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187화 적의 방법으로 갑니다(1)
1998년 6월 1일, 증권 감독원 회의실.
증권 감독원은 증권 시장의 효율적인 관리와 감독을 위하여 증권거래법에 따라 1977년에 설립한 특수법인이다. 그리고 곧 금융 감독원이 설립되면서 1999년에 폐지될 법인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적대적 인수합병 수준의 주식 매수입니다.”
증권 감독원은 증권 시장의 효율적인 관리를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증권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체의 특이사항들에 대해서 회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도 하군.”
“미국에 본사를 둔 태양 컴퍼니의 대한민국 법인이 현재 삼정전자 주식을 7%까지 매수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현재 삼정전자 주식은 100% 상승한 5만 원대에 진입했습니다.”
보고자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이렇게 되면…….”
“삼정 그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태양 컴퍼니의 소유주가 백범 대표입니다.”
“그렇죠.”
“현재 거의 대한민국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그룹 중에 대후 그룹만 제외하고 순매수에 돌입했습니다.”
“허허허, 이러다가 대한민국 최고 재벌 서열이 바뀌겠군요. 그건 그렇고 특별한 문제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뭐라고 할 수도 없군요. 주가 조작의 징후도 없고 외국계 투자 전문 회사가 국내 주식을 매수한다는 것은 종합 주가 지수 상승에도 좋은 의미이니까요.”
“이러다가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을 통해서 삼정전자가 태양 컴퍼니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외국계 기업이 됩니다.”
삼정 그룹은 사실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이다. 과거에는 현성 그룹과 1위와 2위를 다투던 기업이었다.
“외국계 자본에 주식 시장을 완전히 개방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IMF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 나오는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가 워낙 부실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좋아졌습니다. 외평채 50억 달러 발행에 성공했고…….”
회의를 주관하는 위원장이 외평채 이야기를 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백범 대표지…….’
외평채 50억 달러를 매입한 사람도 백범이라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정말 이러다가 백범 대표가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 되겠군.’
한마디로 다 가지기 시작한 백범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백범이 다 가지기 시작했지만 가지지 못한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재벌 그룹이 가진 인적 기반이다.
그 인적 인프라는 것은 그룹 내부보단 외부에 더 많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 측면에서는 백범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백범 대표입니다. 대한민국 경제를 특히 외환 분야에 대해서는 손아귀에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의 자금 출처가 의심스럽다는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1년 만에 세계를 그리고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백범이다. 그리고 그는 1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는 300억의 자본금을 가지고 수많은 대출을 통해서 기업의 자본 규모를 늘렸기에 이런 의심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태양 컴퍼니는 사모 펀드입니다. 그리고 사모 펀드의 투자자들은 극비사항으로 유지가 됩니다. 카더라 통신에는 미국의 마피아 자금이 유입됐다는 말도 있고 유대인의 자본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정도로 자본력이 향상할 수 없다는 것이 분석 결과입니다.”
“그렇기도 하군요.”
“내사해야 합니다.”
보고자가 태양 컴퍼니에 대한 내사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내년이면 증권 감독원은 폐지됩니다.”
“아…….”
“새로운 기구가 출범되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하여튼 삼정전자의 지분을 7%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군요. 지켜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백범은 현재 대한민국의 종합 주가 지수를 상승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승은 결국 국가신용도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끌어낼 것이다.
* * *
태양 컴퍼니 대한민국 법인 회장실.
“5월 16일 이후 공격적으로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오늘 회의는 주식 매입에 관한 결과 보고다. 그리고 차후 매수할 회사에 대한 내 지시를 하달하는 회의다.
“어느 정도 확보했습니까?”
나는 박태웅 상임이사를 보며 말했다.
“우선 삼정전자의 주식을 태양 컴퍼니에서 7% 보유했고 그에 따라 5월 16일 기준으로 현 삼정전자 주식이 100% 상승해서 5만 원이 됐습니다.”
현재 정부 주도 빅딜 이야기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는 상태다. 어떤 측면에서는 나는 삼정전자의 백기사 노릇을 해주고 있는 것이고 외국계 기업인 태양 컴퍼니가 삼정전자의 주식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삼정전자의 가치를 높여주는 결과다.
“지분 공시를 통해서 태양 컴퍼니는 삼정전자의 3대 주주로 등극했습니다.”
“그럼 삼정 그룹에서 난리가 났겠군요.”
“예, 그럴 것입니다. 그룹의 특성상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겁니다.”
박태웅 상임이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4대 대주주와 5대 대주주도 우리죠?”
나 역시 박태웅을 보며 웃었다.
“예, 그렇습니다. 태양 그룹이 5%를 보유했고 키움증권이 4.9%를 보유했습니다. 그리고 태양토지개발회사가 3.1%를 보유한 상태입니다.”
모두 20%의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마음만 먹고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한다면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을 통해서 삼정전자를 집어삼킬 수도 있는 상태다.
‘대단해졌어.’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물론 삼정 그룹 전체 계열사가 삼정전자의 주식을 각각 보유하고 있기에 현재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좋습니다. 삼정 그룹 관련 계열사들의 주식을 모두 확보하십시오.”
내가 지시했던 그룹의 계열사들의 주식은 이미 목표한 그대로 확보한 상태다.
