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책사 시점-11화 (11/191)

〈 11화 〉 우리 몇 살이지?

* * *

덥썩!

갑자기 내 얼굴을 붙잡는 두 손에 가슴에서 눈을 돌려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가 더 이상은 안된다는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나 여기서 안 잘래."

"다시 눈 감아"

"...싫어... 내 방으로 갈 거야."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녀를 놀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잔뜩 부끄러워하는 시아라의 표정을 보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웃지마..."

"왜 이렇게 귀엽지?"

"너 미워지려고 해..."

"난 더 좋아지려고 해"

자신이 바라던 반응이 아니었던 듯 그녀의 눈동자가 팽그르르 돌아갔다.

"...카인 성격 정말 나빠졌어."

"시아라 네가 너무 좋아졌어."

"..."

"나한테도 뽀뽀 해주면 그만 할게."

"...정말?"

"응. 진심이야."

"..."

그녀는 붙잡고 있던 내 얼굴을 향해 다가와 가볍게 입술을 부딪혀왔다.

"...이제 됐지?"

"한 번만 더 해주면 안돼?"

"이제 그만..."

"시아라."

"응?"

"사랑해."

"...나두"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춘 나는 그녀를 품에 꼭 안고 말했다.

"이제 자자."

"응. 카인 너도 잘 자."

대답 대신 이마에 한번 더 뽀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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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얼핏 깼다.

눈을 뜨니 시아라가 품에 안겨 얼굴이 붉어진 채로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자면서 슬립이 말려 올라갔는지 얽혀있는 다리에서 그녀의 맨 살이 느껴진다.

스윽스윽

잠결에 그녀의 다리를 비볐다.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기분 좋은 아침이다.

다리를 비비며 살짝 눈을 뜨자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더 자지 왜 일어났어."

막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살에 눈이 부셔 눈을 반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카인 아침 먹어야지... 내가 받아올게."

그 말과 함께 내 품에서 벗어나려는 시아라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읏..."

"네가 밥을 왜 가져와."

"아, 아침이니까...?"

"너 오늘 휴가잖아."

"그래두..."

"이따가 점심 먹자. 더 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그녀가 조용해졌다.

붉어진 얼굴이 영 돌아올 기색을 안 한다.

일어나고 보니 부끄러웠는지 도통 눈 마주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또 놀리고 싶잖아."

"...때릴 거야..."

"입술로 때려줘"

"으윽..."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그녀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오늘은 의무적으로 늦잠을 자는 날이다.

얽혀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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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점심을 시아라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개인 연무장으로 나갔다.

농구 코트 5개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 곳엔 시아라와 나 밖에 없었다.

한쪽 벽에는 다양한 크기의 검과 활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어떤 게 내가 자주 사용하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뒤에서 나를 쳐다보던 시아라를 향해 뒤돌아 부탁을 했다.

"시아라, 내가 쓰던 게 뭐야?"

혹시나 내가 기억이 돌아오진 않을까 기대하던 그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카인이 자주 쓰던 검은 왼쪽에서 세 번째 검이야... 활은 다섯 번째이고"

시아라가 가리킨 검을 들었다.

스릉

생각보다 크고 무거웠다. 검 끝을 땅에 세우니 명치에 살짝 못 닿는 길이였다.

'원래 이렇게 무겁나?'

한 손으로는 휘두르기 어려워 보여 양손으로 꽉 쥐고 들어 올렸다.

적당히 자세를 취해 이리저리 휘둘러 봤는데, 칼의 무게 때문에 내 몸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 번 의미 없는 칼부림을 멈추고 그녀를 향해 뒤돌아보자 그녀가 슬픈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농담인 줄 알았어?"

"농담이길 바랬어..."

"...어떡하지...?"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은 함부로 말하고 다닐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만한 크기의 검은 단련을 하고 싶어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활은 말 할 것도 없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나는 한 가지 방법은 후작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나흘 후에 알만 왕국으로 떠나는데, 다녀와서는 몰라도 지금은 시기가 맞지 않았다.

"..."

"..."

그렇다고 상행을 갔다 올 때 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못해도 몇 달은 걸릴 원정이었는데, 다시 돌아올 때 즈음 되면 몸이 다 망가져 있을게 분명했다.

이 몸을 유지하는 것 보다, 망가진 몸을 다시 복구하는 것이 어려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원래의 카인처럼 미친 듯이 단련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 좋은 육체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나는 현상 유지가 목표였다.

"저... 카인"

"응?"

"...아주 기초적인 부분이라면... 내가 알려줄 수 있어."

"네가? 아!"

"응... 카인 지금 너는 칼 잡는 법도 모르는 것 같아서..."

"..."

그녀는 우리 영지 기사단장의 딸이었다.

그래봤자 200명이 안되는 작은 기사단이었지만, 충분히 기본은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검술을 가르쳐주셔서 동생과 함께 배웠었어."

"시아라 동생도 있었어?"

"응... 기억이 안 나겠구나."

"여동생이야?"

"...왜?"

"아, 아니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물어본 건데...? 그냥 여동생이면 걔도 이쁘겠구나 싶어서 물어봤지."

"이쁘면 어쩌려고?"

할 말이 궁해진 나는 예전에 구슬을 통해 본 적이 있었던 검을 거꾸로 세워 인사하는 기사 시늉을 하며 말을 돌렸다.

"...스승님. 가르침을 부탁 드립니다."

"푸훗. 뭐 하는 거야."

다행히 그녀가 웃으며 넘어가 줬다.

"일단, 검을 잡는 손이 틀렸어. 카인 네가 들고 있는 검은 조금 큰 크기의 그레이트소드야. 왼 손을 위로 잡고 오른 손을 바로 밑에 붙여서 잡아야 해."

