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197화 백범의 노림수? (1)
1998년 6월 29일, 태양 그룹 회장실.
정부 주도에 의한 빅딜 계획이 발표됐고 태양 전자는 현성 전자와 삼정 전자를 현금을 통해 인수합병한다는 발표가 언론에 보도가 됐다.
“전자를 품은 태양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
박태웅 상임이사가 내게 말했다.
하여튼 정부 주도 빅딜은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포장되어 언론의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서 현 대통령의 업적으로 광고가 되고 있다.
“그렇군요. 이제는 대한민국 반도체 업계는 내 손에 달렸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을 실망하게 하지 않게 대대적인 반도체 연구 개발에 착수해야겠죠?”
“물론입니다.”
“연구 개발비는 얼마를 써도 상관이 없습니다. 삼정전자가 확보한 반도체 기술에 더해서 몇 세대나 앞서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내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해서 태양 전자는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인 전자회사로 거듭난다.
“빅딜 보도와 함께 태양전자의 주가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된 거죠.”
이제부터는 태양전자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신벽란도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물론 미국에 있는 블랙홀 그룹도 그런 역할을 수행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회장님.”
박태웅 상임이사가 나를 불렀다.
“오늘이죠?”
“예, 그렇습니다. 제일서민은행의 부분 민영화를 위한 우선협상자 선정 공모가 오늘입니다.”
“우선협상자 선정에 참여한 곳은 어디입니까?”
“기존에 보고를 드린 것처럼 3곳입니다.”
“우리는 얼마를 제시해야 할까요?”
“청와대와 한 약속이 있으니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많이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영은행인 제일서민은행의 지분 51%를 가지는 일이다.
“30억 달러를 써내야겠군요.”
“회, 회장님…….”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는 기겁한 눈빛으로 나를 불렀다.
“삼정전자도 20억 달러에 합병했죠.”
“예, 그렇습니다. 너무 큰 금액입니다.”
“너무 적당한 가격에 제일서민은행을 제가 가지게 되면 나중에 특혜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이번에는 호구가 되어 볼 참입니다. 국민들을 위한 호구 말입니다.”
“정말 생각 자체가 다르십니다.”
“30억 달러면 올해 안에 대한민국 정부는 추가로 받을 100억 달러까지 합쳐서 IMF에 조기상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말씀은 인천국제공항을 정말 포기하시는 겁니까?”
“포기요? 제가요?”
“아닙니까? 제주공항과 김포공항에 100억 달러를 투입하시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신벽란도 프로젝트에서 제주는 꼭 필요한 곳이죠. 그리고 제주공항을 통해서 엄청난 현금 수익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현금 수익이라고 하셨습니까?”
“그제 제주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승격시킨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수익이 확보될지 의문입니다.”
“제가 생각해 놓은 것이 다 있습니다.”
“혹시……?”
박태웅 상임이사는 짐작이 된다는 눈빛을 보였다.
“제주도는 앞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곳이 될 겁니다.”
제주도가 완벽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진다면 중국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올 것이고 그에 따라 수익이 극대화가 될 것이다.
“아……!”
“또한, 대한민국 최대의 면세점이 들어설 겁니다. 그리고 제주도 공항면세점에는 세계 명품 브랜드가 입점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수익은 확대가 됩니다.”
“거기까지는 발표가 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발표됐다면 군침을 삼키는 것들이 많아지니 내가 제주공항과 김포공항을 가진 후에 발표가 될 겁니다.”
“아…….”
박태웅 상임이사가 탄성을 터트렸고 나는 대통령을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백범 회장님답지 않게 너무 쉽게 포기를 하신 것 같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왔을 때 문재한 경제수석이 나를 따라 나왔었다.
-각하께서 저렇게 완고하시니 한발 뒤로 물러날 수밖에요.
어떤 측면에서 대통령께서는 사업가로부터 인천공항을 지켜내신 대통령이시다.
-너무 많은 것을 내어주시고 가지신 것이 적으신 것 같습니다.
-수석께서 어떻게 해주시느냐에 따라서 제가 가지게 될 것이 달라질 겁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주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승격시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정부의 입장에서는 돈이 드는 일이 아니고 제주도도 따지고 보면 섬이니 낙도개발진흥법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면 그렇기도 합니다.
제주도도 섬은 섬이니까.
-전 대통령께서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특구를 성장시키고 싶어 하셨습니다.
내가 인천국제공항은 가지지 못해도 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희대의 망언이라고 할 수 있는 사투리 사용의 극치인 강간도시 건설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제주도는 세계적인 관광특구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야 합니다.
-아……!
문재한 경제수석은 이제야 내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탄성을 터트렸다.
-가능하시죠?
-몹시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지면 제주도 치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추후 난민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내일 걱정할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됩니다. 경제수석께서 제주도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지역으로 만들어 주시면 저는 제주공항에 세계적인 면세점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이익을 거두실 수 있겠군요.
