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19화 (219/415)

# 219

219화 내가 당신을 선택해도 되겠습니까?

내 앞에 에르난데스가 차분한 표정으로 앉은 상태로 나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그가 이 특급 호텔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내가 찰나의 순간 전달한 눈빛의 의미를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모시는 필리핀 대통령의 미래를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핀만큼 부패한 국가도 없지.’

거기다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 거기다가 반군들까지 존재하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총기류 통제의 실패, 그리고 마약까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필리핀 국민을 일자리를 잃었고 더욱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제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아서 왔습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에르난데스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와 나는 서로 주고받을 것이 참 많다.

“필리핀은 현재 범죄율이 심각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낼 수도 있지만 내가 직접 당신을 지원해 줄 테니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고 말한다면 모양새가 빠질 것이다.

“그렇습니다. 무기류 통제에 실패했고 극심한 빈곤 상태에서 실업률이 치솟고 있기에 범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마약 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어쩔 수 없는 관광 산업인 카지노 산업과 유흥산업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했기에 갱단의 수가 늘어나고 범죄율은 높습니다.”

“거기다가 반군도 있죠.”

내가 한 말의 목적을 유추해 내기 위해 에르난데스는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죠, 반군도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필리핀 반군의 역사는 유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필리핀의 근대사를 딱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식민지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런 식민지 시대에 저항했던 존재들이 반군의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필리핀 갱단과 반군을 나는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반군의 부류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지.’

나는 필리핀에 오기 전에 필리핀에 대해 꽤 많은 조사를 했었다. 여전히 반군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필리핀이라는 국가의 영토적 특성 때문이고 필리핀은 7,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졌기에 실질적으로 중앙정부의 법 집행이 어렵다.

‘300여 개의 언어로 이루어진 다양한 부족의 공동체 국가이니……!’

부족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고 1500년대부터 시작된 외세의 침략과 근대에는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터전을 침략자들에게 빼앗기고 밀림 지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산 사람과 침략자들의 소작농. 거기다가 바다를 떠도는 해상 집시들!’

처음 필리핀 반군들은 그들을 대변하면 지켜주는 존재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 그들 위에 군림하면서 현재로는 반군으로 발전해 있다.

“필리핀의 반군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필리핀 반군에 대해서 말을 꺼내자 에르난데스가 내게 반군에 관해서 설명하겠다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그런가요?”

“예, 그렇습니다. 필리핀 민족민주전선, 신인민군은 공산 계열입니다.”

필리핀은 민주주의 국가다. 그렇기에 공산 계열의 반군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반군이 존재한다는 것은 필리핀 정부가 여전히 전체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산 계열이 있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슬람교를 믿는 토착민으로서 아주 오래전부터 술로 왕국을 내세우며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반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침략자의 종교를 받아드려 가톨릭 국가다. 그런데 이런 가톨릭 국가에 반군인 이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남부 민다나오섬이라고 했습니까?”

“필리핀 남부에 있는 섬입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나와 에르난데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태웅 상임이사가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말했다.

“남부군요.”

“예, 그렇습니다. 민다나오섬은 면적은 대한민국의 영토 면적과 비슷합니다.”

작은 섬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 작은 섬이 반군에게 점령이 당해 있는 상태인데도 필리핀 정부는 여전히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이슬람 술탄국이었고 현재까지 은밀하게 브루나이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브루나이는 이슬람 국가다. 그러니 이슬람 반군을 비밀리에 지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가치는 어떻습니까?”

나는 박태웅 상임이사에게 물었다.

“회장님께서 계획하셨던 거대 열대과일 농장으로 적격 지역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태양 그룹 국외자원 분석실의 분석 결과로는 금과 은, 석탄의 매장량이 상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반군이 활동하는 지역이기에 치안 문제가 사업 진행에 걸림돌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렇군요, 내가 반군을 생각 못 했습니다.”

나는 에르난데스에게 들으라는 토로 박태웅 상임이사에게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민다나오섬은 필리핀이 독립한 후에 무력으로 군대를 동원해 점령하여 합병했지만, 현재 반군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곳입니다.”

“필리핀은 정말 투자 부적격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것을 모르고 오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에르난데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알고 있고 그래서 내가 필리핀에 투자를 생각하는 겁니다.”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에르난데스가 나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고 나는 이제부터 본론을 꺼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거대한 야망을 짐작하고 있군……!’

그것을 알면서도 내게 왔다는 것은 에르난데스 역시 거대한 야망을 품은 사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필리핀의 그 어떤 것도 내어줄 수 있을 남자일 것이다.

‘민다나오 섬 주변의 작은 무인도면 좋겠어.’

필리핀 정부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픈 지역일 테니까.

하여튼 내가 필리핀에서 완벽하게 구입할 무인도는 필리핀 남부 지역의 섬인 민다나오섬 인근의 무인도면 되겠다.

‘민간군사기업을 통해서!’

치안은 확보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비밀리에 나를 찾아온 에르난데스를 뚫어지게 봤다.

