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책사 시점-56화 (56/191)

〈 56화 〉 제외

* * *

"기만전?"

"예. 십만이었던 연합군이 수 많은 전투를 거치고 지금은 우리 군과 비슷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 원군이 올 수도 있다는 정보는 충분히 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저들이 그대로 우릴 공격하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것대로 좋습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제국으로 돌아가는 병사는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

싸워도 이득, 안 싸워도 이득이라는 건가.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병사들을 먹일 식량은 어떻게 할 겁니까?"

"내일부터 보급량을 반으로 줄이면 나흘 치 식량으로 여드레 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

참모장의 말이 맞았다.

알만 왕국의 기병을 떼어내지 못하면, 병사들을 계속해서 갉아먹힐 것이다.

지금도 근처에서 호시탐탐 기습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전령을 보내는 모습을 본다면?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전투를 준비한다면?

원군이 오는 줄 알고 추격을 멈추지 않을까.

...충분히 괜찮은 기만술이었다.

실제로 원군이 오면 좋고, 아니면 조금의 군량이라도 좋았다.

만약 제국 국경 수비대가 움직인다면, 병사를 소집할 시간도 필요 없었다.

"...배급량이 줄면 병사들의 사기가 더욱 떨어질 겁니다. 작전을 자세히 전파해 주십시오."

"예."

"혹시나 연합군의 기병이 전령을 쫓을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최대한 많이 전령을 보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원군은 최대한 기병으로만 구성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수의 원군이 와도 저 연합군의 기병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기병이 필요했다.

에슬러는 공성을 위해 기병을 편제에서 제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 중이었다.

소수의 기병들만 지원을 와도 더 이상 병력의 손실 없이 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만약 일만 이상의 원군이 온다면?

'...그 때가 네놈들 제삿날일 것이다.'

연합군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제국의 변방에는 아직도 말을 키우는 유목민족들이 다수 존재했다.

덕분에 다나크 제국의 기마병은 대륙 최고의 수준과 숫자를 자랑했다.

오천의 기병만 지원을 와도 연합군을 모조리 짓밟을 자신이 있었다.

그제야 지난 몇 일간 구겨졌던 에슬러의 자존심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연합군을 패퇴시킨다면, 제국으로 돌아가 처벌 받을 확률이 줄어든다.'

에슬러는 부디 연합군이 도망치지 않기를 바랬다.

그의 얼굴에 며칠 만에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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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멈추지 마! 지금 멈추면 죽은 목숨이다!"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선임 병사의 말에도 카일록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등허리를 관통하는 끔찍한 고통에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집중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모습을 보며 선임 병사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알고 쫓아오는 거야!"

출발은 열 명이 넘게 움직였다.

그것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이 넓은 평원에 남은 병사라곤 자신과 등에 화살을 꽃은 후임 둘 뿐이었다.

지휘관들의 기우라고 생각했다.

전령을 보내기 위해 열 명이나 출발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출발한 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깨닫고 있었다.

열 명도 부족했다. 아니, 스무 명이었어도 불가능 하지 않을까.

차라리 숲 길을 달렸다면 몸을 숨기기 좋았을 것이다.

이 놈의 헤르트 왕국은 모든 곳이 넓은 평야였다.

도저히 자신들을 추격하는 적들을 따돌릴 수가 없었다.

슈욱­!

"끄아악!"

어디선가 날라온 화살에 후임이 비명을 지르며 낙마했다.

떨어질 때 목이 부러졌는지 단말마를 끝으로 더 이상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고삐를 더 박찼다.

사신이 자신의 목을 조여 오고 있었다.

아레스 신이시여. 저를 돌봐주시옵소서.

본능적으로 신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만 남았다.

이 넓은 평야에 자신 혼자였다.

본능적으로 사지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말을 제어하기가 점점 어려웠다.

그 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자신의 미간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 무정하신 분이시여...'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이내 평야는 침묵에 물들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한 침묵이 사위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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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처리했습니다. 참모님의... 말씀대로 열 명이었습니다."

"수고했다."

"...예."

조금 두려운 눈빛을 한 정찰병이 보고를 마치고 돌아갔다.

연합군은 이미 제국군보다 북쪽에 도착해 있었다.

불과 네 시간 거리였다.

나는 궁병과 기병을 전진 배치시켜 전령을 기다렸다.

그 다음은 쉬웠다.

그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열 명이나 되는 전령이 뛰어나왔기에 확인을 할 수 있었다.

한 두명의 전령이 숙영지를 나섰다면, 평범한 정찰병인줄 알고 지나쳤을 것이다.

'...까딱하면 원군이 올 뻔했다.'

적들의 참모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판단력이 굉장히 뛰어난 자였다.

이 기회에 제거됐으면 좋겠는데...

내 손엔 전령의 품에 있던 열 장의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만약 전령을 놓쳤다면?

다 잡은 제국군을 눈 앞에서 놓칠 뻔했다.

'하지만 이미 제국군은 끝났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포위다.

