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175화 소 떼 한 번 몰고 가시죠? (5)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작년과 올해의 상황이 달라졌으면 우리가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없겠지?”
“예, 그렇습니다. 각하. 한국은행에 1,000t의 금괴가 예치되어 있습니다. 2월 초에 폭락한 국제 금 시세가 다시 상승 조짐을 보이는 상태입니다. 1,000t의 금괴를 달러로 환산하면 110억 달러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서 대량의 금이 미국 시장에 풀렸고 그 때문에 백범의 태양 컴퍼니가 금 선물 옵션 투자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폭락한 금값 그대로 백범이 다시 매입에 착수해 1,000t을 확보했다.
“2월까지만 금괴를 수출하겠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3월부터 모금되는 금은 모두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가 매입해서 한국은행에 예치하기로 계약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획대로 차곡차곡 진행되는군.”
“예, 그렇습니다. 이제 외평채를 발행하실 때입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은 환율변동에 대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하고 보증하는 채권을 말한다.
“외평채?”
“그렇습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채권 발행의 적기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백범 대표도 동의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로?”
“50억 달러입니다.”
“50억 달러 전체를 태양 컴퍼니에서 받아줄 수 있다는 건가?”
“올 9월이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왜지?”
“올 9월에 백범 대표의 미국 법인인 블랙홀 그룹의 계열사인 블랙홀 닷컴이 미국 증시에 상장됩니다. 상장과 동시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될 것이고, 그 자금의 일부가 국채 구입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참 대단한 사람이야……!”
백범 대표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대통령이었다.
“물론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백범 대표와 논의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마디로 현재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존재는 백범이였다.
“그도 사업가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도 저번처럼 요구조건이 있을 겁니다.”
“우리 정부가 백범 대표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측면도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하지만 IMF 구제금융자금을 조기에 상환하기 위해서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알겠네. 계획 그대로 진행하세.”
“예, 대통령 각하.”
* * *
1998년 3월 2일, IMF 서울 사무소
“공매도는 거부했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보고자의 대답에 IMF 서울 사무소 소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작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거겠지?”
“예, 그렇습니다. 한국은행에 1,000t의 금괴가 예치되어 있고 달러로 환산하면 110억 달러입니다. 거기다가 3월부터 모금되는 금들은 모두 한국은행에 예치될 거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무슨 돈으로?”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의 자금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에서는 큰 이익을 거두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군.”
“본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철수?”
“차기 목표를 다시 선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차기 목표라면?”
“한 번 흔들어 봤고 제대로 흔들렸던 일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이라……?”
“예,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IMF에게 250억 달러를 빌린 상태지만 한국은행이 110억 달러 가치의 금괴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금괴의 양이 증가한다면 최대 150억 달러까지 보유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이 이렇게 거대할 줄은 몰랐군.”
“예, 그렇습니다. 거기다가 대대적으로 국채를 발행하고 그 국채를 구입할 존재가 있다면 상황은 또 달라집니다.”
“그런데 모든 요구를 다 거부하지 않고 공매도만 거부했을까?”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도 본질은 민간기업이고 사모펀드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 맹점이 있었군.”
“만약에라도 백범 대표가 변심하고 대한민국에 등을 돌리게 된다면 외환위기 상황 그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상황이 아주 복잡 미묘하게 됐군.”
IMF 서울 사무소 소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변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올해 9월 블랙홀 닷컴이 미국 증시에 상장되고 그 상장과 함께 백범이 보유한 블랙홀 닷컴의 39%의 지분 판매를 통해 얻어지는 자금이면 대한민국은 IMF에서 빌린 250억 달러를 모두 상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1998년 3월 2일 국제호텔 스위트룸 응접실.
나는 지금 현성그룹 회장을 만나고 있고, 이 만남은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다.
“국동 건설을 인수한 것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회장님.”
“백범 대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바쁜 사람이니 본론을 이야기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국가 주도 빅딜 사업에서 우리는 전자 분야를 포기할 의향이 있소. 그리고 현성 전자를 태양 전자에게 넘길 계획도 있소. 물론 충분한 대가가 충족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는 현성 그룹 회장이다.
“그러시군요. 태양전자도 현성전자를 인수할 의지가 충분합니다.”
이런 마음이기에 이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태양종금이 국동 건설을 인수한 것은 빅딜을 위한 조치이지 않소?”
“그랬습니다.”
“그랬었다?”
“예, 원래 계획은 국동 건설을 인수한 후에 호수 건설과 서의 건설까지 인수하여 규모를 늘려 빅딜에 참여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내 말에 현성그룹 회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건설 분야에 진출한다는 말이시오?”
“예, 그렇습니다.”
“으음…….”
“그 대신에 태양전자가 현성전자를 합병했을 때 태양종금은 달러로 대가를 지급하고자 합니다.”
“달러로?”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빅딜이 아니라 매각이지 않소?”
“예, 그런 모양새가 취해질 것 같습니다. 올 9월이면 제 미국 법인인 블랙홀 그룹에서 분리된 블랙홀 닷컴이 미국 증시에 상장되고 최소 90억 달러의 자금이 확보가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는 블랙홀 닷컴의 지분을 51%만 보유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다.
