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
2부 2화 제가 백범의 아내입니다 (2)
사건 발생 일주일 후, 태양병원 VIP 특실.
병문안이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 대통령은 식물인간 상태로 잠들어 있는 백범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백범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깨어날 것이라고 또 일어날 것이라고 믿겠소.’
그런 생각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은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냉정함을 다잡고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심은혜를 봤다.
“곧 깨어나실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대통령은 심은혜에게 말했다.
“예.”
“우리가 잠시 대한민국 개혁의 원동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잠시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안타까운 일이지만 늦어질 수는 있어도 백범 이사장의 대의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을 통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제 남편은 곧 깨어날 겁니다.”
심은혜의 말에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들은 백범이 깨어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진 동지라면 동지였다.
“예, 그래야죠. 그래야 합니다. 백 이사장, 어서 일어나세요. 이렇게 백범 이사장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여전히 잠들어 있는 백범을 보며 말한 후에 심은혜를 봤다.
“대통령님.”
그때 심은혜가 눈빛이 변해 대통령을 불렀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을 통해서 제 남편의 대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백범 이사장이 잠시 잠들어 있는 것밖에는.”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남편이 꿈꾸던 대의를 제가 이어가고자 합니다.”
심은혜의 말에 아무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박태웅 회장이 놀란 눈빛으로 변했다.
“부인께서?”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변한 것은 오직 제 남편이 저렇게 아이처럼 잠들어 있다는 사실밖에는 없습니다. 힘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그 힘이 제게로 재편성됐습니다. 저는 남편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부창부수시군요.”
“제 남편보다 제가 비록 굳건하지 못하고 위태로운 부분도 많겠지만 저는 백범의 아내입니다. 그러니 제 남편이 깨어나기 전까지 제 남편이 해온 일들을 그대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부인께서는 제게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겁니까?”
대통령의 되물음에 대통령의 옆에 있던 청와대 비서실장이 찰나의 순간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것이 어려우시다면 제가 남편을 대신하는 자리를 스스로 만들겠습니다.”
“아닙니다. 자리는 제가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 제가 자리를 만들어 준 것처럼 말입니다.”
“각하……!”
그때 아무 말도 없던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불렀다.
“왜 그럽니까?”
“부인께서는…….”
“정치적 경험이 없다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송구합니다.”
“백범 이사장도 그랬습니다. 나는 백범 이사장을 믿듯 백범 이사장의 아내분도 믿을 것입니다.”
“…….”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발표에 청와대 비서실장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군.’
이 순간 박태웅 회장은 심은혜의 의지 표현보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노선을 달리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뜻을 정하셨다면 준비를 하고 계십시오. 자리는 제가 만들어 드릴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심은혜가 대통령을 보며 머리를 숙였다.
* * *
사건 발생 일주일 후, 태양병원 VIP 특실.
대통령이 청와대로 돌아가자마자 박태웅 회장은 심은혜를 봤다.
“사모님의 결심은…….”
“제 남편이 꿈꾸는 것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정치 인문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심은혜였다.
“VIP의 그룹과 계열사의 경영권 방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저는 대한민국이 가진 또 다른 힘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이는 회장님께 모든 사업 분야를 일임하시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대 결정은 VIP께서 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심은혜였다.
“사모님……!”
“왜 그런 표정이시죠?”
심은혜의 되물음에 박태웅이 심은혜를 빤히 봤다.
“저를 믿으실 수 있으십니까?”
“저는 딱 제 남편께서 믿으신 만큼만 믿을 겁니다.”
이 순간 박태웅 회장은 부창부수라는 사자성어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따릅니다.”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시받으셨던 그대로 계획된 그대로 움직이세요. 저는 제 남편을 대신할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이신이라는 분을 만나야겠군요.”
“위험한 동반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 만나야겠죠.”
“예,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제 남편을 저렇게 만든 존재가 누굴까요?”
담담했던 눈빛이 서늘하게 변하는 심은혜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 정부라고 확신합니다.”
박태웅 회장의 말에 심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할게요.”
“성북동으로 이동하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제가 가지 않습니다.”
“그럼……?”
“오라고 하세요. 제 남편께서 모든 일에 중심이었으니 저도 모두의 중심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 순간 박태웅 회장은 심은혜가 백범과 같은 듯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야마시타 특별보좌관의 사무실.
“장덕수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야마시타의 측근이 야마시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야마시타에게 속삭였다.
“장덕수?”
“폭우 속에서…….”
폭우 이야기가 나오자 야마시타가 인상을 찡그렸다.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야마시타의 계획은 백범을 암살한 후에 대형트럭으로 교통사고를 낸 장덕수까지 살해하는 거였다.
하지만 백범이 퇴근하는 것을 도열하고 있던 건강보험공단 고위직이 너무나 빠르게 119와 경찰에 신고했기에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대기하던 야마시타의 측근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었다.
“송구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군. 왜 구속이 되지 않았지?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 아니었나?”
“교통사고 특례법에 따라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법도 있나?”
“예, 그렇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아무리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중심인 백범을 위태롭게 만든 자인데 불구속 수사라고?”
야마시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지, 어떤 존재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
“으음……!”
야마시타의 말에 그제야 야마시타 측근의 표정이 돌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골치가 아프겠군.”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장덕수의 자식들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고…….”