적들의 경계가 가장 둔해지는 새벽에 연합군이 제국군을 먼 거리부터 에워싸기 위해 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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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무렵이었다.

두 기의 기마가 빠른 속도로 제국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내 숙영지 입구를 빠르게 지나쳐 지휘 막사로 들어갔다.

"서쪽에서 연합군이 접근 중입니다!"

"서쪽? 그 곳은 율렌 산맥이 있는 곳이다."

"정확합니다. 분명히 녹색 깃발이었습니다."

에슬러는 정찰병의 말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남쪽이 아니라 서쪽이라니.

오다가 길이 갈렸는가?

빠르게 가로질러 오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알겠..."

그 때, 두 명의 정찰병이 다시 막사 안을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남쪽에서 연합군이 접근 중입니다!"

"..."

자연히 막사 내의 시선이 먼저 온 정찰병들을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서 일까.

먼저 온 정찰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확실합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참모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나 저희를 발견하지 못할까 여러 갈래로 출발했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가능성이 없었다.

혹시나 포위될 가능성이 있으니 진영을 뒤로 물러야 했다.

에슬러가 명령을 내리기 위해 막 입을 열었을 때, 또 두 명의 정찰병이 막사에 난입하며 소리쳤다.

"동쪽에서 연합군이 접근 중입니다."

"..."

"..."

이번엔 참모장도 당황스러웠는지 말이 없었다.

불안한 기운이 막사 내를 감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곳에 있는지, 아니면 후퇴 중인지 저들이 어떻게 알고 나뉘어서 온단 말인가.'

이 곳에 주둔지를 펼친 것은 불과 어젯밤 결정됐다.

단 하룻밤 만에 연합군이 알아채고 네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면...'

에슬러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해보니, 공성 중에 연합군의 기병이 주둔지를 습격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둔지에 병사가 얼마나 있을 줄 알고 기습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내부에 정보를 흘린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에슬러의 생각을 확신 시키기라도 하듯, 두 명의 정찰병이 막사 안을 뛰어 들어왔다.

"북, 북쪽에서 연합군이 접근 중입니다!"

"..."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누구지?

이 자리의 누가 배신을 했는가.

아니다. 병사일 수도 있었다.

허나, 무슨 수로?

이 넓디 넓은 평야에서 적들에게 무슨 신호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숲 한가운데였다면, 나무에 표식을 남겼겠다만, 평원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적들에게 신호를 보낼...

그 때, 에슬러의 고개가 빠르게 참모장으로 향했다.

만약... 전달한 것이 아니라... 유도한 것이라면?

미리 행동을 약속했다면?...

어제 이곳에서 전투를 주장한 사람은 참모장이었다.

온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공성 때의 화공도, 지금의 작전을 적들이 알고 있는 것도 참모장이 한 짓이라는 건가?

"참모장..."

"예."

분노로 이글거리는 에슬러의 눈빛을 받아낸 참모장은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 상황을 노렸는가.아니면 우연인가...'

만약 정말로 연합군의 누군가가 이 상황을 의도한 것이라면, 제국은 정말 무서운 적을 만든 것이었다.

"참모장이 어제 회전을 주장하셨지요...! 식량을 위해 전령도 보내자고 하셨지요...? 다... 다 오늘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까?"

"..."

참모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떻게 연합군이 알아챈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눈 앞의 젊은 지휘관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모든 심증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장군님...! 참모장님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미리 경계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을 깨달은 주변의 지휘관들과 참모들이 벌떡 일어서서 참모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사십 년을 넘게 군에 종사해온 모든 지휘관들의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올곧고 청렴한 성품으로 평민의 신분임에도 수 많은 귀족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배신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에슬러의 화를 돋울 뿐이었다.

"그럼! 누가 이 작전을 발설했습니까! 단 몇 시간 만에 연합군이 우리의 위치를 알고 정확히 포위하고 있는데 이 상황을 누가 설명할 수 있습니까!"

"..."

"무엇보다! 이 작전을 발의한 사람은 참모장입니다! 작전이 실패했으면 책임을 져야지요!"

그 떄, 참모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발의했으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포위가 완성되기 전에 빨리 한 쪽을 돌파해야 합니다."

자신의 명백을 증명할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포위망이 완성되면 그 땐, 원군을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맞, 맞습니다! 우선 진군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지휘관들이 한 목소리로 소리를 높였다.

"...우선 포위를 벗어나고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에슬러도 일의 경중은 알았다.

지금은 한 발 물러설 때였다.

"참모장은 혐의가 벗겨지기 전까지 지금부터 모든 회의에서 제외됩니다. 이의 있는 분 있습니까."

이의가 있으면 같이 제외 시키겠다는 표정이었다.

막사 내의 인원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반대하시는 분은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북동쪽으로 이동합니다."

잠시 후

수만의 병사들이 허겁지겁 북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처 숙영지도 접지 못한 채였다.

"포위당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서둘러라!"

고작 하루를 쉬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목책을 세우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식량도, 막사도 버린 채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내일 먹을 식량보다, 오늘의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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