“그럼 당신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야 본론입니까?”

“그런 것 같소.”

“백범 회장님, 당신께서는 기업 국가를 목표로 필리핀에 방문하셨습니까?”

본론이 거론되자마자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는 에르난데스다.

“그럼 당신은 필리핀 대통령이 꿈입니까?”

“나는 필리핀이 부강하지는 못해도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산주의자군요.”

내 말에 에르난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는 것은 긍정이겠지.’

에르난데스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 단지 필리핀의 썩은 정치와 부정부패에 대해 그리고 절대적 빈곤에 대해 환멸을 느낄 뿐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당신이 필리핀에 왔고 필리핀 대통령에게 많은 거래를 제안하는 것을 보고 필리핀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그렇군요.”

“백범 회장님, 현 필리핀 대통령께서는 백범 회장님과 나눈 그 모든 말들을 책임지실 수 없을 겁니다.”

“탄핵이라도 당할 거라는 겁니까?”

“다른 정치인들이 눈감아 주기에 곤란할 정도의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이 내 대안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표정이 변하는 에르난데스다.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백범 회장님께서 당장 필리핀의 작은 섬 하나를 필리핀에서 분리 독립시켜서 기업 국가로 만들기 어려우신 것처럼 말입니다.”

“나도 당장 성공시킬 생각은 없소.”

“그러시다면 제가 당신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까지는 못하고 왔는데?”

“제가 필리핀의 대통령이 된다면 필리핀 남부지방인 민다나오섬 인근에 있는 꽤 규모가 큰 무인도를 백범 회장님께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입지를 다지시기 위해 내 손을 잡겠다는 겁니까?”

“필리핀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에르난데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 대통령은 탄핵이 두려워서 사임하니까…….’

사실 나도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르난데스께서는 내게 꽤 규모가 큰 섬을 줄 수 있다고 했소. 하지만 의회가 승인하겠소?”

“과거 러시아는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았습니다. 경제개발을 위한 자본이 필요한 필리핀이니 우리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어떻게 여론을 조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또 태양 컴퍼니의 투자를 받은 베트남이 눈에 보일 정도로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상승한다면 필리핀 국민 역시 부러워할 것이니 여론을 만드는 것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몇 가지 준비가 있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필리핀의 민간 방송국을 인수하셔야겠죠.”

말이 잘 통하는 에르난데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욕심을 더 내보겠습니다.”

“욕심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내가 아는 당신은 필리핀 정치계에서 입지가 높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위험요소가 크다는 것이고 당신을 유명 정치인으로 또 필리핀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은 많은 투자가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좀 더 요구해야겠소.”

“말씀해 보십시오.”

사실 에르난데스는 현 필리핀 대통령의 보좌관이다. 그게 그가 가진 정치적 포지션의 전부다.

“팔라완섬!”

나는 에르난데스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고 에르난데스는 놀란 눈빛을 보였다.

“왜 그렇게 놀랍니까? 러시아가 미국에 과거 거대한 동토인 알래스카를 팔았잖습니까. 그러니 필리핀도 7,000개의 섬 중의 하나인 팔라완섬을 내게 팔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팔라완섬은 꽤 큰 섬이다.

‘팔라완섬은!’

지리적인 측면에서 동남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얼마나 많이 투자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리적인 측면에서 서북쪽으로는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있고 북쪽으로는 대만이 있다. 물론 그사이에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또한 바로 옆으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있고 아래로는 인도네시아가 있다.

“으음……!”

에르난데스는 나를 보며 신음을 토해냈다.

“에르난데스 내가 당신을 선택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필리핀 대통령이 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협잡이다. 하지만 사업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런 협잡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내가 곧 추진할 필리핀 관련 사업들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나는 당신을 지원할 겁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문이 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한마디로 특급 호텔 사업과 자원개발권부터 내 손에 쥐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특급 카지노 호텔 사업은 크게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해양 유전 및 가스전 개발 사업?”

“필리핀 정치인들은 뇌물에 약합니다. 그리고 국민에게 허세를 떨기 위해서라도 백범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움직일 겁니다.”

유전 및 가스전 개발 사업권을 내가 가지면 나는 당연히 필리핀에 어느 정도 투자를 할 것이고 그것이 필리핀 정치인들이 입장에서는 투자를 유치했다는 선전도구로 쓰일 것이다.

“에르난데스.”

“예, 백범 회장님.”

“우리 앞으로 먼 길 오래 손잡고 갑시다.”

나는 에르난데스를 보며 악수를 청했다.

“필리핀 빈곤층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나는 사업가입니다. 그 부분은 필리핀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죠. 하지만 내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렇게 현 필리핀 대통령이 탄핵을 걱정해서 사임할 것에 대한 대비까지 할 수 있었다.

‘키워서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결국, 내 야망에 대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그 어떤 협잡도 마다할 이유는 내게 없으니까.

‘이 역시 돈 버는 일이지.’

사업과 투자에는 양심 따위는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놔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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