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192화 빅딜, 얼마면 됩니까? (2)
1998년 6월 4일 저녁, 국제호텔 레스토랑 특실.
삼정그룹 회장의 요청에 의해서 그를 만나고 있다. 삼정그룹 회장은 스스로도 내가 삼정그룹 계열사에 대한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 의사가 없다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이렇게 나를 만나기를 요청한 것은 일종의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격세지감이군…….’
내가 삼정그룹 회장과 단둘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위치가 됐다는 것이 나 자신도 놀라울 뿐이다.
‘삼정전자다.’
삼정그룹 회장은 내가 가진 태양 컴퍼니와 태양 그룹이 합작해서 삼정전자를 인수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삼정전자가 목표다.
-증권가 찌라시를 이용해 내일부터 삼정생명과 삼정물산에 대한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이 진행될 거라고 정보를 흘리세요.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박태웅 상임이사에게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다.
‘성동격서지.’
삼정생명은 국내 최대의 생명보험 회사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태양 그룹의 태양생명은 이제 막 보험 업계에 진출한 회사고 내가 가진 15개의 종금사 중 하나를 업종 전환을 해서 태양생명을 만들었다. 물론 태양생명의 지분은 태양 그룹이 30% 그리고 태양 컴퍼니가 30%를 보유했고 나머지 40%는 내가 직접 출자한 회사다.
‘한마디로!’
그냥 내 회사다.
-성동격서입니까?
-그렇게 시작해 보려고요. 오늘 저녁이면 경제 전문가와 주식투자자들이 모두 그 찌라시를 알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진행하시면 삼정생명과 삼정물산의 주가가 상승하고 그에 따라서 주가조작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한다고 소문만 퍼트리면 주가조작 개입이지만 진짜 하면 적대적 기업인수입니다.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는 그때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하시려고요?
-돈이 있는데 못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진짜로 해야 삼정그룹 회장께서 놀라시죠. 거대한 둑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구멍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그렇게 정말 두 회사의 주식을 경영권 확보 목적으로 매집하면 매집 과정에서 출혈을 감수해야 합니다.
-합시다. 삼정전자만 가질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삼정전자가 필요하십니까?
내게 왜 이렇게 삼정전자에 집착하냐는 눈빛을 보였던 박태웅 상임이사다.
-삼정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통한 세계 경제를 손아귀에 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태양전자가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애플이 나를 위해 돈을 벌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사하라 사막 녹지화 사업과 신벽란도 사업에 투자가 될 것이다.
‘민간이 국가에 대출을 해주고!’
막대한 영향권을 행사한다.
그런 막대한 영향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내 심장과 함께 뛰는 모국은 대한민국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조국은 미국이 될 것이다.
“식사는 입에 맞으십니까?”
잠시의 침묵을 깬 사람은 삼정그룹 회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자리에 나올 때부터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했었다.
‘삼정생명과 삼정물산에 대해서 보고받은 거지.’
이제 제대로 된 공갈·협박(?)이 시작될 것이다.
“예, 정말 제 입맛에 맞습니다. 회장님.”
“백범 대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다시 나오지 않을 사업가인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내가 서른쯤에 무엇을 했었는지 떠올리게 만듭니다.”
삼정그룹 회장의 서른 살쯤에는 사카린을 밀수했었다. 그리고 그게 밝혀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삼정화학을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으로는 회장님께서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대일본 무역에 힘을 쓰고 계셨던 것으로 압니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돌려까기일 것이다.
‘어떤 표정인지 보자.’
나는 삼정그룹 회장을 바라봤지만, 그의 표정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젊은 사업가들은 의욕이 넘쳐서 실수를 제법 많이 한답니다.”
이 말은 내가 그리고 태양 컴퍼니가 또 태양 그룹이 막대한 자본력을 이용해서 삼정생명과 삼정물산을 인수합병하려는 시도가 실수라고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수 속에서 성공이 존재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도 하지요.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예, 경청하겠습니다.”
“태양 그룹은 또 태양 컴퍼니는 그리고 그것을 가진 백범 대표께서는 나를 삼정그룹을 적으로 돌리시려는 겁니까?”
조금 전까지는 온화한 표정 그 자체였는데 순간 시쳇말로 훅 들어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 * *
론스타 펀드 서울 지부 스미스의 집무실.
“내일 태양 컴퍼니와 태양 그룹이 삼정물산과 삼정생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선포한다는 증권가 찌라시가 돌고 있다고?”
스미스는 놀랍다는 눈빛으로 보고자에게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냥 그런 증권가의 찌라시가 아닌 것으로 분석팀에서 분석했습니다.”
“진짜 그럴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으음……!”
스미스는 이번 상황으로 어떤 이익을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게 가능할까?”
“현재는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백범이 모를까?”
보고자에게 질문을 하는 스미스지만 스미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내고 묘한 미소를 보였다.
“백범의 블랙홀 그룹은 미국 현재에서도 알아주는 주식 투기세력이지?”
“예, 그렇습니다. 불확실성에 투자하지만 매번 그 불확실성이 성공했었습니다. 특히 애플에 대한 장기 투자는 놀라울 뿐입니다.”
“블랙홀 그룹이 애플의 주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지?”
