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
275화 한일어업협정에 돌입하다 (5)
평양에 있는 주석궁.
“백범 동지가 일본 조총련 대표들을 만나기로 했답니다.”
장성택이 담담한 어투로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이건 다시 말해 백범이 조총련 대표에게 만날 것을 제의하자마자 조총련 대표는 평양에 즉각 보고했다는 의미다.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일본 정부에서는 어떤 답변이 왔지?”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에 대한 처우를 논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끌겠다는 것이군.”
김정일이 피식 웃어버렸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위원장 동지의 결심이 충격 그 자체일 것입니다.”
“아는 거지, 내가 그리고 공화국이 사과한 후에 어떤 것을 요구할지 짐작한다는 거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밀어붙여. 참의원 선거 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
“예, 지시하겠습니다.”
“백범 동지가 움직이고 있으니 볼만하겠어. 하하하!”
김정일은 백범을 떠올리며 크게 웃었다.
* * *
일본 정부 총리 집무실.
“백범이 조총련 단체를 지금 만나고 있다고?”
일본 총리가 야마시타 특별보좌관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짐작건대 민단과 조총련을 화합시키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나?”
“또 모를 일입니다.”
야마시타 특별보좌관의 말에 일본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리 각하……!”
“재촉하지 말게.”
“내일입니다. 백범 그자의 의도대로 이번 협정이 결렬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얻어내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어. 지금까지 대한민국과의 외교 협상에서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적이 없었는데…….”
일본 총리인 인상을 찡그렸다.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상승했고 그 상승의 바탕에 백범의 자본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백범의 자본이라…….”
일본 총리는 무엇인가를 떠올렸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예, 그렇습니다.”
“보좌관.”
“예, 총리 각하.”
“백범의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가 일본 경제에 얼마나 진출해 있지?”
일본 총리의 표정은 이미 변해 있었다.
“확인된 사항은 사금융업과 토지투자개발회사가 진출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어쩌면 사금융업에 진출한 것은 백범의 또 다른 카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자제한법이 있는 이상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 이자제한법이 폐지된다면 또 상황이 달라집니다. 아마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 본국의 사금융업에 진출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으음…….”
“더 심각한 것은 토지투자개발회사입니다.”
“그게 왜?”
“토지투자개발회사는 말 그대로 개발회사입니다. 본국의 기업이 우도해양개발처럼 한일 공동개발구역에 인접한 곳에서 해양개발에 착수한다면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설립을 했을까?”
“저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해양 유전 개발이 쉽겠나?”
“그 말씀은?”
“다케시마를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말이네.”
“하지만 다케시마를 우선 포기하는 것이 제일 현명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말하고 있는 7광구 지역에는 이미 본국 연구소가 확인한 유전이 5개소나 있습니다. 그 유전 예상지역이 일본을 완벽한 산유국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본국의 기술과 자본이 있는 상태에서 자원까지 확보한다면 본국은 아시아 최대의 경제 대국을 넘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미 7광구 지역에서 대규모 유전 지대를 5개소나 확인을 끝낸 상태였다.
“그 역시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네.”
“이제는 결정하셔야 합니다. 우선은 다케시마를 포기하고 차후에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과 경제 상황이 악화되길 기다리신 후에 후일을 도모하는 편이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야마시타 특별보좌관의 말에 일본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예, 그렇습니다. 지금은 남북이 협력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이 돌변하고 야당이 집권하게 된다면 다시 남북의 상황이 악화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백범이 추진하고 있는 두 경제특구도 백지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거기다가 북한이 다시 핵 개발을 시작하게 되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
“예,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네. 그렇다면 우선은 다케시마를 일단 포기하는 쪽으로 결정하겠네.”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일본 정부는 한일어업협정에서 기준이 되는 곳을 울릉도가 아닌 독도로 정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 * *
도쿄 호텔 연회장.
나는 지금 민단 대표들을 만난 후에 바로 장소를 이동해 조총련 단체의 대표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 외교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겠지…….’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북한의 어용단체라고 할 수 있는 조총련 대표를 이렇게 공식적으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과거의 아픔에 의해 같은 민족이지만 국적이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입니다. 일본에서 생활하시는 것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말씀해 보십시오. 국가를 넘어 민족적 차원에서 대한민국 정부나 대한민국 민간단체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지원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태양 그룹이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민간단체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씀입니까?”