“우리가 돌보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장덕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어떤 것도 발설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가장 깔끔한 것은 백범 그 망할 것이 깨끗하게 죽어주는 건데.”
야마시타는 악마의 눈빛을 보였다.
“실행에 옮길까요?”
야마시타의 측근이 야마시타를 보며 속삭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날 준비했던 것처럼 천천히 완벽하게.”
“예, 명이 받잡습니다.”
“고로.”
“예. 보좌관님.”
“나를 대신해서 투자회사를 설립하라.”
“예?”
야마시타의 측근 이름이 고로였다.
“적에게서 배웠다.”
야마시타가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본을 내 손아귀에 넣고 그다음은 반도지. 하하하!’
또 다른 방법으로 한반도를 침략할 마음을 먹은 야마시타였고 이것은 백범이 해왔던 방법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 *
여당 집무실.
여당 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
“쯧쯧, 북한처럼 유훈 통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백범의 젊은 아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각하께서는 자리를 만드신다는 건가?”
-백범 이사장의 후광만으로도 당분간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충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민은 백범 이사장이 저렇게 된 것에 대해 애도하고 있으니까요.
“제대로 죽어야 애도를 해주지.”
-으음……!
“VIP께서 그리 결심을 하셨다면 따라주는 모양새를 취해야겠지. 알겠소.”
뚝!
여당 대표는 그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기 남편을 대신해서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겠다? 꿈은 제대로 야무지군.”
“대표님……!”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던 여당 대표의 보좌관이 대표를 불렀다.
“왜?”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기회?”
여당 대표의 눈동자가 변했다.
“예, 그렇습니다. 국민은 백범을 존경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마음을 다음 대선을 위해 대표님의 표로 변신을 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역시 정치꾼이나 그 하수인들은 선거만 생각하고 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는 너무나 머리가 잘 돌아갔다.
짝!
보좌관의 말에 여당 대표가 옳다구나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무릎을 쳤다.
“그렇지. 하하하, 그렇게 되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리가 좋을까?”
“기존의 자리가 아닌 신설된 자리가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신설된 자리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식물인간이 된 백범이 좌절시킨 여성가족부를 이번에야말로 부활시킬 절호의 기회입니다.”
보좌관의 말에 여당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가부가 만들어지면 다음 대선에서 내게 투표할 표가 얼마나 상승한다고 했지?”
“7%입니다.”
“그렇다면 그래야겠지.”
따르릉, 따르릉!
그때 여당 대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왜 또?”
다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여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각!
“무슨 일입니까?”
-각하께서 대표님께 청와대 방문을 요청하셨습니다.
“그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았습니다.”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여당 대표였다.
* * *
사건 발생일 8일 후 아침, 태양병원 VIP 특실.
심은혜가 요구한 그대로 이신은 태양병원 특실을 찾았다.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잠들어 있는 백범을 봤고 대통령과 다르게 심은혜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이신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이신을 수행하고 온 이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굳건하여지기 바랍니다.”
백범을 보던 이신이 심은혜에게 말했다.
“저는 어르신의 그 눈물을 믿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심은혜였다.
“그러셔야 합니다.”
이신이 찰나의 순간 박태웅 회장을 봤고 그 시선을 박태웅 회장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이신은 박태웅의 배신을 경계했고 박태웅 역시 이신의 배신을 경계했다.
“제가 어르신을 어떻게 불러드리면 될까요.”
심은혜는 이신과 호칭부터 정리하겠다는 듯 물었다.
“저 녀석은 나를 조부라고 불렀습니다.”
“예, 할아버님.”
바로 호칭을 정리하는 심은혜였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니 나를 여기로 불렀고 나도 할 말이 있기에 여기로 왔소.”
“할아버님의 말씀을 손자며느리가 먼저 듣겠습니다.”
“손자며느리라. 똑같군요.”
“제가 제 남편의 아내이니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해주십시오.”
“그러자꾸나. 저 녀석을 저렇게 만든 자를 내가 데리고 있다.”
그 말에 심은혜의 눈빛이 변했고 그 변한 눈빛을 이신이 담담하게 바라봤다.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알아내셨습니까?”
“심증은 확실하지.”
“저는 물증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직접 심문이라고 하겠다는 건가?”
“못할 것은 없죠.”
이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이도는 심은혜가 백범의 판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군.”
“그래야 하니까요.”
담담하게 말하는 심은혜였다.
“그렇게 하시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 실장을 옆에 두게.”
이신이 이도를 심은혜에게 소개했다.
“이도라고 합니다. 앞으로 이 실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이도가 심은혜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제가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제 친구는 저를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도가 잠들어 있는 백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믿죠.”
“가볼 텐가?”
이신이 심은혜에게 장덕수가 있는 곳을 가보겠냐고 물었다.
“그래야죠.”
“그럼 내게 하려고 했던 말은 뭔가?”
“제가 제 남편이 했던 모든 일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
“정치도 시작할까 합니다.”
“정치……?”
이신은 이 순간 심은혜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뜻대로 하시게.”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그래야지. 내가 죽고 싶어도 이제는 저 녀석이 깨어나기 전까지 걱정이 되어서 못 죽을 판이니까.”
이신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