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63화 (263/415)

# 263

263화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 (3)

2000년 12월 28일, 국회의사당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장.

인생은 정해진 것이 없고 운명 역시 그럴 것이다. 내가 국회의사당에 그것도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내정자로 인사청문회를 받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사실 나는 대한민국 정치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회귀했고 졸부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내가 아는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어 돈 잘 쓰고 그럭저럭 평온하게 살아가고자 했었다.

그런데 내가 회귀자라고 해도 내 운명만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별탈 없을 기다.

나는 국회의사당에 나오기 전에 전임 대통령님의 전화를 받았다.

-예, 감사합니다.

-범아,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은……?

-최소한 다음 대선에는 받은 것이 있으니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나?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명심해라. 그게 제대로 네가 가야 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 저도 그런 길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모,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터질 때까지 돌리고 또 돌려야 되는 기다.

-예, 알겠습니다. 원하는 것에 가까이 가고 싶으면 좀 뒤로 물러나서 떨어져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떨어져 있다고 해도 잊혀서는 안 되는 기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정말 제가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허허허, 입에 참지름을 발랐네. 듣기는 좋다. 그래도 야당이니까 꽤 큰 소리가 나올 거다. 욕봐라.

-예, 알겠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외교부 장관 내정자 인사청문회는 짜고 치는 고스톱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백범 내정자,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제 질문에 답을 하셔야죠?”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야당 의원이 내 군 관련 문제를 질문했었다.

‘알 건데……!’

다행인 것은 내가 미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해병대에 입대해서 제대했었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기억 속에서 그 입대는 진짜 백범의 의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강제적인 요구 때문에 입대했던 것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해병대 병장 만기 전역했습니다.”

“그것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해병대 병사 시절에 선임에 대한 폭행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본 의원이 확인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폭행 사건?

그것도 군 기강이 강력한 해병대에서 후임 병사가 선임 병사를 폭행했단다. 그리고 나는 바로 내가 가진 백범의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망나니는 확실했구나……. 그런데 혈기왕성한 망나니였군……!’

진짜 백범은 망나니처럼 살았지만, 최소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힌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다른 야당 의원들이 내게 군 문제를 질문한 야당 의원을 상황 파악을 못 하냐는 눈빛으로 째려봤다.

‘저 의원 독불장군인 모양이군.’

어떤 조직에서도 꼭 튀는 존재가 있는 법이고, 국민의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받는 나를 밟아서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꼭 있는 법이다.

“왜 답변을 못 하십니까?”

내가 답변을 하지 못하자 질문을 한 야당 의원이 마치 ‘너 딱 걸렸다’라는 눈빛으로 찰나의 순간 미소를 머금었다.

“예, 의원님 답변 드리겠습니다. 해병대 복무 시절 폭행 사건은 있었습니다.”

내가 시인을 하자 야당과 여당 쪽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죠. 군대는 군 기강을 최우선으로 하고 상명하복을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바로 잡혀야 하는 법입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원님, 그 사건에 대해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 확인하셨습니까?”

“뭐라고요?”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여쭈는 겁니다.”

“백범 내정자, 질문은 청문회 의원이 하는 겁니다.”

“예, 그렇습니다. 의원님께서는 단편적인 사건에 대해서만 아시고 핵심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것 같아서 여쭈는 겁니다.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그러니까, 여러모로 입수한 겁니다.”

“혹여 국방부에서 자료를 제공했습니까?”

“뭐라고요?”

“국방부에서는 제가 영창 15일만 다녀온 것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게 어때서요?”

내게 질문한 국회의원이 딱 걸린 순간이다.

“군 병적 관련은 개인정보 보호법상에 따라 본인의 동의 없이는 열람할 수 없고, 국방부라고 해도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서 제 군 병적 관련 사항에 대해 확보하셨다는 것은, 국민의 개인정보가 힘 있는 국회의원이 마음만 먹으면 편법이나 불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되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내 말에 내게 내 군 생활에 대해 질문한 국회의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국방부에서 정보를 제공해 준 것이 아니라 나는 피해자로부터 확보한 정보입니다.”

“조금 전에는 국방부에서 제공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는 의원님에게 절대로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을 겁니다.”

몇 분 만에 말을 바꾸는 국회의원이다.

“왜요?”

“그는 후임 병사 집단 폭행 지시와 가혹 행위 혐의로 군 교도소에서 복역했습니다. 사실 제가 그 선임병에게 매일 구타 당하는 후임병을 보고 더는 참지 못해서 그 피의자와 싸움이 났습니다. 그 싸움 때문에 그의 모든 가혹 행위와 폭행 및 금품 갈취가 밝혀진 사건입니다.”

