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알고 있었어
* * *
그러나 그 여린 몸이 내 팔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의미 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크윽...!"
마침내 정액이 분출될 기미가 보였다. 마지막으로 강하게 허리를 흔들다 타이밍에 맞춰 가장 깊은 곳에 분신을 꽂아 넣었다.
"흐으으으으읏!"
울컥거리는 느낌과 함께 정액이 기둥을 타고 자궁구를 두드렸다.
허리가 저릿할 정도로 강한 쾌감에 온 몸이 휘감았다.
"흐윽..."
그녀를 뒤에서 껴안은 채로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내 밑에 깔린 채 엎드린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사정의 여운을 즐겼다. 아직 그녀의 몸 안에 박혀있는 분신을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엘라가 몸을 움찔거렸다.
이제 조금 성욕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사실, 조금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녀가 받아줄 지가 문제였다.
...딱 한 번만 더 하자고 물어볼까.
"엘라?"
"..."
아직 정신이 안 돌아왔을까. 그녀를 깔고 있던 몸을 비키자 물건이 부드럽게 빠졌다. 사방이 애액과 정액 투성이다.
옆에 가만히 누워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엘라?"
"..."
"..."
...기절할 줄은 몰랐는데.
절정에 도달하고도 계속된 쾌감에 쓰러졌을까.
새삼 첫 경험인 그녀를 너무 괴롭혔나 미안함이 올라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해주고 몸을 똑바로 눕혀줬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어날 기색이 없어보며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저녁도 치우지 않았다. 먹다 남은 음식들을 쟁반에 넣고, 여기저기 흐트러진 옷들을 정리했다. 부드러운 천을 가져와 그녀를 닦아주고 침대를 정리했다.
"...엘라?"
혹시 그만 하고 싶어서 자는 척을 하는 걸까.
설마... 아니겠지.
머리 속으로는 그만 하라고 말렸지만, 몸은 몇 달 만의 쾌감을 여전히 목 말라 했다.
...그래. 한 번만 더 물어보자.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만 해야지.그러나 만약 그녀가 대답하면...
가만히 누워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자는 것 같은데... 그럼 한 번만 더 해도 되지?"
흠칫
"..."
"..."
"눈 떠."
그제야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태세였다. 그제야 내가 한 짓이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럴까. 내가 나쁜 놈이다.
"이제 그만... 그만 하면 안 될까... 나 무서워... 흑."
'아이고.'
재빠르게 침대에 누워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안았다.
나와는 달리 엘라는 처음인데... 너무 내 성욕만 채우는데 열중해 버렸다.
생전 처음 느끼는 쾌감에 무서웠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도 모르게 절정에 오르며 몸을 떨 정도의 쾌락이면 더욱.
"미안해. 엘라. 울지 마."
그럼에도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작게 흐느꼈다.
"내가 나쁜 놈이야. 배려 못해서 미안해.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었어. 미안해."
엘라가 우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늘 감정 기복이 적고 담담하던 그녀가 울고 있었다.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등을 토닥였다.
"너무 예뻐서 어쩔 수 없었어. 정말 미안해."
한참을 그렇게 토닥였을 때, 그녀가 진정이 된 듯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슴에 기댄 채 가만히 있던 그녀가 내 등을 안으며 말했다.
"...다음엔 이렇게 하지 마... 무서웠어."
"..."
이번엔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육체와 미모를 가진 그녀와 섹스를 하는데 이렇게 하지 말라고?
...빈 말로도 약속할 수가 없었다.
"...왜 말을 안 해?"
"...자신이 없는데."
"...왜."
"사실 지금도 하고 싶은데, 또 울까 봐 참는 중이야. 너무 예쁜 너 잘못이야."
다시, 그녀가 조용해졌다. 뜬금없는 뻔뻔함에 어이가 없는 듯 등을 감싼 팔에 힘이 풀렸다.
둘 다 잠시 조용했다. 부드러운 육체가 껴안은 팔과 다리마다 느껴진다.
그녀도 나신이었고, 나도 나신이다. 알몸의 남녀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 사실을 다시 인식한 순간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분신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분신이 엘라의 아랫배를 찔렀다. 마치 창에 관통 당한 듯 그녀가 움찔 떨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힘 빼."
"얜 내 말 안 들어."
그게 가능한 남자가 있을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지만, 내 의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었다.
그 때, 엘라가 가슴팍에서 고개를 떼고 나를 바라봤다. 조금 처연한 표정이다. 슬픈 얼굴에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마음을 다잡은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는 듯 담담한 음색이었지만, 내면의 떨림이 느껴졌다.
"...영지에 있다는 그 애인은... 카인이 만족할 만큼 받아줘...?"
무슨 말을 물으려고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나 했다.
시아라가?
