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215화 필리핀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2)
필리핀 대통령궁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각하께서 추진하시는 개혁정치를 위해서는 경제부흥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현재 필리핀 대통령은 조지프 에스트라다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 선거 때 개혁정치를 천명하며 필리핀 국민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일 년이 훌쩍 지난 상태에서 그는 초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알고 있소. 그래서 내게 접촉을 시도해 온 태양 컴퍼니의 비공식 접견 요청을 수락한 겁니다.”
“현재 국민이 기대한 만큼의 개혁과 경제부흥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알고 있다니까.”
“그러므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미 현 필리핀 대통령은 필리핀 재벌들에게 받는 뇌물에 취해 있었고 또 정치 후원금을 모아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소문으로 퍼지고 있는 상태였기에 국면돌파를 위한 쇼 아닌 쇼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자네도 내가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정치는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어. 나도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어. 경제인들의 협조 없이 개혁도 경제부흥도 또한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는 것을 자네도 알지 않나?”
현 필리핀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 보좌관을 설득하듯 말하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이러니 필리핀의 경제가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필리핀의 독재자가 제대로 필리핀의 경제를 붕괴시켜 버렸고 경제 기반이 붕괴한 필리핀에 계속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인과 대통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경제가 발전하고 싶어도 발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에 대한 고통은 필리핀 국민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가 국외자본을 국내에 유입시키려고 이러고 있는 거잖아.”
“예, 그렇습니다. 태양 컴퍼니와 만나기로 하신 것은 옳은 판단이십니다.”
“허허허, 이제는 자네가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군.”
“죄송합니다.”
“좋아. 이게 자네의 역할이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즉각적인 정치개혁과 경제부흥이 어렵다면 국민에게 희망이라도 줘야 합니다.”
“희망이라도 주자?”
“예, 그렇습니다. 태양 컴퍼니와 비공식적으로 만나시는 것은 말 그대로 비공식이기에 국민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그가 필리핀에 왔다고 해도 필리핀에 투자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 않나?”
“태양 컴퍼니 회장이 괜히 필리핀에 올 이유는 없습니다. 그는 투자를 위해 왔고 또 어떤 목적을 위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비공식 만남을 공식적인 접견으로 전환하시고 대대적으로 언론에 발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투자를 하지 않고 가버리면?”
“반드시 투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주고 투자를 받아내어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원할까?”
필리핀 대통령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을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쌀값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필리핀은 과거 쌀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주식인 쌀에 대한 생산을 포기했다. 그 이유는 베트남과 태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비교해 가격 경쟁에 밀리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해서 먹는 것이 저렴하다는 오판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다고 판단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했고 필리핀 빈민층들은 오늘 먹을 쌀부터 걱정해야 하는 삶으로 변해 버렸다.
“쌀값……!”
필리핀 대통령은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을 바로 변화시킬 수 없으니 불만이 생긴 국민에게 희망이라도 줘야 합니다.”
“알았네. 공식면담으로 전환하겠다고 통보를 하게.”
“예, 알겠습니다. 대통령궁으로 면담 장소를 잡겠습니다.”
“그렇게 해. 쇼를 할 때라면 쇼를 해야겠지. 그런데 말이야…….”
“예, 대통령 각하.”
“태양 컴퍼니가 베트남에 200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정보가 사실일까?”
“예,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태양 컴퍼니가 정말 대단하군.”
필리핀 대통령은 투자 규모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투자를 받고 또 엄청난 것을 내놓았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베트남 정부는 태양 컴퍼니에 어떤 것을 제공했을까?”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우린 태양 컴퍼니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든 국민의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현 필리핀 대통령은 백범에게 투자를 받아야 했다.
* * *
워싱턴 다윗연합 수장의 저택.
“태양 컴퍼니가 베트남에 유상 원조 100억 달러, 무상 원조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다윗연합 수장이 보고자에게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등장한 지 딱 3년쯤 된 것 같은데 많이도 모았군.”
“그 자금이 전부가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겠지. 블랙홀 닷컴과 인터넷 검색엔진 큐브를 가지고 있고 또 애플의 주식도 10% 이상 가지고 있으니까.”
“예, 그렇습니다. 거기다가 미국 증시에 투자하고 있는 사모펀드 자금이 1000억 달러 규모이고 유럽 증시에도 1000억 달러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해서 투자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건가?”
다윗연합 수장은 이상한 눈빛으로 변했다.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가 되기 위해 내게로 오겠지만 친구의 약점 하나 정도는 잡고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을 하나?”
“태양 컴퍼니 그리고 백범 회장에게 약점은 존재합니다.”
