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154화 청와대의 주인은 누구인가?(1)
1997년 12월 12일 백제 그룹 본사 회장실.
나는 대통령 각하와 약속했던 그대로 백제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백제 그룹에 백제증권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IMF 시기라 누구도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아서 단독 협상자가 되어 이 자리에 앉았다.
“백제증권의 부채까지 모두 인수하는 조건으로 200억에 인수를 하겠습니다.”
이미 실무자들에 의해 모든 조율이 끝난 상태다.
‘지금은 잘못됐지만 나중에는 좋은 일이겠지.’
백제증권을 정상화한 후에 나는 태양증권으로 거듭나게 만들 참이다.
‘모든 국민이 주식에 투자할 수 있게……!’
쉽고 편하게 인터넷 주식 거래를 활성화할 생각이다.
“고맙습니다.”
백제 그룹의 입장에서는 내가 백제증권을 인수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고마울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대통령 각하가 내게 요구한 것처럼 백제증권이 가진 부채까지 인수를 했기에 백제 그룹 회장은 대박을 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공적 자금을 투입할 겁니다.
경제수석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백범 대표.”
그때 백제 그룹 회장이 나를 불렀다.
“예, 회장님.”
“백범 대표의 이런 결정은 대통령 각하의 뜻이겠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증권사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태양종합금융투자를 우회상장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뜻이 있었군요. 하여튼 백제 그룹에도 잘된 일이고 태양종합금융투자에게도 잘된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현재 거래 정지를 당한 백제증권을 인수했고 그와 동시에 백제증권을 태양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 * *
여당 대표실.
대선 투표가 이제는 며칠 남지 않았고 여전히 3% 차이로 여당 대표의 지지율이 앞서고 있는 상태였다.
“백범 그자가 부실 증권사인 백제증권을 넘겨받았다고?”
“예, 그렇습니다.”
“왜죠?”
“아마도 우회상장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회상장은 편법 아닌가?”
백범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여당 대표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알아본 것으로는 청와대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나라 경제를 다 말아먹고 지금 와서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나.”
이미 대통령은 여당에서 탈당했기에 여당 대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야…….’
다시 한번 백범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속으로 뇌까리는 여당 대표였다. 하여튼 만약에라도 여당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백범은 정말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3%라고는 하지만 여당 대표의 지지율이 김대준 총재를 앞서고 있었다.
* * *
힐튼 호텔 스위트룸.
백제증권을 인수하고 바로 영업 정지를 당한 다섯 개 종금사의 최대 채권 은행의 은행장을 이곳으로 소집(?)했다.
물론 그 은행장들이 이곳으로 소집(?)된 것은 내 힘이 아니라 대통령 각하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지만 내가 다섯 개의 종금사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통보했기에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제가 영업 정지된 다섯 개 종금사를 모두 인수하고자 합니다.”
내 말에 이 자리에 모인 최대 채권 은행 은행장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입니까? 백범 대표.”
“예, 그렇습니다. 현재 영업 정지를 당한 다섯 개 종금사들이 도산하게 된다면 각 은행의 부실화는 가중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으음…….”
나는 사실 이들에게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른 것이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은행장님들을 모셨는지는 짐작하실 겁니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 대출금을 지분으로 전환하자는 소리군요.”
“예, 그렇습니다. 다섯 개나 되는 종금사가 파산하게 된다면 각 은행은 치명타를 입게 되지 않습니까? 또한, 손실로 잡힐 겁니다. 하지만 제가 종금사들을 인수하고 대출금을 지분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손실이 아니라 은행의 자산으로 잡힙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짐작하시는 것처럼 종금사들이 끝내 파산을 하면 각 은행은 시쳇말로 한 푼도 못 건질 수 있습니다.”
나는 강력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으음…….”
“현재 파산 신청만 안 했지, 곧 파산입니다. 종금사가 파산하면 종금사에 투자한 서민들도 파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은행들의 고객이 누굽니까? 서민들입니다. 그들이 무너지면 결국 은행이 무너집니다.”
“아…….”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제가 다섯 개의 종금사를 정상화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5년 이내에 이익을 거두시게 될 것입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백범 대표.”
“약속은 못 드립니다. 하지만 산업수출은행을 보십시오. 저와 거래를 한 후에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상태로 종금사가 파산 신청을 하면 은행도 죽고 은행들의 고객인 서민들도 모두 죽습니다. 개인 파산 신청자들이 늘어나면 은행으로서는 미미한 손해라고 생각하겠지만 큰 둑은 개미구멍에서부터 무너지는 법입니다.”
“좋습니다. 백범 대표의 말이 백번 옳습니다. 우리가 가질 지분은 얼마입니까?”
은행장 한 명이 내게 물었다.
“1%입니다.”
“뭐, 뭐라고 했습니까?”
“다섯 개 은행이 각각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의 지분 1%를 가지게 되십니다.”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파산하는 종금사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소.”
이 자리에 모인 은행장들이 모두 흥분해 내게 한 소리씩 하고 있다.
“싫으십니까?”
“말이 안 되는 지분이지 않습니까.”
“그럼 다른 방법이 있으십니까?”
“으음…….”
“아무리 그래도…….”
“제가 드릴 수 있는 지분은 1%입니다. 결정은 은행장님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얼마나 저들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것이다.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의 지분 1%다.’
