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216화 필리핀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3)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특급 호텔 특실.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비공식 접촉을 공식접견으로 전환하겠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나는 오늘 점심때 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필리핀 대통령을 비공식적으로 만날 계획이었다.
“영화배우답게 쇼 타임을 준비할 모양이군요.”
“쇼 타임이라고 하셨습니까?”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겁니다. 현 필리핀 정부에서는 국면돌파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아마 베트남에 투자한 것에 대한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가 될 것 같군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베트남이 막대한 투자를 받았다는 뉴스가 필리핀 방송에서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쇼를 원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롭죠.”
몇 개의 무인도를 사기 더 쉬울 것 같다.
‘돈이 궁한 모양이군.’
돈이 궁하다면 그 궁한 돈은 내가 적선해 주면 그만인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그렇게 어둡습니까?”
박태웅 상임이사는 내게 따로 할 말이 있는 눈빛이다.
“회장님.”
“말하세요. 중요한 일 아닙니까?”
“나우루 공화국의 정치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나우루 공화국에는 태양 그룹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꽤 많은 회사가 진출해 있는 상태다. 건설 회사부터 진출해 있고 해운사도 지사를 두고 있고 선상 카지노 사업 때문에 카지노 호텔 및 선박 회사도 진출해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내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다.
“또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는 겁니까?”
“나우루 공화국 영토로 아프리카 흑인들이 빠르게 유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 흑인들 대부분이 소말리아 출신입니다.”
내가 소말리아를 떠올릴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해적이다.
‘쿠데타도 자기 힘으로 하지 못하는군.’
그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말리아 출신이라면 해적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만약 최악의 경우에는 쿠데타가 아니라 해적 침략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박태웅 상임이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회, 회장님……!”
“나우루 공화국의 투자 계약서에 우리에게 이로운 독소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 계약서 진본이 사라진다면 우리 쪽에서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습니다. 원금을 돌려주고 마무리할 수 있다는 말이죠.”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의 눈빛이 변했다.
“혹시!”
모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박태웅 상임이사다.
“상상하지 마세요.”
“아니시죠?”
“대답할 이유는 없습니다.”
“회장님, 꼭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답을 회피했는데 나우루 공화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내가 꾸몄다고 생각하는 박태웅 상임이사다.
-쿠데타가 발생하면 투자 계약서 원본부터 파기하십시오
나는 재정 장관의 측근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가 얻을 이익은 무엇입니까?
-투자 계약에 대한 재협상과 10억 달러의 비자금입니다. 물론 당신이 2차 쿠데타를 통해서 나우루 공화국의 권력자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성공할 겁니다.
“나는 그냥 원본이 파기되었으면 좋겠다고만 말했습니다.”
“정말입니까?”
의심하는 눈빛이다.
“거짓말을 내가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소말리아 출신들을 끌어드릴 줄은 정말 몰랐군요. 멍청한 짓인데……!”
“이번만 믿겠습니다.”
“박태웅 상임이사.”
“예, 회장님.”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 같습니까?”
“예?”
“우린 지금 전쟁을 하는 겁니다. 총을 들어야 전쟁입니까? 투자 경쟁도 전쟁입니다. 수익 창출을 위한 기업 활동도 전쟁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천사인 것 같습니까? 내 조국에 많은 것을 내놓고 있다고 세계에도 그래야 합니까? 아니지요. 나는 세계에도 많은 것을 내놓기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겁니다.”
“으음……!”
“사하라 사막 녹지화 사업에 착수해서 성공한다면 아프리카에서 굶는 사람은 줄어들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노벨 평화상을 내가 받아야 할 겁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전쟁하는 데 제발 양심은 내려놓고 움직입시다. 세계 경제 전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 * *
필리핀 대통령궁 식당.
내가 필리핀 정부의 요청을 수락해서 당당하게 필리핀 대통령궁으로 들어섰을 때 수많은 필리핀 현지 언론들이 나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정말 쇼가 필요한 모양이군.’
내게 이로운 상황으로 계속 흐르고 있다.
“백범 회장.”
필리핀은 공식적으로 필리핀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기에 필리핀 대통령은 영어로 나를 불렀다.
“예, 대통령 각하.”
“본국으로 오시기 전에 베트남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으로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에게 투자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필리핀 대통령이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태양 그룹과 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동남아 진출 교두보로 베트남을 선택했기에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베트남보다 필리핀은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할 말은 절대 아니지만, 필리핀에 투자할 생각은 절대 없다.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국가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냥 돈을 버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투자 계획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내 대답에 흐뭇한 미소를 보이는 필리핀 대통령이다.
“내 의견을 고려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백범 회장, 필리핀에 무엇을 원하시기에 입국하신 겁니까? 돌려 말씀하지 마시고 내게 말해 주십시오. 본국에 투자를 해주신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미끼 하나쯤은 던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최대의 관광 국가로 만들고 태양 그룹 관련 협력 회사인 태양 관광호텔 회사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태양 관광은 호텔 사업을 꾸려나가는 회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카지노 호텔 사업을 추진하는 회사고, 제주도에 이미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보유한 회사이기도 하다. 물론 호텔 사업이 핵심 사업처럼 보이게 만들어 놨다.
