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235화 사전 방북, 장성택을 만나다 (1)
2000년 6월 5일, 북경 공항 귀빈실.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북경공항에 도착했고 대한민국 외교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방북단의 비밀유지를 위해 중국 당국에 비밀유지를 요청했다.
그에 따라 나와 비서실장이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 비행기를 탈 때까지 우리의 이동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가 됐다.
그 철저한 비밀유지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거지만 말이다.
하여튼 현 정부는 미국의 눈치도 보면서 중국의 눈치도 보고 있기에 샌드위치에 낀 늘어진 치즈처럼 흐물흐물한 것 같다.
‘나라면…….’
사전에 북한 당국과 협의해서 연길공항을 통해서 중국으로 이동했다가 차량을 이용해 단둥으로 이동해서 북한으로 들어갔을 것 같다. 그래야 중국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입수하지 못할 것이니까.
‘이렇게 되면 다 알게 되는 거지.’
아마도 중국 고위층들은 청와대 비서실장과 내가 방북한 것에 대해 지금쯤이면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터다.
남북의 정상들이 회담하는 것보다 남북의 실무진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해 고심할 것이다.
“이곳에서 대기하다가 북한 측에서 제공하는 고려항공 소속 항공기를 타고 평양으로 이동하게 될 겁니다.”
비서실장이 내게 말했다.
“그거 오래된 비행기죠?”
“예, 그렇습니다.”
“위험하겠군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낡은 비행기는 타기 싫은데…….”
나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
‘내가 중국 정보부 소속이라면…….’
이 귀빈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 대신에 중국 고위층이 머리가 아플 수 있는 거짓 정보를 흘려야 한다. 그래야 신의주경제특구 건설 추진이 쉬워지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낡은 비행기라고는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왜 비행기 이야기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이 귀빈실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생각하는 눈빛이다.
“이번 실무자 사전 방북을 통해서 신의주 경제특구에 대한 사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북경공항 귀빈실에서 대한민국 정부 일급비밀인 신의주경제특구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말하자 청와대 비서실장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가 왜 이러냐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곤 후에 자신의 손을 귀에 대며 이곳 어느 곳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내게 행동으로 보여줬다.
‘속이기 위해서는 진실을 흘리는 법이지.’
사실 신의주경제특구는 어떤 측면에서 중국 정부의 동의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남북이 단독으로 경제특구를 설치한다고 해도…….’
그 경제특구에서 만들어지는 물품들의 중요 소비지가 중국일 것이니 당연히 동의를 구해야 할 일이다. 거기다가 이동을 위한 수단 강구도 당연히 필요하다.
신의주에서 김포공항으로 직행으로 올 수 있는 공항을 건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백범 회장님…….”
“만약에 중국 정부가 남북 신의주경제특구를 반대할 것에 대해 대비하려 태양 컴퍼니 상임이사인 박태웅 이사를 모스크바로 보냈습니다.”
“모스크바라고 하셨습니까?”
적을 속이는 상황인데 청와대 비서실장은 놀란 눈빛으로 변해 내게 되물었다.
‘아군도 속이겠군.’
그렇다면 적도 속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중국은 대국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곧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강대국이 될 겁니다.”
이것은 도청하는 중국 요원들이 중국 공산당 고위층에게 전하라고 하는 소리다.
‘물론 내가 아는 미래에도 그렇게 되지만…….’
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생각 없고 철없는 아이가 갑자기 자기 손에 권총이 쥐어져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줄 알게 되면서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중국은 망나니처럼 날뛰게 된다.
“백범 회장님께서는 그렇게 예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여튼 신의주경제특구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중국 정부의 완벽한 동의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경제특구에서 생산되는 공산품들의 주요 소비지가 중국이 될 테니까요.”
내 말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왜 자꾸 이런 소리를 하냐는 눈빛이다.
“만에 하나 중국 정부가 신의주경제특구 건설에 부정적인 생각하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스크바에……?”
정말 내 말에 속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그렇습니다. 박태웅 상임이사가 모스크바로 출발했죠. 속담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서 말입니다. 중국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러시아는 시베리아에서 채굴되는 천연가스가 넘쳐나지 않습니까.”
“아……!”
“북한 나진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해서 나진경제특구도 차선책으로…….”
* * *
중국 장쩌민 주석의 집무실.
“대한민국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방북의 비밀유지를 요청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주석 각하를 신경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쩌민 중국 주석의 보좌관이 장쩌민에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예, 그렇습니다. 이번 사전 방북에서 중요한 사항은 태양 컴퍼니의 회장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방북 예정이라는 겁니다.”
