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309화 (309/415)

# 309

2부 9화 불사조 백범! (4)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형광등과 내 상태를 확인하는 의료진이다.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의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하지만 온몸에 감각이 없다.

“제 목소리 들리시면 눈을 깜짝여 보십시오.”

의사가 다시 말했고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VIP께서는 몇 개월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몇 개월 전이란다.

‘깊이 푹 잔 기분인데!’

그 몇 개월 동안 나는 식물인간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 사실이 기억이 나십니까?”

의사가 다시 물었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기억이 맨땅.’

그리고 잠든 동안 나는 내가 잃어버렸던 이신의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이신은……!’

나는 그동안 이신을 오해했었다.

“VIP께 이제는 감각 통증 반응 검사를 하겠습니다.”

의사가 말했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바로 의사가 날카롭게 보이는 바늘을 꺼내더니 내 손가락을 찔렀다.

“VIP께서 찡그리셨습니다.”

감각 통증 반응 검사를 하는 의사의 옆에 있던 인턴에 놀랍다는 듯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기적입니다.”

의사는 내가 기적처럼 깨어났어도 전신 마비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통증이 느껴진다.

물론 지금은 내 의지로는 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몇 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으니 몸이 굳어진 것이다.

‘하지만!’

발가락 끝을 움직일 때 움직여지는 것을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의료진과의 소통을 위한 방법을 떠올렸다.

‘모스 부호.’

내가 온전히 이신의 기억을 되찾았기에 이신이 가진 능력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의료진들을 보며 계속 눈을 깜빡였다.

‘알아먹어야 할 건데?’

의료진 중 누구라도 모스 부호를 알아야 당분간의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나는 악착같이 재활에 몰두할 생각이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깜빡, 깜빡!

나는 계속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VIP께서 계속 눈을 깜빡이십니다.”

인턴 하나가 과장쯤으로 보이는 의사에게 말했다.

“감각 반응 부작용인가?”

의사는 정말 의사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인턴이 과장급 의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고?”

자신의 진단을 부정하는 인턴을 괘씸하게 생각한다면 인턴의 말은 무시가 될 것이다.

“……예.”

“뭐지?”

“모스 부호 같습니다.”

“모스 부호?”

“예.”

“그걸 알아?”

“예, 취미생활로…….”

“하하하, 잘됐네. VIP께서 당분간 답답하지 않겠군. 김 선생.”

의사는 서로를 선생이라고 부른다. 또 검사는 검사 동료를 부를 때 프로라는 단어를 써서 부른다.

“예, 과장님.”

“저 인턴 다른 업무는 다 제외해.”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VIP께서 뭐라고 하시는데?”

과장이 인턴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나는 인턴이 이해할 수 있게 모스 부호를 천천히 눈을 이용해 전달했다.

“아,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으십니다.”

“VIP님, 오늘은 9월 11일입니다.”

9월 11일?

그렇다면 9‧11테러가 발생한 날이다.

‘역사는 흘렀던 그대로 흐른다!’

소름이 돋는 순간이다. 아마도 미국은 혼란 그 자체일 것이고 모든 것을 9‧11테러에 맞춰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내가 투자한 미국 주가 하락에 따른 선물 옵션 투자는 성공했을 것이다.

-투자금액을 다섯 배로 증가시키면 선물 옵션 투자 시 1조 달러의 수익이 발생합니다.

-엄청나군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입니다. 1만 배의 수익률입니다. 물론 미국 증시와 유럽 증시 그리고 홍콩 증시에 동시에 투자했기에 불가능한 금액이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매번 말씀을 드리지만…….

-지금까지 실패했죠.

-예,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태양 컴퍼니의 유일한 투자 오점이라고 합니다.

사실 투자 세계에서 나는 미련한 고집쟁이 천재로 통한다. 물론 여전히 나는 투자의 신처럼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오직 미국 주가 하락 선물 옵션 투자에서만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음모론에 휘말리지 않고 또 괘씸죄에 걸러서 수익금을 토해내지 않는다.

‘거기다가!’

나는 3개월 정도 식물인간 상태다. 그러니 지금 딱 이 순간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든다.

‘음모론을 최소화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9‧11테러의 유일한 수익자는 나뿐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내가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멍청해 보이는 투자를 지속한 것이다.

‘이제 다음 행보는!’

말을 못 하고 움직이지 못하니 계속 생각만 하게 된다.

‘미국이 일으킬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소유하게 되는 민간군사기업을 통해서 미국의 편에 서서 두 전쟁에 동참하고 그런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군사력을 증대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VIP님께서 기적적으로 깨어나신 것을 장관님께 알려 드렸습니다.”

장관님?

누가 장관님이라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쳐야 한다.

‘의사라면!’

제일 먼저 보호자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아내 은혜에게 연락을 취했다는 소리다.

“곧 오실 겁니다.”

의료과장이 내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연락했나요?]

눈을 깜빡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연락하셨냐고 물으십니다.”

인턴이 바로 해석해서 과장에게 말해줬다.

