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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책사 시점-18화 (18/191)

〈 18화 〉 어때, 미하일

* * *

예상대로 몇 몇의 상인들이 더 접근해왔다.

결국 600명에 달하는 대 인원이 포르투 항구로 이동했다.

낮은 언덕을 올라오자 마침내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와아. 바다는 처음 봐"

"또 멀미할라."

"이따 창문 닫을게."

시아라가 눈을 반짝거리며 창문 밖을 쳐다봤다.

평야 지대에 들어선 후 며칠 동안 꼼짝도 못하고 쓰러져있던 그녀였다.

지평선 멀미도 있다는 것을 살면서 처음 알았다.

정말 끝도 없는 평야 지대였다.

벌써 5일째 밀밭을 통과하고 있었다.

에어로크 왕국은 산 밖에 없더니, 여긴 작은 뒷산도 하나 안보였다.

'뭐가 이렇게 극단적이야.'

그 때 마틴 경이 마차 옆으로 다가왔다.

"정면에 항구가 보이십니까? 저 곳이 포르투 항구입니다."

과연, 저 멀리 도시가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정말 지긋지긋 했습니다."

"아마 모레는 되어야 도착할 겁니다. 생각보다 멀리 있습니다."

"...예?"

"...히익."

내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시아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또 멀미가 하기는 싫었나 보다.

"창, 창문 닫을래..."

"할 얘기가 있는데 잠시 안쪽으로 들어가 있을래?"

"응..."

시아라를 안으로 보낸 나는 다시 마틴 경을 쳐다봤다.

"마틴 경, 저번에 알만 왕국으로 보낸 협조문은 대답이 돌아왔습니까?"

"예. 담당 관리가 포르투 항구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빠르군요."

"그런데... 인선이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요?"

"경매의 공증을 위해 보낸 사람이 알만 왕국 엑센후작가의 장남이라고 합니다."

'무슨 생각이지? 내가 후계자니 급을 맞추겠다는 건가?'

사실 알만 왕국 상단들을 설득하기 위해 보이기용으로 보냈던 협조문이었다.

포르투 항구까지 도착하는 것이 1차 목표였기에 알만 왕국에서 무시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일단...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만나보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예."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듣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이야기였다.

"...항구에 도착하면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쇼."

"항구에 도착하면 저는 오랜 여행으로 피로가 쌓여 아플 예정입니다."

"바로 경매가 열릴 수 없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그 동안 알만 상인들 모르게 에르딘 왕국의 상단과 반드시 접촉을 해주셔야 합니다."

"북 에르딘입니까?"

"아뇨. 양쪽 다 접선하세요."

내 말에 마틴 경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양 쪽 모두에게 팔 생각이십니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잘못하면 양쪽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협조를 거부하고 알만 왕국의 상인들에게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저만 믿어 주세요."

"...도시에 들어가 접촉하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걱정에 잠긴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 본 마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의 후계자가 타국의 도시까지 무역을 나온 것 자체가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는 나를 굳게 믿고 있었다.

'외줄타기 시작이다.'

사전 작업은 다 끝났다. 이제 항구에 도착해 이리저리 펼쳐 놓은 끈을 묶은 일만 남았다.

'삐끗하면 다 뒤집어진다.'

첫 번째로 에르딘 왕국에게 무사히 철광석과 거래를 해야 했고, 두 번째로 맞바꾼 식량과 금을 가지고 안전하게 돌아가야 했다.

계획에 구멍이 없는 지 검토하고 또 검토해야 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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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와병이요?"

"생각보다 위중한 상태이십니다. 오전에 치료를 받으셨으니 곧 일어나실 겁니다."

"허어..."

"쾌차하신 후에 저희가 따로 연락을 드릴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구먼... 알겠소. 꼭 연락을 보내주시오."

오늘만 벌써 6번째 일이었다.

벌써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가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왔다 헛걸음을 했다.

물량을 따로 팔아 달라고 온 사람, 자신에게 팔라며 으름장을 놓으러 온 사람, 잘 봐달라고 두 손 가득 선물을 가지고 온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여관에 들어와 시아라와 푹 쉬고 있었다.

지겹도록 마차에서 지낸 터라 푹신한 침대가 그리웠다.

그 때, 문 앞에서 마틴 경이 나를 불렀다.

"도련님, 이번 경매의 공증을 맡은 엑센후작가의 장남 미하일 도련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보내주세요."

"예."

할 말을 마친 마틴 경의 발걸음이 다시 멀어졌다.

"카, 카인 이제... 일어나야지."

"푹신해서 좋았는데... 다음에 또 해줘."

"..."

아쉬운 마음으로 그녀의 허벅지에서 머리를 떼고 옷을 가볍게 정리했다.

사실 그를 통해 크게 기대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대외적인 시선은 중요했다.

외국의 후계자에게 꼴 사나운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잠시 창가에 앉아 도시를 쳐다보고 있자,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금발의 머리와 푸른 눈, 키는 나와 비슷할 듯했다.

전형적인 서양 미남상이었다.

'이 자가 엑센후작가의 장남인가.'

뒤따라 들어온 남자는 검을 차고 있는 기사였다.

