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소녀의 꿈
* *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벌써 끝났습니까?"
"네 눈에 다크서클이나 지우고 말해라."
"..."
다 알고 있다는 듯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후작의 눈초리를 카인이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사실 후작의 말대로 아까부터 후들거리는 허벅지 때문에 하체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나오기 직전까지 그녀들을 괴롭히다 엘라가 눈을 뒤집고 기절한 것을 마지막으로 대충 씻고 아침 훈련을 나온 상태였으니 말이다.
"기억은 아직도 안 돌아 왔느냐."
"...예."
그 말에 후작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비상해진 아들이 대견스러웠지만, 기억을 잃은 대가로 얻는 능력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또 아들이 기억을 잃는다면?
'...'
후계자를 둘째에게 넘겨야 할 수도 있었다.
"혹시 다시 기억을 잃거나 되찾는다면 바로 내게 말하거라."
"알겠습니다."
후작의 고민을 카인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작의 고민을 해결해줄 방법이 없었다. 사실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다른 영혼이 들어왔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카인을 바라보던 후작이 검을 집어넣고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점심 먹기 전까지 좀만 잘까.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침침하다.
밤새 그녀들과 섹스를 하고 아침부터 칼을 휘둘렀더니 피곤함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아마 엘라와 시아라는 자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피곤함보다 더 큰 고민이 다시 머리 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봄이 오면 제국이 움직일 것인가.'
원정이 끝나고 영지에 돌아온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한겨울에 들어선 영지는 소묘로 그린 그림처럼 모든 세상이 흰색과 검은색 뿐이었다.
조금 빠른 고민일 수도 있지만, 빠르게 고민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다음 전쟁은 나를 따라다니거라.'
어느 날 스승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따뜻한 나라에서 살던 스승님은 유난히 겨울을 힘들어했다. 담요를 덮은 스승님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자신을 보며 말을 이었었다.
'너도 알다시피 다나크 제국은 분명히 헤르트를 다시 침공할 것이다. 이번 원정땐 내게 아무런 권한이 없어 가만히 있었지만, 다음 전쟁은 다를 것이다. 제국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올 것이다.'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제국을 두려워 하는 거야. 아직 너 혼자 대군을 이끌기엔 경험이 부족해.'
백이면 백 맞는 말이었다.
구슬의 존재도 알고 있고, 한 번 크게 데인 제국을 내가 쉽게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구슬을 통해 사기 적인 능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젠 제국에도 분명 어떤 능력이 전해졌을 터였다. 그 능력을 알기 전까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다나크 제국에도, 헤르트와 알만 왕국, 파딘 제국과 에르딘 왕국에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능력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분명 구슬처럼 초월적인 힘을 지녔겠지.
...일부러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래봤자 자신이 가진 구슬처럼 보조 적인 역할일 것이다.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해야만 하는 일의 문제다. 괜한 걱정보다 최대한 힘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
마침내 방문 앞에 도착한 카인은 방문을 열자마자 흘러나오는 야릿한 냄새에 재빨리 문을 닫아야 했다.창문으로 걸어가 활짝 열었다가 방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칼바람에 다시 조금 닫았다.
창문에 손을 떼고 몸을 돌리니 방 안의 참상이 그대로 보인다.
이불은 침대 밑에 떨어져 있고 자신이 사줬던 속옷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중이다. 매트리스를 적신 하얀 자국들에서 야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시아라와 엘라는 여전히 잠에 들어있었다. 잠든 지 이제 겨우 세 시간이 안됐으니 사실 탈진이 맞는 말이지 않을까.
새삼 그녀들에게 미안해진 카인이 욕실에서 부드러운 천을 가져와 두 여인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허벅지와 음부마다 매트리스에 뭍은 하얀 자국들과 똑같은 액체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후읏..."
대각선으로 누워있는 엘라를 똑바로 누이고 다리를 벌려 허벅지를 닦자 그녀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
눈 앞에 나신의 미녀가 무방비하게 누워있으면 발기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분신이 바지가 답답하다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툭.
괜한 장난이 들어 천으로 살짝 균열을 건드니 엘라가 몸을 움찔 떨었다.
밤새 하고도 모자랐을까.
이미 단단히 준비된 분신이 꺼내 달라고 더 크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엘라?"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하면 화간일까. 강간일까.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천천히 옷을 벗었다.
여전히 자고 있는 엘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생각해보니 예전 시아라에게도 이런 적이 있지 않았나?
역시 자신은 평등한 남자라며 혼자 합리화를 마친 카인이 기둥을 붙잡았다.
귀두를 균열에 대고 천천히 비비자 조금씩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흐읏...흣..."
엘라가 깨지 않게 천천히 귀두를 적셨다. 작은 미니 게임이다. 그녀가 깨기 전에 삽입을 성공하고 싶었다.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비비며 귀두 끝으로 애무를 계속하자 마침내 충분히 젖은 귀두가 균열 속으로 조금씩 모습이 사라졌다.
"흐으윽!?...카인?"
대답을 하면 대화가 시작되고, 대화가 시작되면 그녀의 화를 받아내야 한다.
이미 시작한 것은 끝을 내고 혼나야 하지 않을까.
카인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엘라의 입을 막고 속도를 높였다.
"흐읍...! 흣...!"
이미 탈진한 몸으로 반항이 불가능한 엘라는 가만히 신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 뜬 점심나절, 새벽 내내 카인의 방에서 들리던 신음 소리가 다시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어딘가 개운한 표정의 카인이 복도를 걸었다.
'역시 하길 잘했어.'
이른 점심에 시작했던 2차전이 시아라가 깨는 바람에 늦은 점심까지 이어졌다.결국 정말로 몸살이 걸렸는지 움직이지 못하는 둘을 대신해 늦은 점심을 가지러 가는 길이었다.
