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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책사 시점-20화 (20/191)

〈 20화 〉 조금 더 안전하게

* * *

시간은 흘러 경매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시아라와 마틴 경에게 게임을 가르쳐 준 나는 같이 게임을 하거나, 뒷마당에서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시간을 보냈다.

경매 날 아침, 두 가신과 시아라와 함께 미하일이 경매를 위해 빌린 건물로 향했다.

"..."

"미하엘 경이 제대로 마음먹었나 봅니다."

"일 처리가 확실하긴 하네요."

무장을 한 사람들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다.

못해도 40명은 되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마틴 경이 입을 열었다.

"따로 병사를 데려오지 않았으니 이 곳에서 용병을 고용한 듯 싶습니다."

"사실 다 의미 없는 짓인데, 살짝 미안해 지는군요."

"...그렇긴 합니다."

내 말에 마틴 경이 긴장이 됐는지 표정이 굳어있었다.

이미 마틴 경이 할 일은 끝났다.

나는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돌렸다.

"사람들은 모두 이동했나요?"

"...예.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정 긴장되면 먼저 가있으라고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저와 다니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살면서 오늘 같은 일이 있었던 적이 있나요?"

"...보통의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경험해 보지 못할 일일 겁니다.

그 말에 내가 조금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남들 보다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됐군요."

"...평생을 서류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손 끝이 덜덜 떨리는 것을 간신히 막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은 다 끝났습니다. 이제 경매를 마치면 포르투에서의 일은 모두 끝이 납니다."

"...전 도련님의 담력을 평생 따라가질 못할 듯 싶습니다."

"저도 심장은 하난데요."

나는 시아라를 향해 고래를 돌려 이야기했다.

"시아라. 경매하는 거 본 적 있어?"

"한 번도 없습니다."

"이번에 구경해둬. 좋은 경험일 거야."

"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존댓말로 대답했다.

예의 바른 대답과 반대로 그녀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오늘 중요한 일을 하나 해야 했다.

건물에 들어선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뒤에 있는 대기실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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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틴 경과 시아라와 쉬고 있을 때, 미하일이 나를 찾아왔다.

이런 중책을 맡은 건 처음인지 그의 표정도 긴장으로 번들거렸다.

'조금 미안하네.'

속마음을 숨긴 채 미하일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준비를 잘 할 줄은 몰랐어. 마음 단단히 먹었나 봐?"

그도 마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내 칭찬에 자신감이 상승한 듯 보였다.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했지. 네 말대로 이번에 제대로 해야 다음에 또 놀러 나올 수 있잖아."

"고마워. 덕분에 경매가 잘 끝날 것 같아."

"고마우면 나중에 밥이나 사라고."

그거 알려줬다고 그 새 써먹는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푸흐흐. 좋지. 내가 맛난 거 사줄게."

그 때, 마틴 경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나를 불렀다.

"도련님. 이제 시작할 시간입니다."

드디어 시작이다.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렸다.

영지에서 시작된 계획이 피날레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틴 경과 시아라 앞에선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지금 이 곳에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손에 난 식은땀에 손바닥과 등허리가 축축했다.

일부러 밝은 표정으로 시아라와 마틴 경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하일과 같이 복도를 걸어 건물의 단상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경매가 이 상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손 끝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 단상에 올라서자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가면은 쓴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마치 가면 무도회에 온 느낌이었다.

이 경매에 참여한다는 뜻은 철광석을 살 재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알만 왕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상인들은 다 모인 듯 했다.

'자기 영지에선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겠지.'

상단에서는 하늘의 새도 떨어뜨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지역에서 존경과 공포로 군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경매를 낙찰 받을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도.

최대한까지 일을 키웠다.

시간을 최대한 늦췄다.

알만 왕국의 모든 상인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도록 혼란을 일으켰다.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확실하게

조금 더 신중하게

이미 철광석은 헤르트행 선박에 실려 있었다.

에어로크 왕국에서 출발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어제 승선을 완료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끝까지 신중을 기해야 했다.

처음부터 포르투 항구의 곳곳에 퍼져 숙소를 잡게 했다.

