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225화 대통령을 다시 만나다 (3)
청와대 본청 건물 밖.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다음 행보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를 따라 나왔다.
“백범 회장님.”
자신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쫓겨 난 것에 대해 앙금이 있는 눈빛이다.
“예, 비서실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외람된다고 생각하시면 하지 마세요.”
“뭐, 뭐라고요?”
내 말에 당황한 그다.
“스스로 외람되다고 생각하시면서 왜 제게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백범 회장.”
“예. 비서실장님.”
괜한 사람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생겼다.
“백범 회장 당신의 개인적인 판단과 행보가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고집불통이시군요.”
“뭐,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비서실장께서 여기까지 나오셔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백범 회장께 예의를 갖추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군요. 그래도 여기까지 나왔으니 할 말은 해야겠소.”
“하십시오.”
“대한민국 경제는 여전히 위태로운 상태고 일본 기업들의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소이다. 일본과의 과거를 입고 경제협력을 증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대부분의 대한민국 경제인들의 생각입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백범 회장의 행보 때문에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아십니까?”
“왜죠?”
“뭐라고요?”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들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단체를 은밀히 백범 회장께서 후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왜 비서실장께서 제게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밉지만, 같이 손잡고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그냥 미워만 하겠습니다.”
“백범 회장님!”
“비서실장님, 앞으로 선글라스 꼭 착용하고 다니십시오.”
“뭐라고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변하는 비서실장이다.
“과거 유신 정권의 비서실장인 차지철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나는 새도 막 떨어뜨리고 그랬다면서요?”
“이, 이보세요.”
내 말에 당황하는 비서실장이다.
‘이 새끼, 친일파네.’
대한민국이 일본에 해방이 됐지만, 여전히 이렇게 친일파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청와대에 그런 친일파가 비서실장으로 있다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대통령께서……!’
정확한 미래 기억은 아니지만, 일왕에게 머리를 숙였던 사진이 떠올랐다. 물론 외교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통령이 머리를 숙이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머리를 숙인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오늘 비서실장께서 하신 말씀은 꼭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이 순간 이 실장과 이신이 떠올랐다.
“으음…….”
“지금은 대한민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곧 역전이 될 겁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기술도 자본도 대한민국 경제는 일본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 사실을 백범 회장께서는 젊은 혈기로 망각하시고 민간경제 분야 협력까지 부정적으로 작용시키고 있습니다.”
말 참 더럽게 어렵게 한다.
“제가 드린 충고 잊지 마십시오. 결국, 대한민국은 수출국입니다. 그러니 일본과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 오늘을 꼭 기억하죠.”
분명한 것은 저 인간은 청와대에 없어야 할 인간이라는 것이다.
* * *
이지박 서울 시장 후보 선거 캠프.
“후보님의 선거 전략이 적극적으로 직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 여론이 재벌 타파에 몰리고 있습니다.”
서울 시장 후보 선거 보좌관이 이지박을 보며 말했다.
“상대 후보인 문재한 후보와 백범 회장은 문 후보가 청와대 경제수석일 때부터 적극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했으니 재벌과 엮어서 정경유착을 밀고 나가야 해.”
“예, 그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권 말기와 이번 정권에서 가장 많은 특혜를 받은 재벌이 백범 회장이니 그를 선거 전면에 세운다는 것이 내 전략이야. 사실 나만큼 재벌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지. 하하하!”
“예, 그렇습니다. 하여튼 여론이 후보님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잘된 일이지.”
이지박 후보는 그렇게 말하고 백범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경유착으로 밀고 가는 거다.’
* * *
성북동 이신의 고택.
이신이 모처럼 이도를 불렀다.
“백범이 문재한을 밀고 있다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상대편 쪽에서 백범 회장을 음해하는 정치 공작을 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해, 협잡, 정치 공작 이런 것은 내가 잘하지.”
“대부님……!”
“이도야.”
“예.”
“나는 너와 백범에게 내 전부를 걸었다. 아니, 대한민국의 미래는 나와 백범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이지박이라는 놈이 내 전부인 것을 흠집 내려고 한다.”
“이번 선거에 개입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이도는 놀란 눈빛을 보였다. 사실 이신은 백범을 만난 후에 백범이 앞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기에 뒷방 늙은이처럼 살았었다.
“선거 개입이 아니지. 내 전부를 지키는 일이다.”
“그러시다면......”
“저번에 내가 말한 것 있지.”
“그것 말씀이십니까?”
“앞으로 아마 모든 선거와 여론 조작에 쓰일 것이다. 가동시켜.”
똑똑!
그때 조심스럽게 노크 소리가 들렸고 더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뭐지?”
이신이 담담한 눈빛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봤다.
“백범 회장께서 대부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백범이 왔어?”
이신은 반가운 눈빛을 보였다가 이제야 백범이 자신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모셔라.”
* * *
이신의 고택 별채.
“그러니까, 일본의 첩자들을 나보고 색출해 달라는 건가?”
나는 이미 일본이나 미국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서실장 그 새끼도 그럴 거야!’
최소한 비서실장을 청와대에서 축출해야 할 것 같다.