역팔자로 휜 두 여인의 눈에 쫀 것도 사실 조금 있었다.
"카인 님!"
그때, 카인의 앞에 작은 인영이 확 튀어 나와 품에 안겼다. 생각에 빠져있다 놀란 카인이 열결에 품에 안긴 작은 인영을 안았다.
"...디아나?"
"카인 님. 땀 냄새 나요오..."
"...운동 하고 왔어. 밥은 먹었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을 붙이자 디아나가 밝게 웃었다. 길에 있던 아이를 데려온 지 이제 이 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살이 올라 귀여운 소녀티가 나기 시작했다.
아직 키는 작지만 금방 크지 않을까.
"네! 여기요."
하며 디아나가 자연스럽게 이마를 걷어 올렸다. 만날 때마다 시켰더니 어느새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을 찾아와 이마를 보여주곤 했다.
77.
숫자는 여전했다. 떨어지거나 오르지도 않는 숫자 그대로였다.
'한 번 생긴 능력치는 고정되는 건가?'
아직 예단하긴 일렀다.
능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급할 필요는 없었다.
후에 스승님께 데려가 가르침을 받다 보면 늘어나지 않을까. 가만히 이마를 바라보던 카인이 다시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히히."
열세 살 꼬마 아이가 카인의 미소에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마주 웃는다.
"저 이제 조금 있으면 열네 살이에요."
"벌써 그렇게 됐어?"
"네! 그러니까... 선물 사주시면 안 돼요?"
"선물?"
갑작스러운 디아나의 요구에 카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물이라니?
뭔가 갖고 싶은 게 생겼을까.
"네! 별거는 아니고... 들어주실 수 있나요?"
"들어보고."
"...제 생일날 두 시간만 성 밖으로 같이 놀러 가요."
"둘이?"
"둘이!"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부모도 없이 이 저택에서 동생과 지내니 자신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아닐까. 나중에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찾아오면 알아서 어색해 할게 뻔했기 때문에 어린 소녀와 미리미리 친해져야 했다.
"그래. 그 정도야 뭐."
"정말요?"
그 말에 디아라가 밝은 얼굴로 카인을 끌어안았다. 겨우 가슴팍까지 오는 조그만 몸이 달라붙자 카인이 미소를 지으며 볼을 잡아 당겼다.
그렇게 기뻐할 일일까?
다른 의도로 디나아와 루크를 데려온 자신이 괜히 비열한 놈처럼 느껴진다. 결국 전쟁에 쓰일 말로 데려온 건데.
"보올... 해지 마여..."
"귀여워서 그래."
"흐잉..."
그 전까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얼어 죽을 운명에서 건진 것도 자신이니 이 소녀도 원망은 하지 않으리라.
한참을 볼을 늘이며 장난치다 놓아주니 입이 삐죽 나온 소녀가 뒤로 몇 걸음 도망간다.
왜 이렇게 귀여워.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던 카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디 가던 길 아니었어?"
"...맞다! 저 이제 가봐야 해요. 다음에 봬요!"
잡아 당겨졌던 볼이 아팠는지 울상을 짓던 디아나가 놀란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하고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어려도 하녀라고 갈색 머리를 곱게 정리해 머리망에 넣었는데, 달리는 걸음마다 통통 튄다.
그 모습을 본 카인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열세 살이니... 한국 나이로는 열넷, 열다섯 살인가?'
조금 있으면 열네 살 이라고 했으니 열여섯 살, 중3의 나이다.
마냥 어린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나이가 있었다.
'그래도 애는 애지.'
많이 먹어야 할 텐데.
품에 안겼던 디아나의 마른 몸이 떠올랐다. 유난히 왜소한 몸이라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조금 더 저택에 적응하면 스승님께 소개해야지. 그 전까지 무럭무럭 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됐다!'
디아나는 복도 코너를 꺾으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나온 변명인데 다행히 잘 통했다.
사실, 며칠 후에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는지는 디아나 자신도 몰랐다.
한 번도 생일 선물을 받아본 적도, 축하의 말을 들은 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카인님에게 선물을 받기 위한 변명이었다.
'시아라 언니. 머리핀이 너무 예뻐요.'
'...이거 카인님이 준 거야.'
카인님의 전담 시녀인 시아라 언니는 늘 노란 꽃 모양의 머리핀을 달고 다녔다. 식사를 가지러 온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분명 시아라 언니가 수줍은 얼굴을 했었다.
저택 내부의 규율은 생각보다 엄한 편이었다.
메이드 복과 집사 복은 정해진 규정 내에서 조금의 수선이나 꾸밈이 용납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저택 내에서 유일하게 머리핀을 한 두 시녀가 있었다.
시아라 언니와...
'엘라 언니도.'
자연스레 파란 물방울 모양의 머리핀이 떠오른다.
둘 다 카인님의 전담 시녀였다.
엄하기로 무서운 메이드장님과 집사장님도 둘이 머리핀을 터치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카인님이 이 가문의 실세라는 거야.'
험한 골목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는 눈치였다.
동생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주변을 늘 신경 쓰고 살아야 했다.
'나도 시아라 언니나 엘라 언니처럼 카인님의 전담 시녀가 되면 날 좋아해 주실까.'
며칠 후 도시로 나가면 카인님에게 머리핀을 선물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자신과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택에 가자고 말했을 때, 이 어린 열세 살 소녀는 사랑에 빠졌다.
손님들이 사주던 코코아로 하루를 버티는 자신에게 내려온 구원자로 보였다.
'...아직 조금 작지만 나중엔 몰라.'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내려다 본 디아나가 오늘은 밥을 더 많이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시아라 언니 나이가 되면 충분히 커지리라.
복도를 걷는 어린 소녀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