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2부 6화 불사조 백범! (1)
이도는 심은혜의 지시를 받아 일본 도쿄로 가서 장덕수의 아들과 손자를 찾았지만 행방이 묘연했고 이것은 일본 정부가 그들을 숨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도 네가 못 하는 일도 있는구나.”
이신은 빈손으로 돌아온 이도를 보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장덕수의 입을 열지 못하겠군.”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뭐 사실 장덕수의 자백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신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예.”
“분명한 것은 부역자들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
“백범의 요청으로 지난번에 일부 색출을 했지만, 여전히 상당히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뿐만 아니라 숨어 사는 모든 일본인 출신 신분 세탁자들을 찾아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됩니다.”
“내 죽기 전까지는 찾겠지. 그리고 처리를 해야겠다.”
이신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런 말씀은…….”
“사람은 한 번은 죽는 법이다. 내 죽기 전에 치울 것들은 다 치워야겠다. 너와 백범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 하나는 해야겠다.”
이신의 복수심은 결국 백범 때문에 대한민국을 위한 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대부님.”
* * *
2001년 9월 7일, 워싱턴에 있는 태양 컴퍼니 회장실.
“9월부터는 무역센터 대피 훈련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박태웅은 여전히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 그리고 블랙홀 그룹의 통합 CEO였다. 그리고 백범이 식물인간이 된 후부터 백범이 추진했던 일 중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바꾸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입주하고 있는 입주 회사들에 통보하겠습니다.”
“미국 주가 하락에 투자하는 선물 투자 역시 중단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백범이 9‧11테러가 발생할 것을 알고 2년 전부터 소규모로 투자했던 주식하락 선물 투자를 이제는 박태웅이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VIP께서 지속하셨던 투자입니다.”
투자 이사 중 한 명이 박태웅 회장에게 말했다.
“나도 그 사실은 압니다. 그리고 투자 불패의 태양 컴퍼니가 유일하게 투자에 실패하고 있는 분야라는 것도 분명히 압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9월까지는 투자가 진행됐지만 9월 만기 이후에는 추가적인 주식하락에 대한 선물 투자는 없을 겁니다.”
“VIP께서 회복을 하신 후에는…….”
“그 부분을 질책하신다면 그 책임 역시 제가 감당합니다. 그런데…….”
“예?”
“미국 주가 하락에 대한 선물 옵션 월 투자금액이 전월보다 500%가 높군요.”
박태웅은 투자의 귀재인 백범이 왜 자꾸 이런 고집을 부리는지 지금에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 전에 VIP께서 지시하신 사안입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선물 옵션 투자겠군요.”
박태웅 회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룹 및 계열사의 주식 매집 상황은 어떻습니까?”
사실 이번 회의의 진짜 이유는 심은혜가 지시한 그대로 백범이 식물인간이 된 후 폭락할 수밖에 없는 주식을 매집한 결과를 결산하는 회의였다.
“3개 그룹의 핵심 계열사 55개의 회사의 지분을 75%까지 확대했습니다.”
백범은 블랙홀 그룹과 태양 그룹의 성공과 함께 더 많은 자금 확보를 위해 자신이 가졌던 지분 중 일부를 매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매각한 지분을 헐값으로 되찾아온 것이다.
“우도해양개발은?”
3개 핵심 그룹의 계열사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우도해양개발일 수밖에 없었다.
“추가 지분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현 주주명부입니다.”
보고자가 박태웅 회장에게 우도해양 개발의 주주명부를 내밀었다. 우도해양개발은 백범이 총 지분의 51%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변화가 있군요.”
“예, 그렇습니다. 유통주식에서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동일본 투자 개발?”
“예, 동일본 투자 개발이라는 일본 국적의 회사가 부시 가문으로부터 5%의 지분을 양보받았고 19%의 유통주식 중 9%를 확보해서 14%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3대 대주주로 등극했습니다.”
“대표는 누굽니까?”
“미야모토입니다.”
“미야모토?”
박태웅은 일본 출신 기업가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특이사항이 뭡니까?”
박태웅 회장의 물음에 태양 컴퍼니 전략기획실 실장이 박태웅 회장을 봤다.
“야마시타 일본 총리 보좌관의 사촌 형입니다.”
“야마시타……!”
박태웅 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일본 정부로부터 특혜 이상의 혜택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동일본 투자 회사는 숨겨진 일본 정부 기업이군요.”
“그렇게 판단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동일본 투자 회사가 지분을 확보한 상태이기에 해양 개발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분석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부시 가문과 합치면…….”
박태웅 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39%입니다.”
“그렇다면 추가 해양 개발을 방해하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7광구 지역에는 추가적인 시추는 없을 겁니다. 그 대신에 베트남과 필리핀 해양 개발에 착수합니다.”
“우도 해양 개발에서 착수하게 되면 무리한 개발이라고 나올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죠.”
순간 미소를 머금는 박태웅 회장이었다.
“베트남 해양 개발과 필리핀 해양 개발 회사에서 진행합니다.”
