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2부 1화 제가 백범의 아내입니다 (1)
사건 발생 일주일 후, 태양병원 VIP 특실.
백범이 교통사고로 위장된 암살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지 일주일이 지났고 대한민국 언론은 청와대의 엠바고가 해제됨과 동시에 백범이 식물인간이 된 것을 특종으로 보고했다. 외신들 또한 일제히 백범이 사고를 당해 더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보도했다.
“이제부터 저는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겠어요.”
백범의 아내인 심은혜는 자신에게 백범이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 박태웅 회장에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현 상황에 대해서 제가 더 알아야 할 상황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된 백범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여자였지만 심은혜는 이제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선 VIP께서 가진 힘의 중심에는 거대 자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거대 자본이 위태롭다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증시에서는 태양그룹 산하의 모든 계열사들이 사고 당일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이틀 전부터는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양 컴퍼니와 블랙홀 그룹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계열사들도 마찬가지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미국 증시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우도해양개발에 대한 적대적 기업인수 합병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박태웅 회장은 자신이 다시 모시게 될 새로운 VIP가 될 심은혜에게 담담히 보고했다.
“그이가 이룬 것이 이 정도의 위기로 흔들릴 사상누각은 아니겠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 히든카드가 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VIP와 저만 알고 있는 비자금이 있습니다.”
“비자금이라고 했나요?”
심은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리고 마치 비자금이라고 말한 박태웅을 질타해야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용어의 선택이 틀리신 것 같습니다. 비자금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조성된 자금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비자금이 조성됨과 동시에 각 그룹과 계열사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피해를 입게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압니다. 제 남편이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비밀 자금 조성에서 그 어떤 불법적인 행위도 없었습니다.”
“그럼 준비금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 순간 박태웅 회장은 심은혜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얼마죠?”
“3개국 비밀계좌에 입금되어 있는 금액은 총 3500억 달러입니다. 그 금액은 VIP께서…….”
박태웅 회장은 아이처럼 잠들어 있는 백범을 잠시 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사하라 사막 녹지화 사업 프로젝트와 신벽란도 사업을 위한 준비 자금이겠죠?”
“예, 그렇습니다.”
이미 심은혜는 백범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던 대부분의 사업들을 박태웅 회장을 통해서 보고를 받은 상태였다.
“제 남편께서 추진하시던 모든 사업들은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남편께서는 꼭 깨어나실 테니까요.”
심은혜는 내일이라도 식물인간 상태인 백범이 깨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눈빛으로 박태웅 회장에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될 겁니다.”
심은혜가 박태웅을 보며 웃어 보였다.
“제 남편은 저를 절대 외롭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심은혜의 말에 괜히 코끝이 찡해지는 박태웅 회장이었다.
“지금 제 남편이 이룩했던 모든 기업들이 위기라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 기회군요.”
“기회라고 하시면?”
“사흘째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경제와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제 남편의 사업 동반자이신 박태웅 회장께서 모르시겠다면 그 자체가 제 남편이 쌓아놓은 사상누각 아닌가요?”
“바로 매집에 돌입하겠습니다.”
“그리고요.”
심은혜가 박태웅을 빤히 봤다.
“예, 사모님.”
“누가 제 남편이 이룩한 것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파악하세요. 그리고 철저하게 경고하세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태양 그룹과 그 산하에 있는 계열사들의 위기 그리고 태양 컴퍼니와 블랙홀 그룹의 경영권 방어 위기를 심은혜는 놀랍게도 각각의 그룹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기회라고 박태웅 회장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씀을 이런 자리에서 드리는 것이 송구하지만 대단하십니다.”
“그래야죠. 저는 제 남편의 아내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 궁금한 것이 생겼어요.”
심은혜가 박태웅 회장을 빤히 봤다.
“말씀하십시오.”
“이신이라는 분의 지시를 받아서 이도라는 분께서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누구죠?”
이신이 거론이 되자 박태웅 회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적인가요?”
“VIP의 위험한 동반자이셨습니다.”
박태웅 회장의 말에 심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나야겠군요.”
똑똑!
그때 VIP 병동 특실에 노크가 들렸다.
“각하께서 도착하신 모양입니다.”
이미 박태웅 회장은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계획을 전달 받은 상태였다.
“모시세요.”
“예, 알겠습니다.”
여전히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는 심은혜였고 그런 심은혜를 보며 역시 백범의 아내답다는 생각을 했다.
* * *
이신의 성북동 별채.
“대형 트럭의 운전자가 72세의 고령이라고?”
이신은 이도에게 보고를 받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군.”
“예상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렇겠지.”
“장덕수, 72세이며 군산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일본인이었습니다. 광복 후 신분 세탁을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변신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뿌리를 깊게 내린 부역자들이지.”