“백범이라고 했나?”
백범은 이미 대후 자동차를 인수해서 태양 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한 상태로 중국 현지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백범의 태양 그룹과 미국 국적이지만 태양 컴퍼니의 막강한 자본력을 장쩌민 주석도 보고 받은 상태이기에 상당하게 기대하고 있는 상태였다.
“예, 그렇습니다.”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라는 곳의 자본력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태양 자동차 중국 현지 공장 용지를 찾고 있는 상태고 본국과도 긴밀하게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합작회사?”
“예, 그렇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 지금의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세계의 시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만큼 경제력이 상승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할 때마다 빈부의 격차는 심해질 것이니 그 자체가 공산당 정권 유지의 불안요소가 될 수 있지…….”
찰나의 순간 장쩌민 중국 주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그는 공산주의식 시장경제를 주장했던 적이 있었던 인물이다.
‘인민들 간의 빈부격차가 정권 붕괴를 촉발할 수도 있다.’
사실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청나라와 중화민국에서 빈부의 격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따라 농민이 분노했고 끝내 공산주의 정부가 건설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
특별 보좌관이 장쩌민 주석에게 되물었다.
“아니야. 그건 그렇고 백범 회장이라는 자가 지난번에……?”
“예, 그렇습니다. 해양개발공사의 고위층에게 7광구 지역의 천연가스를 채굴해 줄 것을 비밀리에 요청했던 그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담하지. 아주 대담해.”
묘한 미소를 보이는 장쩌민이였다.
“그렇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일 공동개발구역의 개발을 중지한 것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일본 정부는 중일 공동개발구역에서도 독단적으로 개발 중단을 발표했지.”
“하지만 현재 일본 정부와 상관없이 단독으로 중일 공동개발구역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내는 상태입니다.”
“이제 중화인민공화국은 누구의 눈치도 볼 것이 없다. 힘을 가지게 되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중국 주석은 힘의 논리를 강조하듯 말했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내용이 아니라 실무자들이 접촉해서 어떤 형태의 경제협력을 끌어내냐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 분석해 내는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고 그에 따라 상당한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상태다.
“예, 북경공항 귀빈실에 도청장치를 사전에 설치해 놨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특별한 이야기가 나오겠어?”
“그렇기도 합니다.”
“하여튼 북한 정부의 친중세력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마지막으로 미래에도 조선에 완벽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은 최상의 돌발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장쩌민 중국 주석의 말에 그의 특별 보좌관의 눈빛이 변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 * *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항.
백범이 말한 것처럼 박태웅 상임이사는 백범의 지시 때문에 러시아에 있는 모스크바 국제공항을 통해서 러시아에 입국했다.
-중국 정부를 속일 겁니다.
백범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박태웅 상임이사였다.
-제가 러시아로 이동하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를 속이는 일이지만 또 우리의 일을 하는 겁니다.
-으음…….
-중국 정부를 속이고 압박하는 것이지만 또 속이는 것이 아니라 차후의 계획을 이번에 진행하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 저와 이번에 러시아 대통령이 된 푸틴과 비밀리에 만날 수 있게 준비하셔야 합니다.
-회장님,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쉬운 일이었다면 박태웅 상임이사에게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쉬울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지하자원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니 투자를 받아서 제대로 된 공업화를 이루고 싶을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여튼 박태웅 상임이사는 백범의 계획대로 중국 정부를 속이고 압박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한 상태였다.
“상임이사님.”
박태웅 상임이사를 수행하고 있는 러시아 전문가가 박태웅 상임이사를 불렀다.
“예.”
“내일 러시아 정부 고위층과 가까운 자와 접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까운 사람의 환심을 사야 하고 또 고위층의 환심도 사야 하고 끝내는…….”
“제게 말씀하신 그대로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이죠.”
“그러니까요. 그건 그렇고 푸틴은 어떤 성향입니까?”
“과시욕이 강한 상남자 스타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치밀한 부분도 있고 추진력 또한 엄청나다고 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러시아가 전 세계에서 땅이 제일 넓은 나라죠?”
“그렇습니다. 그래도 쓸모 있는 땅이 얼마 없습니다.”
러시아 전문가의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쓸모 없어 보이는 땅에 천연자원이 가득합니다.
이 순간 박태웅 상임이사는 백범이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결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북한의 이해관계를 이용해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겁니다.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포커를 치다 보면 자기가 가진 패만 보고 치는 얼간이들이 종종 있죠. 그런 얼간이로 만들면 됩니다. 제가 상황을 그렇게 몰아갈 생각이거든요. 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지……!’
백범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박태웅 상임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