백범은 우도 해양 개발이 있는 상태에서 베트남에는 합작기업은 베트남 해양 개발을 설립했고 지분을 51%를 확보했었다. 물론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회장님, 하지만 베트남과 필리핀 해양을 개발하게 되면 중국이 반발할 것입니다.”
“그래서 두 회사가 태양 컴퍼니 소속이지 않습니까.”
분명한 것은 태양 컴퍼니는 미국 국적 투자기업이라는 사실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백범이 없는 상태에서도 태양 컴퍼니는 원활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그룹이나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백범이 추진하던 몇 개의 투자 사업은 박태웅에 의해 폐기처분을 당했다.
* * *
2001년 9월 9일, 여성가족부 장관실.
여성가족부 부처 국장들이 심은혜 장관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성 전용 화장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성 전용 화장실을 증설하는 데 왜 비용이 이렇게 많이 투입되죠?”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게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눈먼 돈의 시작일 것이다.
“화장실은 안전하고 안락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기도 합니다만…….”
“삭감합니다.”
“장관님.”
“그리고 왜 추진 사업에 전용이라는 단어들이 꼭 붙어 있는 겁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차별을 당했던 여성들에게 차별을 없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곽 국장께서는 차별을 당하고 사셨습니까?”
“예?”
“여성으로 묻는 겁니다.”
“차별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전용을 만들면 차별이 사라지나요?”
“그건 아니지만…….”
“물론 대한민국에는 지금도 남녀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가족부지. 여성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여성 우대 정책은 남녀갈등만 키웁니다.”
심은혜 장관의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런 표정이시죠?”
“여성은 지금까지 항상 차별을 받았고…….”
“여성이 약자입니까?”
국장 중 한 명이 차별 이야기를 할 때 심은혜 장관은 약자 이야기를 갑자기 꺼냈다.
“예?”
“여성이 약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 모든 정책을 계획하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여성은 절대 약자가 아닙니다.”
“장관님께서는 여성가족부 장관이십니다.”
반기를 들기 시작하는 국장이 있었다.
“알아요. 저는 여성가족부 장관입니다. 여성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여성은 절대 약자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여성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일부 인정합니다. 하지만 역차별이 발생하는 것을, 또 그것을 만드는 것을 추진하라고 여성가족부가 신설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지금 올린 모든 계획서는 폐기합니다.”
“장, 장관님…….”
“특히 여성 할당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홍보하는 정책도 다시 한번 계획안을 검토하십시오.”
“왜 갑자기 이러십니까?”
국장 하나가 심은혜에게 따지듯 물었다.
“편하고 좋은 것만 50%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처럼 보이네요. 그런 주장을 정책에 반영해서 실행하려면 교사 선발도 50 대 50이어야 하지 않나요?”
“하지만 지금까지 여성들이 차별받았기 때문에 이제야 자신들의 몫을 찾는 과정입니다.”
“여성 할당제 추진 계획은 다시 검토하세요.”
단호하게 말하는 심은혜였다.
“으음……!”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국장들은 신음만 토해낼 뿐이었다.
“그리고 여성 할당제 분야에서 비례대표 일부를 여성으로 할당하는 내용을 수정될 계획서에 포함하십시오.”
국회의원을 여성 비중을 높이겠다는 투로 들릴 수밖에 없었고 어둡기만 했던 여성가족부 국장들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국회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국회에 많은 여성이 진출해야 여성가족부가 힘을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심은혜 장관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핵심부터 치고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느 여성 국장의 말에 심은혜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거……!”
심은혜 장관이 보고서 중 하나를 들고 국장들을 봤다.
“예, 장관님.”
“모자가정 지원 정책 말인데요.”
“예, 미혼모나 이혼한 후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좋은 정책이군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남성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반발을 걱정하시면 아무런 개혁도 할 수 없어요.”
지원 정책을 개혁이라고 말하는 여성 국장이었다.
“장수희 국장.”
“예, 장관님…….”
둘의 시선이 팽팽했다.
“모자가정 지원 정책이 아니라 한 부모 가정 지원 정책으로 타이틀을 바꾸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혼하게 되면 남성보다 여성이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목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이 정책을 반대할 반대자들의 논리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아……!”
“똑같이 지원하는 겁니다. 그래야 반발이 없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모두가 심은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태양병원 특실 VIP 병동.
2개월째 백범은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 아닌 투병을 하고 있었고 그의 잠든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것에 비해 대한민국의 상황은 일본의 압박과 중국의 배신 때문에 절대 평온할 수가 없었다.
하여튼 백범은 그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다.
“VIP께서는?”
태양병원 병원장이 24시간 백범의 상태를 확인하는 의료진에게 물었다.
“현상 유지 상태입니다.”
“아직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건가?”
“병원장님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지.”
“……예.”
의료진이 대답했고 병원장은 물끄러미 백범을 봤다가 돌아섰다.
그때!
모두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백범의 왼쪽 새끼발가락이 찰나의 순간 미세하게 떨렸다가 다시 멈췄다.
“VIP에 대한 현상 유지에 빈틈없이 해야 합니다.”
병원장이 다시 한번 몸을 돌려 백범을 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기적은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이지 않습니까.”
백범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또 한 명의 사람이 태양병원 병원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