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시종과 메이드
* * *
"..."
"카인. 어쩔 수 없다."
연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숙소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있었다.
더 이상 연회를 즐길 이유도, 기분도 아니었다.
"...그래서 너를 영웅으로 만든 거였구나. ...내가 미안하다."
"스승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
록센 자작이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헤르트를 믿은 자신이 잘못이었는가.
아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차분히 와인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사실, 헤르트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연합군을 달래면서 자신까지 잡는 최고의 수였겠지.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연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즈음이었다. 나와 공주는 헤르트의 국왕이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갔었다.
국왕은 왕비와 대화하는 중이었고, 고위 귀족들이 따른 와인에 살짝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기분도 좋아 보이고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판단이었다.
"엘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좋다. 허락하지."
내 말에 국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너무 쉬운 대답에 나와 공주가 미소를 지은 그 때,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 말씀이십니까?"
"카인 경이 데릴사위로 들어오면 허락해주지."
"...아바마마?"
연회장의 모든 귀족들의 시선이 쏠렸다. 연이은 충격적인 내용에 회장이 술렁거렸다.
데릴사위라니? 생각도 못한 조건이었다.
"후작 가문의 자제에게 공주를 내어줄 수 없어. 그러나 자네는 헤르트의 영웅이지. 그러니 데릴사위로 들어온다면 허락해 줄 수 있네."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 상황에서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역시나'
헤이든 대장군이 옅은 미소를 띄며 국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공주를 두고 외국인인 나를 영웅으로 만든 것.
수도의 백성들이 나를 알아 본 것.
귀족들 앞에서 내 명성을 올린 것.
"그럴 수는 없습니다."
후작의 대답이었다. 그는 분노한 얼굴을 숨기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카인은 우리 영지의 후계자입니다. 공주님과의 결혼은 과분할 정도로 영광스러운 일이나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는군. 카인 경 어떡하겠나?"
왕은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선택하라는 의미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공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도 당황스러웠는지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후작을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부모님은 지구에 있다.
에어로크 왕국의 영지에도 큰 정이 없었다. 아는 사람도 적었고, 산으로 둘러 쌓여 살기 좋은 곳도 아니었다.
공주의 데릴사위로 살아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래도 안돼.'
절대 안된다.
시아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만난 여인이었지만, 자신만 바라보는 여인이었다. 이미 충분히 그녀를 기다리게 하고 있었다.
공주와 그녀 중 한 명을 고르라고 한다면...
"말이 없군. 엘라. 네가 마음을 접어야겠구나."
"...아바마마. 이건 아닙니다."
"나를 비정하다 생각하지 말아라. 공주의 삶이 어떤 것인지는 네가 잘 알지 않느냐. 오히려 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론이었다. 고위 가문의 딸들은 다른 집안으로 정략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신부 수업을 배우고, 몸가짐은 단정히 했다.
아무런 의무도 없고 평생을 잘 먹고 잘 사는 대가로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결혼해야 했다.
공주라고 다를 것이 있는가.
그저 스케일만 클 뿐 똑같은 운명임은 다를 바 없었다.
왕의 말대로 오히려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게 허락한 것 만으로도 감사를 표해야 했다.
"..."
공주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저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도도했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기대를 무너뜨려야 했다.
"...죄송합니다. 그 조건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거절이었다.
공주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감겼다.
"공주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가 보군."
"정말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공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카인 경. 자네의 대답에 모순이 있다네."
"...저는 작년 이맘때 즈음 상행을 나왔었습니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국왕은 계속 들을 생각이었는지 말 없이 와인잔을 홀짝였다.
"에어로크 왕국은 매년 여름이면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는 백성들이 흔합니다. 성을 나가면 빼빼 마른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있을 정도 입니다."
"..."
"저는 아버지를 이어 그 영주민들을 배불리 먹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무입니다. 그것이 다스리는 자의 의무입니다."
연회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어느새 연주도 멈춰있었다.
모든 귀족들의 귀가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먹이기 위해 상행을 나왔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진 숙명입니다."
"..."
"제 의무를 버리고 살 수는 없습니다. 분명 슬픈 일이지만... 공주님도 저를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주변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공주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전히 감긴 두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말에 국왕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뜻 대로 되지 않아 그럴까.
"...그것이 자네의 대답이라면 어쩔 수 없지. 결혼은 불가 하니 이만 가보게."
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공주는 몸을 돌려 연회장을 나섰다. 나는 그녀를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잡을 명분도, 뻔뻔함도 없었다.
나 역시 후작과 스승님과 함께 연회장을 벗어났다.
