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171화 소 떼 한 번 몰고 가시죠? (1)
1998년 2월 23일,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전세기 안.
한 달 만에 박태웅 상임이사와 함께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중이고, 내 아내 은혜도 함께 대한민국으로 가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에 꼭 참석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대신에 경제인이 아닌 국가유공자의 후손으로 참석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권 의원으로부터 요청을 받았기에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입국에서 사업 맞교환을 위한 현성 그룹과의 물밑 작업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박태웅 상임이사.”
“예, 대표님.”
“국동 건설 우선 협상자 선정 마감이 28일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에 따라 국동 건설을 인수한다는 과정 아래에서 현성 그룹 회장과의 접견이 3월 2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역시 박태웅 상임이사는 보스인 CEO의 역할보다 참모의 역할을 더 잘하는 인물이다.
“모든 일이 잘될 겁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궁금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한다는 눈빛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픈 곳을 꼭 이렇게 후벼 팔 필요가 있냐는 눈빛을 보였다.
“아직도 아픕니까?”
“아프죠, 사랑이 아프죠.”
“배가 많이 나왔을 겁니다.”
“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내게 말한 박태웅의 눈빛이 찰나의 순간 변했다.
‘설마······!’
김찬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잊으세요.”
“사랑이 잊힙니까. 그리고 대표님, 앞으로는 제 사생활은 더는 말씀하지 않았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요, 제가 주제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박태웅 상임이사는 제게는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자제 부탁드립니다.”
“예, 그럽시다.”
“그리고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또 한 번 눈빛이 변하는 박태웅 상임이사다.
“무엇입니까?”
“나우루 공화국의 정치 상황이 돌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나우루 공화국 대통령이 종신통령제를 선언한 것에 대한 것은 보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내가 던져 놓은 이간질의 불씨가 이제야 피어오르고 있다.
“종신통령제 선언과 함께 재정 장관이 반기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요?”
반가운 소리다. 하지만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여서는 안 된다.
“예, 저희 쪽으로 무장 병력을 은밀히 요청해 왔습니다.”
“무장 병력이라고 했습니까?”
나는 바로 인상을 찡그려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당연히 거부했겠죠?”
“물론입니다. 앞으로는 나우루 공화국과는 거리를 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자금 반환에도 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투자금이 반환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럴 일은 희박하지만 재정 장관이 혹시라도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무장 병력 지원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 앙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은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재정 장관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급진파입니다.”
만나봐서 이미 알고 있다.
“하여튼 박태웅 상임이사의 말처럼 대비는 해야겠군요. 그래도 100억 달러의 투자금은 당분간 회수하지 못합니다. 계약서에 그리 적혀 있습니다.”
내 말에 박태웅 상임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습니다.”
“투자에 대한 수익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원금의 50%의 손실을 보면서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예, 그런 불공정한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하여튼 좀 더 지켜봅시다.”
내가 처음 나우루 공화국으로 갔을 때 나를 경호하기 위해 함께 온 무장 경호원들을 보고 박태웅에게 무장 병력을 요청한 것이다.
‘병신같이 쿠데타도 자기 손으로 못 하는군······!’
이것이야말로 나우루 공화국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다.
* * *
론스타 펀드 스미스의 사무실.
“태양 컴퍼니가 아니라 태양종합금융투자회사가 직접 국동 건설 인수에 참여했다?”
“예, 그렇습니다. 보스.”
“태양종금이 건설 사업에도 사업을 확장한단 말이지?”
“국동 건설 인수 자금의 상향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2300억 이상?”
“예, 그렇습니다. 2500억을 적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2500억은 백범이 생각하는 인수금액과 같았다.
“환율 하락 때문에 예상 금액이 많아졌는데······.”
“보스, 막대한 자금을 가진 태양종금입니다.”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스미스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사업 맞교환 때문이지 않을까요?”
“빅딜?”
“예, 분석실에서 그런 분석이 나왔습니다. 태양종금은 태양전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자분야의 규모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빅딜을 통해서 내어줄 회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어디와 빅딜을 하려고 그럴까?”
“현성 그룹일 가능성이 큽니다.”
“현성?”
“예, 은밀하게 현성 그룹 회장의 스케줄을 입수했는데 3월 2일에 백범 대표와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3월 2일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국동 건설을 무조건 차지하겠다는 의미군.”
스미스는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보스께서 국동 건설 인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2500억까지 예상하셔야 합니다.”
“분석실에서 그렇게 분석했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좋아. 2600억이다.”
스미스의 결심에 보고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그렇게 놀라나?”
