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230화 부추기다
2000년 2월 2일, 일본 자동차 회사회장실.
“드디어 매케인 후보가 2월 1일에 뉴햄프셔주에서 치른 경선에서 49%의 지지를 얻어내어 부시 후보의 기세를 꺾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은밀한 지시 때문에 일본 자동차 기업은 시쳇말로 비밀리에 부시 낙선 운동을 펼치고 있었고 매케인 후보를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
일본 자동차 그룹 회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보고를 받고 말했다.
“바우어가 경선을 포기했고 바우어의 표는 매케인에게 이동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이제 3명의 경선 후보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부시 후보가 공화당 대선 주자가 되겠지?”
“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경선에서 바람몰이하지 못한다면 대선에서는 패하게 될 겁니다.”
보고자는 부시가 대선에 실패할 거라고 확신하듯 말했다.
“만약에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현재 앨 고어 후보가 압도적입니다.”
“아직 경선일세. 만약 부시 후보가 앨 고어 후보를 꺾는다면 그리고 우리가 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언론을 이용해 부시 후보의 젊은 날을 끄집어낸 사실을 부시가 안다면?”
일본 자동차 그룹 회장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겠지.”
“그렇기는 하지만 현재 앨 고어 후보가 대선에 당선될 확률이 70% 이상입니다.”
“확률은 확률일 뿐이야. 본국 정부가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하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라도 앨 고어가 대선에 낙선한다면 일본 자동차 업계는 부시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야…….”
자동차 그룹 회장의 말에 이곳에 모인 모든 중역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니 반드시 앨 고어 후보가 미국 대통령의 당선되어야 해.”
“예,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니, 일본 정부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일본 자동차 그룹 회장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 * *
2000년 2월 3일 부시 후보의 공화당 경선 캠프 사무실.
“낙담하실 것 없습니다.”
2월 1일 2차 경선 투표에서 부수는 매케인에게 패했다.
“나도 크게는 낙담하지 않소.”
“공화당 경선에는 당연히 승리하시어 공화당 후보가 되실 겁니다.”
내 말에 부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선도 중요하지만 대선 본선 투표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블랙홀 그룹과 큐브가 적극적으로 나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제는 운명 공동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는 고자질할 때다.
“압니다. 백범 회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알아요.”
“예, 이제는 아실 겁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자동차 그룹을 이용해 후보님의 낙선 운동을 제대로 펼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내 말에 부시 후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보좌관에게 보고를 받았소. 일본 정부가 엄청난 실수를 하는 겁니다. 물론 백범 회장께서도 차후에는 민주당에 크게 당하시게 될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언젠가는 민주당이 대선에 성공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내가 보유한 그룹들에 대한 보복 조치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일본 정부는 7광구 지역의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런 일까지 벌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도 해양개발회사가 7광구 지역에서 해양 암반수를 채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우도 해양개발회사의 지분 중 30%를 부시 가문이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요. 그런데 정말 그곳에서 심해 유전이 발견될까요?”
부시의 눈빛이 변했다.
“예, 꼭 발견될 겁니다. 후보님께서 대선에 성공하신 후에 7광구 지역으로 이동해 채굴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면 일본 정부는 미국 대통령이 된 부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시는 내게 받은 것이 있으니 일본 정부에 동북아시아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라도 한일 공동개발 구역의 개발에 착수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더 큰 미끼를 던져야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부시 후보를 봤다.
“후보님.”
“내게 더 할 말이 있습니까?”
“부시 후보님께서는 미국 대통령이 반드시 되실 겁니다.”
내 아부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가 앨 고어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될 거라고 하지만 저는 후보님께서 대통령이 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게요. 나에 대한 백범 회장의 이 끝없는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미국 대통령이 되실 것이니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고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했소?”
“예, 그렇습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해 깊은 고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러시아까지 끌어들여서 내게 하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고 있습니다. 유럽에 많은 나라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죠.”
“러시아에는 그 자체가 무기입니다. 유럽에 공급되는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게 7광구를 개발해야 합니다. 7광구에서 막대한 천연가스를 발견하게 된다면 러시아는 더 천연가스를 이용해서 유럽을 압박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7광구 지역에서 막대한 천연가스전을 발견한다고 해도 수송관을 설치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국가의 승인도 필요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백범 회장께서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되신다면 동북아시아의 균형 발전과 에너지 개발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몇 마디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때가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바로 확답을 듣지 못했다.
원래 정치인은 이런 존재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태양 컴퍼니의 전략 기획실의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이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물론 부시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보고는 받았습니다.”
“그러시겠죠.”
“하여튼 백범 회장은 정말 야망이 큰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부시를 만난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후보님.”
“오늘 내게 할 말이 참 많은 모양입니다.”
“저는 미국을 위해 그리고 미국 에너지 수급 및 무기화를 위해 셰일 가스 개발 연구소를 설립하고자 합니다.”
내가 이렇게 아부를 잘하는 인물인지는 나도 오늘 알았다.