“으음……!”

“물론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나서지 않았다면 어느 아버지의 아들이 그리고 또 어느 어머니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훌륭하신 해병대 간부님들께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철저하고 완벽하게 실시해 주셨기에 자살을 계획했던 한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래서 싸움질이 잘한 거라는 겁니까!”

할 말이 없으니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야당 국회의원이었다.

‘이제 나서겠지…….’

이제는 내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 그런 상황에서 그냥 있습니까! 청문회를 하려면 제대로 해요.”

여당 의원 쪽에서 지원 사격을 나서기 시작했다.

“내 질문 시간입니다.”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말을 안 하지.”

“뭐라고요!”

이제는 여당과 야당이 싸울 것 같다.

“됐습니다. 다른 의원께서 내정자에게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인사청문회 위원장이 중재했고 그와 동시에 야당 쪽 의원 중 한 명이 그만하면 됐다는 듯 눈치를 주자 야당 의원들이 잠잠해졌다.

* * *

일본 도쿄 외곽에 있는 어느 폐교.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경제가 침체됐고 노령화에 의해 도쿄 외곽 지역에도 빈집이나 폐교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 모였습니다.”

젊은 남자가 일본 신임 수상의 특별보좌관인 야마시타에게 정중히 보고했다.

“갑시다. 본국 정부가 너무 공명정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마시타는 젊은 남자에게 담담히 말하며 사진으로 본 백범의 얼굴을 떠올렸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때가 많지.’

이 순간 놀라운 것은 일본 신임 총리의 특별보좌관인 야마시타가 극우 성향의 사조직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밀양 지역구 박순례 의원입니다.”

여자 의원이다.

‘딱 어떤 질문이 나올지 짐작이 되네…….’

나는 박순례 의원을 바라봤다.

“예, 박순례 의원님.”

“백범 외교부 장관 내정자께서는 이번 정부가 여성가족부를 신설하려고 했다가 포기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대선 공약까지 번복하고 있는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백범 내정자께서는 여성가족부 신설에 어떤 생각이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미리 파악한 박순례 의원은 여성인권 운동가로 인지도를 높인 후에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가 자신의 고향인 밀양에서 2선 의원으로 당선된 여성의원이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뭐라고요?”

박순례 의원이 바로 내게 되물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백범 내정자께서는 여성 인권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외교부 장관 내정자이지 내무부 장관 예정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능력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을 외교부에 활동에 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바탕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능력이 있다면 성별의 차별 없이 중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하고 있으시군요. 이상입니다.”

원래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리고 내게 군 생활 문제를 걸고넘어지려다가 창피만 당한 국회의원 때문인지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는 그리 강도 높지 않았다.

‘그리고!’

최소한 내가 망나니 때 살았던 그 시절에 대해서는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여당 의원이 질문할 차례가 됐다.

“백범 내정자.”

“예, 의원님.”

“현재 나이가 몇 살이시죠?”

이것은 다음에 야당 의원이 나이로 걸고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선수를 치는 것이다.

“예, 만으로 서른 살입니다.”

“허허, 참 젊으시네요.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삼십 대 외교부 장관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백범 내정자가 말한 것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백범 내정자가 하시는 것을 여전히 젊고 혈기왕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륜이라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외교부 소속 공무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독단으로 결정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대통령님께 건의해서 공석이 된 청와대 특별외교 수석의 자리에는 연륜이 있는 분을 요청을 드리겠습니다.”

“쯧쯧, 젊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여당 대표는 마치 회초리를 들겠다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제가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실언입니다. 청와대 특별외교 수석은 공정한 인선 과정을 통해서 대통령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입니다. 외교부 장관이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하겠습니다.”

“예, 의원님.”

“연우 재단, 관순 재단은 정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국가유공자 복지를 위한 재단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두 재단이 설립되면서 그해 연도부터 외부 감사를 실시해 왔고 시민단체의 특별 감사를 받아왔습니다.”

“현재 두 재단의 자산 규모가 각각 5조 원이 넘는 것으로 발표가 됐는데 그 자금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기부한 자금입니다.”

내 말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합쳐서 10조입니다. 그런 거금을 개인적으로 기부했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현금 기부를 했고 그에 따른 증여세도 냈습니다. 하지만 기부자에게 증여세를 추가로 징수하는 세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허, 정말 재산이 많기는 많은 모양입니다. 대한민국의 다른 재벌들도 백범 내정자처럼 기부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순간 대한민국의 다른 재벌들이 의문의 1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내 주가가 더 올라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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