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17화 (217/415)

# 217

217화 필리핀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4)

대한민국 야당 대표의 집무실.

“백범 회장이 이번에는 필리핀 대통령을 만나고 있답니다.”

야당 대표는 백범의 움직임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대표님, 거의 국빈 대우를 받는 것으로 파악이 됐습니다.”

“베트남과 함께 필리핀에 투자할 모양이군요.”

야당 대표는 묘한 표정으로 말한 후에 이 자리에 참석한 이지박을 봤다.

“같은 기업인 출신으로 백범 회장이 어떤 행보를 위해 이러고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까?”

야당 대표가 이지박 사장에게 물었다.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간외교관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을 합니까?”

야당 대표는 눈빛이 달라졌다.

“으음……!”

“이지박 사장.”

“예, 대표님.”

“우리는 이제 같은 배를 탄 같은 정당 사람입니다. 그러려고 입당한 것 아닙니까?”

백범이 아는 그대로 이지박 현성 건설 사장은 보수 야당에 입당했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제가 생각하는 진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입니까?”

“조금 자극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대한민국 탈출입니다.”

“탈출?”

“예, 그렇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재벌들이 원죄라도 있는 듯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권도 그렇게 몰아가고 있고요.”

“재벌들이 언제 비난을 받지 않은 적이 있소?”

“그렇죠. 하지만 백범 회장의 사업체들의 본사가 꼭 국내일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그룹들은 내수시장이 핵심 사업 부분이지만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는 내수가 아닌 세계 전체가 사업 영역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법인세를 내고 또 나중에는 상속세까지 내야 할 것이니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시오?”

“지금 현재 투자한 나라가 베트남이고 현재 필리핀에 머물고 있습니다. 상속세가 거의 없다시피 하죠. 기업가로서는 현재 백범 회장의 행보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대한민국에서 돈을 벌고 외국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군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 의원!”

“그러고 보니 그렇기도 합니다. 백범 회장의 딸이 미국 시민권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름까지 엘리자베스 백입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죠. 태양 컴퍼니는 미국 국적의 투자 그룹입니다. 답이 나온 겁니다.”

“청와대와 백범 회장은 손을 잡고 있으니!”

“청와대를 압박할 카드로 쓰기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 경영을 부르짖던 대후도 망하기 직전이니 다시 국민이 분노할 겁니다.”

“언론 작업 진행해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곧 총선이니 우리에게 유리하게 여론을 만들어야 하니까. 하하하!”

“예, 그렇습니다.”

“이지박 사장.”

“예, 대표님.”

“담배 피우십니까?”

“예, 끊어야 하는데 아직 피우고 있습니다.”

“피우세요. 정말 좋은 말씀을 내게 해주셨습니다. 같이 피웁시다.”

야당 대표가 말했고 바로 야당 대표는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담배를 들어 이지박 사장에게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왜요?”

“저는 다스만 피웁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다스 사랑이 남다르십니다.”

하여튼 이지박 현성 건설 사장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태양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 파악한 상태고 곧 박태웅 상임이사에게 보고될 예정이었다.

‘백범 회장이 하는 것이 자원외교라면 자원외교지……!’

이 순간 이지박은 백범에게서 정치적 영감을 받았다.

* * *

필리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보좌관의 이름이 뭡니까?”

“에르난데스입니다.”

“눈빛이 살아 있네요.”

“아마도 회장님의 의도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에르난데스가 현실주의자이냐? 민족주의자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군요.”

필리핀 대통령의 보좌관인 에르난데스가 현실주의자라면 사용도 하지 않은 2,000개의 무인도 중 몇 개를 내게 주고 경제를 성장시킬 투자금을 받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라면 영구적으로 영토를 잃게 되니 거부해야 할 거라고 말할 것이다.

“현실주의자인 것으로 파악된 상태입니다.”

“그럼 잘됐군요.”

“하지만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도 있고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왜?”

“섬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 테니까요.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돈 더 달라고 하겠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박태웅 상임이사.”

“예, 회장님.”

“나는 필리핀을 떠올리면 딱 두 가지만 생각이 납니다.”

“예?”

“장충체육관하고 바나나!”

“아, 그러시군요.”

“공업화가 어디 쉽습니까? 그러니 대형 농장 기업을 건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인이 먹는 바나나를 나눔 종자에서 판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아. 그래서 바나나 신품종 개발을 지시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 왔으니 빚도 갚고 갈 생각입니다.”

“빚이라면 장충체육관 말씀입니까?”

“동남아 사람들 축구를 정말 좋아하죠. 국제 규모의 축구장을 건설할까 합니다.”

“푼돈도 챙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티끌 모아 태산입니다.”

필리핀 정부는 과거 대한민국 정부에 적선하듯 장충체육관을 지어줬지만 나는 공짜로는 못 지어주겠다.

‘내가 진 빚도 아니니까.’

그냥 빚을 핑계로 필리핀 체육 산업에도 내가 관여해 볼 참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국가는 그런 것들이 참 쉽지!’

그건 그렇고 지금 보니 필리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주인이 없는 대통령 집무실에 객만 앉아 있군.’

그만큼 내가 던진 미끼가 저들에게 크게 작용했다는 증거다.

“정말 필리핀의 무인도를 구입하실 겁니까?”

“여긴 도청장치 그런 것은 없겠죠?”

“대통령의 집무실인데 설치되어 있겠습니까?”

