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53화 (153/415)

# 153

153화 당신이 하시는 일이잖아요(4)

백범의 아파트 거실.

여당 대표가 돌아갔고 아무 말도 없던 내 아내 은혜가 나를 봤다.

“내가 너무 심했나요?”

“아니요. 당신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을 내게 하는 내 아내 은혜다.

“내가 하는 일?”

“항상 옳은 일이죠.”

나를 보며 웃어주는 은혜다. 그리고 은혜가 얼마나 내게 믿음을 가졌는지도 잘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너무 멋져요. 그리고 감명을 받았어요. 대한민국 국민 중에 헌법 1조 2항을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사람은 드물죠. 그리고 가진 사람 중에서 당신처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내 남편이 너무 존경스러워요.”

나를 지지해주는 내 아내 은혜다.

‘역시 사법연수원생이라서 다르군.’

그녀는 아는 것이다. 사법시험을 통과했기에 헌법을 아는 것이고 그리고 내가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 아는 것이다.

“당신이 한 말은 정말 멋진 말이었어요.”

이 순간 나는 살짝 찔린다.

나이기에, 내가 회귀 자이기에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서 사용한 것인데 내 아내는 내가 한 말이라고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니 살짝 찔린다.

“은혜 씨…….”

“예, 백범 씨.”

“제가 한 말은 누군가가 한 말이에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분을 만나고 싶네요. 저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말이었어요.”

은혜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나갔다가 와야 할 것 같은데…….”

“김대준 총재님께요?”

“예, 미리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나는 여당 대표에게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미리 알려드려야 한다.

“다녀오세요.”

나를 보며 웃는 내 아내 은혜다.

* * *

JP의 자택 거실.

“저는 총재께서 정치 기반이 충분하지 못하시기에 청와대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범을 만났던 여당 대표는 백범의 자택에서 나오자마자 김대준 총재가 찾아간 JP를 방문했다.

“뭐라고요?”

“지금의 대통령 각하께서 그 모진 질타를 감내하시고 3당 통합을 이루신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당 대표의 말에 자민회 총재의 눈빛이 변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다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소 미흡했던 정치적 기반을 확장하면서 김대준 총재를 꺾었습니다.”

“으음…….”

“만약 그때 지금의 대통령 각하께서 3당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면 청와대의 주인은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와 자민회 총재님의 대결이었겠지요.”

“내게,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이미 다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자민회 총재를 보며 미소를 보이는 여당 대표다.

“으음…….”

“딱 지금 지지율이 2%가 밀리고 있습니다. 자민회 총재께서 저를 지지해 주신다면 충청권의 민심이 제게 향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측근 비리와 총풍 사건이 일어난 상태에서도 김대준 총재보다 지지율이 2%밖에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총재님을 지지하는 11%의 마음이 제게로 향한다면 제가 대통령이 됩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지금 하시는 말씀은……?”

“5년 후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당은 해체가 되고 신당이 창당될 것입니다. 자민회와 통합이 되어 총재님께서 당 대표가 되시는 겁니다. 사실 저 말고는 다음 대선 후보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 대선 후보가 된 것이고요.”

“그렇기도 하지요.”

“김대준 총재께서는 아마도 총리직을 제안하시지 않았습니까? 연정을 말씀하셨을 것이고 하지만 총재께 미래를 약속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총재께서 저를 지지해 주신다면 5년 후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으음…….”

고민스러운 눈빛을 보이는 자민회 총재였다.

‘다음 대통령이라……. 하하하!’

속으로 웃는 자민회 총재였다.

‘약속은 약속일 뿐인데……. 괘씸하군.’

놀랍게도 자민회 총재는 자신에게 다음 대선을 이야기하는 여당 대표가 괘씸했다. 하지만 그는 야망이 꿈틀거리는 눈빛을 의도적으로 여당 대표에게 보였고 그 눈빛을 확인한 여당 대표는 자신의 계획대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십니까?”

“그 약속을 지켜주실 수 있소?”

“예, 물론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총재님을 적극 지지할 것입니다.”

“좋소이다.”

“정말입니까?”

여당 대표는 감격한 눈빛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뜻이 같으니 같이 가야지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바로 지지 선언을 발표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급하십니까?”

“급한 것이 아니라 마무리를 하자는 겁니다.”

여당 대표의 말에 자민회 총재는 그를 빤히 봤다.

“좋습니다. 내가 바로 긴급 기자 회견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러실 것 같아서 기자들을 다 불러놨습니다.”

“내 자택에서요?”

놀란 눈빛을 보이는 자민회 총재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또 하나의 야합이 만들어지는 순간이고 정치적 배신이 일어나는 순간이지만 정치에서 과연 배신이라는 의미가 존재한다 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 * *

김대준 총재의 자택.

“백범 대표는 앞으로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김대준 총재가 내게 되묻는 그 순간 권 의원의 표정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중립적이 되고 싶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대준 총재였다.

“그리고 전에 말씀을 드린 것도 철회하고 싶습니다.”

“전에?”

