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155화 청와대의 주인은 누구인가? (2)
사법연수원 연수원장의 집무실.
“제가 결정됐다는 말씀이신가요?”
심은혜는 사법연수원 연수원장의 호출을 받았고 하버드 로스쿨 교환학생 자격으로 입학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요, 결정됐습니다.”
“결정이라는 말씀은 선택권이 없다는 의미인가요?”
은혜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연수생에게는 좋은 기회입니다. 물론 단 한 번도 실시해 보지 않은 새로운 제도이지만 말입니다.”
“연수원장님…….”
“왜요?”
“제가 임신을 했어요.”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저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야 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건 청와대에까지 보고가 끝난 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개인에게 의사를 물어보셔야 하지 않았습니까?”
“판사나 검사는 공무원이고, 공무원은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말 심은혜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법무부에서 결정한 사항이고 대통령 각하께서 승인한 일입니다.”
“……예.”
은혜는 이 순간 말이 안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못해 예라고 대답했다.
* * *
은혜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통보를 받았군…….’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은혜에게 설명해 주는 일이다.
“은혜 씨, 무슨 일 있어요?”
다 알면서 은혜에게 물었다.
“백범 씨, 상의할 일이 있어요.”
“저도 은혜 씨에게 사과할 일이 있습니다.”
“백범 씨가 제게 사과를 할 일이 있다고요?”
“예.”
“뭔데요?”
“은혜 씨, 오늘 사법연수원 원장님 만나셨죠?”
내 말에 은혜가 살짝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다 꾸민 일이거든요.”
“예?”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은혜다.
“앉아보세요.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나는 은혜의 손을 잡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 * *
“아……!”
내 설명을 들은 은혜는 놀랍다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변했다는 것을 이제야 직감하는 눈빛이다.
“미안해요.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제 마음대로 결정을 했네요.”
“결국, 미국에서 우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할 생각입니다.”
내 말에 다시 한번 놀라는 은혜다.
“그 어떤 적을 속이기 위해서요?”
“예, 그렇습니다. IMF는 단순히 대한민국이 잘못해서 생긴 일만은 아니니까요. 물론 대한민국이 외환 정책을 잘못 펼쳐서 생긴 일이기도 합니다.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이제 정말 알았네요.”
“예?”
“당신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야 정말 제가 알았네요.”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보다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나는 은혜를 보며 사랑한다고 말했고 은혜의 눈동자는 파르르 떨렸다.
“당신이 내 대한민국입니다.”
내 말에 은혜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도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시니까 저는 믿을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은혜는 미국 하버드 로스쿨로 가겠다고 내게 말했다.
‘가자, 미국……!’
미국으로 가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어서 다시 돌아와서 내가 지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지켜낼 것이다.
* * *
대통령 선거 투표 당일.
나는 당연히 김대준 총재에게 투표했고 은혜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개표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개표 30분째인데…….”
여전히 여당 대표가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내가 아는 미래의 역사에서는……!’
당연히 김대준 총재가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내가 아는 그 대한민국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뒤죽박죽 섞여 있는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 * *
여당 당사.
여당 대표가 개표 방송을 보며 미소를 모이고 있다.
[경남 창원의 개표현황입니다. 개표 시행 30분까지…….]
와와와! 와와와!
개표 방송 아나운서의 개표 임시 결과를 들은 여당 사람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근소한 차이지만 창원에서 승리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여당 관계자들이 모두 밝은 표정으로 여당 대표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선거를 많이 해본 조의원은 찰나의 순간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가 여당 대표를 봤다.
“이제 겨우 개표 30분이 지났습니다.”
조의원은 여당 대표에게 말했다.
“그렇지요.”
사실 창원 지역은 여당의 표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겨우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있다는 것은 여당 대선 후보에게 좋지 않은 결과였다.
* * *
야당 당사.
“창원은 근소한 차이로 여당 대선 후보가 앞서는군요.”
김대준 총재의 표정은 밝을 수밖에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창원에서는 승리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권 의원의 말에 김대준 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원에는 젊은 노동자들이 많기에 백범 대표의 지지 선언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전라도 광주 지역의 개표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개표 방송 아나운서가 개표 방송을 진행했고 화면에서는 개표 1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압승으로 개표가 진행되는 모습이 방송됐다.
“예상했던 그대로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번 대선은 수도권의 표심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입니다.”