귀족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더 이상 그 장소에 있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예견된 일 일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너와 공주님은 이루어지기 어려웠으니."
스승님의 위로에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를 가지고 논 것인가.
연극의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말 없이 와인잔을 들었다. 오늘 따라 와인의 색이 붉어 보인다.
"내일과 모레 연회도 나오지 않을 것이냐."
"...예."
"...알겠다. 오늘은 이만 쉬거라. 술은 적당히 마시고."
후작과 스승이 잠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더니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나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쩔 수 없다.'
사실 정말 정확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대륙을 정복하고 지구로 돌아가는 것.
공주와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다.
백성이 굶주리는 것도, 시아라가 기다리는 것도, 공주를 사랑하는 것도 이차적인 문제였다.
원래 살던 지구로 돌아가리라.
다시 한 번 부모님을 뵙고, 평범한 삶을 살리라.
하지만 그 전에
나중에... 정말 나중에 내가 헤르트를 정복하면 그 땐 공주와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취기로 인해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생각해보니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나머진 내일 생각할까.
눈을 감았다.
조금 어지러움이 가셨다.
"오늘도 연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냐."
"예."
"...알겠다. 내일이 복귀날이니 짐이나 싸놓거라."
"예."
그 말과 함께 후작이 방을 나섰다. 나는 그를 문 앞에서 배웅했다.
그 일이 있고 벌써 이틀이 지났다. 오늘이 연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그 동안의 피로를 풀듯 한 없이 잠만 잤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만날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니 분노는 가라앉았고, 미안함은 커졌다.
눈 앞에서 거절을 당한 공주가 상처 받지 않았을까.
이대로 떠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가기 전에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만나줄 리가 없었다.
"...뭐하고 있는 지만 볼까."
품 안에 있던 구슬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제는 익숙한 간지러운 느낌과 함께 눈 앞이 암전됐다.
...생각해보니 공주의 궁이 어딘지 몰랐다.
왕궁 내의 성이 몇 개인데 그것을 일일이 다 확인한단 말인가.
하늘에서 왕성을 바라보며 난감함에 포기를 하려는 그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어...? 그 때 그 시녀 아닌가?'
시선을 가까이 확대했다. 은색 쟁반을 들고 바삐 걸어가는 시녀가 보였다.
분명 공주와 함께 있던 익숙한 얼굴의 그 시녀였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가던 시녀는 이내 한 궁으로 들어갔다.
그 궁에서 또 몇 개의 층을 올라간 시녀는 어느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더니 무어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리만 들리면 참 좋을텐데... 이 구슬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시녀를 따라 문을 들어가니 하얀 벽지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큰 방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엄청난 크기의 침대가 있었고, 공주는 그 곳에 누워있었다.
'찾았다!'
이내 시녀가 가져온 쟁반을 식탁에 올리더니 뚜껑을 열었다.
묽은 스프였다.
시녀가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도 공주는 이불을 뒤집어 쓸 뿐 밥을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그녀가 저러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잠시 고민하다가 구슬에 손을 떼고 일어섰다.
가다가 걸리는 한이 있어도 공주의 얼굴을 봐야 할 듯 싶었다.
조금 뻔뻔할 지라도...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천천히 방문을 열어 복도를 확인했다. 주변에 시종들이 돌아다녔지만, 이 곳은 외부인의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라 딱히 의심 받을 일은 없었다.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갔다. 구슬을 통해 길은 알고 있었기에 헤맬 일은 없었다.
다만...
'가다 걸리면 일이 커지는데...'
잠시 건물의 뒤로 돌아가 구슬을 손에 쥐었다.
왕궁 내부를 돌아다니는 경비병이 한 눈에 보였다.
빈 틈이 보일 때마다 구슬을 품에 넣고 달렸다.
한 건물씩 천천히 이동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걸리는 순간 외교 문제로 퍼질 확률이 컸다.
공주가 있는 궁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경비가 많으면 돌아갔다.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고, 결국 중간으로 돌아와 다른 길을 찾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궁 근처까지 왔을 때, 입구에 서있는 경비병 둘이 보였다.
"...망했네."
교대를 하며 지키는 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여기까지 온 것이 허사가 되었다.
창문이라도 살펴볼까. 궁 뒷편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궁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쟁반을 들고 가던 그 시녀였다.
다가오는 그녀를 기다리다 팔목을 잡아챘다.
"카인님?"
"...마침 잘 됐네요. 저 좀 도와주세요."
"네?"
이 곳에 있다가 경비한테 들킬 수도 있었다.