“그렇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확인해 보니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정말 많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나는 이신에게 말하고 이도의 표정을 살폈다.
‘사실 이신도……!’
일본의 부역자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이신이었으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중간첩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이신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도 또 대한민국도 적절하게 이용하며 힘을 키웠었다.
“그건 곤란한데.”
“왜 곤란하십니까?”
“백범, 네가 말한 그대로 일본에게 우호적인 세력은 대한민국에 참 많지. 그리고 네가 말한 것처럼 일본에게 충성하는 간첩들도 정말 많지. 그들을 우리는 엘리트라고 부르지. 물론 일본이 전부는 아니야. 미국이 이롭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나를 빤히 보는 이신이다.
‘자신도 그런 존재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
치부라면 치부일 것이니까.
“그리고 나도 그런 존재 중에 하나다.”
이럴 때는 놀란 척을 해줘야 한다.
“그러셨습니까?”
“그랬지. 어떤 힘이라도 잡아야 했으니까.”
“그러셨다면 이제는 아니라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저는 할아버지께 애국하라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진행하고 있는 모든 사업에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 있으니 할아버지의 방식으로 정리해 달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오늘 청와대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을 만났습니다. 일본과의 경제협력에 방해되는 일은 삼가하라고 하더군요.”
“정말 그랬단 말이지? 멍청하게. 쯧쯧!”
“유신 정권이나 5공인 줄 알았습니다.”
“어리석은 놈이군.”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청와대에 친일세력이 존재하면 안 될 것이다. 결국, 내 사업의 중간 걸림돌은 일본이 될 테니까. 그리고 그다음이 중국이고 마지막이 미국일 것이다.
‘하나씩 정리해 나간다!’
이것을 각개격파라 할 것이다.
“저번에 말한 한일 공동개발 구역에 대한 개발 재개를 위함이겠지?”
“그렇습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진 매장량의 10배입니다. 그것을 일본이 차지하려고 합니다.”
“원래 왜놈들은 욕심이 끝도 없지.”
“제가 차지해서 제 벗인 이도와 나눌 생각인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내 방식대로 처리해라?”
“그렇습니다. 뒷방 늙은이로 계속 계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왜 갑자기 이런 말을 내게 하지?”
“여론이 너무 쉽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원래 국민성이 그래. 잘 흥분하고 잘 분노하지만, 또 쉽게 잊지.”
“조처를 해주십시오.”
“이제부터 나보고 일하라는 거군.”
“송구합니다.”
“그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존재하는 것이지. 내 앞에 빛과 어둠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각각 제 몫을 해야지. 사실 나도 나설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감사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처리를 하지.”
“일본에 협조하고 충성하는 부역자들을 모두 색출해서 정리해 주십시오. 하지만 트럭으로 밀어 버리는 무식한 방법은 자제해 주십시오.”
내 말에 이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는 나를 참 하찮게 보는구나.”
“혹시나 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알았다. 내 나름대로 좋은 방법으로 정리를 하지.”
이신이 일본 부역자들을 정리하겠다고 내게 말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신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이신이 제일 잘하는 거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 미국으로 날아가야 한다.
“감사합니다.”
이쯤에서 머리만 한 번 숙여주면 된다.
“그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자기 할 말은 다 했으니 가보겠다는 소리군.”
나를 보며 웃는 이신이다.
“예, 제가 바쁘거든요.”
“바빠야지, 젊은 사람은 바빠야 좋은 거야. 허허허!”
그러고 보니 눈빛이 참 많이 부드러워진 이신이다.
‘원래는 흑막의 신이었는데……!’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나를 만난 후 참 많이도 변한 이신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변한 이신을 내가 다시 어둠에서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과정보다는 결과여야 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내가 점점 더 이신처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 *
이신에게 내 할 말을 다 하고 밖으로 나왔고 내 벗인 이도가 나를 따라 나왔다.
‘하고 싶은 말이 있군.’
눈빛을 보니 나를 참 많이 걱정하는 것 같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오늘 벗의 행보는 정말 의외였습니다.”
“지킬 것이 많아지기 시작하니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 저도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백범 당신은 대부님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걱정이고요.”
이도는 나를 정말 걱정하고 있다.
‘닮을 수밖에 없지.’
내가 이신이었으니까.
“영웅도 영웅처럼 죽지 못하면 늙어서 악당이 된답니다.”
“그런가요?”
“제가 지킬 것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나 봅니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친구.”
나는 이도를 빤히 봤다.
“예.”
“우리 친구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할까?”
나는 의도적으로 대화 주제를 바꿔 버렸다.
“예?”
“서로 말 놓자. 그게 좋잖아.”
“그럴까? 그러면 내가 너를 더 걱정하지 않기를 바랄게. 오늘처럼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됐었어. 대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빛과 어둠이 손을 잡았으니까.”
이도가 내게 말했다.
“빛과 어둠이 바뀔 수도 있지.”
내 말에 이도가 나를 빤히 봤다.
“태양이라는 세상이 바뀌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 둘 다 언젠가는 살았던 날들을 후회하게 될 테니까. 후회는 나 하나로 족해.”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각자의 몫이 있으니까.”
이도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