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23화 (223/415)

# 223

223화 대통령을 다시 만나다 (1)

2000년 1월 5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을 조기에 극복했다는 선언과 함께 구제금융 전액을 상환할 것이라고 국민에게 신년사 담화문을 통해 발표했고 이틀 후 나를 청와대에 초청했다.

“국민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 IMF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백범 회장의 아이디어인 금 모으기 운동과 국채 매입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공치사를 하려고 나를 부른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말한 그대로 국민은 내가 엄청난 이익을 포기하고 국채까지 매입했기에 조기에 IMF를 극복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IMF와 재벌들의 부실한 그룹 경영에서 비롯됐다고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다.

-총선과 지방단체장 선거가 시작하기는 시작할 모양입니다. 벌써 재벌 때리기를 야당에서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순간 박태웅 상임이사가 내게 보고했던 때를 떠올렸다.

-자신들의 힘든 삶에 대한 원망 대상은 필요할 겁니다.

-물론 회장님의 말씀처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야당 쪽에서 특히 이지박 후보가 재벌 개혁을 부르짖고 있고, 재벌에 대한 특혜를 거론하면서 민심을 동요시키고 있습니다.

-대놓고 내가 표적이겠죠?

-예, 그렇습니다. 국민 여론이 좋지 않게 흐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순박하다?

아니다.

순진하다.

그리고 언론에 아주 잘 선동이 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다루기 너무 쉽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언론은 그런 힘을 가졌으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지박 서울 시장 후보가 회장님을 대놓고 저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뭐, 자기 잘못은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재벌과 일했던 사람이 재벌을 저격하니 더 진실하게 보일 겁니다. 국민은 이지박 후보를 경제 전문가로 볼 것이니 그런 사람이 재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재벌 개혁도 가능하다고 보겠죠.

-예,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보수 언론사들이 모두 태양 그룹과 태양 전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물론 태양 컴퍼니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그냥 둬야죠. 소나기는 지나가게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대비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중요하지. 나는 이미 대비를 했잖습니까.

낙선 운동을 시작시켰다. 그리고 시민연대에 딱 한 명 이지박만 낙선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그 이외에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낙선 운동 시민단체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예, 알겠습니다.

“특히 10개 공기업에 대한 부분 민영화와 완전민영화 사업에서 백범 회장께서 손실을 감수하고 공기업 가치보다 더 큰 금액으로 공기업을 매입해서 대한민국이 IMF를 조기에 극복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예, 대통령 각하.”

“이번 IMF 극복에 따른 대통령 표창 수여와 훈장 서훈에 백범 회장을 넣을까 합니다.”

정말 내가 고마운 모양이다. 그리고 내게 더 필요한 것이 있으니 이러는 것이다.

‘명예를 주시겠다고?’

대통령이 주는 명예를 내가 받게 되면 나는 또 다른 것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는 여론도 내게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훈장 서훈이라고 하셨습니까?”

속으로는 놀랄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나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바로 놀란 척을 했다.

“예, 왜 그렇게 놀랍니까? 당연히 훈장을 받아 마땅한 일을 했습니다. 백범 회장이 국채와 공기업을 거금으로 매입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IMF 체제에서 막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있을 겁니다. 그에 따라 국민은 더 많은 경제적 고통을 겪으며 살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하지만 제가 그랬던 것은 모두 제 목적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니 훈장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마다하지 마세요.”

“제가 받아야 할 훈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대신에 청이 하나 있습니다.”

“청이라고 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문재한 경제 수석에게 들으니…….”

“문 후보요?”

“아, 그렇습니다. 문재한 서울 시장 후보에게 들으니 여성부가 신설된다고 했습니다.”

“적극 검토 중입니다. 사실 여성부의 신설은 총선을 위한 여성들의 표심 다지기이지만 여성들의 인권이 OECD 회원국들에 비해 극도로 낮기에 신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모든 부분을 표로 연관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군요. 그런데 대통령 각하.”

“왜 그럽니까?”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여성부의 신설은 아마도 남녀 갈등의 서막을 열게 될 것입니다.”

“남녀 갈등의 서막이라고 했소?”

대통령이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여성들의 인권 상승을 위해서는 동등한 기회 부여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부가 만들어지면 그 부서들은 여성들의 복지와 인권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남성들은 역차별을 느끼게 될 겁니다. 여성들의 인권 상승을 위한다면 복지부 산하에 두고 관리하시면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왜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십니까?”