그럴 리가 있나. 그녀나 엘라나 비슷했다.
"아니. 전혀."
"...그으래...?"
"사실, 하다가 운 건 시아라도 마찬가지야."
"..."
시아라에게 밀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녀가 조심스럽게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 딴엔 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티가 났다.
왜 이렇게 귀여워.
다시 강하게 껴안았다. 잠시 바깥 공기를 마시던 그녀가 품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답답했는지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걱정 하지 마."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말투였다. 사람의 감정은 유한적이고, 그 유한한 자원을 둘이서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이 엘라를 불안하게 할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 시켜 주는 것 밖에 없다.
천천히 입을 맞췄다. 마치 첫 키스를 하듯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다시 두 시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소중하게 몸을 쓰다듬었다.
내 속내를 읽었을까. 그녀도 점점 적극적으로 나를 받아주기 시작했다.
처음 만지는 것처럼 가슴을 만졌다. 부드러운 푸딩을 만지듯이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사랑해."
"...나도."
사랑을 속삭이며 부드럽게 애무했다. 사슴과 사자가 아닌, 사슴과 사슴처럼.
천천히 가슴 끝의 봉우리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키스를 하는 그녀의 입에서 약하게 비음이 새어 나왔다.
"...또 할 거야?"
"부드럽게 할게."
천천히 그녀 위에 올라탔다. 엘라가 마치 처음 하는 듯 부끄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말라버린 기둥을 잡고 다시 균열에 문질렀다. 균열 사이에서 흘러나온 귀두가 젖으며 삽입될 준비가 끝났다.
"흐읏..."
다시 키스를 하며 천천히 삽입했다. 균열 사이로 사라지던 기둥이 마침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여전히 속은 뜨거웠다. 허리를 원으로 돌리며 주변을 긁었다.
엘라는 아까보다 훨씬 더 키스에 집중했다. 섹스보다 키스를 더 열심히 하며, 천천히 왕복했다.
"흑... 하읏...!"
순서가 뒤집혔다. 부드러운 섹스가 마무리 섹스가 됐다.
"카인... 나 사실 할 말 있어. 하윽..."
느릿한 움직임에 조금 여유가 있는지 얼굴이 붉은 상태에서도 그녀가 키스를 멈추고 입을 열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번에도 고민하는 표정이다.
"...사실, 카인이 크렉스필로 나 이기면 나랑 잔다고 한 각오... 알고 있었어."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속인 게 미안했을까. 순수한 내 의지가 아닌 크렉스필로 인한 관계였으니 불안함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솔직히 말해줬으니 나도 솔직히 말해줘야겠지. 귀두가 자궁구를 조심스럽게 건들 때마다 약한 신음을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어."
"흐읏...뭐?"
"어제도, 오늘도 크렉스필을 가져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고."
왕복의 속도를 조금 높였다.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눈이 동그랗게 떠졌던 그녀가 강해지는 쾌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자, 잠시만... 하윽...! 알고 있었다니?"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굳이 할 말도 없었고, 지금은 엘라의 속을 느끼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신음을 흘리면서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녀가 이내 얼굴이 붉게 물들며 눈을 가렸다.
"나 부끄러워..."
"부끄러워?"
"부끄러워서 죽을 것... 헤윽...? 빠, 빨라아...!"
눈을 가 린채 말을 잇던 그녀가 갑작스러운 쾌감에 신음을 흘렸다. 약한 속도로 흥분을 달구다 갑자기 속도를 높히니 쾌감이 더 큰 듯했다.
"처, 천천히...! 흐윽...! 흣!"
질벽이 꼭꼭 조여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충분히 천천히 해서 그렇지 지금도 평범한 속도였다.
그녀는 눈을 가려 모든 감각이 질에 집중됐기 때문에 더욱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절정에 오른 그녀는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 쉬었다.
부드럽게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나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긴 했지만, 이미 두 번이나 사정을 했고 평소보다 느린 속도에 사정을 하지 못한 나는 삽입을 유지한 채 가만히 그녀를 기다렸다.
아까보다 약한 절정이었기에 바로 정신을 차린 그녀가 여전히 삽입한 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또 할 거야?"
"나는 아직 못 쌌는데."
"..."
그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는지 눈이 동그래진다.
잠시 침묵에 빠져있던 엘라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이니까... 빨리 싸야 해...?"
"응?"
"카인... 마음대로... 대신 조, 좀만... 살살... 나 방금 갔으니까..."
역시 현명한 여인이야.
설마 그냥 빼라고 할까 속으로 맘을 졸였는데, 허락이 떨어졌다.
"흐윽...! 흑...! 처, 천...! 하악!"
질꺽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자신이 뱉은 말을 곧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또 다시 몰아치는 쾌감에 정신없이 신음을 흘리며 나를 받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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