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182화 대한민국에 진출한 일본 대부업체를 말살하다 (3)
태양종합투자금융회사 회장실.
1998년 5월 12일, 대한민국에 입국한 지 하루가 지났고 나는 썰렁한 강북 아파트에서 하루를 컵라면으로 때우며 보내고 이곳에 있다.
‘돈이 이렇게 많은데……!’
내 아내 은혜가 미국에 있으니 먹는 것이 부실해진다. 그리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결국 가족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태양저축은행 설립을 위해서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에 왔고 중역들을 모두 불렀다.
“일본계 대부업체로부터 대한민국 서민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태양 그룹은 대대적으로 대부업체에 진출할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내 말에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 중역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표정이 왜 그럽니까?”
“대부업의 이미지는 태양 그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현재 회장님께서 추진하신 사업들 때문에 태양 그룹은 대한민국 국민이 선호하는 1위 그룹으로 거듭나 있는 상태입니다.”
곽우천이 내게 말했다.
“그런 면도 있군요.”
“예, 그렇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빅딜에서도 태양 그룹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중역도 곽우천과 똑같은 말을 내게 했다.
“그래서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대한민국 서민들의 고혈을 짜서 착취하는 것을 보란 말입니까? 나는 대한민국 자본가로서 그건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태양 컴퍼니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태양 컴퍼니로 하라?”
“예, 그렇습니다.”
곽우천이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태양 컴퍼니는 외국계 투자기업이니 정부 규제도 느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대부업에 진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양 컴퍼니는 아직 자본만 가지고 있지, 아무런 인프라도 없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국가 발전 차원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안정시키고 은행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 15개의 종금사를 인수·합병하셨습니다. 그 종금사 중 한 곳을 계열 분리를 통해서 독립 법인으로 만드신 후에 태양 컴퍼니와 합병하신다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럼 어느 종금사가 좋겠습니까?”
나는 곽우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 씨앗 종합금융을 계열 분리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씨앗 종합금융은 전국 50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 그룹의 핵심인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와 지점이 겹치는 곳이 많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회장님께 씨앗 종합금융의 지점들을 폐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송할 예정이었습니다.”
“곽우천 이사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추진합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나는 어느 순간 회장이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또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는 태양 그룹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태양종합금융트자회사를 태양 그룹이라고 부르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태양 그룹에서 씨앗 종합금융을 계열 분리하고 바로 태양 컴퍼니와 합병을 추진하시고 그와 함께 태양저축은행을 자회사로 설립하십시오.”
“회장님, 태양이라는 단어는 설립될 대부업체에서 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태양이라는 말이 싫습니까?”
“대부업의 이미지 때문에 태양 그룹의 이미지가 실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옳은 말씀이군요. 하지만 눈을 가리고 아웅 하기도 싶습니다. 나중이면 다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태양저축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대부업에 진출합니다.”
내 말에 모든 중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대기업이 대부업에 진출하는 1호가 되겠군…….’
아마도 이것은 태양 그룹의 흑역사로 기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정이자율의 반만 받는 사업 정책을 통해서 내가 그리고 태양 그룹이 일본계 대부업으로부터 서민들을 지켜내는 업체라는 이미지를 심어놓을 참이다.
“하여튼 바로 계열 분리 착수하시고 광고 계획 수립하십시오. 산왕 머니를 보니까, 입에 착 달라붙는 로고송이 국민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로고송 제작과 함께 태양저축은행의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할 수 있는 구호를 만드세요.”
“회장님.”
중역 하나가 나를 불렀다.
“누구?”
“우도관광개발회사 사장인 김도출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은밀히 우도 전체의 사유화를 위해서 우도관광개발회사라는 법인을 설립해 놓은 상태다.
“말하세요.”
“좋은 슬로건이 떠올랐습니다.”
“무엇입니까?”
“빚에서 빛으로, 태양저축은행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군요.”
태양 그룹은 결국 빛이다. 그러니 빚에서 빛으로라는 슬로건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합시다. 광고에 반영하시고 광고에서는 최고 스타를 섭외하십시오.”
내 말에 태양 그룹 중역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또 이미지 때문에 어렵다는 겁니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돈 많이 주시고 태양저축은행이 출범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필하십시오. 분명한 것은 일본계 대부업체들을 말살하고 일본으로 철수시키기 위해서 설립된 저축은행입니다.”
“예, 노력하겠습니다.”
“최대한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여배우가 광고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조수종과 김희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평생 태양저축은행의 광고 모델로 활동시켰으면 합니다.”
내 말에 중역들은 멍해졌다.
“그 두 배우는 하이틴 스타로…….”
“가장 깨끗한 이미지 아닙니까? 그리고 혹시 압니까? 두 배우가 결혼이라도 할지. 그렇게 결혼이라도 하면 평생 모델로 좋을 것 같습니다.”
“에이 설마요.”
아무 말도 없던 박태웅 상임이사가 나를 보며 말했다.
“미래는 모르는 일입니다. 하여튼 그 배우들은 이미지가 정말 좋으니 그들을 섭외하십시오. 광고모델료는 얼마가 들어가도 상관이 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는 꼭 원합니다.”
“……예.”
