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261화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 (1)
2000년 12월 24일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대한민국 최연소 외교부 장관 아닙니까?”
백범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외교부 장관 내정자로 지정된 것은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백범 청와대 특별외교 수석은 만 30세입니다. 사실 예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때 대통령 출마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도 지지율 여론 조사에 포함될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경제인입니다.”
“이제는 정치인이죠.”
미국 대통령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제는 정치인입니다.”
“이러려고 부시 당선인에게 그렇게 공을 들인 걸까요?”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공화당으로서는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상원의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거기다가 부시 당선인과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백범 외교부 장관 예정자로서는 본국과의 외교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사항들은 부시 행정부에서 백범 외교부 장관 예정자에게 양보해 줄 거라는 것이군요.”
“예, 그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떤 성향의 인물입니까?”
“백범 외교부 장관 내정자는 민족주의 성향이 있는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급진세력에 속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한 군사력을 가진 대한민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CIA의 인물 보고서가 제출된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거기다가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가문 출신으로 그에 따라 적극적으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판단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많은 준비라고 했습니까?”
미국으로서는 일본도 동맹국이고 대한민국도 동맹국이기에 그 동맹국들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국익에 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11개의 공기업을 민영화했습니다. 그중 제주공항과 김포공항은 백범 외교부 장관 예정자가 경영하는 태양 그룹에 의해 민영화가 됐습니다.”
“그래서요?”
미국 대통령은 그게 무슨 상관이 있냐는 눈빛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제주공항과 김포공항 앞에 조성된 민간 공원에 태평양전쟁 성노예 동상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강제징용자를 추모하는 거대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놀랍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변한 미국 대통령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제주공항은 민간경영 공항이기는 하지만 국제공항이고, 제주도는 대한민국에서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한 관광지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이착륙하는 모든 출입국자들이 그 동상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허허허,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픈 일이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민간 부지에 설립된 추모 동상이기에 그 어떤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도 대한민국으로서는 조치해 줄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그 추모 거대 동상을 철거해 줄 이유도 없고요.”
“그러고 보니 백악관 앞 몇 개의 건물이 철거되던데?”
“예, 그렇습니다. 철거되는 건물은 모두 백범 회장이 경영했던 블랙홀 그룹이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시에 민간 공원 설립을 신청했고, 태평양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공원이 설립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일본 정부는 워싱턴시에 민간 추모 공원 설립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을 제출했지만 거부당한 상태입니다.”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내정자가 되었으니…….”
미국 대통령은 인상을 찡그렸다.
“한일관계는 경색일로 향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두 국가가 모두 본국의 최고 동맹국이기에 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에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북아시아 정책에 대한 변화가 필요해도 그것은 다음 정부의 몫일 겁니다.”
사실 클린턴 정부의 집권 기간은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는 합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부시 정부는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을 동북아시아의 동반자로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역시 부시 행정부의 몫입니다. 하여튼 백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내정자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범을 떠올렸다.
-모나카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순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비공식적으로 백범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사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백범과 백범이 경영하는 그룹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백범을 비공식적으로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귀에 담아 들어야 했는데……!’
물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모나카 르윈스키와 성 추문을 일으켰다. 그 이후로 심각하게 개인적인 명예의 손상을 입은 그였지만 모나카는 그 성 추문 사건을 통해 자서전을 집필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 * *
일본 정부 신임 총리의 집무실.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새롭게 일본 총기가 된 신임 총리는 백범이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예정자가 됐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으음……!”
“그는 혐일의 대표자입니다. 강력한 민족주의자이면서 일본을 증오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상황을 본다면 앞으로 대한민국과의 외교적인 마찰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니 골치가 아픈 겁니다.”
“또한, 한일 공동개발 구역에서 심해 심층수를 채취한다는 명분으로 가스전과 유전 개발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아마도 부시 행정부가 정식적으로 출범하게 된다면 한일 공동개발 구역에 대한 개발 재계를 강력하게 요구해 올 것입니다.”
일본 내각 최고위층들은 너 나 할 것이 없이 백범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곧 출범할 부시 행정부는 우리보다는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줄 공산이 크니까.”
“예, 그렇습니다. 전임 총리의 오판이 본국의 상황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임 일본 총리의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아직 그가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벌써 걱정하실 것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신임 일본 총리의 측근인 참의원 한 명이 아부하듯 일본 총리에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인사청문회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가 열리면 없던 잘못도 만들어져서 낙선시킵니다.”
