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책사 시점-40화 (40/191)

〈 40화 〉 병사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 * *

이 곳으로 출발하기 전 후작을 설득했던 그 방법이다.

"바다 위에 봉화를 띄울 것입니다."

"봉화?"

"예."

"자세히 설명하라."

"작은 배를 징집해 일정한 간격으로 띄울 것입니다. 연합군이 불 화살을 쏘아 올린 뒤 일제히 헤르트의 북부 수도인 아르트로 상륙을 시도할 것입니다."

"...작은 배는 우리 선단까지 신호를 보내겠군."

"맞습니다. 밤 바다에선 멀리 있어도 불 화살이 보일 겁니다. 동시에 상륙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연합군이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나흘 남았습니다."

"...자네 이름을 까먹었군.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는 짐을 이해하게."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제 이름은 지그하르트 카인 입니다."

"카인... 카인 경. 자네 이름은 이제 까먹을 일이 없겠군."

"과한 칭찬이십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지나친 겸손은 싫어하네."

"..."

"설명을 대충 들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연합군이 자네의 계획을 따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따를 이유는 충분하지."

"감사합니다."

"바로 실무진과 대화를 나누게. 헤이든 장군."

거기까지 이야기한 국왕은 갑주를 입고 있는 중년의 사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바로 카인 경을 데리고 가 회의를 시작하고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에벨 재상은 작은 배들을 징집하고 군수 물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알겠습니다."

장군의 반대편에 있던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말을 마친 국왕이 다시 카인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때 록셀 자작이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는 잘 지내고 있는가."

"...예."

억지로 끌고 간 것도 아니고 스스로 따라온 스승님이었지만, 아쉬운 표정을 한 국왕을 보니 괜히 찔리는 기분이다.

"자네를 따라 갔다지. 이제 생각이 났어. 그렇게 제자를 두라고 해도 노인네 고집을 누가 꺾나."

"..."

"그렇게 고집을 부리던 노인네가 자네를 따라간 이유를 조금은 알겠군. 난 처음에 노망난 줄 알았다네."

"..."

국왕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랄한 말이었다.말한 국왕보다 들은 자신이 더 놀라며 식은 땀이 흘렀지만, 주변 사람들은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공주도 평온하긴 마찬가지였다.가끔가다 보이는 당돌한 태도가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국왕을 빼닮았다.

"이만 가보게. 헤이든 대장군. 연합군의 참모에게 실례되지 않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국왕에게 다시 꾸벅 인사한 대장군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였다.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공주가 돌연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저도 카인 경과 함께 회의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안된다."

"카인 경을 이 곳까지 부른 것은 접니다. 저에게도 이번 작전을 함께 나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안된다."

"...왜죠?"

국왕의 단호한 거절에 결국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이야기했다.

"딱 회의만 참여한다면 허락하겠다. 하지만, 네 속마음은 아니겠지."

"..."

"내 딸아. 갑주를 입어본 적 있느냐."

"없습니다."

"시체를 본 적은 있느냐."

"..."

"하다못해 말은 탈 줄 아느냐."

그 말에 잠시 카인을 쳐다본 공주가 입을 열었다.

"...말은...탈 줄 압니다."

"탈 줄 안다고?"

"...예."

자신이 공주에게 시켰던 거짓말이었다.국왕이 그녀를 전쟁에 참여 시키지 않을 거라는 계산에 시킨 일이었다.역시나 왕은 공주를 전쟁에 참여 시킬 생각이 없었다.

"상륙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운 나쁘게 화살에 맞아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가슴을 파고든 화살을 바라보며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마음가짐도 되어있느냐?"

"...되어 있습니다."

"..."

이번엔 국왕이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떼를 부리고 있었다.공주를 설득하기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물론 카인 자신도 공주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도움을 바라고 에어로크 왕국까지 고작 시녀 둘과 함께 왔던 공주가 뒷짐지고 있을 성격은 아니었다.

그녀를 설득할 생각은 진작에 포기한 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것을 종용했다.설마 하던 그녀는 실제로 다가온 현실에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에벨 재상이 입을 열었다.느긋하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대전에 울렸다.

"전하. 소신이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허한다."

"이번 상륙작전까진 동행을 허락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유가 뭔가."

"연합군의 참모의 계획대로라면 상륙 지점인 엘룬 항구의 저항이 거세지 않을 듯 합니다."

"경험을 시켜주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 후에 다시 공주님께 의사를 물어도 될 듯 합니다."

"...좋다."

거기까지 말한 국왕이 다시 공주를 쳐다봤다.공주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국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륙작전까지만이다. 그 후에 복귀하는 선단으로 돌아오라."

"알겠습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공주는 순순히 대답했다.국왕도 그 사실을 아는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옆의 병사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시체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와중에도 고집을 꺾지 않을지 궁금하구나."

"..."

"말이 길어졌다. 헤이든 대장군. 지금 바로 공주까지 함께 대전을 나가라."

"알겠습니다."

잠시 내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던 사내가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우리에게 다가왔다.

"바로 나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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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트의 병사들이 모여있는 곳은 항구의 바로 옆 평원이었다.

나와 공주, 그리고 대장군은 마차를 타고 이 곳으로 달려왔다.

