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72화 (172/415)

# 172

172화 소 떼 한 번 몰고 가시죠? (2)

1998년 2월 24일,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

대한민국에 도착하자마자 판교 본가에 여장을 풀었고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부름(?)을 받아 이곳으로 와야 했다.

-정치인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라.

내가 본가를 나설 때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시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상황이 그럴 수가 없습니다.

-돈 욕심이 생기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예, 그것은 저도 압니다.

내 대답에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이셨다.

-며느리가 꽤 야위었구나. 미국 생활이 힘든 모양이다. 그 많은 학생 중에 왜 홑몸도 아닌 며느리를 보내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게요. 좋은 판사 되라고 그러는 모양입니다.

-하여튼 나는 미국 놈들이 마음에 안 든다.

아버지는 가끔 미국인을 지칭하실 때 미국 놈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라 일본인을 지칭할 때는 일본 놈, 중국인을 지칭하실 때는 중국 놈이라고 부르신다. 물론 러시아를 여전히 소련이라고 부르시며 소련 놈이라고 부르시는데 하여튼 대한민국 주변에 있는 4대 강국에 항상 ‘놈’ 자를 붙이시고 대부분의 대한민국 어르신들이 다 그렇게 ‘놈’ 자를 붙인다.

‘깡다구가 센 거지.’

물론 허풍이고 허세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부른다.

-왜요?

-서민들이 다 이렇게 힘든 것은 IMF 때문이고 미국 놈들이 그랬다는 소문이 돌더라.

-소문은 소문입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여튼 정치하는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어울리지 마라.

-예,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내일이면 내가 대통령이 됩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당선인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예, 당선인님.”

“백범 대표의 말대로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서 국가 신용도가 3단계 상승했소. 금을 수출하고 그 금을 다시 수입해서 한국은행에 예치한다는 생각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1,000t의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그 1,000t의 금괴는 대한민국의 국가 자산은 아니지만,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다가 20년 장기 보유 조건으로 내가 한국은행에 빌려줬으니 그 자체가 국가 자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서 미국에서 제가 금 선물 옵션 투자를 통해서 1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 수익을 국가에 환원하기는 힘들지만,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국에 대여해 줄 수는 있습니다.”

내 말에 대통령 당선인은 고맙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럼 이제 백범 대표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나는 금 모으기 운동이 성공한 후에 그 금을 이용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되면 그 수익금을 국가를 위해 쓰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런 계획이 성공하면 요구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 요구에 대해 내게 묻는 것이다.

“IMF로 국가 경기가 침체가 됐습니다. 대량의 실업자들이 속출하고 있고 그에 따라 서민 경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요?”

“건설 경기부터 부흥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설 경기라고 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2 신도시 개발에 착수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 말에 놀란 눈빛으로 변하는 대통령 당선인이다.

“으음…….”

“제2 신도시가 건설된다면 대량 고용이 발생합니다. 당연히 건설 경기가 살아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동산 가격도 상승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서민들에게는 집 한 채밖에는 없습니다. 또 집 한 채도 없는 서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제 2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 좋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제 2신도시를 건설하고 싶습니까?”

“판교입니다.”

이건 아전인수일 것이다.

“판교라……?”

당선인의 말투에서 물음표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내가 판교에 엄청난 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거기다가 내 부친께서도 판교에 막대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전인수처럼 보이십니까?”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하겠소.”

“IMF가 닥친 후에 서울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부동산 불패라는 말도 옛말이 됐습니다. 하지만 곧 경기가 회복되면 부동산 불패라는 말은 다시 고개를 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서울에서 서민들이 집을 사기 힘듭니다.”

“그렇겠지요.”

“물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서민들이 수도에 집을 쉽게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도 지역에 집을 사고 싶어 합니다. 그런 요구를 충족시켜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도시 개발을 통해서 얻어지는 막대한 수익을 어쩔 겁니까?”

내가 막대한 수익 때문에 제2신도시 개발 사업을 판교로 지정해 달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저 그렇게 쪼잔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는 세계 부호 서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블랙홀 닷컴만 상장해도……!’

미국 10대 재벌 안에 포함될 테니까.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 주택에 투자하겠습니다.”

“공공임대 주택이라고 했소?”

“예, 그렇습니다. 일반주택과 공공임대 주택을 5대5의 비율로 건설하고자 합니다.”

“아……!”

대통령 당선인은 입이 쩍 벌어지는 순간이다.

“그것을 해낼 수 있습니까?”

“저이기에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백범 대표이기에?”

“예, 그렇습니다. 당선인께서 아시는 것처럼 저는 한국은행에 금괴 1,000t을 20년 장기 예치를 한 자산가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최고 부호일 겁니다. 제가 이제 돈 욕심을 더 내어서 무엇하겠습니까?”