“그것 말고는 우리에게 이로운 카드가 없다는 겁니까?”
신임 일본 총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참의원에게 되물었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막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정간섭이라는 분위기가 대한민국에 조성된다는 것을 모르시오.”
“으음…….”
“총리 각하. 지금은 백범이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되는 것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 있습니다.”
그때 아무 말도 없던 외무성 장관이 신임 총리를 보며 말했다.
“더 중대한 사안이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내국인 납치 사건에 대한 사과와 그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논의하자고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뭐라고요?”
일본 신임 총리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내국인 납치 사건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연락해 왔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왜……. 왜 갑자기?”
일본 신임 총리는 자신의 특별보좌관을 봤다.
“총리 각하, 북한의 공식적인 사과문 발표 이후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북한이 공식적으로 본국 정부에 사과한다면 이제는 본국이 북한에 사죄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36년간의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금 지급 문제가 달린 수교 정상화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래서 아무나 대통령이나 총리의 특별보좌관을 하는 것이 아니다.
“뭐, 뭐라고 했소?”
“북한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게 된다면 북한의 배상금 요구를 거부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순간 백범이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되는 일보다 더 큰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드는 일본 총리였다.
“이런 망할!”
“지금까지 북한에서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한국전쟁도 여전히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북한 정부입니다.”
“그러니까, 왜 갑자기!”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는 일본 신임 총리였다.
“짐작건대 두 경제특구 조성에 대한 자금 마련을 위한 조치라고 판단됩니다.”
“그 망할 놈의 경제특구!”
“예, 그렇습니다. 그때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특별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일본 총리는 정부 핵심 요인들을 봤다.
“이번 문제를 해결한 방법을 찾아내시오. 이번 일이 이대로 북한의 의도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내년 참의원 선거에 승리할 카드 하나를 잃게 되는 겁니다.”
일본은 선거할 때마다 혐한이나 극우를 주장하면서 또 북한을 공격하는 카드를 사용했었는데 그런 카드 하나가 사라지니 답답할 수밖에 없는 일본 총리였다.
‘결국, 선거만 생각하는군……!’
이 순간 제일 답답한 사람은 이 모든 상황을 분석해 낸 일본 총리의 특별보좌관이었다.
‘개들이 정치하니 나라라 이 모양 이 꼴이다!’
그저 답답한 일본 총리의 특별보좌관이었다.
‘나, 야마시타가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
그 순간 일본 총리의 특별보좌관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 * *
야당 대표의 집무실.
“서른한 살짜리가 청와대 특별외교 수석이 되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공식적인 외교부 장관 내정자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곳이든 혈기왕성하고 앞뒤 안 가리는 다혈질적인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고 그런 사람들은 꼭 냄비처럼 무슨 일이 발생하면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 겨우 서른한 살입니다. 아무런 연륜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을 대한민국의 외교를 책임지는 외교부 장관에 앉힐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 청문회는 당 차원에서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백범 외교부 장관 내정자가 정치적 연륜이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야당 신진 의원이 다혈질적인 야당 의원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 청문회를 그냥 넘어가자는 겁니까?”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막아야 할 일이지만 쉬운 청문회가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막아야 합니다.”
그때 목소리만 높이는 야당 의원을 야당 대표가 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예, 그렇습니다. 대표님.”
“그런 방법이 뭔데요?”
“예?”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방법을 알면 내게 말해 주시오.”
“대, 대표님…….”
“전임 대통령께서는 스물여섯 살에 국회의원이 되셨습니다. 물론 국회의원과 외교부 장관은 다르죠.”
목소리만 높이던 야당 의원을 질책하듯 말한 후에 이곳에 모인 야당 의원들을 바라보는 야당 대표다.
“중요한 것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서 이번 행정부의 독단적인 행보를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햇볕 정책의 맹점들을 국민이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과 백범이 추진하고 있는 두 경제특구는 북한에 무기를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창구가 될 겁니다. 그 무기들은 반드시 우리에게 향할 겁니다. 그게 이번 청문회의 핵심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어떻게든 백범 회장의 비리 사실을 찾아내세요. 그래야 제대로 승부가 날 겁니다.”
야당 대표는 이 자리에서 결전을 다짐하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