“미국 에너지 수급과 무기화를 위해?”
“그렇습니다. 중동이 석유를 무기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는 석유를 무기화한 중동 국가들의 담합 때문에 석유 파동을 경험해야 했었다.
“셰일 가스 채굴 기술만 발전시킨다면 미국이 세계 에너지 판도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셰일 가스에 대해서는 나도 보고받았지만, 현재 중동 지역에서 채굴하는 비용보다 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고 했소. 경제성이 없다고 합니다.”
“기술 개발이 그 경제성을 끌어낼 것입니다.”
내 말에 부시 후보가 알았다는 눈빛을 보였다.
“후보님께서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알겠소.”
정말 오늘은 제대로 아부만 하는 날이다.
‘셰일 가스와 셰일 석유 채굴 기술을 확보하면!’
어느 정도 에너지 패권에 나 역시 발을 담글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시 후보에게 말한 그대로 셰일 가스 및 셰일 석유 채굴 기술 개발 연구소를 미국에 설립했고 그와 함께 에너지 회사 역시 태양 컴퍼니의 이름으로 설립했다.
‘우도 해양개발과 나중에 합병한다.’
이제 내가 가야 할 곳은 중국 북경이고 중국 북경으로 날아가서 중일 공동개발 구역에 대해 중국 공산당 고위층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다.
* * *
중국 북경에 있는 특급 호텔 특실.
“태양 컴퍼니 및 태양 그룹 회장인 백범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투자가라는 간판은 중국 공산당 경제계획 핵심 고위층을 이렇게 만나게 해줬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중일 공동개발구역의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책임자이기도 했다.
“만나서 반갑소. 대대적인 투자를 해주시겠다니 본국 입장에서는 감사할 뿐이오.”
거만하다.
그리고 권위주의적이다.
“그럼 이제 본론을 이야기합시다.”
그는 바로 내가 어떤 투자를 중국 현지에 하겠냐고 물어왔다.
“중국 해안 도시에 석유화학 에너지 공단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석유화학 에너지 공단이라고 했소?”
거대한 석유화학 에너지 공단을 건설하겠다는 말에 중국 공산당 고위층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의 공산품 생산국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소.”
“그러니 에너지의 완전한 자립화에 착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너지의 완전한 자립화?”
“예, 그렇습니다. 유전 및 가스전 개발에 착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눈빛이 달라졌다.
“외국계 기업에 에너지 개발권을 부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소.”
“알고 있습니다. 에너지 개발권을 원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의도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중국 해안 도시 중 한 곳을 택해서 석유화학 에너지 공단을 설립하는 것에 투자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에 대한 조건을 말하라는 겁니다.”
“중일 공동개발구역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주십시오.”
“거긴 일본 정부가 독단적으로 개발을 중단했소.”
“언제부터 대국 중국이 일본의 눈치를 봤습니까?”
중국인의 거만한 자존심을 슬쩍 건드리는 순간이다.
“으음……!”
“일본은 앞으로 중국과 대한민국에 지속해서 해양영토 분쟁을 일으킬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중일공동개발 구역에 대한 개발을 중단한 것은 2028년 세계 해양법이 바뀔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요?”
“개발에 착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해양영토인 7광구 북단에서도 가스전 개발에 착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국적은 대한민국이기에 내가 이런 요구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중국 고위층 관계자다.
“뭐, 뭐라고요?”
“일본은 2028년까지 버틴 후에 세계 해양법이 개정되면 중일 공동개발구역과 한일 공동개발구역에 대해서 자신들의 영토라고 선포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전에 해양 유전 및 가스전 개발에 착수해 주십시오.”
“대중국에 도둑질을 시키는 겁니까?”
“국익을 위해서는 못 할 짓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중국 에너지 공사가 중일 공동개발구역에서 가스전 개발에 착수하고 7광구 인근 지역에서 가스전 개발에 착수해 주신다면 태양 컴퍼니는 중국 해안 도시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에너지 공단을 건설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정유시설도 건설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중일 공동개발 구역에서 확보된 석유와 7광구 지역에서 채굴되는 해양 석유를 그곳에서 정제하겠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백범 회장.”
“예, 말씀하십시오.”
“이게 개인적인 입장입니까?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입니까?”
그가 나를 보며 물었고 나는 그를 보며 웃었다.
“당연히 저의 개인적인 입장입니다. 저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내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가 한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다.”
“무엇입니까?”
“지금 중국은 헐값에 희토류를 일본과 유럽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헐값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희토류가 없으면 전자기기를 생산 자체를 못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헐값에 판매하고 있으십니까? 희토류를 채굴할 때 엄청난 환경 파괴가 일어나는데 그것까지 감수하면 이렇게 헐값에 파실 이유가 있으십니까?”
한마디로 나는 희토류를 무기화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으음…….”
“저는 그저 의견만 제시했을 뿐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내 주석 각하께 보고하겠소.”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러니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