“예, 선생님께서 대통령이 되시면 경제부수석으로 청와대에서 일하겠다는 말도 철회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미 IMF가 닥쳤고 저는 저 나름대로 대비를 했습니다.”

“그렇기도 하겠군. 그렇다면 백범 대표의 생각은 뭡니까?”

“저는…….”

김대준 총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권 의원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고 김대준 총재가 권 의원을 봤다.

“잠시 나가서 전화를 받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김대준 총재가 말했고 권 의원이 자택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말해요.”

“저는 이제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고자 합니다.”

“뭐라고요?”

김대준 총재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이 되고자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니 청와대 경제부수석도 될 수가 없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지요?”

김대준 총재가 내게 물었고 나는 대통령 각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김대준 총재에게 해줬다.

“아……!”

안타깝다는 탄성을 터트리는 김대준 총재였다.

“백범 대표가 그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누구도 지지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계획했던 행보대로 움직이는 것은 대선이 끝난 후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고 대통령께서 참 많이 노력하고 계시군요. 백범 대표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대통령이 되어도 백범 대표가…….”

벌컥!

그때 요란하게 김대준 총재의 자택 거실의 문이 열렸고 권 의원이 놀란 표정으로 뛰어 들어왔다.

“총, 총재님.”

“왜 그럽니까?”

“배신입니다.”

“뭐라고요?”

“지금 자민회 총재가 여당 대표를 지지한다는 지지 선언을 했답니다.”

“으음…….”

“뉴스를 통해서 보도되고 있다고 합니다.”

권 의원은 김대준 총재에게 말하고 TV를 켰다.

[나와 자민회는 여당 대표인 이희창 후보를 지지합니다. IMF라는 이 어려운 국난의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는 여당 대표인 이희창 후보라고 생각을 하고 고심 끝에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고 이희창 후보를 적극 지지합니다.]

뉴스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빛이 떨렸다.

‘지지를 약속받았구나…….’

이건 일종의 배신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과연 배신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총, 총재님, 이렇게 되면…….”

“으음…….”

권 의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김대준 총재는 아무 말도 없이 신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이 나를 동시에 봤다.

“모든 상황이 달라진 겁니까?”

나는 두 사람에게 알면서도 물었다.

“이런 것이 정치랍니다. 하룻저녁에 말을 바꾸지요. 내가 너무 느긋했던 것 같소…….”

이대로라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이는 김대준 총재와 권 의원이었다.

‘충청권 민심과 11%의 지지율이니…….’

현재 여당 대표와 김대준 총재의 지지율 차이는 2%에 불과하다. 그러니 11%의 국민지지율이 여당 대표에게 향한다면 김대준 총재는 대선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하는 행동에 따라 또 달라지는 것이다.

‘여당 대표의 눈빛은…….’

나를 괘씸하게 봤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대선 전까지는 참겠다는 눈빛이었다.

‘결국, 나도 배신인가…….’

이래서 정치가 정말 싫다.

“백범 대표…….”

권 의원이 나를 불렀다.

“총재님.”

내가 권 의원의 말을 자르고 김대준 총재에게 말했다.

“내게 더 할 말이 있습니까?”

“정치는 배신이죠?”

“으음…….”

김대준 총재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가 배신할 때군요.”

“백범 대표…….”

“이제는 제가 타던 두 개의 줄 중의 하나를 끊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권 의원이 놀란 눈빛을 보였고 혹시나 하는 눈빛도 보였다. 마치 나도 김대준 총재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눈빛이다.

‘젠장, 진짜로 이민하게 생겼군.’

적을 속이려고 검은 머리 외국인을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될 판이다.

하여튼 내가 김대준 총재를 지지 선언을 한다고 해도 지지율 퍼센트로 따지면 김대준 총재가 밀리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 * *

다음 날 힐튼호텔 기자 회견장.

김대준 총재 측에서 은밀히 기자들을 불렀고 나는 지금 기자 회견 단상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모든 기자가 숨을 죽이며 단상 위에 올라 있는 내게 집중하고 있다.

“제가 이런 자리에 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는 대통령 후보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각 언론사가 저와 대선 후보님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지지율 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결정이라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자리에 서고자 결심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내 말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서 자격도 없는 저를 지지해 주신다는 것에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통해서 제가 김대준 총재를 존경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 정부는 경제 정책에 실패했습니다. 그에 따라 국민들이 힘들어지는 IMF 사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여당을 다시 지지하시겠습니까.”

이왕 타던 줄을 끊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여당 대표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군.’

완벽한 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여당 대표의 생각으로는 내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이렇게 할 줄 알고 미리 나부터 찾아왔을 수도 있다.

‘그래도 3%가 앞서니까…….’

이번 대선은 정말 박빙의 승부가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김대준 대선 후보님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시는 모든 분은 저와 함께 김대준 대선 후보님을 지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 *

여당 대표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여당 대표는 백범의 기자 회견 뉴스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지만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측근들에게 말했다.

“예, 그래도 현재 지지율은 앞서십니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 같군요.”

여당 대표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망할 놈, 내 그냥 두지 않는다.’

다시 백범을 떠올리며 분노하는 여당 대표였다.

0