“아,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부터 특급호텔을 건설하고 필리핀의 중요 관광도시 열 곳에 대형 호텔을 건설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상당한 투자가 진행되겠군요. 하하하!”
“고용 창출 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호텔 사업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카지노를 떠올리고 있다. 물론 필리핀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그 호텔에 카지노를 건설하실 생각입니까?”
“대형 호텔에 카지노가 빠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카지노 사업은 부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생산적인 사업이 아니기에 필리핀 경제부흥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 그렇기는 합니다. 태양 컴퍼니가 카지노 사업권을 획득하기 어렵지 않게 조처를 하겠소.”
돈 달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주지.’
못 줄 것도 없다. 하여튼 이렇게 미끼는 던졌고 그 미끼에 흡족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한 투자가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제가 필리핀에 50억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10억 달러 정도를 주고 몇 개의 무인도를 구입할 계획이다. 그렇게 10억 달러로 무인도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50억 달러 정도는 투자해야 할 것이다.
“50억 달러 규모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카지노 산업이야 부를 창출하는 사업이지만 필리핀에 있는 카지노에 외국인들이 방문하기 위해서는 공항이 증축되고 신설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미 제주 공항과 김포공항을 소유하고 있는 공항서비스 기업도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것은!’
신벽란도 프로젝트의 일부다.
“그렇기는 합니다.”
“50억 달러를 이용해서 필리핀 마닐라 공항을 인수하고자 합니다.”
이건 던져 본 것이다.
“공항, 공항 민영화를 요청하시는 겁니까?”
필리핀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다.
‘유흥을 위한 관광부터 시작해서 골프 관광 그리고 카지노 관광까지.’
이런 관광 산업이 집중되어 있기에 필리핀은 공업화가 더딘 것이다.
“그렇습니다. 마닐라 국제공항을 민영화하시고 제게 50억 달러를 받으셔서 경제발전에 쓰십시오.”
“50억 달러라……!”
“완전 민영화가 아닌 부분 민영화라면 국민의 반감도 줄어들 겁니다.”
“부분 민영화라고요?”
바로 표정이 밝아지는 필리핀 대통령이다.
“예, 그렇습니다. 마닐라 국제공항의 부분 민영화를 하고 태양 컴퍼니는 53%의 지분만 가지겠습니다. 47%의 지분이 필리핀 정부에 있으니 이익이 발생하게 되면 이익에 대한 배당금을 받게 되실 겁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공항은 민영화가 대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제주공항과 김포공항은 완전 민영화가 됐습니다. 그 이후 공항서비스가 개선됐고 이익이 극대화가 됐습니다.”
“그렇군요.”
“예, 그렇습니다. 50억 달러의 자금으로 대통령 각하께서 필리핀 경제를 부흥시키시는 겁니다.”
“정부 인사들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소.”
내가 마닐라 공항 민영화를 추진해도 당장 성사될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게 2차 미끼지.’
이렇게 미끼를 깔아 놓았으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때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각하.”
“예, 말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섬을 가지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내 말에 필리핀 대통령 뒤에 있는 보좌관이 인상을 찡그렸다.
“섬이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몇 개의 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섬을 각각 개발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보좌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허리를 숙여 필리핀 대통령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 말했다.
“백범 회장.”
“예, 대통령 각하.”
“실례지만 내가 화장실이 좀 급합니다.”
식사가 끝난 상태다.
“예, 알겠습니다.”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내 집무실에서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필리핀 대통령의 보좌관이 대통령에게 따로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눈빛이 매섭네.’
저 보좌관은 제법 머리가 돌아갈 사람처럼 보인다.
“예, 알겠습니다.”
“비서실장.”
“예, 대통령 각하.”
“귀빈을 집무실로 모시게.”
“예, 알겠습니다.”
필리핀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대답하고 나를 봤다.
“모시겠습니다.”
* * *
필리핀 대통령궁 식당.
“태양 컴퍼니가 진짜 원하는 것은 섬입니다.”
필리핀 대통령의 보좌관이 대통령에게 말했다.
“섬이라고?”
“그렇습니다. 본국은 7,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국가입니다. 그리고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의 실소유자인 백범 회장은 해양 유전 개발과 가스전 개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자원개발 사업권을 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그 이상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상?”
“태양 컴퍼니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입니다. 그런 기업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원한다는 것이야?”
“제 생각으로는 태양 컴퍼니는 본국에서 섬을 구입하고…….”
보좌관이 자신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답답하군.”
“그 섬으로 국가를 건설하고 독립할 계획을 꾸미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섬으로 독립, 하하하, 하하하!”
필리핀 대통령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쯧쯧!”
“대통령 각하. 필리핀에는 7,000개의 섬이 있습니다. 2,000개가 넘는 섬이 무인도입니다. 그 섬 중 몇 개를 완전 매각하신다면 50억 달러가 아닌 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으실 수 있고 섬 매각 대금으로 10억 달러 이상을 확보하실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대통령 각하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제 생각대로 될 것입니다.”
“정말 그 정도의 자금을 투자할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인도 몇 개를 주고?”
“필리핀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좌관의 말에 필리핀 대통령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일을 성사시키기고 나는 얼마나 받을까? 흐흐흐!’
이래서 필리핀은 당분간 발전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