“분석실 금액보다 100억이 더.......”
“태양종금이 현성 그룹과 딜을 할 수 있는 재료로 국동 건설을 선택했다면 당장에라도 내게 3000억을 주고서라도 인수해야겠지. 으흐흐!”
“그, 그 말씀은 그런 상황이라면 태양 종금이 3000억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 하지만 국동 건설이 3000억짜리는 아니지.”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이는 론스타 펀드의 스미스였다.
* * *
뉴욕 외곽에 위치한 저택 비밀 회의실.
“블랙홀 그룹의 CEO인 백범이 부시 주지사를 만났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모여 또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회의 주제는 놀랍게도 블랙홀 그룹과 백범이었다.
“백범……!”
이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늙은 유대인이 백범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습니다. 백범입니다. 저번 금 선물 옵션 투자 때 태양 컴퍼니 금 투자 펀드 때문에 1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선물 거래 옵션 투자로 돈을 버는 투자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대로 돈을 잃는 투자자도 있다는 의미다.
“우리 다윗연맹에게 100억 달러의 손실을 입혔군.”
드디어 유대 자본의 거대 세력의 존재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다윗연맹은 유대인이 주축으로 만들어진 비밀 경제 자본 집단이고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흑막에서 주름잡아왔던 사악한 존재이기도 했다.
물론 모든 유태인들이 악이라는 의미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다는 거지?”
“사하라 사막 녹지화 사업에 대해 부시 주지사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부시와 백범이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 이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다시 말해 부시가 이 다윗연맹의 회원일 가능성이 있거나, 그게 아라니면 부시 측근 중에 유대인 비밀 경제 자본 집단인 다윗연맹의 스파이가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뭐라고?”
다윗연맹의 수장이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보고자에게 다시 물었다.
“사하라 사막 녹지화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와 함께 태양 컴퍼니는 세계토지개발회사를 설립한 상태입니다.”
“처음에도 느꼈지만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자군.”
다윗 연맹의 수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미친 자입니다.”
“그런 미친 짓에 우리가 지금까지 1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지, 물론 그 손실의 책임은 백범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예?”
“모든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지 단 한 달 만에 200톤의 금괴가 모금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고, 그 200톤이 바로 미국으로 수출될 줄도 생각하지 못했다. 100억 달러의 손해는 우리의 잘못이지.”
다윗 연맹의 수장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골치 아픈 자다. 예측이 불가능하니 너무 머리가 아파.”
“추가적으로 백범의 회사인 태양종합금융투자라는 회사가 스미스가 추진하고 있는 국동 건설 이수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우리랑 또 부딪힌다는 소리군.”
“예, 그렇습니다.”
보고자의 대답에 다윗 연맹 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자라서 예측이 너무 어렵군. 하여튼 그런 자가 부시를 선택했다?”
“오판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보고자는 부시가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하는 눈빛으로 다윗 연맹의 수장에게 말했다.
“오판?”
“예, 그렇습니다. 현재 부통령인 엘 고어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부시를 이길 것으로 분석이 되었습니다.”
엘 고어는 미국 육군 하사 출신으로, 미국의 정치가 겸 환경운동가로 빌 클린턴 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며, 45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와 경쟁한 인물이다. 득표율 측면에선 부시보다 앞섰지만 미국의 특수한 선거 제도 때문에 대선에 실패한 바로 그 사람이다.
어쨌거나 엘 고어는 정치에서 물러난 후로는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인물이다 보니, 어떤 측면에서는 부시보다 백범에게 더 어울리는 인물일지 모른다.
그는 최소한 환경운동가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고 백범은 어떻게든 사하라 사막을 녹지화에 성공할 계획을 꿈꾸고 있으니까.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나?”
“예?”
“우리는 분석을 너무 맹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석을 무시할 수도 없지.”
다윗 연맹의 수장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추가적인 분석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엘 고어를 선택했다. 그러니 부시가 다음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시는 미국 대통령이 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부시의 재선 선거 때 부시의 마약 투약 범죄 사실이 밝혀지면서 선거인단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보고자의 말에 다윗 연맹의 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는 엘 고어다. 그리고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언론을 동원해.”
“예, 알겠습니다.”
“사하라 사막의 녹지화 사업? 이번에는 제대로 미친 짓을 시작하는군.”
백범을 다시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다윗 연맹의 수장이었다.
“하여튼 미친놈이 문제야. 쯧쯧!”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외환위기도 이들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려고 움직이고 있는데 사사건건 방해되는 인물이 백범이었다.
하여튼 백범과 다윗 연맹은 모든 부분에서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