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책사 시점-34화 (34/191)

〈 34화 〉 방법

* * *

방법이 있었다!

'구슬!'

신이 준 녹색 구슬이 생각났다.

이거면 가능했다.

자신이 하늘에서 쳐다보다 이 곳의 부대가 상륙을 시도할 때 같이 움직이면 됐다.

완벽한 양동작전이 가능했다.

'그러려면...'

한 순간 표정이 급변하는 것을 본 스승님과 공주가 자신을 쳐다봤다.

눈 깊숙한 곳에 희망의 불씨가 보였다.

"방법이 생각 났습니다."

"정말이냐?"

"그게... 정말이에요? 카인 경?"

구슬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시험 삼아 시아라에게 준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이들에게 이 구슬은 그냥 색이 예쁜 구슬일 뿐이었다.

결국, 막무가내로 설득할 방법밖에 없었다.

스승님과 공주, 지휘관인 후작까지.

그게 가능할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우선 헤르트 왕국으로 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승님은 저를 믿으십니까?"

"...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그럼 저를 믿어주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느냐."

"제가 공주와 먼저 헤르트 왕국으로 가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이 곳에 계셔야 합니다."

"...나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는 것이냐? 그 먼 거리를?"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 드릴 것이 있습니다. 상륙 직전에 하늘을 향해 불 화살을 일제히 날려 주십시오."

카인의 말에 노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불 화살이 보일 만큼 서로의 상륙 지점이 가깝지 않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구슬로 위치를 찾기 위함이었다.

어두운 밤 바다에서 기습을 위해 불을 끈 배들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승님!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가만히 말을 듣던 록센 자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자는 이유도 방법도 설명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사람 한 명을 믿고 팔만의 병사를 밀어 넣으란 말이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

"아니면, 이 자리에 있는 공주님과 나를 못 믿는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방법을 왜 설명 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머리를 굴렸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나 더 있었다.

구슬 만큼은 못하지만,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오늘 따라 머리가 잘 돌아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군과 헤르트의 부대 사이에 작은 조각 배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 할 것입니다."

카인의 말에 노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바다 위에 봉화?"

"맞습니다. 봉화처럼 올라온 신호를 받아 헤르트에서도 상륙을 시작하는 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공주도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다행이다. 잘 통했다.

"그런데 왜 방법을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냐?"

"...아직 허점이 많습니다. 지금 이 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기보단,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말에 록센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맞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후작님께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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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넓은 알만 왕국의 곡창지대를 건장한 말 한 필이 달리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를 가진 청년이 말을 몰고 있었고, 그 뒤에 밝은 금발의 여인이 타고 있었다.

후작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출발한 카인과 공주였다.

공주는 말을 탈줄 몰랐지만, 마차를 타고 가기엔 급박한 사안이었다.

"공주님.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십시오."

"...네."

하반신을 마비시킬 것 같은 고통과 몸이 흔들리는 공포에 공주가 힘들어 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그렇게 빨리 달리는 중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무게도 무게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방금도 떨어질 뻔 했어...'

너무 무서웠다.

한 달이 넘게 말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말의 걸음에 맞춰 몸을 맡겨야 허리가 안 아픈 것은 체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겁에 질린 공주가 자신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몸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몇 번이나 떨어질 뻔한 카인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결국 호쾌하게 달리기 시작한 지 십 분도 안돼서 말이 속도를 줄였다.

엄청난 쪽팔림이 몰려왔다.

'시발...'

기세 좋게 출발한 것은 좋았지만... 자신의 능력이 그 기세에 닿지 못했다.

"..."

"..."

민망함을 이기지 못한 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차를 탈 걸 그랬...나요?"

"...아니에요. 그럼 지금보다 늦었을 거에요."

"..."

"..."

숨 막힐 정도로 어색한 분위기였다.

출발할 때의 그 비장한 분위기는 어디 갔는가.

민망함과 어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것에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달그닥 달그닥...

넓디넓은 곡창지대를 건장한 말 한 필이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분위기가 느슨해지자 모든 것이 어색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마차 없이 나올 이유는 있었지만, 호위도 없이 나올 필요는 없었다.

"..."

공주는 무서웠는지, 자신의 허리를 꽉 잡은 채 놓을 생각이 없었다.