내 말에 태양 그룹 중역들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리고 태양저축은행 사장은 이헌제 이사가 취임할 겁니다.”
이헌제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산업수출은행에서 스카우트를 한 금융 전문가다.
“제가요…….”
싫다는 눈빛이다.
“싫으십니까?”
“아닙니다. 저축은행도 은행이니 제가 힘껏 키우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고 김도출 사장만 남으십시오.”
오늘 나의 스케줄에는 전 비서실장이었다가 태양병원재단 이사장이 된 조광호 이사장을 만나는 일만 남았다.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비서실장과 박태웅 상임이사 그리고 김도출 사장만 남고 내 집무실에서 나갔다.
“비서실장님.”
“예, 회장님.”
“오늘 조광호 이사장과 만나는 스케줄 말고는 없죠?”
“예, 그렇습니다. 어제 미국에서 오셔서 회장님께서 피곤하실 것 같아서 다른 스케줄은 잡지 않았습니다.”
집에 혼자 들어가면 오늘 또 라면이 땡일 것 같다.
“그럼 오후 3시 이후에는 스케줄이 없군요.”
“예, 그렇습니다.”
“시간이 돈입니다. 오후 3시 이후에는 퀸 화장품 현지 시찰 나갈 겁니다. 그리고 태양전자에도 시찰할 거라고 통보하십시오.”
“그렇게 되시면 일정이 과도하십니다.”
비서실장이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바쁜 것이 좋은 겁니다. 그렇게 일정 변경하십시오.”
오로지 혼자 집에서 컵라면을 먹기 싫다는 생각으로 퀸 화장품과 태양전자는 회장 시찰이라는 불똥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내게 묵례를 하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두 회사에서 난리가 나겠군요.”
박태웅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시간은 돈입니다.”
“예, 그러시죠.”
박태웅 상임이사가 이죽거리듯 말했다.
‘나를 점점 더 잘 알아간다니까…….’
내가 어떤 의도로 이러는 것이지 짐작한다는 눈빛을 보이는 박태웅 상임이사다.
“김도출 사장.”
“예, 회장님.”
“우도의 토지는 얼마나 매입했습니까?”
나는 김도출 사장을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 * *
한아그룹 회장실.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은 이신과 통화 중이었고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의 둘째 아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 먹고 주책스럽게 내가 제시한 사업을 백지화시키게 됐습니다.
이신은 백범의 요청대로 대부업 진출 및 투자에서 손을 떼기 위해 이렇게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리드머니 사업을 백지화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자본력이 거대한 일본계 대부회사들이 진출한 상태에서 내가 투자한다는 것은 이익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오.
“알겠습니다.”
-끊읍시다.”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에게 전화를 건 이신은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뚝!
그렇게 이신이 전화를 끊자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 늙은이가 끝내는 노망이 들었군.”
이제야 불쾌한 심기를 들어내는 김승현 회장이었다.
“아버지.”
“리드머니 사업을 백지화하겠다고 한다.”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의 말에 그의 둘째 아들은 미소를 머금었다.
“왜 웃어?”
“그럼 잘된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꽤 보유하고 있기에 껄끄러웠는데 스스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냥 넘겨준다고 했으니 좋은 일입니다.”
“우리끼리만 하자고?”
“예, 그렇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리드머니를 아버지의 자금으로 또 제가 가진 재산을 출자해서 설립하고 3년 이내에 상장하겠습니다.”
“상장까지?”
“예, 대부업 최초로 상장사가 되는 겁니다.”
“으음…….”
“고민하실 것이 없습니다. 대부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룹 이미지에…….”
“한아라는 그룹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말 그대로 리드머니이니 리드와 오프라는 단어를 합쳐서 대부업체의 사명을 리드오프로 만들면 아는 사람만 알게 될 겁니다.”
“상장을 위해서는 기업 공개를 하고 CEO가 공개가 돼.”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궈서야 되겠습니까?”
“자신 있어?”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닙니까?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진출한 상태입니다. 시장성과 수익성이 보이기 때문에 진출한 겁니다. 이자율이 66퍼센트입니다. 이런 사업이 자신이 없으면 어떤 사업에도 자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국 일본계 대부업과 경쟁해야 해.”
“그러니까요. 어떤 측면에서 리드오프는 애국 대부업체가 되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자금이 일본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와 함께 사악한 미소를 보이는 한아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이었다.
“창규야.”
“예, 아버지.”
“너를 믿으마.”
“걱정 마십시오. 한아그룹의 든든한 자금줄이 될 겁니다.”
“알겠다.”
여기서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과 그의 아들인 김창규 사장이 간과한 것은 백범이 대부업계에 진출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진출을 통해서 시장 경쟁 체계에서 법정이자율인 66퍼센트를 33퍼센트로 하락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정이자율이 66퍼센트면 몇 년 후면 현금 동원력에서 국내 그룹 5위 안에 들 겁니다. 아버지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하여튼 한아그룹 김승현 회장과 그의 둘째 아들은 백범에게 개발살이 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것이다.
“하하하, 그렇지. 그렇고말고.”
미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 순간에는 이렇게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백범만이 미래를 알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백범이 알고 있는 미래도 백범의 행동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상태다.
백범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