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68화 (268/415)

# 268

268화 내가 대한민국의 외교부 장관이다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위원장의 친필 서신이라고 했소?”

부시는 대선 후보일 때 강력한 미국을 만들겠다고 유권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면서 미국 경제를 더욱 부흥시키겠다고 유세를 펼쳤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필 서한보다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일의 친필 서한에 더 놀랄 수밖에 없다.

‘악의 축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부터 막는 것이 북한을 개방시키는 것에 이롭다. 그리고 두 경제특구를 활성화하는 것에도 이롭다. 하여튼 그 모든 일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이 동의해야 하고 또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어야 할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혹시 내용을 아시오?”

“모릅니다.”

이럴 때는 알면서도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봅시다.”

이 자리는 비공식 접견이기에 부시 대통령의 보좌관이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부시다.

‘우도 해양개발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부시는 자신의 특별보좌관들을 불러야 할 때고 나는 그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예, 여기에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부시의 관심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필 서신은 없다는 것이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부시 대통령이 내게 말했고 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인터폰을 눌렀다.

-예, 대통령 각하.

“모든 보좌관을 소집하시오. 동북아시아 안보담당관도 참석하라고 하시오.”

-예, 바로 소집하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

“잠시만 기다립시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 서신이라면 내가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혼자서 열람할 수는 없소.”

“예, 그러실 겁니다.”

아마도 내용을 확인하면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국의 적에서 북한은 어느 정도 제외될 것이다.

‘그러다가!’

9‧11테러가 발생하게 되면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될 것이고, 이라크 전쟁이 다시 일어나게 되고 아프간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분간 미국의 관심에서 북한은 멀어지게 될 것이고 나와 대한민국은 잠시지만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다.

* * *

북한 평양 주석궁 김정일 집무실.

“일본에 통보했나?”

“예, 위원장 동지께서 영도하신 그대로 일본에 납치사건에 대한 조사와 함께 그들의 처우에 대해 논의하자고 공식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왜 답이 없지?”

김정일은 인상을 찡그렸다.

“공화국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분주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일본 담당 공산당 수뇌부가 김정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래서?”

“조만간 회신이 올 것으로 판단됩니다.”

“밀어붙일 때다. 기다릴 때가 아니라는 거다. 내가 공화국이 최초로 사과를 하겠다면 일본은 당연히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야지.”

“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밀어붙이라는 거야. 공화국에는 주체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본이 필요하다. 안 그런가?”

김정일이 장성택을 봤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 일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 대가리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빚은 받아야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참의원 선거도 있습니다.”

“내 결심이 일본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예, 그렇습니다. 일본 놈들은 선거 때가 되면 공화국을 비방하는 것으로 일본 인민들의 표를 얻었습니다.”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다. 그렇지, 선거지. 선거!”

“예?”

“일본은 공산당이 불법 정당이 아니지 않나?”

“예, 그렇습니다.”

“일본 공산당에게 연락을 취해. 그리고 내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해. 사과하겠다는데 왜 안 받아.”

“예, 알겠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압박하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말하고 백범의 얼굴을 떠올렸다.

“백범 외교부 장관이 미국으로 이동해서 부시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위원장 동지의 친필 서신이 전달될 것입니다.”

“하하하, 코쟁이들이 깜짝 놀라겠군.”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공화국 인민들도 깜짝 놀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예, 그렇습니다. 미군이 직접 공화국에 입국해서 유해를 발굴해 간다는 것은…….”

“군사적으로는 많은 문제가 있지. 또한, 정보 및 첩보를 유출할 수도 있고.”

“예, 그렇습니다. 인민무력부에서는 그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과 전쟁해서 이길 수 있나?”

“공화국 인민들이 모두 총칼이 되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면…….”

“매제.”

“……예.”

“그딴 소리는 아버지 때나 통했다. 지금은 무기로 싸우고 기술로 싸우고 자본으로 싸운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 체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잘 이용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자립적 주체를 이뤄야 한다. 내가 그래서 부르주아인 백범과 손을 잡은 것이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해가 발굴될 곳은 평양 이남이야. 미군이 거기까지 올라왔었지.”

물론 함흥까지 미군은 진격했었다.

“아……!”

“핵시설과는 멀다. 그게 핵심이다.”

“예, 그렇습니다.”