자연히 등허리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이렇게 여유롭게 말을 타고 있으니 한 쌍의 연인이 피크닉을 나온 느낌이다.

결국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 기묘한 분위가와 상황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웃으시죠?"

등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공주가 갑작스러운 카인의 웃음에 의문을 표했다.

그녀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져 있었지만, 카인은 볼 수가 없었다.

"...공주님께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

"사실, 저도 말을 잘 몰지 못합니다. 거기다 뒤에 누군가를 태운 적도 처음입니다."

"..."

"막상 기세 좋게 출발했는데, 영 시원치 않아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푸흣..."

결국 그녀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도 이 민망한 상황에 웃음을 참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호위를 데려갈까요?"

"푸흐흣!"

공주가 웃음을 참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껴안던 힘이 강해졌다.

"그렇게 계속 웃으시면 제가 더 민망해집니다..."

카인의 말에도 공주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번 웃음이 터지자 참을 수가 없었다.

'...망할'

정말 한 없이 쪽팔렸다.

등을 통해 공주의 몸이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히 부드러운 감촉이 위 아래로 흔들리며 등을 쓰다듬었다.

그 와중에도 분신이 반응을 했다.

'...시발'

시도 때도 없는 새끼다.

주인은 쪽팔려 죽겠는데, 눈치도 없는 놈이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공주가 드디어 웃음이 멎었는지 입을 열었다.

"그냥 가요."

"괜찮겠습니까?"

"멋지게 출발해놓고 돌아가는 그림도 웃기잖...푸훗."

"..."

멈췄나 싶었던 웃음이 또 도졌다.

새소리같이 맑은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비참한 마음으로 천천히 말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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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포르투 항구는 전쟁통입니다. 헤르트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사방에 퍼져있고, 에르딘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발이 묶여있습니다."

"..."

"..."

"헤르트 북부가 무너지면서 바닷길이 막혔습니다. 지금 그 해협을 지나는 모든 배가 통제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고급 여관 주인장의 말이었다.

"온 사방에서 몰린 사람 때문에 치안도 무너졌습니다. 뒷골목은 안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

8만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알만 왕국의 북부에서 이 곳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아 저녁 시간 즈음 항구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포르투 항구에 들어온 카인과 공주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온 사방에 짐을 맨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있었고,

...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저기 가볼까요?"

"...네."

카인이 가르킨 곳은 포르투에서 가장 큰 고급 여관이었다.

급하게 오느라 자금이 여유롭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미룬 곳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가장 비싼 방 몇 개를 제외하곤 전부 예약이 찼습니다."

"그 방은 얼마입니까?"

"일박에 금화 2개입니다."

'미친.'

다른 고급 여관의 세 배였다.

그만한 거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방은 두 개가 필요했다.

그 때, 공주가 잠시 고민하더니,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카인 경.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인가요?"

"...은화 70개입니다."

공주가 천천히 지갑 안에서 돈을 꺼냈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50원 짜리 은화 세 개였다.

"..."

"..."

"저는 다른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돈을 드릴 테니 엘라 양은 들어가십시오."

길거리마다 수상한 눈초리를 한 행인들이 가득했다.

공주의 신분이 밝혀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호위가 없던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에 잠시 동안 이름을 부르기로 했었다.

자신은 건장한 청년이니 허름한 여관에서 잠을 자도 별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주는 위험했다.

여기서 재우고 자신은 다른 곳을 찾는 게 맞았다.

"...그냥 같이 들어가요. 비싼 곳이니 방도 넓을 거에요."

잠시 고민하던 공주가 얼굴을 붉힌 채 입을 열었다.

험악한 도시의 분위기에 겁이 질린 공주는 이 곳도 불안했다.

혼자 자는 것보단, 차라리 카인과 같이 있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지켜 본 그라면 믿을 수 있었다.

"..."

카인은 아니었다.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이유가 있나요?"

오히려 공주가 반문했다.

차라리 뻔뻔한 표정이라도 짓지. 공주는 여전히 얼굴이 붉었다.

목소리만 당당하다.

"..."

할 말이 없었다.

여기서 있다고 하면, 점수나 깎아 먹을 소리밖에 안된다.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공주 말대로 그 방법이 가장 안전했다.

눈치를 볼 사람도 없었다.

그냥 둘만 조용히 하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열쇠 하나를 든 채로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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