이것은 사실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내가 아는 미래의 기억을 이용해 300억의 자본금을 가지고 이제는 200억 달러의 자산가로 변신했다. 이 자체는 신화일 것이다.

“제 돈은 이제부터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서민들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이건 진심이다.

‘돈이 너무 많아졌어.’

연수로는 2년이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금전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이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돈 욕심이 사라지고 있고 그 대신에 명예욕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존경받는 졸부!’

대한민국의 현대 경제사를 이끈 경제인으로 역사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물론 돈을 더 벌지 않겠다는 소리다. 앞으로 돈은 자연스럽게 내 수중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명예도 가지고 싶다는 소리다.

“아……!”

다시 한번 나를 보며 탄성을 터트리는 당선인이다. 그리고 그 탄성 뒤에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백범 대표.”

“예, 당선인님.”

“정치에는 정말 관심이 없으신 것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셔야 할 겁니다. 부를 가진 백범 대표께서 권력까지 가지시려고 한다면 화가 미칠 겁니다.”

“충고 명심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백범 대표의 요청대로 제2 신도시 계획에 판교가 포함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건설 분야에도 진출하시는 겁니까?”

대통령 당선인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국동 건설 인수전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최소한 론스타 펀드에게는 국동 건설을 내어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론스타 펀드는 사악한 사모펀드지요?”

나는 이 순간 두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밖에 없다.

‘현 대통령께서는 무식하게 용감하신 분이시고……!’

내 앞에 앉아 있는 다음 대통령이 되실 당선인은 박학다식하지만, 겁이 많으신 분이시다. 그런 박학다식이 론스타 펀드에 대한 실체도 알아차리게 만든 것 같다.

“예, 그렇습니다. 사모펀드의 특성 때문에 소수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에 몰두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의 국부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처음 내게 했던 말씀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내일이면 전 대통령이 되실 분에게도 약속한 것이고 내일이면 집권 대통령이 되실 분인 당선인께도 제가 약속드린 겁니다. 그리고 제 자식에게도 약속한 겁니다.”

“예, 믿습니다. 나는 백범 대표를 믿을 것입니다.”

“저를 믿으신다고 하시니 한 가지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해 보세요.”

“내일 대통령 취임식 때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당선인께서 먼저 허리를 숙여 주십시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왜요?”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이십니다.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국가유공자에게 허리를 숙이는 일이 쇼처럼 보이게 된다면 그 자체가 국격이 무너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앞으로 내가 만들어나갈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들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국가가 위기에 놓였을 때 누구나 앞으로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그래야 나라가 빛난다!’

* * *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 대표이사실.

나는 당선인을 만난 후 바로 박태웅 상임이사를 불렀다.

“내가 오늘 당선인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그를 만나고 왔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내일인데 오늘 또 만나셨단 말씀입니까?”

박태웅이 놀란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선인께 판교 개발을 요구했습니다.”

“왜요? 건설은 포기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나는 박태웅과 함께 앞으로 건설을 포기하고 전자에 집중한다고 계획을 세운 상태였기에 이렇게 그가 묻는 것이다.

“내가 꼭 건설을 포기해야 할까요?”

박태웅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계획 수정이다.

“원래 계획은 건설을 포기하시고 전자 분야에 집중하시는 겁니다. 정부 주도 사업 맞교환에서 현성전자를 합병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욕심이 생기셨습니까?”

“나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예?”

내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변하는 박태웅 상임이사다.

“또 무슨 엄청난 상상력을 펼치시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건설을 포기하지 않고 대한민국 서민들을 위해 민간 공공임대 주택 사업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 투자에 집중해 볼 생각입니다.”

“대표님, 이러시면 곤란하십니다.”

“왜요?”

“모든 계획이 다 틀어지지 않습니까.”

“그렇죠. 모든 계획이 틀어지죠. 하지만 서민들에게 발 뻗고 생활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주고 싶습니다.”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태웅 이사와 내가 해 봅시다. 우린 돈이 있지 않습니까.”

“자꾸 이렇게 계획을 변경하시면 곤란합니다.”

“정말 안 되는 겁니까?”

“으음……!”

내 말에 신음을 터트리는 박태웅 상임이사다.

“정말 대표님은 망나니처럼 행동하십니다.”

박태웅이 내게 투덜거렸다.

‘그럼 승낙이군.’

이제부터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진행이 되는 빅딜 사업에서 전자 분야를 어떻게 손에 넣느냐는 것이다.

“진짜 숨겨놓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박태웅이 나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고 나는 박태웅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궁금합니까?”

“예, 제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을 상상하시니 대비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있습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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