“대통령 각하께서는 OECD 회원국을 기준으로 했을 때 대한민국 여성들의 인권이 높지 않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여성부가 따로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성 인권 운동가들에게 현혹되지 마십시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 국가입니다. 그것은 기회의 평등입니다. 그 이상의 권리가 주어지게 된다면 차후 그런 권리에 대한 배려는 여성들로서는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백범 회장께서 이런 면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여성의 인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여성부가 만들어지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부의 권한을 강화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으음……!”

“총선을 위한 표 때문이라면 다른 쪽으로 접근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대통령도 이번 총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다른 쪽이라고 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나는 여성부 신설을 막을 생각이다. 그러니 대통령에게 다른 것을 제시해야 한다.

‘신의주 경제특구!’

이걸 내가 꺼내야겠다.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대통령 각하께서 대한민국 통일의 발판을 만드시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게 제가 신의주 경제특구 건설을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내 말에 대통령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이 신의주 경제특구와 개성공단 이야기는 내가 청와대에 방문할 때마다 대통령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 사안인데 내가 먼저 꺼내니 저렇게 놀라는 것이다.

“정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중국 중앙 정부와 1차 협의를 하고 대통령 각하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예, 통일의 발판을 대통령 각하와 제가 준비하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고맙소. 여성부는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은 거래다.

하나를 내주어야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신벽란도 사업을 위해서라도!’

중국 정부와 협조해야 한다. 그러니 나는 중국 정부 고위층을 만나야 하고 이것을 신의주 경제특구와 연결해볼 참이다.

“예, 그렇습니다. 복지는 성별과 무관해야 하며 기회는 성별과 상관없이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약자로 인식이 되는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생각이 정말 다르군요.”

하여튼 여성부 신설은 막아냈다. 그럼 된 것이다.

“대통령 각하……!”

이제는 또 하나를 준비해야 할 때다

“내게 또 할 말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1월 14일부터 미국 대선이 시작됩니다.”

정치와 경제는 하나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는 미국과 연결되어 있고 또한 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내가 미국 대선을 거론하자 대통령의 눈빛이 변했다.

“그렇소. 왜 그런 말을 하시오?”

대통령이 나를 뚫어지게 보며 되물었다.

* * *

일본 총리 집무실

“미국 대선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승리할 거라는 1차 조사가 발표됐습니다.”

일본 총리의 특별 보좌관인 겐지가 흐뭇한 표정으로 일본 총리에게 보고했다.

“당연한 결과지. 하하하!”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미국 대선에 당선이 된다면 백범을 압박하게 될 겁니다. 앨 고어 후보 측에서 백범이 부시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특히 반독점법을 통해 블랙홀 닷컴과 인터넷 검색 엔진 큐브를 고사시킬 겁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 속이 편하지. 그건 그렇고 우도 해양 개발은 얼마나 더 밀고 들어왔지?”

일본 총리는 아무 말도 없이 대기하고 있는 장관을 보며 물었다.

“한일 공동개발구역 바로 위에서 심층수 채굴을 시작했습니다.”

보고하는 장관은 일본 총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바로 위?”

“예, 그렇습니다. 조만간 한일 공동개발구역 내부로 진입할 것 같습니다.”

“그럼 협정 위반이야.”

“백범이 문제를 만들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겐지 특별 보좌관이 일본 총리에게 말했다.

“문제를 만들기 위해?”

“예, 그렇습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면 한국 정부는 한일 공동개발구역의 개발 재개를 요구할 겁니다.”

“그건 무시하면 되지.”

“무시할 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는 앨 고어 후보가 반드시 당선되어야 합니다.”

겐지 특별 보좌관의 말에 일본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2028년이면 한일 공동개발구역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 일본의 해상 영토가 되니까.”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그래서 말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앨 고어 후보가 아닌 부시 후보를 만나십시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논의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현재 미국 여론은 부시보다는 앨 고어에게 쏠리고 있다. 그리고 앨 고어 후보가 당연히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앨 고어 후보가 이번 대선에 유리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소.”

미국 대선에 청와대는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의 전략 분석실에서 분석한 데이터에 의하면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쪽으로 몰리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 있소.”

사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최고다.

-일본이 앨 고어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회장님께서 부시를 지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대통령을 뚫어지게 보며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

“일본 정부는 민간 사업가들을 이용해서 앨 고어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제가 부시 후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부시 후보를 지원하고 있기에 일본 정부는 저와 똑같은 방법을 이용해서 반대편인 앨 고어 후보를 지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저의 태양 컴퍼니와 블랙홀 그룹을 고사시키기 위함이고 한일 공동개발구역의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함입니다.”

“으음……!”

“대통령 각하, 저를 믿고 부시 후보를 만나십시오. 그를 만나셔야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시도할 때도 미국이 대통령 각하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으음……!”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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