-그렇게 될 겁니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재벌 수준의 부자들이 중국에는 대한민국 총인구와 비슷하다는 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중국인을 노린다?
-그렇습니다. 그와 함께 호텔 카지노 육성법도 추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앞으로 향락의 도시가 되겠군요.
-하나를 얻게 되면 또 하나를 잃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정선지역에 내국인 전용 카지노를 설립하면서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제주도에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추진했으면 합니다.
이것은 내가 살았던 미래에도 없던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미래를 바꾸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니 꽤 많은 것을 잃게 되지만 제주도에 내국인 출입 카지노도 만들어져야 한다.
-백범 회장, 내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카지노가 국토의 균형 발전에 부합된다는 소리는 개소리입니다.
내가 그때 이런 말을 문재한 경제수석에게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개소리 맞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가야 합니다.
-각하의 오명이 되겠군요.
-각하께서는 제게 인천국제공항을 안 주셨으니까요.
-아직도 인천국제공항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겁니까?
-경제수석님.
-예, 백범 회장님.
-저랑 먼 길 같이 가시자면서요? 20년 후에 저 건물의 주인이 당신이라는 야망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문재한 경제수석의 눈빛이 달라졌다.
-으음…….
-오늘부터 준비하면 그때 당신께서는 대한민국 통일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사내는 모두 야망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다.
“회장님.”
내가 회상에 잠겨 있을 때 박태웅 상임이사가 나를 불렀다.
“말하세요.”
“제일서민은행을 가지실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국민들을 위한 호구가 될 시간입니다.”
태양 컴퍼니 전략분석실에서 분석한 제일서민은행의 가치는 3조 원 정도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제일서민은행을 인수하고자 한다.
‘10개의 종금사를 모두 제일서민은행의 지점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내가 제일서민은행을 30억 달러나 주고 합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대한 빠르게 우량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량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산규모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그냥 주는 공짜는 없는 법이다.
* * *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실.
“태양그룹이 제일서민은행을 인수하게 된다면 태양그룹의 모든 자금이 일시에 제일서민은행으로 이동할 겁니다.”
제일서민은행의 민영화 때문에 불똥이 튄 곳은 산업수출은행이었다.
“으음......”
산업수출은행 은행장도 신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대책을 강구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대책이 있소?”
“현재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꼭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행장의 말에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의 눈빛이 변했다.
“그 있다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산업수출은행이 민영화에 착수해서 제일서민은행과 합병하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시아 최대의 은행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태양그룹과의 합병?”
“예, 그렇습니다. 백범 회장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우린 우량한 은행입니다.”
“그 우량함이 태양 그룹 때문이지 않습니까? 종금사 사태를 피할 수 있었고 기타 등등의 악재를 모두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태양그룹 덕분입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태양 그룹이 예치한 자금이 모두 이탈한다면 그 자체가 부실화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요?”
“한국은행 은행장부터 만나셔야 합니다. 또한 경제수석과 금강원장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합병을 추진한다면 산업수출은행은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행장.”
산업수출은행장이 부행장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불렀다.
“예, 은행장님.”
“이거 당신 생각입니까? 아니면 백범 회장 생각입니까?”
은행장의 물음에 부행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알겠소. 무슨 의미의 미소인지......”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KBC뉴스 데스크.
“제일서민은행 부분민영화에 따른 우선 협상자로 태양그룹이 선정이 되었습니다. 태양그룹은 제일서민은행의 지분 51퍼센트를 확보하는 조건으로 30억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뉴스 앵커가 제일서민은행 부분민영화에 대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고 백범은 박태웅 상임이사에게 말한 것처럼 30억 달러를 적고 우선 협상자에 선정이 됐다.
“또한 태양 그룹 측은 제일서민은행을 인수하면서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첫 민영화 사업에서 헐값 매각이 아닌 제대로 된 매각에 성공했기에 남은 10개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것이 백범이 노린 두 번째 노림수였다.
물론 이제 대한민국 정부는 10개의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헐값에 공기업을 민영화할 수 없게 됐고 그와 함께 공기업을 인수하는 회사들 역시 자신들이 생각하는 자금 이사의 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 * *
달리는 자동차 안.
“제일서민은행을 태양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해야겠습니다.”
나는 박태웅 상임이사를 보며 말했다.
“예, 그렇게 추진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떤 행보를 걸어야 할까요?”
“그 말씀은?”
“나는 태양은행을 아시아 최대의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킬 생각입니다. 최소한 도이치뱅크보다는 규모적인 측면이나 수익적인 측면에서 위에 서고 싶습니다.”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가 나를 빤히 봤다.
“그 말씀은......?”
나를 물음표에 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박태웅 상임이사는 내가 다음에 무슨 일을 추진할지 알겠다는 눈빛이다.
“합병입니까?”
“그래야죠. 제가 지금까지 산업수출은행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아……!”
“이 모든 것이 사하라 사막 녹지화 사업과 신벽란도 프로젝트의 준비 과정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은행만큼 자금 조달이 쉬운 곳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