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
2부 3화 제가 백범의 아내입니다 (3)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의 요청대로 여당 대표는 청와대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대한민국 언론은 국민전환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면담이라고 생각하고 일제히 보도를 시작했다.
“각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저는 따르겠습니다.”
대통령은 여당 대표에게 백범의 아내가 정치에 입문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자고 말했고 여당 대표는 흔쾌하게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여전히 국민은 개혁의 중심에 섰던 백범 전 이사장을 생각하고 있고 그것은 그대로 다음 총선과 대선에 표로 연결될 것으로 당은 예측합니다.”
여당 대표가 자신의 앞에서 선거 이야기를 꺼내자 대통령은 인상을 찡그렸다.
“선거 이야기는 잠시 접읍시다.”
“정치인이 선거 이야기를 안 하면 무슨 대화를 하겠습니까.”
“나는 백범 전 이사장의 아내분을 다음 총선과 대선에 이용할 생각이 추호에도 없소.”
“하지만 이용해 달라잖습니까.”
“대표……!”
“심은혜 씨도 냉정해진 겁니다. 지킬 것이 많아서 각하께 요청한 거죠. 사실 백범 회장이 자본으로 다른 재벌들을 누르고 독단적으로 개혁을 감행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백범 회장을 따르는 국민도 많았지만, 적도 많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방어적인 차원에서 작은 권력을 쥐고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이신 대통령 각하의 옆에 서겠다는 겁니다. 그것은 오직 백범 회장이 가지고 있는 그룹과 계열사를 지키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하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국제그룹도 부질없이 사라졌습니다.”
국제그룹 이야기까지 꺼내는 여당 대표였다.
“으음……!”
“하지만 저는 각하의 뜻에 동의합니다. 여전히 백범 회장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충분하니까요. 물론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예전에 내게 했던 말과는 다른 부분이 많군요.”
“정치인은 팔색조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여튼 저는 각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신설되기로 했다가 백범 회장의 간언에 미뤘던 여성가족부를 다시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성가족부라고 했소?”
“예, 그렇습니다. 서울 법대 출신이고 사법고시 통과자이면서 미국 하버드 대학원 로스쿨 수료 직전이었다고는 하지만 심은혜 씨는 정치적 경험이 전무합니다.”
“그런 분께 장관 자리를 주자는 겁니까?”
“그렇다면 대통령 각하께서는 비례대표 의원 정도를 생각하신 겁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소.”
“비례대표 자리에 공석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백범 회장의 아내분에게는 너무 초라한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성가족부를 다시 신설하겠다는 겁니까?”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뚫어지게 보며 되물었다.
-여성가족부는 대한민국의 성 평등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는 기관이지만 결국 남녀 갈등을 조장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식물인간이 되기 전 여성가족부를 신설하겠다는 자신에게 백범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대통령이었다.
“말이 여성가족부라고는 하지만 크게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리고 정치적 소견이 부족해도 해나갈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당 대표께서는 심은혜 씨를 과소평가하시는군요.”
“저는 그저 정권 유지에 이용하고자 할 뿐입니다.”
어느 순간 대립의 각을 세우기 시작하는 여당 대표였다. 사실 백범이 기세롭게 대한민국을 개혁해 나갈 때부터 그리고 여당 대표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여성가족부를 신설하시죠.”
“그렇게 요구하신다면 그렇게 해야겠죠.”
대통령은 여당 대표가 자신에게 여성가족부를 신설하기를 요구하는 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백범 회장의 아내인 심은혜 씨가 얼마나 잘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는 해보겠습니다.”
이 독대에서 여성가족부가 다시 신설되기로 합의를 끝낸 것이다. 이것은 백범이 바꿔놓았던 대한민국의 미래가 다시 백범이 알고 있던 그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였다.
똑똑!
그때 독대 중인데 요란한 노크가 들렸고 여당 대표는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외교 수석이 급히 들어와 대통령의 귀에 속삭였다.
“그게 사실입니까?”
대통령의 표정이 변했다.
“예, 그렇습니다.”
외교안보 수석이 여당 대표의 눈치를 보며 대통령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대통령 각하.”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조심히 물었다.
“으음…….”
“제가 알아서는 안 될 일이라도 있습니까?”
집요하게 묻는 여당 대표였다.
“강 대표.”
“예, 각하.”
“일본이 한일어업협정을 독단적으로 파기한다고 우리 외교부에 통보해 왔소.”
“정말입니까?”
여당 대표도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양국의 기준점으로 어업구역을 정한 어업협정은 그 자체로 실효성이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외교안보 수석이 여당 대표에게 말했다.
“독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못했군요.”
“으음…….”
대통령은 신음을 토해냈다.
“손바닥을 위에서 아래로 뒤집듯 협정 파기가 이렇게 쉬운 겁니까?”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따지듯 물었다. 모든 상황이 돌변한 것이다.
“한일어업 2차 협정은 1차 협정을 바탕으로 체결된 어업협정입니다. 그래서 협정을 체결한 국가 중 한 곳이라도 협정을 단독으로 파기하고 통보할 수 있습니다.”
외교안보 수석이 여당 대표에게 설명해줬다.
“그렇다면 과거로의 회귀군요.”
“회귀라고 했소?”