권 의원의 말에 김대준 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신의 고택 별채.
“박빙의 승부라고?”
이신이 이 실장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백범이 김대준 대표에게 올인을 했지?”
“예, 그렇습니다.”
“백범이 그렇게 해버렸으니 우리도 김대준 총재가 당선되어야겠지?”
“대부님께서도 적금성을 통해서…….”
“하하하, 늙은이가 되니 판단력이 흐려지고 욕심만 커지는군.”
이신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도야.”
“예, 대부님.”
“우리가 금을 얼마나 따로 모았지?”
지금까지 모아놓은 금괴는 백범에게 투자한 이신이었다.
“3조 정도입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세금이다.”
이신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고 이 실장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백범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어둠이지. 어둠은 어둠처럼 행동하는 법이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너도 이런 내가 안타까운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예, 대부님. 제가 알아서 잘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론스타 펀드 관계자가 입국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그래?”
“예, 스미스라는 자입니다.”
“스미스라……?”
“예, 그렇습니다. 대부님, 그리고 제 짐작건대…….”
“최종 목표는 은행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백범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송구합니다.”
“우리도 론스타 펀드에 일정 지분이 있지.”
“……예.”
“백범은 나를 아귀라고 했지, 그래 나는 살아 있는 아귀다. 이익이 우선이다. 하지만 론스타에 내가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 나중에 후일을 대비할 수 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허허허, 너는 내 마음을 잘 알지. 그래서 고맙다.”
이신이 이 실장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 * *
백범의 아파트 거실.
회귀한 후에 이렇게 조마조마한 순간은 없었다.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지는 순간이다. 물론 아직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정말 박빙이네요…….”
은혜도 자지 않고 내 옆에 앉아서 나와 같이 개표 방송을 보고 있다.
“그러게요…….”
보통 개표 방송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면 당선자가 결정되는데 아직 누가 당선될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진행되고 있다.
‘피가 말리네…….’
이래서 경제는 정치와 가까워지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경제인 것이다.
[김대준 대표가 역전했습니다.]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를 이제야 듣게 되는 순간이다.
“김대준 대표께서 역전했어요.”
내 아내 은혜도 내가 기자회견을 통해서 김대준 대표를 지지했다는 것을 알기에 김대준 후보가 개표상황에서 역전을 했다는 아나운서의 말에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네요.”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고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하고 있는 상태다.
* * *
새벽 3시가 됐고 내 아내 은혜는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고 나는 여전히 개표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아……!”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지는 순간이다.
[당선 확정!]
[당선 확정!]
개표 방송 화면에서 청와대 문양이 김대준 후보의 사진을 감싸면 번쩍거렸다.
“휴……!”
이제야 안도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렇게 김대준 총재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다.
“으으음…….”
그때 내 아내 은혜가 잠에서 깼고 눈을 비비며 나를 봤다.
“어떻게 됐어요?”
“김대준 후보께서 당선이 됐네요.”
“아, 다행이다…….”
나를 보며 미소를 보이는 내 아내 은혜다. 은혜도 걱정한 것이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 사람은 김대준 당선자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깍!
“전화 받았습니다.”
-에……. 백범 대표, 고맙습니다.
역시 김대준 당선자다.
“당선되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조마조마했습니다.”
-하하하, 이해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당선 발표가 나자마자 김대준 당선자가 내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이다. 누구보다 내게 고맙다는 증거인 것이다.
-당선되고 나니 백범 대표가 생각이 답니다. 내 백범 대표의 지지 선언이 아깝지 않게 잘 통치해 보겠습니다.
쿵!
순간 심장이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통치라…….’
말은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내가 여당 대표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구나…….’
그저 답답할 뿐이다.
“예…….”
-내 이만 끊소.
“예, 당선자님…….”
뚝!
바로 전화통화가 끝났고 내가 찰나의 순간 내 아내 은혜가 나를 빤히 봤다.
“왜 그러세요?”
은혜는 내 표정을 읽은 것이다.
“그게…….”
“갑자기 백범 씨 표정이 너무 어두워졌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너무 가엽네요.”
“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네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전히 통치를 당해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너무 가여울 뿐이다.
하여튼 김대준 씨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이 됐고 우리 부부는 내가 꾸민 계획 그대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원정 출산이지……!’
모든 국민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