십 만에 달하는 군대가 넓은 평원에 펼쳐져 있었다.수 많은 천막들의 지붕에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군이 공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자마자 바로 회의를 시작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전하께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단지 위험하기 때문에 말리신 거겠지요."

"..."

"공주님께서 직접 왔다는 소식은 병사들의 사기를 더 높이 끌어올려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감사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에 장군이 흐뭇하게 웃었다.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긴 주름이 그 웃음을 따라 진하게 패였다.

마침내 마차가 막사 앞을 도착했다.안에는 이미 수 많은 지휘관들이 대열을 이루고 서있었다.그들은 대장군을 따라 들어오는 공주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헤이든 대장군이 가장 상석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공주님께서 이번 상륙에 직접 참여하시기로 했다. 우리의 손에 공주님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막사의 긴장감이 한층 올라갔다.어찌 보면 무례한 말일 수도 있었다.그러나 공주는 개의치 않는 듯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저는 함께할 것입니다. 헤르트 왕국을 지키기 위해 모여준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려요."

간단한 한 마디였지만, 그 말 한마디에 막사 안이 후끈 달아올랐다.지휘관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함이었다면, 훌륭한 한 마디였다.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은 대장군이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회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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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하면, 바로 밤이었다.해가 지고 올라오는 세 개의 달과, 온 밤하늘을 수놓는 별 바다는 한편의 장관이었다.

수 많은 별똥별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더 많은 별들이 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작년 이맘때, 영지의 대전을 나와 밤 하늘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자신에게 생긴 취미였다.

"밤 하늘을 보시나요."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막사에서 나와 밤하늘을 보던 나에게 공주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평소 드레스를 입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휘관들이 입는 팔과 다리를 덮는 긴 옷에 가벼운 흉갑를 입고 있었다.물론 자신도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 흉갑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생각보다 불편했다.전쟁이 시작되고 정식 갑옷을 입으면 지금보다 거동이 더 힘들 터였다.

그녀도 생전 처음 입어보는 무거운 흉갑에 지쳤는지, 피곤한 안색이었다.

"피곤하진 않으십니까."

"제가 얼마나 편한 옷을 입었는지는 알 것 같네요."

"..."

남들 앞에선 보여주지 않던 푸념이었다. 그녀는 자신 앞에서 격식을 크게 따지지 않았다.

사실, 공주가 평소에 입던 드레스도 편한 옷은 아니다.혼자 입고 벗기도 어려웠고, 가슴을 압박하는 고통을 하루 종일 시달려야 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바로 가죠."

그 말과 함께 공주는 시녀 둘과 함께 내 뒤를 따라왔다.도착한 곳은 막사에서 조금 떨어진 평원이었다.

곳곳에 불침번을 서는 병사들이 서있었다.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지만, 그러면 오히려 이상한 소문이 돌 가능성이 컸다.공주에게 시녀와 함께 오라고 했던 이유였다.

미리 준비했던 말을 나무에서 풀러 그녀의 앞으로 돌아갔다.

"전투마는 거세를 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타던 말보다 난폭하고, 덩치가 큽니다. 잘못하다 낙마를 하면 크게 다치니 조심해야 합니다."

과연 전투마의 등은 그녀의 키보다 높았다.그 크기에 그녀의 안색이 살짝 파리해졌다.

"처음엔 제가 잡아드리겠습니다."

"...예."

안전을 위해 시녀들은 뒤로 물렀다.그녀 혼자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꺄악...!"

여린 허리가 두 손에 들어오며 그녀를 말 위로 올렸다.깜짝 놀란 그녀가 잠시 주춤하더니, 안장에 올라가 자세를 잡았다.

"비명은 지금 많이 지르시고, 나중에 남들 앞에서 의연한 척 하시면 됩니다."

"..."

비명이 부끄러웠을까. 아니면 허리를 잡힌 것이 부끄러웠을까.그녀의 얼굴이 달빛 아래에서도 사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반나절을 나무에 묶여있던 녀석이었다.분명히 답답함에 기분이 상해있을 터였다.

베낭에서 당근을 꺼내 말에게 건네주자 좋다고 먹기 시작했다.잠시 당근을 먹는 말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공주님을 올려다 본 것은 처음입니다."

"...앞으로는 자주 보게 될 거에요."

"농담을 할 만큼 여유로운 것 같으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자, 잠시만!"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

그녀의 발을 들어 등자에 걸어주었다.작디 작은 발이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천으로 된 신발 안으로 발가락이 잡힌다.

"...말로 설명해 주셔도 돼요."

"제가 확인하는 것이 편합니다. 혹시라도 낙마하면, 전 그날 부로 죽은 목숨입니다."

사실, 그녀가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유가 컸다.얼굴이 더 붉어진 그녀를 못 본 체하고 고삐를 약하게 잡아당겼다.

당근을 먹던 말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우선은 중심을 잡는 것에 집중을 하십시오. 가장 우선 될 순서입니다."

"...네."

처음이라 무척 긴장한 모습이었다.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었기에 별 말 없이 천천히 말을 끌었다.

그렇게 말을 탄 여인과, 말을 끄는 사내,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두 시녀가 평원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불침번을 서는 병사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물론 가장 흥미로운 눈을 빛내는 것은 두 사람의 모든 대화를 들은 두 시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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