“백범 회장이 등장하기 전으로 되돌려진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 누구도 협정을 단독으로 파기하지 못하게 조약으로 체결하지 못한 백범 회장의 중대한 실책이기도 하고요.”
“뭐라고 했습니까?”
여당 대표의 말에 대통령은 불쾌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새로운 어업협정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는 여당 대표였다. 그리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재임제가 아닌 단임제이기에 권력의 누수가 빠르게 진행되는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기도 할 것이다.
“그럴 것 같소.”
“백범 회장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은 반일감정에 몰두하고 있고 그에 따라 일본 국민들 역시 혐한 감정이 팽배합니다. 그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전 방위적으로 대한민국 민간사업 분야를 압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으음……!”
“지금까지야 백범 회장이 충실히 막아내기는 했지만, 피해를 보는 기업들과 민간인들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일본 정부의 정치 보복을 막아내실 생각입니까?”
도리어 여당 대표가 어처구니가 없게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었다.
“으음……!”
“달래야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대안이 없으니 화난 일본을 달래야 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대통령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른 대안이 있으십니까?”
사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이렇게 여당 대표가 청와대의 주인인 대통령을 대놓고 압박한 경우는 없었다.
-야마시타 일본 총리 특별보좌관입니다.
여당 대표는 자신이 청와대로 방문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걸려온 의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누구라고 했소?
-야마시타 일본 총리 특별보좌관입니다. 대표님의 도움으로 양국의 발전과 우호를 저해한 존재를 처리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함을 전합니다.
야마시타의 말에 여당 대표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했소?
-모든 국가의 국민은 모든 사건에 관한 결과만 봅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지난 일에 대표께서도 일조하셨다는 것을 반도의 국민도 알게 되면 대표님의 정치 생명은 끝나지 않겠습니까.
-으음……!
야마시타의 전화를 받았기에 여당 대표는 돌변할 수밖에 없었다.
-반도의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그리고 양국의 우호에 이바지할 지도자가 되실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독도의 삭제입니다. 새로운 어업협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야마시타의 말에 그때의 여당 후보는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힘을 실어주실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뚝!
야마시타는 그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차 세워!
흥분할 수밖에 없는 여당 대표는 그때 차를 세웠다.
-예, 알겠습니다.
-담배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그때의 운전기사는 여당 대표가 담배를 끊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담배를 공손히 내밀 수밖에 없었다.
‘덫에 걸렸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대통령을 보며 여당 대표는 덫에 걸렸다는 말을 속으로 뇌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변했던 대한민국의 역사가 백범 이전으로 회귀를 시작하고 있었다.
* * *
북한산 이신의 별장.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는 대형트럭을 운전한 장덕수가 바깥쪽에는 이신을 따라온 심은혜와 일행들이 장덕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덕수입니다. 현재 아무런 자백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도는 심은혜의 보좌관처럼 심은혜의 옆에 서서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박태웅 회장은 이신이 어떤 의도로 이러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이신도 박태웅 회장도 서로를 완벽하게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백범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졌기에 내부에서 분열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심증은 확실하다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물증까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심은혜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저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게 만드는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조부님.”
심은혜가 아무 말도 없는 이신에게 물었다.
“손주며느리께서는 직접 물어보고 싶으신 모양이군.”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해.”
* * *
장덕수가 감금된 방안.
“저는 심은혜라고 합니다. 장덕수 씨죠?”
심은혜가 자신을 소개하자 장덕수는 심은혜를 봤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일본인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작입니다.”
“신분을 조작한 것은 장덕수 씨라고 합니다. 물론 그 부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은혜는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는 검사처럼 돌변한 상태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피해자에게 죄송할 뿐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면 진실을 말씀하셔야죠.”
“나는 경찰서에서 이미 다 말했습니다. 사고였어요. 사고라고요.”
발뺌만 하는 장덕수였다.
“졸음운전이셨나요? 그 폭우 속에서?”
“…….”
“졸음운전이라고 경찰에게 진술하셨더군요.”
“맞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셨더군요.”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피해자께 사죄드리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심 어린 사죄라면 장덕수 씨가 말씀하신 피해자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심은혜가 자신의 신분을 장덕수에게 밝혔고 장덕수는 찰나의 순간 눈빛이 떨렸다.
“그, 그 말씀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죠.”
“……”
“장덕수 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세력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그 세력은 장덕수 당신의 자식들과 손자들을 감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거군요.”
“무슨 헛소리를 합니까?”
“그 어떤 세력이 했던 그대로 우리도 할 수 있어요.”
똑똑!
장덕수에게 말한 심은혜는 유리창을 두드렸고 이도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
“장덕수 씨의 자식들과 손자들을 확보하세요.”
심은혜의 말에 이도는 놀란 눈빛을 보였고 장덕수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압박의 방법이 틀린 겁니다.”
이 순간 이도는 심은혜는 백범이 가지지 못한 마지막 그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인함까지……!’
심은혜가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오래 사신 일본인이시니 대한민국 속담은 잘 아실 겁니다.”
“……”
심은혜가 장덕수를 보며 말했지만, 장덕수는 벌벌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답니다.”
심은혜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그 서리는 당신의 자손들에게서부터 시작되어서 일본에 내릴 겁니다.”
이 순간 심은혜의 발언에 이도도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