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262화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 (2)
2000년 12월 24일 전임 대통령의 자택 응접실.
“내는 니가 일낼 줄 알았다.”
정말 모처럼 전임 대통령을 찾아갔다. 물론 내가 전임 대통령을 찾은 것은 내가 외교부 장관 내정자가 됐고 인사청문회가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는 꼴이 똑같구나.’
태양 컴퍼니 전략기획실에서 수집한 첩보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내가 외교부 장관 내정자가 됐다는 사실에 긴급하게 대책 마련 준비에 돌입했고, 국내적으로는 야당 전체가 내가 외교부 장관이 되는 것을 막겠다는 당론들을 정했다고 한다.
“제가 무슨 일을 낸다고 그러십니까?”
“누구도 못 한 일을 니가 안 했나.”
두 경제특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다.
“상황이 그런 쪽으로 흘렀습니다. 남북경제협력은 사실 대통령님 때부터 준비하시는 거잖습니까.”
“그래, 그래도 그때는 니가 없었지.”
“예?”
“깡다구 있게 대차게 준비하고 밀어붙일 사람이 없었지. 니가 딱 내 앞에 3년만 먼저 왔으면 대한민국에 IMF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서는 만약은 없습니다.”
“그래, 만약은 없다. 그건 알고 있다. 그래도 니는 내랑 한 약속을 아주 잘 지키고 있어서 고맙다.”
제주도 관광특구 건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대선 공약으로 제주도를 강간 도시로 만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못했다. 그런데 네가 착착 실행해 가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대통령님.”
전임 대통령을 전임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아마도 괄괄한 성격이시니 화를 내실 것이다.
“와?”
“강간이 아니라 관광입니다.”
“그래, 강간!”
“아니, 관. 광입니다.”
하여튼 억센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말실수를 많이 하시는 전임 대통령이시다.
‘정치계에서는 전임 대통령이시고……!’
연예계에서는 호랑나비를 부른 가수의 시벌러브가 있다.
“그래, 귀가 이상하나? 강관, 됐제?”
“관광인데…….”
“내 발음 고쳐주려고 왔나?”
“그건 아닙니다.”
“니도 이제 정치인이 됐네. 외교부 장관을 하려고 전임 대통령을 다 찾아오고, 그런데 백범아.”
“예, 대통령님.”
“원래 전임 대통령을 찾아가는 것은 대선 잠룡들이 하는 행보다. 외교부 장관이 찾아올 필요가 없다.”
사실 그렇다.
“예, 알고 있습니다. 문안차 들렸습니다.”
“요즘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잘하네.”
나를 보며 씩 웃는 전임 대통령이시다.
“하하하, 하하하!”
“온 김에 칼국수나 먹고 가라.”
“예,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야당 쪽에서 저를 어떻게든 외교부 장관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당론을 모았다고 합니다.”
“꼭 하고 싶나?”
“꼭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제가 일을 낸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요.”
“허허허, 허허허, 그래, 그렇지. 그래서 나보고 그러지 말라고 말해 달라고 왔나?”
“예, 그렇습니다.”
“야당의 입장에서는 네가 눈엣가시다. 아니지, 어떤 면에서 애증이지.”
“애증이라고 하셨습니까?”
“처음에 네가 청와대에 왔을 때는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었다. 그리고 니는 나랑 같이 이런저런 일을 했었다.”
“예, 그렇습니다.”
“아마 그때 당 대표자는 너를 보고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니는 어쨌노? 우리 당이 아니라 야당을 지지했지, 물론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누구도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저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지.’
그리고 다음 대통령도 절대 대통령이 못 될 것 같은 사람이 노란 풍선을 타고 대통령이 된다.
‘좋은 사람!’
나는 그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만약 그런 그에게 제대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분의 말로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 떠버리들만 있으니……!’
결국, 위대한 시작만 해놓고 아무런 결실을 만들지 못한 분이시다.
“그래서 왔잖습니까.”
“범아.”
“예, 대통령님.”
“정말 대통령까지 갈 생각이가?”
나를 뚫어지게 보시는 전임 대통령이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최초로 대한민국 정치인에게 내 정치적 포부를 밝히는 순간이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말이다.”
“예, 대통령님.”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라. 아직 나이도 있고 최소한 9년은 남았으니 대권에 욕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마라.”
“예, 그럴 생각입니다.”
“그래야 한다. 암 그래야지. 원래 1등이 제일 먼저 고꾸라지는 법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야당 대표한테 잘 말해 놓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칼국수나 먹고 가라.”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에게도 갈기가?”
“예? 다른 분이라면?”
두 명이 떠오른다.
“있잖아. 전 씨, 노 씨.”
“죽어도 안 갑니다.”
너무 대놓고 내 생각을 말해버렸다.
“쯧쯧, 네가 아무리 특출난다고 해도 대통합 없이는 안 된다. 물론 거기 가면 욕을 먹겠지만 그걸 몰라서 보수당 대권 후보자들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저는 안 갑니다. 제가 존경하는 전임 대통령님이시기에 여기에 온 겁니다.”