“부시가 내 생각대로 움직여준다면 공화국은 당분간 경제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순간 김정일은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도구로 쓰이고 있는 백범의 얼굴을 떠올렸다.

물론 백범은 김정일을 자신의 도구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렇게 인간은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하는 존재인 것이다.

* * *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부시 대통령의 모든 보좌관이 모였고 동북아시아 군사 및 안보담당관들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부시의 비서실장이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 서신을 펼쳤고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꼴에 한글로 썼구나.’

다른 것은 몰라도 자존심 아니 성깔 하나는 확실한 김정일이다.

“왜 그러시오?”

부시 대통령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그게… 그게 영어가 아닙니다.”

“영어가 아니야?”

당연한 것에 저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아마도 한글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백범 외교부 장관.”

“예, 부시 대통령 각하.”

“가감 없이 정확하게 번역해 줄 수 있겠소?”

부시 대통령이 내게 물었다.

“저는 정확하게 번역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백악관에 한국어 전공자가 있다면 그에게 지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부시가 자신의 보좌관들을 봤다.

“있나?”

“현재에는 없습니다.”

“없답니다. 나는 백범 회장을 믿소.”

사실이다.

원래 이런 자리는 내가 잠시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나를 그대로 두고 저들을 소집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적힌 그대로 읽고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부시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내게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 서신을 내밀었다.

“그럼 읽겠습니다.”

* * *

“……유해발굴을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파병되는 모든 미군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며,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유엔이 인정한 정식국가라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휴전상태를 넘어 평화의 시대로 나가기 위한 첫 번째 조치이다. 이에 부시 미국 대통령은 나의 뜻을 오해하지 말고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해 가라.”

내가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 서신을 읽자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그의 특별보좌관들이 멍해졌다.

‘공황 상태군.’

북한은 미국의 적국이다. 그것도 정말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은 꼴통 중의 꼴통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꼴통 국가의 두목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일이 미군을 파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유해를 수습해 가도 된다고 했으니 저럴 수밖에 없다.

“유권해석 없는 내용 그대로입니까?”

부시 대통령이 내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저번 사전 방북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요청했던 부분입니다.”

“백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요청했다고요?”

더욱 놀라는 부시 대통령이다.

“예, 그렇습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며 휴전국입니다. 그런 긴장된 상태를 완화할 방법을 강구해야 하고 그와 함께 핵무기를 포기하고 세계로 나와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그래서요?”

“그에 대한 1차 답변을 이렇게 김정일 위원장이 친필 서신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놀랍소. 물론 실행이 되기까지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어야겠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하오. 특히 미군의 파병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했다니 놀라울 뿐이오.”

“부시 대통령 각하.”

“앞으로 백범 외교부 장관이 하시는 말씀은 의견 제시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서신을 저도 처음 봅니다. 이것은 북한이 미국에 손을 내미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는 핵을 포기해야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씨 세습을 연장하기 위함이고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체제만 보장된다면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그렇소.”

“예, 그렇습니다. 이번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김정일 위원장의 선물을 기꺼이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물……. 선물이군요.”

부시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선물이지.’

미국은 개척자의 나라이고 군인의 나라다. 그래서 그 어떤 국가보다 군인을 우대하고 존중한다. 또한,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국가다. 그러니 당연히 수십 년이 지났지만,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해를 회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가 되면 당연히 부시의 지지율은 상승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를 그대로 둔 상태로 부시가 동북아시아 안보담당관에게 물었고 그는 힐끗 나를 봤다.

“백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은 정보 제공자라고 생각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북한의 독재자가 보낸 서신은 상당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계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핵 개발을 위한 자금과 시간을 벌기 위한 전술입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이런 상황은!’

아마 미국 백악관의 역사에서 두 번 다시는 없을 일일 것이다.

“북한이 완전하게 핵을 개발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거부할 수가 없는 요청이지 않소?”

“……그렇기도 합니다.”

동북아시아 안보담당관이 대답했고 부시가 나를 봤다.

“정보 제공자로서 백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은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부시 대통령이 내게 물었다.

“그 전에 대한민국 대통령 각하의 친필 서신을 확인해 주십시오.”

“그래야겠군요. 결국은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것 같소.”

부시 대통령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던진 올가미에!’

미국은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올가미가 끝내 한반도의 상황을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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