태양종합금융은 현재 개인회사로 내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고 나는 또 블랙홀 그룹의 지분을 95% 이상 가지고 있다. 그와 함께 태양 컴퍼니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각각 개별 법인이지만 언젠가는 통합이 되어야 하고 그때가 되면 1%의 지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될 것이다.
“다른 방법이라……?”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백범 대표.”
은행장들이 내게 물었다.
“제가 생각한 최고의 방법을 마다하신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뭡니까?”
“현재 부채를 20년 장기 대출로 전환해 주시는 겁니다. 고정금리 5%로 전환해 주시면 제가 착실히 갚아나가겠습니다.”
“으음…….”
이 역시 은행으로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제시일 것이다.
“백범 대표…….”
“제가 하는 모든 제안은 곤란하시죠?”
“자꾸 말도 안 되는 제안만 하시니…….”
“그럼 종금사들이 파산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계십시오.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사실 이런 말씀까지 들릴 생각은 없지만, 대통령 각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셔서 어쩔 수 없이 떠안은 겁니다. 은행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 시쳇말로 제가 총대를 멘 겁니다. 그건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은행을 위해서라도 종금사 문제는 결론을 내셔야 합니다. 1%의 지분입니까? 아니면 후자입니까?”
저들은 절대 이 자리에서 빈손으로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기에 이렇게 은행장들을 압박하고 있다.
“좋습니다. 서민은행은 후자를 택하겠소.”
“그러시다면 이 계약서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내 말에 비서관인 곽우천이 서민은행 은행장에게 계약서를 내밀었고 서민은행 은행장은 아무 망설임 없이 서명했다.
‘쯧쯧…….’
스스로 복을 차 버린 서민은행 은행장이다.
“나는 백범 대표의 사업 능력을 믿겠소.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가 최고 투자 회사가 된다면 1%의 지분도 엄청날 것이니 우리 은행은 부채를 지분으로 전환하겠소.”
우리 은행?
우리가 알고 있는 어느 은행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은행장이기에 자기 은행을 우리 은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모든 은행장이 각자의 결심으로 계약서에 서명했고 이것을 통해 영업 정지를 당한 다섯 개의 종금사는 부채를 털게 됐다.
‘론스타 펀드라면!’
아마도 이런 상황이라면 먹튀에 돌입하겠지만 나는 다섯 개의 종금사를 흡수 합병이라면서 정상화를 시켜놓을 생각이다.
* * *
힐튼 호텔 기자 회견장.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는 백제증권을 인수했고 그와 함께 현재 영업 정지를 당한 다섯 개의 종금사를 모두 인수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기자들만 모인 것이 아니다. 이 자리에는 다섯 개의 종금사에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본 서민들까지 모두 모였다.
“와……!”
기자들은 내 발표를 적기 바빴고 어떤 측면에서는 영업 정지를 당해 투자금을 날릴 거라고 생각했던 서민들은 안도하고 있었다.
“영업 정지를 당한 다섯 곳의 종금사는 합법적 절차로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에 흡수가 되어 영업을 재계할 예정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기자 회견을 마칩니다.”
“백범 대표님!”
그때 투자자 한 명이 나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그럼 우리가 투자한 투자금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당장은 어렵습니다.”
“왜요? 광명종금사를 태양종금에서 인수를 했다면 책임져야 하잖습니까!”
이게 서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떼를 쓰는 마음……!’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괘씸할 수밖에 없다.
“책임을 져야죠. 알짜만 챙기고 튀려는 것 아닙니까?”
“맞아, 그럴 수도 있어.”
“책임을 지십시오.”
난리가 났다.
“모두 주목, 주모오목!”
나는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고 내 목소리가 워낙 커서 모두가 나를 보며 조용해졌다.
“광명종합금융에 남아 있는 알짜가 있다면 투자자님들이 가져가십시오.”
“으음…….”
“뒤져보면 없지는…….”
“자산 대비 부채율이 500%를 넘었습니다. 그건 여기 모인 분들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 순간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에 투자하신 투자자님께 송구할 뿐입니다.”
“백범 대표님, 그 말씀은 이번 인수에 정치권의 영향력이 존재했다고 해석해도 됩니까?”
기자 하나가 내게 물었다.
“노코멘트.”
내 말에 기자는 노코멘트의 의미를 알겠다는 눈빛이다. 그리고 생떼를 쓰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제가 인수하지 않으면 파산합니다. 파산은 말 그대로 파산입니다. 단 한 푼도 투자하신 금액을 회수하지 못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아…….”
“이런 젠장…….”
이게 인심이다.
짝짝짝, 짝짝짝!
그때 구석 자리에서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친 사람을 봤다.
“우린 1년이고 10년이고 100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파산을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름한 점퍼 차림의 중년 남자가 내게 소리쳤다.
“뉴스에서 한 푼도 못 건진다고 말했는데 종금사가 파산하지 않으면 우리가 종금사에 맡긴 돈은 그대로 있는 거잖습니까. 우리 백범 대표님께 생떼를 쓰지 맙시다.”
“옳소.”
“옳습니다.”
분위기가 확실히 반전이 됐다.
“모두 저를 봐주십시오.”
이제는 내가 나설 때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봤다.
“종금사에 여러분들이 맡기신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5년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린다니까요.”
“예, 백범 대표님을 믿습니다.”
“기부를 2조나 하신 분이시잖아.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서민들은 이렇게 내게 기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