“허허허, 주둥이에 참지름을 발랐네.”
또 참기름을 참지름이라고 사투리를 쓰시는 전임 대통령이시다.
“알았다. 우선 칼국수나 묵자.”
“예, 대통령님.”
“범이, 이제는 정 없게 나를 대통령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백부라고 불러라.”
“예?”
“큰아버지? 와 싫나?”
“……싫은 건 아니지만…….”
“싫은 거네.”
“아닙니다, 큰아버지.”
“아이고, 내가 엎드려서 절을 받는다.”
나를 보며 웃으시는 전임 대통령이시다.
* * *
“범아.”
“예, 큰아버지.”
“일국의 외교부 장관은 말이다.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예, 알고 있습니다.”
“너는 모른다.”
“예?”
“가까이 좀 와라.”
“왜요?”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여긴 큰아버지의 자택입니다.”
“여기라고 도청을 못 할 이유가 있나?”
“아무리 그래도 이번 정권은…….”
“내도 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 전임 대통령이시다.
“……예.”
그러고 보니 그렇다.
대한민국 최고 꼴통 집단을 꼽으라면 국정원, 검찰청, 그리고 경찰청이다. 물론 그들보다 더 꼴통인 존재들이 국개의원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곧 내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그런 존재들을 상대해야 한다. 아마 지금쯤이면 내 신상에 대해 탈탈 털고 있을 것이다.
‘으음……!’
누구나 털면 먼지가 나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백범의 몸에 회귀하기 전이 걱정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망나니로 살았으니까.
“가까이 안 오고 뭐하노?”
“예.”
나는 전임 대통령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내 귀에 속삭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제?”
“큰, 큰아버지…….”
“9년이라는 세월이 참 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3년쯤 잘 버티고 다음 정권도 너를 그 자리에 앉혀 주면 내가 하라는 그래도 움직여라.”
“아…….”
“와?”
“그게 될까요?”
“안 될 이유부터 찾나?”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또 한 번 놀랄 일이기는 하지. 내 머리 팍팍 잘 돌아가제, 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와, 내한테 이야기를 들으니 그 자리에 앉고 싶나?”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칼국수 같이 먹어준 값은 했다.”
“예, 큰아버지.”
“그리고 야당 대표한테도 잘 말해 놓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야당 대표가 대쪽같이 칼국수는 싫다고 하지만 내가 부르면 안 올 수는 없을 기다.”
“예, 감사합니다.”
“가바라.”
“예?”
“너 바쁘잖아.”
“예, 큰아버지. 다음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알겠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전임 대통령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 순간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에서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그와 비슷한 정치적 행보를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 *
전임 대통령의 식당.
백범에게 말한 그대로 성격 급한 전임대통령은 바로 야당 대표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야당 대표는 여전히 대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에 바로 전임 대통령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당론을 정했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항상 그렇듯 누구도 전임 대통령을 전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떨어뜨리는 쪽으로 몰고 갈 거라면서?”
“예, 그럴 계획입니다. 지난 대권에서 우리 당이 정권을 잃은 것에 대한 일정 부분의 지분을 백범 내정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지.”
“그래도 서른한 살밖에 안 된 청년이 대한민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부 장관이 된다는 것은 연륜적인 측면에서도 능력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합니다.”
당론 결정 회의를 할 때 야당 대표는 백범의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측근 의원들에게 말했었다.
“갸가 능력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예, 사실 그렇습니다. 연륜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행보가 반일적인 행보가 아주 큽니다.”
“이보시게. 다음에 대권 도전 안 할 생각이야?”
“예?”
“사실 시쳇말로 국민 정서는 선거에서 반일이 잘 먹히잖아.”
“그 말씀은……?”
“우리 편이었다가 저편이 됐지만 그래서 우리 편이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아……!”
“이제 3년도 안 남았어요. 다음 대권에 욕심이 없으면 그냥 당론대로 몰고 가고 아니면 잘 생각해, 생색만 내란 말이오.”
“생색만 내라는 말씀입니까?”
“그래도 명색이 외교부 장관 인선 청문회이니까.”
“대통령님, 사실 백범 회장의 행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무슨 문제?”
전임 대통령이 인상을 찡그렸다.
“서른 살 전까지 그의 개인적 생활이 아주…….”
“아주 뭐?”
“망나니였습니다.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것 없는 망나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럼 개과천선을 한 거지. 젊은 사람 상처를 내서 다음 대선에 승리할 것 같아?”
“으음……!”
“잘 생각해 보라고. 네 번 만에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는데 한 번 떨어졌다고 못될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갸를 옆에 둔다고 해서 대통령이 꼭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옆에 안 두면 절대로 안 될 거니까.”
“그 말씀은……?”
“나는 갸 편이거든. 오늘부터 삼촌 조카 하기로 했으니까.”
“백범 내정자가 다녀갔습니까.”
“대표한테 말 좀 잘해 달라고 합디다. 어쩌시겠소?”
전임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물었고 야당 대표는 한참이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따르겠습니다.”
“허허허, 그럴 줄 알았지. 대통령 병에 걸리면 약이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