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74화 (274/415)

# 274

274화 한일어업협정에 돌입하다 (4)

민단 대표를 만나는 연회장.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는 민단과 조총련 단체로 나눠진다. 민단은 대한민국의 지원을 받는 단체이고 조총련은 북한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하는 단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두 단체에서 결속력만 놓고 본다면 민단보다 조총련 계열이 더 단단하다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군.’

내가 전 세계에 혐일 감정을 부추기고 또다시 과거를 거론할 때마다 일본인들은 재일교포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들은 저렇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백범입니다.”

나는 민단 대표들에게 인사를 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냉랭하다.

“하하하, 그러시군요.”

예상했던 그대로 멋쩍은 순간이다.

“장관님, 단도직입적으로 여쭈겠습니다. 젊은 혈기로 또 가문의 내력을 통해서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계시는데 그렇게 하시면 본국에서는 장관님의 인지도가 상승할지는 몰라도, 일본에서 거주하는 민단에 속해 있는 재일교포들은 힘듭니다.”

이해가 되는 말이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자는 취지입니다.”

“이미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잖습니까.”

배상금과 보상금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민단 대표였다.

‘재일교포 3세라고 했지…….’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민단 속에도 일본의 부역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친일적 행동을 하면서 일본 정부에 이로울 수 있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재일교포 3세쯤이면!’

모국에 대한 애국심은 희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민단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하나 조총련 단체의 힘이 약화되면서 또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지원이 줄어들었고 더 이상의 조총련과의 대립이 필요 없다는 판단에 더욱 그 지원은 줄어들고 있었다.

“배상금과 보상금을 정확하게 구분하시는군요.”

내 되물음에 민단의 대표 중 한 명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이제는 과거를 탈피하고 미래로 같이 손잡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 본토에 수십만 명의 재일교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일본에 살아야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소녀상 동상이 그리고 징용자 동상이 세계 각국의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질 때마다 일본의 보수 언론들은 혐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민단에 속해 있는 교포들은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유 없이 불법 해고까지 당했습니다.”

이 자리가 나를 질타하는 자리로 변할 것 같다.

“거기다가 대마도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영토입니까? 일본의 영토잖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억지를 부리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속으로 화가 나는 순간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저들의 불만은 저들의 삶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불만일 것이다.

‘그렇지…….’

내가 만든 모든 상황이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부당해고를 당하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사실 일본 내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아주 심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단은 일본과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소녀상 동상을 철거하시는 겁니까?”

역시 민단 내부에 일본 정부의 부역자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말 참 뭐같이 하네.”

내가 저들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젊은 남자 하나가 민단 대표들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철수 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고 하는데 뭐가 이렇게 불만이 많습니까. 소녀상 동상이 세워졌다고 그래서 우리를 더 차별하는 거라고 생각하냐고요. 지금까지 차별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일본 놈들이 우리를 차별할 구실을 찾은 것뿐입니다.”

“그게 아니라…….”

“이게 다 조국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또 모든 부분에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힘을 가지면 그때는 일본 것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으음…….”

민단 대표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일본 것들은 강한 사람한테 비굴하고 약한 사람한테 가혹합니다. 다들 수십 년을 겪어봐서 알잖습니까.”

“요즘에 와서 더 심해지니까 그렇지.”

“참아야죠. 그리고 이겨내야죠.”

조철수라는 남자가 민단 대표들을 보며 말했고 다시 나를 봤다.

“장관님.”

“예, 조철수 씨.”

“하다 말면 안 한 것보다 못합니다. 이왕 시작했으면 뭐든 제대로 하십시오. 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었던 적은 없었지 않습니까.”

조철수가 내게 말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돈도 없었고 외교적으로 자존심도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돈도 있고 자존심도 있습니다.”

내 말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나를 다시 봤다.

“예?”

“우리의 대한민국은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또 민간차원에서 민단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부당해고를 당하셨다고요? 그런 일은 앞으로 없을 겁니다.”

“어떤 의미죠?”

조철수가 내게 물었다.

“일본에 이미 태양 컴퍼니와 태양 그룹의 현지 법인이 진출한 상태입니다. 일본 기업들이 그렇게 재일교포들을 차별하고 배척한다면 조국의 기업들이 나설 겁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내 말에 모두가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 말씀은!”

“능력을 갖춘 재일교포 2, 3세들은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의 일본 현지 기업에 입사할 수 있습니다.”

“아……!”

어떤 측면에서는 특혜라면 특혜일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능력을 갖춘 사람을 입사시키는 것은 모든 기업이 원하는 것이니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하하!”

