었다. 원인도 자신에게 있고, 결과도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헤일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을 하기엔 이 상황이 너무나 수치스러웠으니까.
다른 생각 중인지, 아니면 티끌만 한 배려인지 한동안 카인이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헤일리는 하체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완전히 사라짐을 느꼈지만, 장기를 압박하는 듯한 그의 물건은 계속해서 느껴지고 있었다.
"...제발... 빼주세요."
간절히 부탁했다. 차라리 대화로 풀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그가 빼주면 정말 진지하게 사과할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기대와 많이 어긋난 대답이었다.
"고통은 다 사라졌나?"
"...네? ...흣?!"
쑤욱 하고 빠져나갔던 그의 분신이 아주 느린 속도로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헤일리는 처음으로 낯선 감각을 맞이했다.
"무, 무, 무슨 짓을 한... 흣!.. 거죠?"
"아무것도."
간질간질했다. 아니, 오싹오싹하다고 해야 할까.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고통은 어디 가고 기이한 감각이 헤일리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자, 잠... 하윽...! 뭐를... 뭐를 한... 흣..."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을 칠 때보다 더 강하게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강하게 쿡쿡 찌를 땐 오로지 고통만 느껴졌었는데...
"사실대로 이야기해 줄까?"
"네, 네...? 하읏!"
아주 느린 속도였다. 그의 물건 굴곡까지 모두 느껴질 만큼 느린 속도. 손끝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 헤일리가 겁이 난 얼굴로 카인을 바라봤다.
"사실..."
"..."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설마 아까 먹은 차에 무언가를 탔던 걸까.
등을 훑는 그 오싹한 감각에 허리가 점점 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내부를 긁는 그의 물건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가 들리며 더 깊숙이 들어오는 감각에 헤일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하악!"
"사실... 나도 최면을 걸 줄 알아."
"뭐, 뭐라고... 흐윽?... 요?"
카인이 미소를 지으며 느릿하던 허리를 점점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안 된다.
지금도 이렇게 몸이 덜덜 떨리는데 자극이 더 강해지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흐윽! 제발...! 머, 멈춰 주세... 흣!"
"사랑해."
허리가 붕 뜨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이한 쾌락에 헤일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발...!"
"안에 쌀게."
미쳤어.
이 남자는 미쳤어.
아무리 성에 무지한 자신이라도 남자가 여자 몸 안에 사정하는 게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는 알았다.
헤일리가 더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제발...! 제발 밖에... 흐윽...! 제발..."
"사랑해."
속을 긁는 카인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끊임없이 제발을 외치던 헤일리의 입에선 달뜬 신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이렇게 흐읏... 빌게요...!"
무언가 간질간질한 감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큰 낯선 감각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이, 이상한 게...! 제발...!"
죽을지도 몰라.
생전 처음 겪어보는 쾌락에 헤일리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로 카인에게 빌기 시작했다.
"대, 대리자도 포기할게요... 제국도...! 흐윽! 제국도 드릴 테니... 흣! ...제, 제발 멈춰... 흐읏...! 주세...요..."
그 말에 카인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면과 관련된 능력이라 해서 정신력이 강할 줄 알았더니?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헤일리의 고개가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혀를 살짝 내민 게 그녀도 금방 절정에 도달할 듯 싶었다.
"쌀게."
그녀의 머리카락이 붉은색과 갈색을 오가기 시작했다. 눈빛 역시 마찬가지였다.
덜덜 떨리는 팔로 카인의 어깨를 붙잡은 헤일리의 허리가 점점 꺾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커다란 신음과 함께 그녀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윽!!!"
"크윽..."
가장 깊은 곳이 뜨거웠다. 물건 끝에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며 벽을 두드렸다. 쓰나미처럼 몰려온 절정과 더불어 벽을 두드리는 그 감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른 남자와 손을 잡은 것도, 입맞춤도, 가슴을 희롱당한 것도, 결국 섹스에 질내사정까지.
정신없는 와중에도 헤일리는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파과의 고통도, 처음 느껴본 쾌감도 함께.
무엇보다 가장 그녀의 정신을 흔들어 놓은 건, 최면이 깨졌다는 사실이었다.
무적인 줄 알았던 최면이 깨져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최면을 푼 걸까. 최면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서서히 무너지는 정신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여전히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그의 물건이었다.
"흐윽?"
"..."
조금 지친 듯 헤일리의 몸 위에 엎드렸던 카인이 다시 몸을 일으키다가 헤일리와 눈이 마주쳤다.
"왜, 왜 또... 커..."
의아한 눈빛이었다. 조금 겁에 질린 표정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카인이 미소를 지었다.
결국 얘도 여자구나. 능력이 없으면 평범한 여자구나.
"누가 한 번만 한다고 그랬어?"
"...네?"
이제는 완전히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카인이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흣! 자, 잠깐만... 잠깐만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고, 밤은 아직 오지도 않았으니까.
일단 가슴에 쌓인 분노는 다 풀어야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을 것 같았다.
조금 놀려줄까. 한 번 사정했다고 화가 조금 풀렸는지 그새 장난기가 치밀었다.
천천히 상체를 숙여 가까이 다가갔다. 겁을 잔뜩 먹은 새끼 여우가 떨리는 눈으로 카인을 바라봤다.
"너 같으면..."
"..."
"널 풀어줄 것 같아... 아니면 평생 가둬 놓을 것 같아?"
절망에 휩싸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결국 카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놓아줘야 한다. 그녀는 사절이고, 감금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간 뒷감당이 힘들어지니까.
하지만 일단 오늘은 아니다.
그리고 굳이 그녀에게 그걸 설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똑똑한 그녀는 금방 그 사실을 깨달을 테니까.
"하윽...! 흣... 자, 잘못했어요...! 제발..."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번 사정을 끝낸 뒤라 감각이 둔해졌지만, 헤일리는 아닌 듯했다.
벌써 절정에 가까워진 듯 눈이 풀린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카인이 미소를 지었다.
"사랑해."
"...하악!"
"...평생 나와 함께 하자."
꾸욱 조여지는 분신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공포를 느끼며 카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