“꼭 삽니다. 지금은 필리핀의 무인도를 사고 나중에는 그리스의 무인도까지 구입할 생각입니다.”

“하여튼 회장님께서는 상상력이 너무 대단하십니다.”

“칭찬 고맙습니다.”

나는 박태웅 상임이사를 보며 웃었다.

* * *

워싱턴에 있는 다윗연합 수장의 저택.

“그리스가 좋지 않을까?”

“그리스라고 하셨습니까?”

“내 친구가 될 사람이 필리핀의 섬을 구입할 것 같으니 나는 그리스의 섬이 탐나는군.”

“진정 기업 국가로 향하실 겁니까?”

“지금은 상상이지만 100년쯤 지나면 아마 모든 국가가 기업 국가 형태로 전환될 것이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미래를 예측하듯 말하는 다윗연합의 수장이었다.

“그럴 가능성도 존재할 것 같습니다.”

기업 국가는 가공의 국가 정치 체제 중 하나일 것이다.

메가 코퍼레이션의 발전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기업 국가는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기업처럼 운영되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수장님.”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다윗연합의 수장이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보좌관이다.

“국가가 기업이고 국민이 직원이 되는 것이지 그 기업 국가의 정치 행위 역시 지분을 가진 자들이 결정하고 통제하지.”

이런 것을 달리 말하면 전체주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습니다.”

물론 기업 자체가 국가가 된다면 수많은 문제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가진 자들은 기업 국가가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여튼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단 말이야.”

백범의 얼굴을 떠올리는 다윗연합의 수장이었다.

“같이 힘을 합친다면 정말 기업 국가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다윗연합 수장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 * *

필리핀 대통령 집무실.

“백범 회장.”

자기 집무실로 들어온 필리핀 대통령은 표정부터 달라졌다.

“예, 대통령 각하.”

“필리핀의 섬을 원하는 진짜 이유를 듣고 싶소.”

“진짜 이유가 있겠습니까? 저는 투자자입니다. 그래서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구입한 섬 앞의 바다에서 해양 자원이라도 개발하고 싶은 겁니까?”

점점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필리핀 대통령이다.

“베트남 정부도 해양 영토의 자원 개발권을 제게 줬습니다. 유전 및 가스전 개발권 말입니다.”

“필리핀 정부도 자원개발 사업권을 줄 수 있소. 그런데 백범 회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제 진심을 듣고 싶으십니까?”

나는 필리핀 대통령을 뚫어지게 봤다.

“그렇습니다.”

“섬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섬에 대한 자치권도 가지고 싶습니다.”

“자치권이라고 했습니까?”

“세금은 필리핀 중앙정부에 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바로 기업 국가가 목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요?”

“정말 마음 편하게 해양 자원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저보다 대통령 각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필리핀에는 7,000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에 2,000개가 이름도 없고 사람도 살지 않습니다. 그런 무인도를 개발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시군요.”

“또 누가 압니까? 도시 괴담으로 전해지는 야마시타의 보물이라도 발견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내 말에 필리핀 대통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헛소문을 믿습니까?”

“사업적으로 좋지 않습니까?”

이제는 내가 준비해 온 것을 꺼낼 때다.

“사업적으로?”

“그렇습니다. 보물 사냥꾼들과 보물 발굴 회사들은 필리핀에서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고 찾는다면 필리핀의 미래는 밝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발굴을 위해 사업권을 내준다면 정부 이익도 발생할 겁니다.”

“허허허, 상상력이 대단하시군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항상 돈이 됩니다.”

“그렇군요.”

아마 필리핀 대통령은 내가 필리핀을 떠난 후에는 야마시타 보물에 대한 개발 사업권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할 것이다.

“저는 대통령 각하에게 많은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당장 결정을 내릴 수도 없는 일입니다.”

법안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고 국회 통과도 남아 있다. 그러니 이틀 안에 처리될 일은 절대 아니다.

‘이번에는 운만 떼고 간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으니까.

“정말 태양 컴퍼니는 필리핀의 무인도를 가지고 싶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내가 가능하도록 노력하겠소. 그 대신에 그 일들이 가능해진다면 태양 컴퍼니는 필리핀에 얼마나 투자를 하실 수 있습니까?”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늦어진 공업화에 다시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억 달러가 필요합니다.”

요즘 100억 달러가 뉘 집 개 이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국영 기업에 대한 민영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소.”

대한민국이 외환위기에 흔들린 것처럼 동남아 국가는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거의 쓰러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닐라 공항은 제가 매입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나눔 종자라는 회사의 지사를 필리핀에 설립하겠습니다.”

“그래요?”

표정이 밝아지는 필리핀 대통령이다.

“앞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필리핀에서 생산이 되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그리고 망고를 먹게 될 것입니다. 공업화만이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필리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는 백범 회장이 출국한 후에 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할 것이오.”

이 말은 다시 마닐라 공항 민영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소리고 내게 섬도 팔겠다는 소리다.

“예, 알겠습니다.”

“6개월 이내에 결과를 만들어내겠소.”

6개월 후이면 2000년이다.

‘무사할지 모르겠군……!’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현 필리핀 대통령은 2000년 1월에 탄핵 직전에 사임하게 되니까.

하여튼 모든 일에는 준비 과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고 오늘의 행보는 헛수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여튼 오늘만큼은 필리핀 대통령의 쇼에 배우가 되어준 것 같다.

‘에르난데스!’

나는 나를 보고 있는 보좌관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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