중년의 나이로 보였는데, 꽉 다문 입술이 고집이 강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 상행을 맡은 지그하르트가문의 장남, 지그하르트 카인입니다."

내 인사에 두 사람 모두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존댓말 쓰는 게 아닌가?'

금발의 남자가 금방 얼굴을 고치곤 마주 인사했다.

"제 또래일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반갑습니다. 경매 공증 역할을 맡은 엑센가문의 미하일입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다른 귀족들과 교류가 적어 특별한 줄 몰랐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만 왕국의 후작 가문 후계자 중에 제가 가장 어립니다. 그 다음으로 젊은 사람보다 10살 가까이 어리죠. 그래서 놀랐습니다."

"저도 또래 귀족 자제 분은 만난 적 없는데, 처음 본 분이 또래라 기분이 좋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시작은 화기애애했다.

시아라에게 부탁해 차를 받은 우리는 천천히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알만 왕국에 오신 기분이 어떻습니까?"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 합니다. 특히 이 곳을 오면서 본 밀밭은 장관이었습니다."

"라시아 평야를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은 관도가 깔려서 괜찮지만, 옛날엔 그 곳에서 길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미친.'

모래로 만들어진 사막도 아니고, 밀밭으로 이루어진 평야에서 길을 잃는다니.

압도적인 스케일에 기가 질렸다.

그는 본론을 꺼낼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도 급할 건 없었기에 거기에 맞춰주었다.

내가 먼저 본론을 꺼내면, 내가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사실 저는 포르투 항구에 온 것이 처음입니다. 이번 경매 대리일을 핑계 삼아 여행을 다니고 싶어 아버지께 억지를 부려 나왔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사실, 후작영지를 벗어난 것도 처음입니다. 공통점이 있군요."

"그렇습니까? 사실 조금 부끄러웠는데 같은 처지였다니 다행입니다."

노련한 후작이나 국경지대의 백작같은 사람만 만나다 내 또래의 그를 보자 긴장감이 풀렸다.

정치판에서 구르던 사람들을 상대하다 그를 만나니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사람을 상대하면서 계속해서 의도를 파악하고, 속 뜻을 알아내며 표정을 숨기는 것은 깊은 피로감을 줬었다.

사실, 계속해서 정치학을 가르쳐주던 마틴 경이 아니었다면, 또래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말을 놓자고 했을 것이다.

"그... 카인 경."

"카인이라고 하시죠. 또래에게 경어는 사실 어색합니다."

그 말에 그가 밝은 웃음을 지었다.

"음...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옆에 있는 기사의 표정은 안 좋았다.

지나치게 친해지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이 아님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 더 친해지고 싶잖아.'

"또래를 만난 것은 저도 처음입니다. 그냥 확실하게 말도 놓을까요? ......어때. 미하일."

"!!!"

이 곳에 있는 미하일과 기사, 옆자리의 마틴 경과 문 앞에 서있는 시아라까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야. 내가 뭐 실수한...건가?"

너무 급발진이었나? 아차 싶었다.

"크흠..."

미하일 옆의 기사가 불편한 기침을 내뱉었다.

적당히 선을 지키란 소리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 와서 다시 존댓말로 바꾸면 눈치 보며 속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차라리 계속해서 직진하는 것이 나았다.

아직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미하일을 보며 말했다.

"싫어? 난 영지 밖의 첫 친구가 생긴 줄 알았는데."

"친구?"

"그치. 같은 또래잖아. 같은 후작 위를 가지고 있고, 이 대륙을 다 뒤져봐도 너랑 비슷한 또래는 보기 힘들 걸?"

"너, 너랑?"

'아차.'

이미 과속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급발진까지 해버렸다.

'더 뻔뻔하게.'

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거리 때문이라도 우리가 자주 못 만난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친구 사이에 그게 중요할까?"

"..."

"너 친구 있어?"

"친, 친구야 있지."

"같은 후작 가문의 친구가 있다고? 설마 백작 가문이나 그 밑의 작위의 또래를 말하는 거라면 그만 둬. 걔네들이 후작의 후계자로써 가지는 네 부담감을 이해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맞지."

"너도 반말하고 있잖아. 빨리 손이나 잡아. 어깨 아파."

끝 없는 내 압박에 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잡아왔다.

나는 기쁜 얼굴로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앞으로 친해지면 되지. 너도 알다시피 우린 공통점이 많아."

"...어쩌다 보니 나도 반말을 하고 있었군... 그래. 외국인 친구도 괜찮겠지."

그제야 그가 웃으며 맞잡은 손을 같이 흔들었다.

우리 둘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여전히 턱이 빠질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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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어?'

"크흠"

옆자리의 기사가 계속해서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무시하고 미하일만 쳐다보고 있었다.

미하일은 그제야 기사의 표정을 확인했는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임마.'

"뭐... 경매를 어디서 열고, 언제 열 건지, 방식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보러 왔어."

"장소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잡아줘. 이 곳 지리를 잘 몰라서 아무래도 네가 나보다 잘 알겠지."

"내가?"

"응. 와서 그냥 구경만 하다 가는 것보단 네가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게 다음에 또 여행 다니기 쉬워지지 않겠어?"

내 말에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천잰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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