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책사 시점-5화 (5/191)

〈 5화 〉 에토스(Ethos)

* * *

대륙 최대의 식량 소출량을 자랑하는 알만 왕국은 위로는 다나크 제국, 남으로는 파딘 제국, 서로는 에어로크 왕국을 접한 대륙의 중심지다.

대륙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자연 수 많은 교역 물자가 오고 가는 무역의 메카이며, 모든 나라의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방을 나서기 전 시녀에게 부탁해 본 대륙 지도와 나라들의 특징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대륙의 서쪽 끝에 자리한 에어로크 왕국은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대륙 최대의 철광석 생산지다. 그러나, 평지가 적어 늘 백성들이 굶주리며 험한 지형 탓에 알만 왕국과의 교역만이 간간히 이루어질 뿐이다.」

자연스럽게 영지를 돌며 영주민들에게 철광석을 받고 식량을 건네주던 알만 왕국의 상단이 떠올랐었다.

그리고 만약, 알만 왕국이 아닌 더 먼 나라와 철광석과 식량을 교환한다면?

중간 수수료도 없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그렇다면 지금까지 에어로크 왕국은 왜 직접 알만 왕국까지 가지 않았는가.

「지리적 특성과 폐쇄적인 정책을 펼치는 에어로크 왕국은 몇 년 전 있었던 대흉년 이후로 외국과의 교역을 허락했지만, 아직까지 직접 상행을 나온 영지는 없다.」

"아버님."

"말해 보거라."

나를 보는 눈빛이 뜨끈하다.

아마 내가 상행을 철회하길 바라고 있겠지.

이 자리를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기억을 잃은 아들을 외국으로 보낼 아버지는 없다.

하지만...

"저희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그리고 제가 어떤 책임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영지를 위해 꼭 다녀와야 합니다."

"허..."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다.

마지막 유턴 지점에서 나는 직진했다.

이제 양 쪽 모두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없다.

'기억상실증보단 나아.'

잠깐의 안타까운 기색이 흐르던 후작의 안색은 어느새 담담해져 있었다.

이젠 둘 중 한 명은 의견을 꺾어야 했다.

"...그리 생각 한 이유를 여기 있는 모두에게 납득 시켜야 할 것이다."

자신은 없었지만 무조건 해내야 했다. 나는 유턴을 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머리 속을 정리한다.

살얼음판을 내딛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영지를 경영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돈입니다. 병사를 육성하고 키우는 것에도 돈이 필요하며 영지 내 가신들에게 봉급을 주기 위해서도, 부족한 식량을 사오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이 것은 크게 보면 나라를 경영하는 재상이며, 작게 보면 가정을 경영하는 가장입니다. 아버님께서도 영지를 경영하시니 공감 하시리라 믿습니다."

"..."

다행히 후작은 별 말 없이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 번 침을 삼킨 후에 말을 이어 나갔다.

"돈을 사용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 입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영지는 비효율적으로 세금을 걷고 있습니다."

그 때, 내 오른 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도련님... 지금 그 말 증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걸렸다.

재정관리자인 헥슬러 경이었다.제발 누구라도 반응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강하게 말 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회의록이 꽂혀있던 책장을 향해 걸어가 회의록을 꺼내며 말했다.

"아버님. 올해 1분기 회의록에 근거가 있습니다."

회의록에 별첨 되어있던 장부 내역을 펼쳐 보였다. 장부는 굉장히 원시적이었고 복잡했다.

이 곳으로 넘어오기 전 매일같이 쳐다봤던 회계 장부를 매일같이 보던 나도 머리가 어지러워 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밥 먹고 회계 감사만 했던 짬이 있지 않은가.

장부의 문제점을 여럿 찾았었다.

그 중 확실한 걸로 찌르면 된다.

"아버님 한 가지 확인을 위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최근 5년 새에 전쟁이 일어난 적 있습니까?

"...없다."

그럼 그렇지.

"병사들의 녹봉으로 인한 지출액이 분기마다 들쭉날쭉한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는데도 이 정도의 차이가 보이려면 보통 두 가지 경우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잠시 재정 관리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확신을 가진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편제 변경으로 인한 봉급 횡령, 또는 병사들에게 위로금 지급. 하지만 최근 전쟁도 없었는데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킬 필요는 없죠. 그럼 결국은 한 가지 경우 밖에 없다는 건데... 맞습니까?"

나를 쳐다보던 재정담당관을 쳐다봤다.

이 세계와 현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문명의 발달이다. 샤워기가 없어 바가지로 몸을 씻었고, 뜨거운 물은 직접 데워야 했다.