그렇기에 39%의 지분을 유통주식으로 매도할 참이고, 그 매도를 통해서 확보되는 자금이 90억 달러다.
“90억 달러라고 했소?”
현성그룹 회장은 입이 쩍 벌어진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현성 전사가 가진 모든 것을 제게 파십시오. 얼마면 되겠습니까?”
내 말에 현성그룹 회장이 나를 빤히 봤다.
“젊은 사업가가 돈은 많다는 소리군.”
“예, 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돈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허허허, 허허허!”
현성그룹 회장은 웃고 계시지만 못마땅한 눈빛이다.
“무례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지만 10억 달러에 제가 현성전자를 매입하겠습니다.”
“10억 달러……?”
“예, 그렇습니다. 그 10억 달러로 회장님께서는 그렇게 염원하시던 대북사업에 집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에 대해서 참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소.”
“대한민국 국민 중에 회장님이 만드신 신화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동차도 못 만드는 나라에서 조선소를 건설하시고 대형 선박을 건설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제 우상이십니다.”
“비행기는 그만 타고 싶소.”
“예, 알겠습니다.”
“10억 달러면 후한 금액이구려.”
“예, 그렇습니다. 그 자금으로 대북사업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에 착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각하께서도 내게 그 말씀을 하셨소.”
“예, 그러실 겁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취임식에서도 대북협력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시작을 회장님께서 준비하시고 포문을 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문을 내가 열라?”
“이북이 고향이시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대북사업을 위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이슈를 만드셔야 합니다.”
“생각해 놓은 거라도 있소?”
“회장님, 이상하게 들리실는지 모르겠지만 소 떼를 몰고 고향으로 한 번 가시죠?”
“뭐라고요?”
“1,000마리의 소는 제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허허허!”
내 말에 나를 보며 웃는 현성그룹 회장님이시다.
“소 떼와 함께 고향을 방문하시고 대북사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시는 겁니다. 그와 함께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지역 남북경제 특구 소성 사업에 저와 함께 동참하시는 겁니다.”
내 말에 현성그룹 회장은 놀란 눈빛을 보였다.
‘신의주 경제특구는 내가 차지해야지.’
신벽란도 프로젝트의 일부 중 하나가 신의주경제특구다. 물론 중국이 방해할 수도 있고 러시아가 딴지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이 쉬운 것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니 추진해 볼 참이다.
“내가 직접 소 떼를 몰고 가라.”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역사이십니다.”
“정말 획기적인 상상력인 것 같소.”
“회장님, 저와 함께 먼 길 가시지 않겠습니까?”
“먼 길이라고 했소?”
“제가 국동 건설을 인수한 진짜 목적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백범 대표는 내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소?”
“예,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진짜 목적이 뭡니까?”
이제부터는 현성 그룹이 놀랄 일만 남은 것이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사하라 사막을 녹지화해서 아프리카 전체를 그리고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거대 농장을 건설할 생각입니다.”
내 말에 현성그룹 회장은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냐는 눈빛으로 변했다.
‘다들 이렇지.’
* * *
“회장님이야말로 또 현성 건설이야말로 중동 건설 신화의 중추이지 않습니까?”
“정말 사하라 사막을 사서 녹지화 사업을 한단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게 진심이라면 홍해나 대서양에서부터 거대한 수로 아니 운하를 건설해야 하는데…….”
역시 말이 통하는 현성 그룹 회장님이시다.
“예, 그렇습니다. 그게 제 계획입니다. 리비아 수로 건설, 이라크 대수로 건설을 성공시킨 현성건설과 회장님이십니다.”
플랜A는 대수로 및 대운하 개통이다. 그리고 플랜B는 사하라의 눈이라는 곳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MOAB를 투하하여 인공호수를 건설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 플랜B로 간다면 미국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MOAB가 투하되면 반경 500m 이내는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하에 있는 지하수가 분출하게 될 것이고, 그 사하라의 눈을 중심으로 한 부분적인 수로를 건설해 사하라 사막의 녹지화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규모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회장님께서는 부하직원들에게 항상 그 말씀을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현성그룹 회장이다.
“나보고 해보라는 소리군.”
“예, 그렇습니다. 저와 함께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내 말에 나를 뚫어지게 보는 현성그룹 회장이시다.
“우리 현성 건설에 그 사업을 맡기겠다는 것이오?”
“예, 그렇습니다. 이라크 대수로 건설 사업의 50배 규모입니다. 향후 현성 건설은 해외 건설 수주를 20년 동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정도일 겁니다.”
여기까지만 말해줘도 혹할 수밖에 없다.
“사하라 사막은 샀소?”
“이제 할 겁니다.”
“구입한 후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해보라면 해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지 않소. 그래도 오늘은 좋은 만남이었소. 10억 달러라면 현성 전자를 매각할 수 있소.”
현성그룹 회장의 말에 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얻을 것만 얻으면 되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이고 태양전자가 세계 반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반도체는 따지고 보면 치킨 게임이다.’
가격 경쟁을 통해서 다른 반도체 기업들을 고사시킨 후에 내가 독식하면 된다. 물론 연구개발도 중요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