“무엇이지?”
표정이 밝아지는 다윗연합 수장이다.
“나우루 공화국과 체결한 투자 계약입니다.”
“그래?”
“현재 나우루 공화국은 정치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고 백범과 맺은 투자 계약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지만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나우루 공화국은 아직 투자에 대한 수익금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만약 나우루 공화국에서 투자한 금액에 대한 이익금을 요구할 경우 백범 대표는 막대한 이익금을 나우루 공화국에 지급해야 할 것입니다.”
“지급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말씀하신 것처럼 독소 조항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것을 알아야겠군.”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백범은 나우루 공화국에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니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수익에 대한 배당금을 지급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앞으로 18년 후였다.
물론 그 전에 투자 계약을 나우루 공화국에서 일방적으로 투자 계약을 파기한다면 원금만 받을 수 있는 독소 조항이 존재했다.
* * *
나우루 공화국 재정 장관의 집무실.
“이것이 확보한 투자 계약서입니다.”
재정 장관의 측근이 나우루 공화국 대통령궁에서 입수한 투자 계약서 사본을 현 나우루 대통령의 아들인 재정 장관에게 내밀었다.
“독소 조항이 있겠지?”
현재 나우루 공화국 재정 장관은 쿠데타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재정 장관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측근도 재정 장관이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배신의 중복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현 대통령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자 계약을 체결하셨고 국회가 승인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어떤 독소 조항이지?”
“총 투자된 자금은 100억 달러입니다. 그리고 투자 성공에 의한 수익금은 20년 후에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배당을 20년 후에?”
재정 장관이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백범을 자기 아버지인 대통령에게 소개해 준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막대한 수수료(?)를 받아먹었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 전까지는 연간 10%의 이자만 지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10%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 않나?”
1년에 10억 달러씩 받게 되어 있기에 독소 조항이라고는 하지만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의 입장에서는 나쁜 조건이 또 아니었다. 백범은 이렇게 나우루 공화국 사람들을 배부른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면 계약이 존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리베이트를 받으셨지.”
“그렇습니다. 이면 계약서에는 추가로 10%의 이자를 대통령 각하의 비밀계좌에 입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다우시군.”
그 이면 계약서 때문에 나우루 공화국 대통령은 백범과 말도 안 되는 계약을 체결한 거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나우루 공화국에는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단지 나우루 공화국이 투자한 100억 달러의 자금으로 현재 백범이 세계 최고의 투자가가 되어 있고 달러 자산만 1000억 달러를 넘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물론 태양 컴퍼니와 태양 그룹이 보유한 주식 자산과 부동산 자산 그리고 백범이 보유한 개인 주식 자산까지 합친다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었다.
“장관 각하.”
“말해.”
“현재 태양 컴퍼니는 수천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거대 투자 그룹으로 발전했습니다. 모든 것은 나우루 공화국의 자금으로 이룩한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재계약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와 국회가 거부할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배부른 돼지인 것을 만족하고 있으니까.”
매년 10억 달러의 이자가 나우루 공화국에 입금되고 있는 상태고 백범의 태양 그룹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성 해운이 관광 산업을 시작하면서 크루즈 카지노를 운영하면서 나우루 공화국을 경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추가 수익까지 발생하고 있어서 나우루 공화국 국민은 모두가 만족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더는 인산염을 채굴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니 상황을 바꿔야 합니다.”
재정 장관 측근의 말에 재정 장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최소 태양 컴퍼니와 태양 그룹이 이룩한 수익의 1/2은 나우루 공화국의 몫입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탐욕이 만들어낸 현실이지.”
물론 재정 장관 역시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막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우루 공화국 국민은 여전히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세계에 있는 대형 백화점들의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준비하시고 계신 것을 이제는 더는 늦춰서는 안 됩니다.”
“쿠데타라……!”
처음 재정 장관은 백범에게 무장병력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백범은 그 요청을 거절했고 나우루 공화국의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기에 재정 장관이 구상했던 쿠데타는 실행되지 못했었다.
“그렇습니다. 최소 10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잃고 있습니다.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병력은 준비가 됐겠지?”
“예, 소말리아 해적들을 고용해 놓은 상태입니다.”
“좋다. 내가 나우루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겠지.”
“디데이를 언제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이 주일 후!”
“예, 알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우루 공화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재정 장관의 측근은 사뭇 달라진 눈빛으로 재정 장관에게 말했다.
‘아버지를 쿠데타로 죽인 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지. 흐흐흐!’
이렇게 백범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나우루 공화국의 정치 상황이 돌변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