“특급 기밀 사항이기에 통보한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사고는 사고가 아니다. 거기다가 내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는 보도가 전 세계에 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격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나는 미국이 의리를 지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또 북한이 내가 쓰러진 후에 돌발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핵무기는 주체의 기둥이오.

이 순간 김정일이 내게 했던 말까지 떠올랐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한민족이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김정일에게 말했다.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그것이 대한민국이 핵무장을 하는 데 필요한 명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마세요.]

나는 눈을 깜빡이며 인턴에게 모스 부호로 말했다.

“VIP의 지시대로 VIP 병동 전체를 통제하고 외부에 이 사실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사들이 말귀를 잘 알아먹어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박태웅이 내가 쓰러졌던 위기를 기회로 이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식이 폭락할 것이네……!’

위기는 곧 기회다. 그러니 내가 식물인간이 됐다고 슬퍼하기 전에 주식 사모으기에 착수했어야 한다.

* * *

한 시간 후.

내 아내 은혜가 달려왔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눈빛을 보였다가 눈을 뜨고 있는 나를 보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여, 여보……. 흑흑흑!”

내가 깨어났다는 것에 감격하는 눈물이다. 그리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인턴을 보며 모스 부호를 이용해 내 말을 전달했다.

“VIP께서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장관님.”

인턴이 내 아내를 장관님이라고 불렀다.

‘장관……!’

내가 쓰러진 후에 급히 귀국한 은혜일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장관이 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식물인간이 됐어도 내 편에 선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훈 통치 비슷하게 적용이 된 건가?’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내가 가진 국민의 지지율과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국민의 마음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어디 장관일까?’

내가 비록 정치 경험이 짧았을 때 외교부 장관이 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과 다르게 은혜가 장관이 됐을 때는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 직책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환경부 장관쯤으로 예상이 된다.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은혜가 인턴에게 말했다.

“VIP께서는 들으실 수 있으십니다. 또 놀랍게도 깨어나자마자 통증 감각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죠?”

“전신 마비 상태가 아니시라는 겁니다.”

인턴의 말에 다시 한번 내 아내 은혜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혜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보……. 저 무서웠어요.”

은혜가 나를 보며 말했고 나는 눈을 깜짝였다.

“장관님을 이제는 절대 슬프게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인턴의 말에 은혜가 조심히 내 손을 꼭 잡았는데 온기가 내 손에 느껴진다.

‘빠르게 회복 중이다!’

느낄 수 있다.

“참, 제가 이럴 때가 아니죠. 아버님과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려야겠어요.”

“장관님.”

그때 휴대전화를 꺼내는 은혜를 보고 인턴이 은혜를 불렀다.

“왜 그러시죠?”

“VIP께서는 기적을 당분간 함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인턴의 말에 은혜는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하시라면 그래야죠.”

항상 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은혜였다.

‘그 힘들고 외로운 순간에도!’

내게 더 많은 기회를 줬던 내 아내 은혜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재활치료다. 그것도 완벽하게 보안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피아를 구분할 때다.’

* * *

일본 총리 집무실.

“오늘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야마시타는 참담한 눈빛을 보이며 일본 총리에게 말했다. 하지만 야마시타의 참담한 눈빛은 미국을 걱정하거나 테러 희생자를 걱정하는 눈빛이 절대 아니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어버렸다. 오늘 오후 다섯 시에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공군이 평양을 정밀 타격하기로 했었는데!”

미국 부시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통보한 사실을 일본 총리에게도 통보했다. 그리고 그 통보를 받았을 때 일본 총리와 야마시타 특별 보좌관은 경제적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 전쟁 때문에 수십 년 뒤로 후퇴할 것으로 생각하고 쾌재를 불렀었다.

“모든 것이 테러 때문에 엉망이 됐어.”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마음을 본국에 돌렸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이렇게 바로잡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조금 전까지는 화가 난 표정이었던 일본 총리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렇다면 다음은?”

“미국 본토가 공격을 당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강대국 미국에 치명타를 날렸던 나라는 일본밖에는 없습니다.”

야마시타는 과거 군국주의 일본을 일본 총리가 떠올릴 수 있게 말했다.

“그렇지. 진주만 공습.”

“과거 일본 권력자들이 했던 가장 멍청한 짓이었습니다.”

“멍청하다?”

“예, 그렇습니다. 만약 그때 일본이 동맹군의 편에 서지 않고 연합군의 편에 섰다면!”

눈빛이 달라지는 야마시타다.

“으음……!”

일본 총리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도는 여전히 독립되지 못했고 만주국은 대일본의 완벽한 동맹국으로 존립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테러의 배후를 찾을 것입니다. 찾지 못한다면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렇겠지. 분노를 표출해야 할 때니까.”

“그렇습니다. 그 분노의 결과는 전쟁일 것입니다.”

“이럴 때 보통국가였다면 미국의 편에 서서 참전할 것인데, 젠장!”

“전쟁 자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보통국가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좋다. 대한민국이 골치를 썩이지 않으니 그대로 진행한다.”

“예, 감사합니다.”

분명한 것은 야마시타도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백범의 라이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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