"이, 이렇게?"

"응. 그게 기본적인 자세야. 좀 더 편해지지 않았어?"

확실히 그런 기분이 들었다.

몸이 자세를 기억하는 듯 손잡이를 단단하게 쥐어 잡았다.

맞춤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왼 발을 앞으로 한 발 내딛고, 좀만 더, 그치, 그리고 칼을 세워 올려봐."

그녀의 조언을 들으며 칼을 들어 올리자 아까보다 훨씬 안정된 자세가 나왔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칼을 정수리 위로 들어 올려 힘차게 내렸다.

부웅!

몸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짜릿한 쾌감이 몸을 덮쳤다.

난생 처음 검을 휘두른 기분은 생각보다 좋았다.

"맞았어! 그게 가장 기본적인 내려치기야! 기억이 나?"

"기억은 안 나는데, 왠지 내려 쳐보고 싶었어."

"너는 5살 때부터 칼을 휘둘렀으니까... 몸이 기억하는 걸 거야."

그렇게 차근차근 시아라의 도움을 받아서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땀방울이 솟아 올라 상의를 적셨다.

땀에 젖어 달라붙은 상의가 불편해져 구석으로 벗어 던졌다.

그리고 다시 설명을 듣기 위해 시아라를 쳐다봤는데 그녀의 표정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안 부끄럽다더니 거짓말이었어?"

"...안 부끄러워."

그 말에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칼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또 다시 장난을 치러 온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의 미간이 벌써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카인..."

"왜?"

"맨몸으로 맞으면 아프지 않겠어?"

자연스럽게 앞으로 가던 발이 한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그녀의 사정거리 밖이었다.

"뽀뽀해주면 갈게."

"...휴우"

"한 숨 쉬지 말고. 해줄 거야?"

"...정말 왜 그러는 거야... 일로 와."

"흐흐..."

"...바보 같아. 얼른 가서 칼 들어."

"네. 스승님"

"...어휴"

그녀가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곤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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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눈을 뜬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끄응..."

상박부터 어깨, 허리, 허벅지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와..."

한 달 만에 너무 격하게 운동을 했다.

아쉽게 활은 배우지 못했지만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몸은 익숙하지만, 머리는 낯선 그 느낌에 저녁까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었다.

검도, 총도 없는 평화로운 한국에서 살았던 남자에게 검은 새로운 게임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미련한 놈아...'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접혀있던 팔을 피려고 하자, 이두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근육이 끊어진 기분이었다.

'어흑...'

한참을 그렇게 끙끙대고 있는데, 시아라가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웅크려 있는 날 보곤 깜짝 놀라 다가왔다.

"카인!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시, 시아라..."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당황하는 그녀를 보니 아픈 와중에도 장난기가 도졌다.

"나 없어도... 밥 잘 먹고... 울지 말..."

"뭐, 뭐? 왜 그러는데, 무슨일인데! 말 좀 해봐! 카인!"

당황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스라치게 놀란 시아라가 몸을 벌벌 떨었다.

"..."

'이게 아닌데'

큰일 났다.

요즘 따라 눈치가 빨라져 당연히 눈치챌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속아 넘어왔다.

그녀의 손 맛 한 두 대로 끝날 일이 아니게 돼버렸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더 고민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다간 정말 제대로 삐질 수도 있었다.

"시, 시아라..."

"으, 응?, 무슨 일이야!"

"근육이..."

"근육이...?"

"너무 아파..."

"..."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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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라"

"..."

절대 자신을 건들지 말라는 듯 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냉기를 풀풀 피워올렸다.

움직이지 못하는 날 위해 휴가임에도 세끼 모두 가져다 주었지만, 그 외에는 일절 반응이 없었다.

"미안해... 진짜 속을 줄 몰랐어..."

"..."

그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화날 일이었나 싶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잘못한 건 나였다.

장난으로 화를 푸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지, 이렇게 화가 났을 땐 가만히 앉아 화가 가라앉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시아라와 함께 성도 돌아다녀 보고, 성 밖의 마을도 구경하려고 했는데...'

휴가의 마지막 날이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러게 아침부터 왜 그런 장난을 쳐서는...

'...생각보다 반응이 더 격했어... 혹시 아는 사람들 중에...?'

내가 트라우마를 건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한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울한 기분에 젖어 가만히 창 밖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술 생각이 났다.

생각해보니 이 곳에 와서 술을 한 번도 못 마셨다.

"저... 시아라. 술 한 잔 할래?"

"...술?"

술 이야기에 처음으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우리 미성년자라 못 마시려나?"

"카인..."

"왜?"

"우리 미성년자 아닌데?"

"18살인데...?"

"그러니까 아닌데..."

"..."

"18살부터 성인이잖아... 이 것도 기억이 안나?"

아, 여긴 한국이 아니었다.

꼭 20살부터 성인이라는 법은 없었다.

미국처럼 18세부터 성인으로 취급하는 듯 했다.

'그래도 18살은 18살이지...'

이 곳에서 성인으로 대접받는 것과 한국인인 내가 그녀를 성인으로 취급하느냐는 다른 의미였다.

'...어? 잠깐만.'

그러다 문득 번개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설마... 아닐 거야...

덜덜 떨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그녀가 몇 시간 만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 시아라..."

"왜 그렇게 불러..."

"우리 태어나면 몇 살이지...?"

"태어나면?, 태어나면 0살이지 당연히... 왜 그래 갑자기... 뭔가 생각나?"

"우리 생일은 언제야? 기억 못해서 미안해."

"그게 왜 미안해. 카인 너는 2월 22일, 나는 3월 1일."

"...!"

"왜 그래? 기억나는 거 있어?"

그녀는... 성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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