“예, 이미 현성자동차와 현정중공업을 비롯해서 지시한 회사들의 주식은 5% 이상 확보를 끝낸 상태입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는 삼정 그룹 계열사들의 주식을 확보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현정엘리베이터의 주식은 최대한 확보하십시오.”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가 무슨 의도인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고층 건물의 시대입니다. 5층 이상이면 무조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야 합니다. 건설 경기가 좋아지고 아파트 건설이 증가하면 엘리베이터 회사와 창호 회사가 돈을 벌죠.”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승강기와 창호 회사에 대한 주식 보유를 극대화해서 시장을 장악할 생각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대한민국의 종합 주가 지수는 얼마나 상승했습니까?”
“현재 50포인트 상승했습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부가적인 수익도 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종합 주가 지수 상승 관련 옵션 투자로 현재 순매수한 주식 자금의 1/3을 회수했습니다.”
주식이라는 것이 그렇다.
파고자 하는 사람보다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반드시 주가가 상승하고 거품이 생긴다. 그리고 삼정 그룹은 현재 미국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태양 컴퍼니가 삼정전자에게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전화가 오겠군.’
삼정 그룹 회장은 내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서 연락해 올 것이다. 그리고 사업 맞교환 관련으로도 접촉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하여튼 삼정 그룹을 더 압박해 봅시다. 삼정 그룹의 6대장이라고 불리는 회사들의 주식도 대대적으로 매입합니다.”
“회장님, 현재 증권가에는 태양 컴퍼니와 태양 그룹이 합심해서 삼정전자를 합병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찌라시에서 그렇죠?”
“예, 그렇습니다. 아마도 삼정 그룹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준비할 겁니다.”
“증권가 찌라시가 정말 고맙네요. 삼정 그룹에서 준비를 시작했다면 주식 매수밖에는 없으니 주식 가격은 더 상승하겠군요.”
“그럴 겁니다.”
“주식이 오르면 매도하면 그만입니다. 내 손에 떡이 있으니 어떻게 먹을지만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측면에서 나는 주식 생태계를 교란하는 변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식 매수 회의는 여기까지, 우도삼다수는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이미 나는 우도관광개발회사를 이용해서 해양 심층수를 개발한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한 상태고 우도관광개발회사는 비상장 기업이지만 주식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는 상태다.
“개발인가가 났습니다.”
“그럼 이제 광고군요.”
“예, 그렇습니다. 조수종 배우가 우도삼다수 광고에 투입이 될 예정입니다.”
“우도삼다수 광고가 시작과 함께 해양 심층수 시추를 위한 준비를 끝내십시오. 그리고 마라도 남단에도 해양 심층수 시추를 위한 해양 플랜트 계약을 준비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현성중공업과 논의하라고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이것은 분명 비밀이 유지가 되어야 하는 프로젝트다.
* * *
삼정 그룹 회장실.
삼정 그룹은 태양 컴퍼니와 태양 그룹의 주식 매수 때문에 긴급회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계 자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태양 컴퍼니가 태양 그룹이나 다름이 없어요.”
삼정 그룹 회장은 심각한 얼굴로 삼정 그룹 중역들을 보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두 회사의 대표이사가 백범입니다.”
“그러니까요. 어떤 측면에서는 태양 그룹 역시 미국계 자본이오.”
“예,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대대적으로 이렇게 보란 듯 삼정전자의 주식을 매집하는 것은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까지 고려하고 있으므로 이러는 것 같습니다.”
중역 한 명이 삼정그룹 회장에게 말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주가가 급상승을 하는 과정에서도 매수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확보한 총 지분이 얼마지?”
“20%입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삼정전자 주식담당 이사가 삼정 그룹 회장을 보며 말했다.
“우리의 우호지분은?”
“현재까지는 경영권 확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회장님과…….”
“나와 내 주변인이 보유한 주식이 15%지?”
“예, 그렇습니다.”
놀라운 것은 백범이 삼정 그룹 회장과 주변인들보다 더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삼정 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정전자의 주식까지 더한다면 증권가 찌라시에서 말하고 있는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통주식의 수가 28%입니다.”
“그 유통주식들이 모두 백범 대표의 손을 잡아준다고 해도 경영권 방어는 문제가 없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삼정전자에 대한 경영에 간섭할 수는 있겠군.”
삼정 그룹 회장이 처음으로 인상을 찡그렸고 그때 회의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중년 남자가 들어와서 삼정 그룹 주식담당 이사에게 귓속말로 말한 후에 묵례하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회장님…….”
그때 주식담당 이사가 삼정 그룹 회장을 불렀다.
“왜?”
“태양 컴퍼니가 공개적으로…….”
“설마?”
삼정 그룹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삼정물산, 삼정생명, 삼정SDS, 삼정자동차, 삼정중공업을 비롯한 계열사들의 주식 매수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자금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공시를 통해서는 경영권에 참여하겠다고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나랑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회장님…….”
“왜?”
“백범 대표를 만나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빅딜이 진행 중입니다.”
“으음…….”
삼정 그룹 회장이 신음을 터트렸다.
“비서실장.”
“예, 회장님.”
“연락해 보게.”
“예, 알겠습니다.”
백범이 예상한 그대로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