조총련 대표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사실 나는 조총련 단체에 공식적으로 만날 것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저들이 이렇게 갑자기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거겠지.’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나를 만나도 좋다고 허락했기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오.”
내가 지원을 하겠다는 말에 다른 사람이 내게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거지라서 대한민국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겠습니까?”
“으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가난했지 자존감이 없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조총련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조총련 대표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내게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말씀해 보십시오. 같은 민족이지 않습니까.”
“좋소. 그렇게 말씀하시니 몇 가지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주는 것이 있어야 나중에 받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나는 민단과 조총련을 어느 부분에서는 하나로 단합이 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학교에 대한 차별이 극심합니다. 그리고 경제적 이유를 빌미로 폐쇄 조치를 취하려는 곳이 많습니다.”
“아, 그렇군요.”
민단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또 민간단체로부터 일정 이상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조총련은 북한에 지원을 받기보다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소. 조선인은 조선말을 배우고 또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 부분은 저도 절실하게 동감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태양 그룹이 해외 장학 사업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약속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에 설립된 대부분 조선인학교를 지원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그 학교들의 설립자가 조총련 계열이라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 이유는 대한민국의 국기가 아닌 북한의 인공기가 학교 교실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을 찬양하는 교육을 꽤 많이 하고 있기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요즘 애들이 더 잘 알지.’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인터넷이 더 활발하게 발전하기에 아무리 북한의 체제가 좋다고 선전해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애들이 더 잘 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도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지상낙원이고 평등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렇게 좋으면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해도 북한에 가서 사는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못 봤다.
“앞으로는 아이들 교육하는 일에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조건이 있습니까?”
내가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하니 조건을 말하는 조총련 대표다.
“아이들 교육하는 일에 조건이 뭐가 있겠습니까? 단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한민족이고 그 한민족이 이제는 두 개의 나라로 나뉘어서 국가를 건설해 살아가고 있다고 가르쳤으면 합니다.”
“그건…….”
“아이들도 대한민국의 존재를 다 알고 있습니다. 조선인학교에 인공기와 태극기가 같이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조총련 대표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어렵겠지…….’
나도 저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
“그것은 어렵소.”
“그러십니까? 그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사실 무엇인가를 주고자 할 때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반감을 사게 된다.
“그 대신에 한반도기를 교실에 걸겠습니다.”
“인공기를 내리고요?”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통일될 한반도이니 한반도기가 좋을 것 같소. 하하하!”
놀라운 일이다.
‘이것까지 지령을 받은 걸까?’
물론 남북관계가 다시 악화가 되면 한반도기는 교실에 걸리지 않게 되고 다시 인공기가 걸리게 되겠지만 말이다.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국가와 이념을 넘어서 민족적으로 지원하시겠다는 말씀에 저는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도 놀라울 뿐입니다. 예, 맞습니다. 이제 서로를 미워할 세월은 지난 것 같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민간 차원에서는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예, 고맙습니다. 백범 회장님.”
조총련 단체 대표가 나를 백범 외교부 장관이라고 부르지 않고 회장이라고 불렀다.
‘아……!’
다시 말해서 저들은 나를 대한민국의 외교부 장관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뭐지?’
나는 총 세 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고 모두 벨 소리가 다르다.
‘그리고 이 벨 소리는……!’
박태웅 회장만 아는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벨 소리다. 그리고 긴급상황이 아닐 때는 걸지 않기로 한 휴대전화이기도 하다.
“잠시 실례를 하겠습니다.”
나는 조총련 대표들에게 말하고 연회장을 벗어났다.
딸깍!
“무슨 급한 일이 발생했습니까?”
나는 연회장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핀 후에 내게 전화를 건 박태웅 회장에게 바로 물었다.
-결론이 났습니다.
박태웅 회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정, 정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저도 보고를 받고 놀라울 뿐입니다. 자세한 말씀을 유선으로는 보고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주변에 일본의 공작원이 있으리라 판단하는 박태웅 회장이었다.
“오늘 밤에 제주에 있는 태양 호텔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예, 그때 추가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뚝!
나는 박태웅 회장의 보고를 받고 전화를 끊으면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우도해양개발에서 유전지대나 천연가스전을 찾게 되면 결론이 났다고 합시다.]
‘결국, 결국 결론이 났단 말이지!’
이 순간 부시 대통령이 제일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 내일 있을 2차 한일어업협정 회담에서 새로운 카드를 손에 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