400명의 사람들이 사라져도 모를 수 있게.

첫 날부터 철광석은 선박에 실려있었다.

25대의 수레가 움직이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계획 중 한 가지가 변한 것이 있다면, 철광석이 향하는 곳이 에르딘에서 헤르트로 변한 것 뿐이었다.

하나씩 준비한 안배를 모아 그림을 그렸다.

두 개, 세 개, 네 개... 신중하게 그린 그림이 완성될 때 그 짜릿함을 못 끊었다.

내가 현실에서 전략 게임을 못 끊었던 이유였다.

천천히 관중을 둘러보았다.

가면으로도 가릴 수 없는 자신감이 보였다.

가면 속의 탐욕이 보였다.

여기서 낙찰 받은 철광석으로 더 큰 상단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모두 연극의 희생양이었다.

단 한 개의 철광석도 얻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평범했던 회사원이 여기에 서서 지역의 패자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희열이 피를 타고 흘렀다.

쾌감에 손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모두 그렸다.

...드디어 피날레의 시작이었다.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두 가지 의미로.

"여기에 모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전 에어로크 왕국에서 이 곳 포르투 항구까지 온 지그하르트 후작 가문의 후계자, 지그하르트 카인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천천히 기다리다 박수 소리가 멎어갈 때 즈음 말을 이었다.

"먼저 이렇게 익명 경매를 왜 하는지에 대해선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가면을 쓴 수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경매가 끝나고 나서도 어떤 분이 입찰했는지는 비밀에 부칠 예정입니다. 철광석은 이미 포르투 왕국을 떠나 사방으로 이동 중입니다. 여기에서 낙찰된 분이 나오게 되면 그 곳으로 방향을 꺾을 예정입니다."

"이 경매의 낙찰은 경매 공증인의 감독 하에 검토 후 가장 높은 낙찰가를 써내신 분에게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럼, 알만 왕국의 공인을 받은 공증인을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옆에 서서 가만히 듣고 있던 미하일이 그제야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알만 왕국의 명령으로 이 경매의 공증을 맡은 엑센 후작가의 장남, 엑센 미하일 입니다."

역시 자국민의 귀족이라 그럴까.

미하일을 바라보는 가면들의 시선이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저는 엑센 후작 가문과 알만 왕국의 명예를 걸로 공정하고 깨끗한 감독을 맹세합니다. 이번 경매의 개표는 제가 직접 확인할 예정입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부르길 잘했네.'

허울뿐인 공증인이었지만,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니 협조를 구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나라의 귀족이 공증을 한다는 것이 꽤 신뢰가 가는 듯 했다.

이제, 낙찰가를 받을 차례였다.

"지금 이 노란색의 종이와 도장을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종이는 무효 처리가 되니 꼭 지금 드리는 노란 종이에 낙찰가를 적고 도장을 찍어 내주시기 바랍니다. 5분 후 걷도록 하겠습니다."

노란 종이를 받은 사람들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미 자신들이 부담할 수 있는 최대치를 계산하고 왔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이를 받자마자 낙찰가를 적어냈다.

5분 후 종이를 다 걷은 미하일은 종이가 담긴 상자를 든 채, 다시 단상으로 올라와 입을 열었다.

"낙찰가의 신뢰도를 위해 상위 5명의 낙찰가를 같이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미하일과 나는 군중을 향해 인사를 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방에는 마틴 경과 시아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시아라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자, 시아라. 이제 네 차례야.'

그녀의 표정이 평소답지 않게 긴장하고 있었다.

살짝 웃어준 나는 곧바로 방 안의 물잔을 향해 걸어가 물을 마셨다.

"하아. 좀 살겠네. 너도 마실래?"

"나도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다. 한 잔만 따라줘."

미하일이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도 긴장됐었는지, 이마가 땀으로 젖어있었다.

그 때, 시아라가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뭐 어려운 일이라고. 차나 좀 타줄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시아라가 찻잔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엔 낙찰가를 적은 상자가 놓여있었다.

미하일은 그녀를 등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아라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박스에 넣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낙찰가를 적은 노란 종이와 똑같은 종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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