이신이 인상을 찡그렸다.
“예, 그렇습니다.”
“어디에 있나?”
이신은 이미 이도가 장덕수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북한산 별장에 감금해 놨습니다.”
하여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이도였다.
“장덕수를 통해서 확인해 낼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겠지?”
“예, 그렇습니다. 일체의 자백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돌발 상황 발생 때문에 고문을 자제할 수밖에 없어서 더욱 입을 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도는 백범을 그렇게 만든 자를 씹어 삼켜도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대형트럭을 운전해서 사고를 낸 장덕수가 고령이기 때문에 고문을 쉽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입을 열지 않겠지. 70세가 넘었으면 자기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테니까.”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입을 연다고 해도 백범의 암살은 치밀하게 준비했을 것이고, 점조직으로 움직였을 것이니 장덕수는 꼬리에 불과하겠지.”
“그럴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심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눈빛이 달라지는 이신이었다.
“일본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다르다.”
“예, 그러십니다.”
“내게는 곧 심증이 물증이다.”
이신의 눈에는 복수심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직 연락이 없나?”
“예, 연락을 취했고 대부님께서 만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전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파악되지 않아서 그렇겠지.”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이도야.”
“예, 대부님.”
“나는 이 세상에서 딱 세 사람만 믿었다.”
“예.”
이도가 이신을 빤히 봤다.
“내 형님과 너 그리고 책임감 없이 쓰러진 백범 그 녀석이지. 나는 여전히 박태웅을 믿지 않는다.”
“그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백범의 처가 내게 오지 않는다면 네가 그녀에게 가라.”
“대부님……”
“너는 백범과는 친구 사이기도 하니 그녀를 도와야겠지.”
“따릅니다.”
이도가 다시 이신을 향해 부복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예, 그렇습니다.”
“백범이 움직이기 전으로 대한민국은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아이가 만들었던 동북아시아의 질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 * *
일본 총리 집무실.
일본 총리는 야마시타와 독대 중이었다.
“완벽하게 마무리됐다고 하지 않았나?”
일본 총리는 야마시타를 질타하듯 말했다.
“식물인간 상태입니다. 수많은 의료기기에 의존하여 목숨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돌발 상황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주치의에게 보고 받기로는 뇌사 상태는 회복이 불가능하지만 식물인간 상태는 기적처럼 깨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다.”
일본 총리는 야마시타를 질타했다.
“대한민국에 더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총리 각하. 백범이 등장한 것이 대한민국의 마지막 기적이었습니다.”
“그 말은 동의한다.”
“백범 때문에 흔들렸던 모든 질서가 제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백악관에서 스텔스 전투기 50기의 일본 수출을 정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
“예, 그렇습니다. 미국은 이제 다시 동북아시아의 질서 유지를 본국의 손에 맡긴 것입니다.”
“그럼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에 대한 부정입니다.”
“부정?”
“일차적으로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시어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한 것을 철회하셔야 합니다.”
야마시타 특별 보좌관의 말에 일본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다. 일본의 정치사에 독도를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로 인정한 최초의 일본 총리로 남을 수는 없으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와 함께 식물인간이 된 백범이 가진 모든 것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백범이 가진 것?”
“거대 자본입니다.”
“방법이 있나?”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본국은 국민들의 저축률이 높습니다. 그 자금을 대출을 통해 백범이 했던 그대로 거대 자본을 만들고 백범의 기업들과 그룹들을 적대적 인수 합병을 감행하셔야 합니다.”
“가능할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것이 총리 각하이십니다.”
야마시타는 일본 총리에게 아부를 하듯 말했다.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을 하나?”
일본 총리가 야마시타에게 물었다.
“저는 저라고 생각합니다.”
당당하게 일본 총리에게 요구하는 야마시타였다.
“하하하, 자네라고?”
“예, 그렇습니다. 도쿄 시장이 되기 전에 일본을 지키는 자본의 검이 되겠습니다.”
“그런 후에는 나의 정치적 후계자 자리를 원하겠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야마시타가 일본 총리에게 머리를 숙였다.
‘너는 내 덫에 걸렸다.’
일본 총리에게 머리를 숙인 야마시타지만 야마시타는 일본 총리를 자신의 도구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을 지키는 자본의 검이 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도쿄 시장이 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니 동시에 준비하게.”
“예, 알겠습니다.”
“적에게서 배운다. 아주 좋은 발상이야. 하하하!”
일본 총리는 호탕하게 웃었다.
“스텔스 전투기가 50기다. 이미 해상 자위대의 군사력은 대한민국을 능가했다. 이제는 공군의 군사력도 대한민국 공군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결국에는 군사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매듭짓는 법이지.”
일본 총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