그나마 후작가에서 눈을 떴으니 다행이지, 어디 농가에서 시작했다면, 매일같이 찬 물에 샤워를 했을 것이다.

현대적인 과학이 없으니, 현대적인 문명도 없고 자연히 현대적인 장부도, 감사도 없다. 그저 지출되는 세금을 균일하게만 맞춰준다면 담당관이 돈을 빼돌리기 충분한 구조였다.

"이, 이이, 이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후작님!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증거가 너무 명백했기에 발뺌도 하지 않는 걸까.

남자는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후작을 쳐다보며 변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긴 내가 살아남기 위한 전장이지 재판장이 아니었다.

그의 외침을 무시한 채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문제점이 더 있으나 장부 원본을 보면 확실해 지리라 생각합니다."

"..."

"아버님. 저는 이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돈이 낭비되는 부분을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그 후에 제 능력이 검증된다면, 상행을 보내주십시오."

말을 마친 후, 주위를 둘러보자 나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경악으로 뒤 바뀌어 있었다.

특히 후작은 한 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영지의 예산 문제는 후작에게도 고민이었겠지.

영지 내에 이런 문제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고 하물며 내가 회의록 하나로 풀어 낼 줄은 몰랐을 것이다.

'회계 자격증 딴 게 여기서 도움 되네.'

이제 내가 상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의문을 품을 사람은 없다.

설득의 삼 요소 중 첫 단계, 에토스(Ethos)의 성립이다.

아직 두 단계가 더 남았다.

­­­­­­­­­­­­­­­­­­­­­­­­­­­­­­­­­­­­­­­­­­­­­­­­­­­­­­­­­­­­­­­­­­­­

사람을 설득할 때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수단으로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를 제시했다.

공신력을 높이고, 감정에 호소하며, 주장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설득의 삼 요소는 현대에서 회계사로 일했던 내가 고객들을 상대하며 자주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회계사에 대해 가장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회계사가 사무실 안에서만 근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계사들은 회사에 출근하는 날보다 출장을 가는 일이 더 많다.

회사에 회계사들이 모여있는 회계법인은 일감이 없어 노는 회계사들이 많다는 뜻이다.

회계법인은 외부에서 계속해서 일감을 수주해서 회계사들을 전국에 파견 보낸다.

회계사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짧으면 일주일 길면 몇 달이고 파견 장소로 출근을 하게 된다.

파견지에서 만나는 수 많은 회사와 수 많은 사람들. 회계사들은 그에 맞는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고객을 응대해야 한다.

회계사들이 가장 기피 하는 곳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

회계감사에서 낙제점을 받게 되는 순간 기업의 가치와 주식은 폭락하기에 기업의 임원진들은 회계사들이 파견 오는 것을 꺼려했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숨기고 밝히는 눈치 싸움과 회유, 압박, 거부, 협박...

사실, 회계사들은 수 많은 전장을 옮겨 다니며 전투를 치르는 백전노장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전장이 쉽고 어려움의 차이일 뿐.

그리고 지금 내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불신의 눈과 냉대한 태도를 변화 시키기 위해 설득을 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압박은 나에게 일상이었다.

물론, 회계사로써 일할 때는 내 명함이 신뢰도의 증명서였기 때문에 이렇게 장부를 펼쳐가며 나의 능력을 검증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 이 곳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갑자기 보름 동안 모든 활동을 접고 와병한 후계자. 상행을 다녀오겠다는 정신 나간 소리.

조금 더, 세심하고 신중히 말을 꺼낼 필요가 있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단계였다.

"...아버님. 저는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지르하르트 후작 가문의 장자입니다. 또 저는 아버님을 이어 장차 이 가문의 가주가 될 사람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근거를 위해 토대를 다져야 하는 순서였다.

"제가 행동함은 결국 후작가의 미래가 움직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의 행동 하나하나가 영지의 미래를 보여주는 척도가 됨을 알고 있습니다."

"..."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가 아버님께 얼마나 염려되는 자리인지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이 곳은 제가 능력을 검증 받는 곳 입니다.

이 후작 가문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지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이 곳에서 제가 아버님을 설득 시키지 못한다면 단지 단련이 싫어 여행이나 다니고 싶어하는 망나니가 돼버림을 뜻합니다."

"..."

후작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입 안의 침이 말라갔다. 30명이 넘은 사람들이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조금의 말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자리였다.

지금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런 자리가 되어 버렸다. 내가 만든 분위기와 자리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