“그렇죠. 백범 외교부 장관님께서는 장관이시기도 하면서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의 실질적인 소유자시죠.”

“좋은 말씀이십니다.”

내게 냉랭했던 민단 대표들이 이제는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뭐든 이익을 줘야 웃는군.’

어쩌면 이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점일 것이다.

“그럼 더 소외되고 일본 사회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모릅니까?”

내 편을 들던 조철수의 눈빛이 변했다.

“예?”

“장관님은 돈이 참 많으시니 인생도 참 편하실 것 같습니다. 못할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으니까요.”

“으음…….”

“하지만 우리는 조금 전에도 말한 것처럼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식들도 그렇고요. 그런데 평균적인 일본 사회를 등지고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 아니 장관님의 그늘에서만 살라는 소리 아닙니까.”

정말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조철수다.

“물론 재일교포에 대한 혜택과 배려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재일교포들이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조국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면 됩니다. 개인이 하는 배려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제가 성격이 모나서 입바른 소리를 잘합니다.”

“아닙니다. 옳은 말씀이셨습니다.”

하여튼 오늘 민단 대표들과 만남은 모호한 상황만 만든 것 같다.

* * *

우도 해양 개발이 설치한 17번 해양 플랜트 시설에 있는 사무실.

“헬기 이륙 준비 끝났습니다.”

심해암반수 채굴을 담당하고 있는 17번 플랜트 시설 책임관이 우도 해양개발 회사 사장에게 보고했다.

“이 사실을 아시기면 기뻐하실 겁니다. 하하하!”

두 사람은 분명 흥분한 눈빛이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성과를 낸 겁니다. 해양지질학자들의 조사와 분석에 의하면 이번 17-4포인트에 매장된 유전은 상상을 초월할 규모라고 합니다.”

“그 말만 들어도 내 가슴이 뜁니다.”

드디어 우도 해양개발이 심해 유전을 발견한 거였다.

“그렇습니다. 뿜어져 나오는 원유에 온몸이 범벅이 됐을 때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랬습니다. 백범 회장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되면 우리처럼 흥분하실 겁니다.”

“예, 그렇습니다. 최소한의 매장량이 대한민국이 5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양일 가능성이 크답니다.”

“정말 잘됐습니다. 수백 번이 넘게 실패했지만 결국 이렇게 성공을 하는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왜 그러시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17-4포인트가 한일공동개발 구역에 속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심해 유전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일본이 개발을 반대하고 원유 시추 중지를 요구한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백범 회장님께서 해결하실 겁니다. 우린 우리의 일만 하면 됩니다. 사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견한 이 심해 유전을 일본 정부와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으음…….”

“물론 그것은 기우겠지만 유선이 아닌 대면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17-4포인트 해양 플랜트 시설 시추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선 서울 본사로 가서 박태웅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백범이 그렇게 고대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을 압박할 카드가 하나 더 생겼다는 거였다.

* * *

일본 정부 총리 집무실.

“지금까지 실시했던 대한민국의 모든 외교적 협상에서 이런 예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못 하던 일본 외교부 장관이 일본 총리에게 말했다.

“백범은 예측이 안 되는 인물이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일어업협정을 성사시킬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그게 압박카드입니다.”

야마시타 특별 보좌관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렇지. 대한민국에서 이런 외교부 장관은 없었지. 아니,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없었다고 해야 옳겠지.”

“총리 각하, 이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 중 어느 것을 포기할지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야마시타 특별 보좌관이 일본 총리에게 말했다.

“그 어떤 것을 포기하기가 쉽나? 그리고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역사로 기록될 것이네.”

일본 총리의 말에 야마시타 특별 보좌관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총리 각하, 이대로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으음…….”

“우선 다케시마를 포기하십시오.”

“다케시마를?”

“예, 그렇습니다. 어업협정은 언제든지 한쪽에서 파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칼자루를 쥐고 있습니다.”

“다케시마를 포기하면?”

“한일 공동개발 구역의 개발을 미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개발을 촉구할 가능성이 아주 커.”

“실질적으로 한일 공동개발 구역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기적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양국의 경제협력을 촉구하면서 개발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일 것입니다.”

“으음…….”

“해양 심해 유전은 쉽게 개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핵심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담할 수 있나?”

일본 총리가 야마시타 특별 보좌관을 보며 물었다.

“그것을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시간은 우리의 편이 될 것입니다. 국제해양법이 바뀌게 된다면 대륙붕 연장설은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다케시마를 나보고 포기하라……!”

“한일어업협정은 언제든지 다시 파기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겠네.”

일본 총리로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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