“현재 10%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주가조작이군.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 발표를 통해서 주가를 상승시키고 상승한 주가를 상당 기간 유지한 후에 매도할 생각이다.”
“아……!”
“그렇다면 우리도 내일 당장 삼정물산과 삼정생명을 매수한다.”
“예, 알겠습니다. 보스.”
보고자는 바로 대답했다.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고 다른 투자관리자가 조심히 스미스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보스.”
“무슨 일 있나?”
“삼정그룹 회장과 백범 회장이 국제호텔에서 비밀 회동을 진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내 예측이 적중한 것이다. 아무리 백범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삼정그룹을 건드릴 수는 없지. 이건 둘이 공모한 거다. 하하하!”
스미스는 또 한 번의 오판을 시작하고 있었다.
* * *
“제가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성공하기 힘든 것을 성공시키려고 너무 많이 애를 쓰시는 것 같습니다. 태양 그룹과 태양 컴퍼니가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삼정전자는 내게 확고한 우호지분이 52%기 때문에 태양전자에게 합병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삼정그룹 회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쪽으로 공격 방향을 잡으신 겁니까?”
들은 것이다.
내가 삼정물산과 삼정생명을 향해 내일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을 선언할 거라는 찌라시를 보고 받은 것이다.
“하하하, 세상에는 이렇게 비밀이 없습니다.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안인데 그게 참 허술하게 관리가 된 모양입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제 목표는 보고를 받으신 것처럼 삼정생명과 삼정물산입니다.”
“그래서요?”
“삼정물산과 삼정생명이 가진 삼정전자의 지분을 회장님이 아닌 저의 우호지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백범 대표, 겨우 이십몇 퍼센트의 지분으로 삼정전자를 차지할 수 있다고 봅니까?”
살짝 눈빛이 변하는 삼정그룹 회장이시다.
“정부 주도 빅딜이 있지 않습니까?”
“뭐, 뭐라고 했소.”
이제야 당황하는 삼정그룹 회장이시다.
“그전에 제가 삼정생명을 인수하게 된다면 보험업계 판도를 바꿔놓을 생각입니다.”
“삼정생명도 가지시겠다?”
“생명보험이야말로 황금알이지 않습니까.”
“보험업계는 쉬운 사업이 아니오, 리스크도 참 많은 사업입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생명보험과 병원을 연계한다면 많은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말은…….”
“개인정보 동의 및 활용에 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환자의 신상명세에 대한 활용은 합법이 됩니다. 제가 삼정생명을 세계적인 보험회사로 성장시키겠습니다.”
“허허허……!”
내 말에 삼정그룹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웃을 뿐이다.
“이봐요, 백범 대표 삼정생명은 적대적 인수합병이 쉬울 것 같소?”
“금융 분야에서 국내 최고가 태양그룹이라는 것은 아시지 않습니까.”
정부 주도 빅딜에서 내가 가장 선전할 수 있는 곳은 금융 분야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삼정그룹 회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국가주도 빅딜을 이렇게 풀어내는 사업가는 또 처음이군요.”
“회장님, 내일이면 삼정물산과 삼정생명의 주가가 폭등하게 될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삼정전자 주식도 제가 폭등시킨 것 아니겠습니까.”
“으음…….”
“제가 회장님을 아시아 최고의 주식부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 아시아 최고는 어렵겠군요. 제가 있으니까요.”
내 말에 삼정그룹 회장은 뭐 이런 천둥벌거숭이가 다 있냐는 눈빛이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없는 것은 내일 실시될 삼정물산과 삼정생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발표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백범 대표는 자신감 하나는 타고 난 것 같습니다.”
“자신감이 아니라 모든 준비를 끝냈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는 겁니다.”
“허허허……!”
삼정그룹 회장은 그저 웃을 뿐이다.
“좋소, 꿈은 그렇게 거대해야 하는 법이지요. 삼정생명이나 삼정전자를 가지겠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왜 삼정물산도 탐을 내는 겁니까?”
삼정물산은 삼정그룹의 계열사로 종합유통물류와 무역 그리고 건설사업을 영유하는 회사다.
‘삼정생명 주식 17.47%와…….’
삼정전자 주식 7%를 소유했고 삼정그룹 오너 일가가 직접 보유한 삼정전자 지분과 삼정물산, 삼정생명이 보유한 삼정전자 지분을 모두 합하면 25%에 달하고, 기타 계열사들과 재단 지분까지 합하면 30퍼센트에 육박하고 그 지분을 통해서 삼정전자를 경영하면서 또 삼정그룹의 지배하고 있다.
“삼정물산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이건 자신감이다.
“제가 삼정물산을 가지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들으시면 좀 황당하실 겁니다.”
“들어는 봅시다. 사실 나는 백범 대표처럼 이렇게 솔직한 사람은 또 처음입니다.”
“제 솔직함은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그렇지요. 젊은 사람은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지요. 삼정물산까지 백범 대표의 품에 안으려는 시도는 왜 계획하신 겁니까?”
정말 궁금한 모양이다.
사실 지금까지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존재들도 삼정그룹에게 이빨을 보인 적이 없다.
“들으시면 놀라시고 황당하실 겁니다.”
“그래도 들어봅시다. 어떻게 하실지 궁금하군요.”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