일단 그녀를 데리고 궁 뒷편으로 데리고 갔다.
"무, 무슨 일이세요? 소, 소리 지를 거에요!"
"예?"
"...네?"
"..."
"아, 아니었나요... 죄송합니다."
무슨 오해를 했는지 그녀가 겁을 집어먹더니, 이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 그게 급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집사 복장이 필요합니다. 제게 맞는걸로요."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를 열심히 설득해 떠나보낸 후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나타났다.
품에는 왕실 내부의 시종들이 입는 옷이 들려있었다.
"집사들의 옷은 맞는 옷이 없어서... 시종 옷으로 가져왔어요."
"괜찮습니다."
"...정말 이 옷도 괜찮으신가요?"
"예. 욕을 먹는 일이 있더라도 얼굴이라도 보고 가고 싶습니다."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표정을 짓던 시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를 따라 오세요."
그녀의 적극적인 협조로 경비병들은 별 의심 없이 우리를 들여 보내줬다.
가까이에서 본 궁은 창문마다 격자가 있었다.
시녀가 없으면 큰일 날 뻔했다.
똑똑똑
"공주님. 들어갈게요."
"...오지 말라고 했잖아."
공주의 거절에도 시녀는 아랑곳 않고 문을 연다. 어릴 적부터 봤다더니 친구처럼 지내는 듯 싶었다.
아까 구슬에서 봤던 그 방이 보이고 큰 침대에 누워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린 채라 그녀는 내가 들어온 것을 보지 못했다.
천천히 걸어가 침대 옆에 섰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던 그 때 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또 왔어. 밥 안 먹는다니까."
"...그래도 드셔야죠. 배고프실 텐데."
"...뭐? 꺄악!"
이불이 확 들춰지며 시야를 잠시 가렸다.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늘 단정했던 밝은 금발의 머리카락이 부시시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있고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카인 경?"
"보고 싶어서 왔어요. 사과도 할 겸..."
"...왜 시종 옷을 입고 있어요?"
그게 더 중요한 건가? 대답 못할 질문은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여기까지 오려고 변장했죠."
"...카인 경은 귀족이에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보고 싶어서 입은 건데."
그 말에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왔다.
"...여기까진 왜 오셨어요."
뭐하고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그녀의 상처를 쓰다듬어 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녀와의 결혼을 거절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곳에 있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기분 나쁠 수 있었다.
결국... 나오는 말은 단순했다.
"...미안해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침대에 앉아 입을 열었다.
"제가 카인 경이었어도... 거절을 했을 거에요. 저도 헤르트를 살리기 위해 에어로크 왕국까지 갔으니까요."
"..."
"그러니 사과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인 경."
나는 시종 옷을 입고 서있었고, 그녀는 머리가 산발을 한 채 잠옷 바람으로 침대에 앉아있었다.
한 없이 이상한 그 상황에서도 그녀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고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그녀다웠다. 어느 때나 표정이 적고, 이성적인 그녀다웠다.
"..."
"할 말이 없으시다면 돌아가 주세요. 경비병에게 들키면 큰 일이 날 겁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하기 싫다는 듯 몸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결국 아무 소득도 없이... 아니 오히려 우울한 기분만 가진 채로 궁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가지 말걸 그랬나. 후회도 됐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항구는 쌀쌀했다. 찬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모든 짐을 실은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지로의 복귀였다.
봄에서 시작해 겨울의 초입이었으니 장장 반 년이 넘는 기간이었다.
'...'
배가 출항했음에도 항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혹시나 공주가 오진 않을까. 이성적인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쳐다봤다.
마침내, 항구가 점이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쓴 웃음을 지으며 갑판에서 내려왔다. 찬 바람에 손이 시리다.
오랜만에 커피가 생각났다.
따뜻한 라떼 한 잔 마시면 속이 좀 덥혀질 것 같은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객실로 들어왔다.
외투를 벗고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결국 공주가 오지 않았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을까. 마지막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았더니 큰 실망이 되어 돌아왔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 종일 누워있을 생각이었다.
아무 의욕도 들지 않는다.
똑똑.
"카인님. 차 좀 드시겠습니까."
메이드의 목소리다.
커피는 없지만 아쉬운 대로 차라도 마시면서 몸을 녹일까.
들어오라는 내 말에 문이 열리며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들렸다.
"...거기 놔둬."
고개만 돌려 침대에서 얼굴을 빼낸 채 메이드를 바라봤다.
"...어?"
"..."
그 곳엔 메이드 복장을 한 공주가 서있었다.
어제의 나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